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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경의 역사 (고조선~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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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Inji

on 11 Dec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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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한국 조경의 역사 (고조선~고려)

한국 조경의 역사
(~고려)

삼국 시대
신라 , 통일 신라 시대
발해 시대
기법 정착 시대
기법의 도입시대
기법 정착 시대
추로왕 (B.C 1062-997) : '유원'에서 백록 200마리, 새, 사슴을 키움

의양왕 (B.C 590) : 후원에 '청류각 '을 세워 잔치를 열었음

제세왕 (B.C 180) : 궁궐에 복숭아 꽃과 배꽃이 만발했다는 기록(대동사강)
과일 나무를 많이 조성했음
노을왕 (B.C 1950-1891)
- 처음으로 동산인 '유'를 만들어 짐승을 키움
- 정원에 관한 최초의 기록 '대동사강'에 기록됨
고조선
대동사강
1929년에 김광이 쓴 책으로 단군 조선에서 순종 황제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음
고구려
백제
고려 시대
모방 시대
A.D 918-1392
고려시대 조경의 특징
- 중국 송나라의 정원 기법을 모방
- 통일 신라 시대의 새로운 방향으로 발돋움이 보이기 시작하던 정원 기법은 무시되고, 발전된 중국의 수법에 현혼되어 무조건 적으로 받아들이게 됨
- 강한 대비, 사치스러운 양식이 발달
-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조경은 불교 문화가 준 영향을 건축식 조경으로 변모시킴
- 불교와 왕족, 귀족의 향락적 문화생활을 중심으로 발달, 건축은 종교적 신앙건축에서만 미적 조형을 나타냄
- 북송과 원으로부터 식물과 애완동물을 들여옴
B.C 37 ~A.D668
B.C 18 ~ A.D660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정원 시설물
신라의 귀족이 물줄기의 둘레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연회를 별임
기록상 80년대 신라 현강왕이 이곳에서 놀았다는 기록이 있음
- 음양오행설에 의해 만들어짐
안압지
경주 포석정지
포석정
안압지 평면
안학궁성
조경의 시초
공산성 임류각
석련지
궁남지
- 우리나라 최초로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함
- 연못 가운데 봉래산을 상징하는 섬 축조
- 궁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가에 버드나무 식재
- 연못을 먼 곳에서 수로를 이용해 물을 끌어들여 만듬
한국 정원의 사상적 배경
- 평안남도 평양지방에 발달해 있는 대동강 상류의 대성산성의 남쪽에 위치
- 궁 밖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를 식재
-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축조했음
- 자연 형태의 연못과 인공 동산이 있었으며 연못 안에 3개~4개의 섬이 있었음
- 고구려 정원유적의 대표적인 것으로 정자터와 경석이 발견

안학궁터
안학궁 복원도
부여읍 남쪽 왕포리에 있음
지중에는 지름 약 20m의 섬을 만들고 팔각지붕형 정자를 지었으며 섬과 남안사이는 나무다리로 연결
금원 (궁궐 조경)
민간조경
일반 주거 주택을 중심으로 한 주택 조경

자연 숭배 사상
: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계의 섭리를 신앙으로 승화시킨 것
- 조경공간에서 자연지세 형상을 유지하고 오래된 거목을 보호수로 남겨둠 자연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롬 함

음양 사상
:
고대의 족장사회에서 하늘과 땅, 남과 여, 해와달과 같은 상대적 대비와 조화의 관념에 근거하여 유래된 사상

오행 사상 :
음양에 의해 생성된 기본 물질이 발전하는 법칙이자 우주 변화론

- 우리나라의 연못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형태, 정원의 다른 구조물은 모두 곡선을 취하고 있는 받면 유독 연목의 형태만 직선으로 나타남
- 고구려의 안학궁터 이후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연못 형태

신선사상
:
한민족의 자연숭배사상과 단군의 제천의식이 바탕이 된 무속신앙의 일종으로 한민족의 시원사상
- 중도식 정원으로 나타남

풍수사상
:
'풍수'란 생물이 살고 있는 땅과 인간과의 근원적인 관계를 밝인 것
- 조경의 형식과 배치, 터의 선정, 수목의 배식 등에 영향을 미침


