Loading presentation...

Present Remotely

Send the link below via email or IM

Copy

Present to your audience

Start remote presentation

  • Invited audience members will follow you as you navigate and present
  • People invited to a presentation do not need a Prezi account
  • This link expires 10 minutes after you close the presentation
  • A maximum of 30 users can follow your presentation
  • Learn more about this feature in our knowledge base article

Do you really want to delete this prezi?

Neither you, nor the coeditors you shared it with will be able to recover it again.

DeleteCancel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 변화

No description
by

Suji Lee

on 7 May 2017

Comments (0)

Please log in to add your comment.

Report abuse

Transcript of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 변화

목차
선사 시대
고구려
BC 37 ~ AD 668
백제
BC18 ~ AD660
조선
선사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근대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점
신라-통일신라
BC 57 ~ AD 676
BC 676 ~ AD 936
1392년 ~ 1910년
- 조선 전기는 고려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어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 조선 후기 성리학이 정립되면서 여자는 남자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고 칠거지악이라해서 여자에게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 조선 초기에는 남녀 모두 제사를 돌아가며 주관하고 재산도 평등하게 상속받았지만 뒤로 가자 제사는 남자만 가능하게 되었으며 여성은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되었다.

- 양자가 일반화되었고 남자만 장자가 될수 있었다.

- 여성재가(재혼)가 사실상 금지→ 재가한 여성의 자식은 문과 응시 제한

- 삼종지도(여자가 어릴 때는 부모를 따르고, 출가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노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

- 집안은 여자의 관할이었다. 집안의 중대사에 남자는 참견하지 못하였으며 첩을 들이는 것조차 부인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 설사 첩을 들였다 하여도 부인은 마음대로 첩의 생사까지 관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언제나 부인을 존중해 주었으며 높임말을 사용하였다.
근대
- 개항 이후 서구문물의 본격적인 도입으로 신분에 상관없이 교육의 기회가 열림→신여성 탄생

*신여성: 개인을 억업하는 인습이나 제도에 반기를 들었다 근대의 여성들

- 3.1운동 이후 불붇은 문화열과 교육열 속에서 여학교를 다닌 신여성들은 선각자로서 의무감을 느끼는 한편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을 꿈 꾸게됨→교육을 받은 신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희소성을 가지면서 결혼이나 취업 등을 통해 계층 상승이 가능게 됨

- 여성교육 단체인 여우회, 찬양회 조직됨

- 조선보다 자유로워짐
고려
AD 918 ~ 1392
- 고려 시대 여성들은 연애와 이혼, 그리고 재혼등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재산도 균등하게 상속 받는 등 조선시대에 비해서 지위가 높았다.
- 제사를 한 사람이 도맡아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이 돌아가면서 지냈다고 한다. 또한 조선 시대 여인의 삼종지도 즉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유교적 도덕률과는 달리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호주가 되기도 했다.

재산 상속은 장자 중심이 아니라 아들과 딸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고 하며, 부모 봉양에서도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않았다. 고려사에 '우리고려의 풍습은 중국과 달라서 아들은 비록 떨어져 살더라도 딸은 함께 삽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며 이것은 공녀 문제로 원나라에 상소한 글이기에 다소 과장되있다 하더라도 딸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족보에는 대체로 딸의 이름은 생략하고 사위만 기록하고 있으나 고려시대에는 아들 딸 구별없이 출생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여성들은 나들이를 할 때 몽수라는 쓰개를 하고 다녔는데 이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치 풍조 중의 하나였다

고려 여인은 말을 타고 격구 시합을 벌였는가 하면, 규방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상업 활동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남녀가 동등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성에게는 벼슬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붓자식 : 재혼 전의 자식이란 뜻으로 과부가 자식을 데리고 재가한 경우가 많았음을 말해준다

고려 시대에는 여름철에 시냇물에서 남녀 구분 없이 옷을 벗어 놓고 몸을 드러낸 채 목욕을 하고 여자가 절을 할 때도 남자와 똑같은 형식으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 변화
1)구석기
- 남녀 성별에 따른 분업이 있었음으로 추정(샤냥-남성, 채집-여성)
- 노동에 있어서 성별분업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었지 사회적인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2)신석기
- 농경사회로 돌입하면서 노동력이 필요해졌으므로 여성의 역할이 지대했다.
- 현존하는 토기의 대부분은 만든 사람이 여성으로 추측하고 있을만큼 수공업 발전에 공헌했다.

3)청동기
- 전쟁으로 인한 남성 우위
- 생산 분야에서 노동력의 필요로 인해 남성의 참여비율 상승(공동체적 생활관계)
- 토기제작에도 전문인이 등장하고 가마와 물레의 보급으로 전업집단에 의한 분업화와 소유에 따른 격차 등으로 여성이 공적인 분야에서 점차 배제되어 갔다.
BC 70만 ~ AD
- 고구려에는 서옥제가 존재했다. 흔히 데릴사위제라고 하는 것으로 일종의 처가살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력이 중시되던 고대사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성이 결혼을 할 경우 여성의 집에서는 노동력을 상실하는 것이었고 남성의 집에서는 상실된 노동력에 대한 보상의 차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귀족이라면 남녀모두 평등하게 글을 배웠으며 개인의 의향에 따라 여성이라도 승마, 무술을 배울 수 있었다.

- 재혼이 가능했으며 재산 상속 또한 남녀에게 평등했다.

- 비교적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사회였다.
- 백제 초기는 그들 스스로가 고구려로부터 남으로 이주한 상태여서 기반이 아주 약했다, 권력의 힘이 약한 상태였기에 남성과 여성의 힘이 서로 비슷했다.

- 여성인 소서노의 주도로 세운 나라이고 백제 건국 초기는 불안한 조건에서 자리잡아야 했기 때문에 다같이 힘을 모을 수 밖에 없었고, 고대인 특유의 남성과 여성의 강한 지도력이 공존하게 되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서 추장이 남성이더라도 부족 어머니가 추장을 넘어서는 권위를 가지는 것과 비슷한 구조)

- 후기, 백제의 여성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중국의 기록에서 부인이 간음을 하면 처벌을 받지만 남편이 간음을 하는 경우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사회적, 경제적으로 배제됨
-한국의 역사에서 최초로 왕이 나타나는 국가이다.→여성의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철저한 신분제사회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

-여성의 지위가 높지는 않았지만 여신숭배사상이 자주 나타난다.→화랑의 기원인 원화는 여사제가 변형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여왕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원화: 화랑의 전신(신라의 진흥왕은 젊은 인재를 선발키 위해 남모와 준정이라는 두 여성을 원화로 삼아 300여 명의 젊은이들을 거느리게 해 행실을 보아 인재를 등용하려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예법에서도 알 수 있는데 『양서』의 기록을 보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전반에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 기록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과 함께 연회를 참석하여 오락거리와 음주가무를 즐겼으며 승마와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 여성을 동등하게 보지는 않았어도 존중하며 천대하지는 않던 사회였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점
흔히 우리는 과거 여성이 언제나 자유롭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상 조선 후기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 예로 우린 여성도 글을 배웠으며 승마, 무술까지도 배울 수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상업에 종사하며 몇 개국어까지도 가능한 여성들이 있었다. 남녀가 자유롭게 어울렸던 고려시대는 여성들이 살 만한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호주제나 남존여비, 재산상속에 있는 남녀 불평등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대체로 조선 중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 조선의 성리학은 양반과 상민의 차이, 남녀 차별을 엄격하게 구분짓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아지게 된것이다. 역사를 좋아하고 우리나라를 자랑스러워 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린 올바른 역사를 배웠으면 한다.
Full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