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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뉴턴과 라이프니츠

봉명고등학교 수학융합스토리텔링 2016.
by

준수 황

on 15 Jun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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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수학자- 뉴턴과 라이프니츠

수학자- 뉴턴과 라이프니츠
미적분에 숨겨진 일화를 아시나요?
뉴턴vs라이프니츠 미적분학 논쟁
라이프니츠를 아시나요?
-알려지지 않은 수학자-
주제선정이유

세상에 알려진 유명한 수학자들
말고도 많은 업적을 남긴
수학자들의 공식을 하나의
도구로 무작정 사용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자들의
일화를 알려주어
수학적 흥미를 높이기 위해
선정하였습니다.

라이프니츠는 1684년경에, 카발리에리의 방법을 따른
원자론에 “연속률”이라는 원리를 덧붙여 뉴턴의 극한 개념을 대신한 또 다른 미적분학을 세웠습니다.
미적분학에 관한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업적에 대하여는
다음의 점에서 비교가 됩니다.

뉴턴은 수학을 역학 연구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수학에서 다루는 양도 연속적인 운동을 주로 생각하였습니다.
가령, 선은 점의 운동이며, 면은 선의 운동이라 본 것이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라이프니츠는 기하학적이며 기호적이었습니다.

이들의 미적분학은 오늘날의 것과 상당히 다른데,
오늘날에는 새로운 극한의 개념을 기초로 하여 이론 전체를
재편성한 것입니다.
1696년 스위스 바젤에서 부유한 귀족인 요한 베르누이가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당대의 이름난 수학자에게 내는 수학문제였습니다.
물론 문제를 내는 그는 문제의 답을 알고 있고 편지의 끝에는 이런 덧붙임 말을 붙입니다.

"이 문제를 통해 어른과 어린이를 가려낼 것이다."
"이 문제를 맞추면 영원한 명성을 얻을 것이다."

편지의 마감기한은 6개월이었습니다.
베르누이가 낸 문제의 편지는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에게 배달 되었습니다.
베르누이가 문제를 낼 당시의 교통수단은 매우 안 좋은 상태여서 배달만 몇달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베르누이가 낸 문제를 풀기만 하면 최고 중 에서도 최고의 수학자가 될 수 있었죠.
첫번째 정답자는 라이프 니츠 였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누군가를 겨냥한 문제여서 베르누이는 문제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편지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자, 마감기한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이문제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가 미적분하면 떠오르는 아이작 뉴턴이였습니다.
또한 ​런던의 출판업자 존 콜린스가 뉴턴의 미출간 자료 일부를 라이프니츠에게 보내준 데서 빚어졌습니다.
뉴턴은 콜린스의 ‘배신행위’로 자신의 미적분 아이디어가 누출됐다고 주장했고,

라이프니츠는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개발했을 뿐”이라고 응수했습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가 독일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원장이 되고,뉴턴이 영국 왕립협회의 회장이 되면서
이 싸움은 두 나라의 국가적인 논쟁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17세기 유럽 학문의 중심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왕립학회는 라이프니츠의 진실규명
요청에 따라 왕립학회 내부에 법정을 설치하였는데요.

뉴턴과 라이프니츠 모두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었지만
뉴턴은 이미 25년간 영국 왕립학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던 반면 라이프니츠는 일반 회원이었습니다.

1715년 영국 왕립학회는 뉴턴이 미적분법의 최초 창시자임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번 수리융합 스토리텔링을 통해 평소에는 크게 접할 기회가 없었던 수학자 업적, 일화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서 좋았고,
저희 조의 발표로 많은 친구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많은 수학자들에게도 관심과 흥미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저희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636 황준수
20903 김나연
20910 남선애
21009 봉지영
10322 이영찬
어차피 우승은 우리조
-2-
뉴턴vs라이프니츠 미적분학 논쟁
17세기를 대표하는 영국과 독일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미적분학의
창시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 상대의 연구를 격려하는 사이이기도 했지만
성격적으로는 완전히 달랐다고 합니다.

아이작 뉴턴은 ​1665년 경 유율법 관련 논문으로 미분법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유율법 - 뉴턴이 1665년에 만든 아이디어로서, 고대이래로 운동에 의해서 기술되는 연속적인 양을
다루기 위해서 사용되었고, 무한소 해석에 중요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라이프니츠는 1675년 미분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고
1684년 '극대 극소를 위한 새로운 방법' 이라는 논문으로 미적분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가 발표한 시점보다 20년 후인 1704년 뉴턴은 '광학'이라는 논문으로
미적분을 발표했습니다.​

이때 뉴턴의 신봉자인 파티오가
"미적분은 뉴턴이 발견한 것인데 뉴턴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흘렸던 아이디어를 라이프니츠가 도용한 것이다." 라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1-
이 두 나라의 국가적인 논쟁은 라이프니츠가 죽은 후에야 잠잠해졌습니다.

이 논쟁의 결말은 영국이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기호 사용을 거부하면서
영국의 수학이 독일에 100년 가까이 뒤쳐지게 되는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적분을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를 놓고 수 십 년간 치열한 표절 공방을 벌였던 두 사람은 수학적 정의의완벽함은 뉴턴에게, 미분학 기호의 편리성과 이론 전개는 라이프니츠에게 있는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만약 이 논쟁이 없었다면 수학은 훨씬 발전했을 것이라고도 생각 합니다.
뉴턴vs라이프니츠 미적분학 논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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