환도산성 (위니암산성)
- 중국 지린 지안시에 있는 옛 고구려 왕성
인공적인 정원이 조성되었음
- 터만 남아있음


신라 문무왕 때 경주에 조성된 인공 연못
안압지의 사상적 배경
- 바다를 상징하고 못 속의 세 섬은 삼신산을 모방
- 신라는 당시 신선 사상이 풍미하였으며, 신선의 세계관을 표현
백제 조경의 특징
-
귀족적이고 온화하며 화려한 문화를 보여줌
-
사원건축과 그에 대한 조경양식이 두드러지는데 사원에는 불교의 의식에 의해 탑, 불상 등 많은 조경적 가치를 지닌 시설물이 이루어짐
- 동진을 비롯하여 송, 량, 진과도 외교 관계를 맺어 내왕하며 문화를 받아들임
삼국시대 조경의 특징
- 민가에서는 볼 수 없었고 궁중이나 귀족의 저택에서 볼 수 있었음
- 중국의 영향을 받아 신선설에 입각하여 백제에서는 궁중에 거대한 연못과 섬을 만든 중국의 중도식 정원을 모방하였음
- 삼국시대나 통일 신라 시대 왕궁조원은 기화이초를 심었던 것으로 보여짐

조경의 특징
신라시대에는 불교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시기였다. 경주를 중심으로 건축된 사원과 포석정, 안압지, 첨성대, 음식을 저장해 두기 위한 석빙고, 고분등은 모두 그 시대의 유적으로 대단한 조경적 업적을 남겼다.
- 지리적인 조건으로 조경문화가 늦게 발전
- 질 높은 정원이 많음
- 풍수지리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음
- 약간의 기록은 있으나 유적은 없음
- 동굴 벽화, 주거형태, 궁궐, 사원, 무덤 등을 통해서 외부 환경 조성의 일부를 추정
그 외에 요령성에 발견된 무덤에서 조경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음
고구려 조경의 특징
- 불교를 공식으로 인정하여 불교문화가 발달했음
- 후에 신선사상과 도교를 전래
- 진취적이며, 패기와 정렬이 있고, 규모가 크고 장엄함
- 대륙적인 성격이 보여짐

고분벽화에 나타난 정원 문화

- 옛 도읍지인 국내성 부근에 산재된 고분에서 발견됨.
- 벽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동, 식물과 산수경관, 천체 등 자연에 관한 것, 신선, 사신, 농신 등의 종교에 관한 것, 그리고 생활용품, 성곽, 건축, 정원 등의 생활 문화에 관련된 것으로 대별됨
- 고분벽화 중 뜰과 들에 관한 대표적인 것은 산악도, 신선도, 사신도, 수렵도, 연지도 등

동명왕릉 진주지
평남 중회군에 있는 동명왕릉 서쪽 400미터 되는 거리의 낮은 지대에 만들어진 못이름

- 연못안에 4개의 섬이 있음
- 연못 바닥에 자갈을 깔았음
남궁, 중궁, 북궁으로 구분, 남궁 서쪽에 곁들여 있는 정원은 못과 축산
못 - 자연곡선으로 윤곽처리 (4개 섬)
축산 - 자연스러운 형태
정자터 - 경석 다수 발견
만월대
경기도 개성시 송악산에 있는 고려의 궁궐터
만월대 터
만월대 복원도
- 풍수지리설이 영향을 미침
- 고려말 유교의 영향으로 남녀의 구별의식이 생겨 집의 구조가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기 시작
- 왕조의 귀족계급은 웅대한 규모의 저택을 경영하며, 호화스러운 정원을 꾸밈
- 귀족계급의 정원은 석가산, 기화이목, 곡소, 분지 화분 등의 인위적인 정원시설을 꾸밈
자연과 조화를 시도하는 정원이 만들어짐
- 고택유적으로 충남 아산 맹사성고택, 이 사지였던 목성전이 남아 있다.
아산 맹사성 고택
상경용천부 궁궐
내성의 북쪽에 위치, 앞은 웅장, 뒤는 아담하게 꾸밈
궁성 동쪽에 궁중 정원 위치
- 북쪽엔 담벽으로 막은 여러 개의 안뜰, 그 남쪽에 큰 연못 (인공지)
- 남쪽 연못가에 2개의 섬과 8각 정자터가 발견
- 연못 밖으로 동과 서에 각각 가산을 만들어 여러 가지 화초를 심고 진기한 짐승을 기름
본궐 : 만월대(개성), 수창궁 강화도 강도 궁궐, 수녕궁
이궁 : 수덕궁원, 장원정, 중미정, 만춘정, 연복정, 용언궁
삼국시대 기록
삼국사기 - 왕궁조원 기록 중 - 화초를 심은 기록
백제 진사왕 7년 - "궁내에 산과 원지를 만들고 기화이초를 심고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백제 동성왕 22년 - "궁성 동쪽에 못을 파고 진기한 짐승을 길렀다.
백제 무왕 37년 3월 - "왕이 신하를 거느리고 사비하 북포에서 잔치하며 놀았는데 그 강가 양 던덕에 기암괴석이 벌려렀는데다가 간간히 기화이초가 피어 있어서 마치 그림과 같았다."
신라 문무왕 14년 - 궁내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고 화초를 심고 왕 연못가 조원 속에 키가 큰 교목을 심지 않고 초화류의 꽃을 심었음을 알게 한다.

환도산성 터
동성왕 시대에 조성된 문헌상 최초의 정원
동성왕22년 봄에 왕경인 웅진의 궁성 동쪽에 세움

- 궁 동쪽에 강의 수경과 산야의 조경을 즐긴 위학 기능을 함 (웅진시대)
- 연못을 파고희 귀한 짐승을 기름, 화려한 연못이 있었음
`
기록
눌지왕(A.D 435) : 계림, 능원 조성
소지왕(A.D 487) : 계림에 천천정 조성, 서출지
진평왕(A.D 627) : 당나라에서 모란 도입
경덕왕(A.D 760) : 궁중에 큰못
헌강왕(A.D 875~886) : 사절유택 - 동야택,곡량택,구지택,가이택

『발해국지』의 기록 : 저택에 원지와 수백 주의 모란꽃 화원이 있었다.
『삼국사기』의 기록 : 배나무를 많이 심어 가지가 서로 연결되는 수림이 있었음

이규보의 동국이상집
- 귀한 나무와 각종 초화를 심어 재배하였고 고려 후에는 재상이나 귀족들도 조그마한 정원을 만들었다는 기록이있음
만월대 본궐
: 고려조 정궁. 산록 지형에 따라 높은 곳에 위치. 몇 개의 단. 전조후침. 가변성을 띤 대칭
- 궁 후원의 구릉에 상춘정과 팔각정, 팔선전 등의 전각과 정자가 지형에 조화되게 배치됨.


고구려 벽화
무용총 수렵도
사신도 -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신선도
백제 조경 기록
- 진사왕 7년 (391) : 궁실을 중수하고 천지조산하여 여러가지 화초를 심고 가금을 기름
- 동성왕 22년(500) : 궁 동쪽에 15m에 이르는 임류각을 세우고 못을 파고 원유를 두고 가금을 기름
- 성왕 16년 (538) : 남조와의 교류로 '음양오행사상'이 들어오게 됨
- 무왕 35년 (634) : 궁 남쪽에 못을 파고 방장선도를 반들었으며 못의 서안에 버드나무를 심어었음, 신선사상을 배경으로하는 지원이 만들어짐
- 백제 말 의자왕 떄 정원 장식을 위한 첨경물로 화강암의 돌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물을 담아 연꽃을 심어 즐겼음
- 조선시대의 세심석으로 발전
사절유택
: 통일신라 시대 귀족들이 철따라 자리를 바꿔가면서 놀이 장소로 삼았던 별장형 집
금원
: 궁궐정원을 금원이라고 하였으며 동지, 화원, 석가산, 격구장, 정자 등으로 구분됨
금원의 구성
동지 (귀령각지원) : 경종977에 조성
- 물가에 누각을 짓고 배를 띄우고 주연을 열거나, 무사를 검열하고 여러 신하로부터 시를 짓게 함
- 진금이수 (거위, 백학, 오리, 산양 등)를 사육
화원
- 건물로 둘러싸인 네모난 공간 속에 꽃나무와 화초로 꾸민 정원을 말함
- 화훼, 화목류를 송,원나라에서 수입, 이국적인 분위기를 나타냄
석가산
- 주로 괴석을 이용하여 자연의 기암절벽을 모방하거나 신선세계를 꾸미는 의도로 만들어진 가산
정자
- 고려시대 조경 문화의 중추적인 요소소의 하나로 전망 좋은 강변과 언덕에 휴식 조망을 위해 설치
누각
- 궁원이나 자연 속에 여러가지 형태로 만들어져 놀이터의 역할을 함
객관조경
중국 등의 외국 사신이나 여행자를 접대하던 곳

조경
- 본관 뒷편에 따로 세운 낙빈정의 화원과 산허리에 꾸며진 향림정의 원림
- 관의 동편에 있는 도할과 제할을 위한 공관의 상, 하지
- 순천관에는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피로를 풀며 즐길 수 있도록 정자가 세워짐
고려시대 최영이 지음
- 3단의 기석을 축조
- 하단은 과수원 채소원으로 사용, 중간 단은 본채 등의 건물, 상단은 자연 구릉을 살려 후정으로 사용
고려말의 정원 양식을 띰
- 고려시대 주택 건물 중 유일하게 현존

고려 시대 정원
: 궁궐정원, 민간 정원, 객관조경, 별서정원으로 대별됨
별서정원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야합하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여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만들어 놓은 정원.
20091595 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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