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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와 백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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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현 김

on 2 Ma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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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잔다르크와 백년전쟁

1350
1400
1500
1300
1450
잔다르크와 백년전쟁
백년전쟁의 배경
백년전쟁 1기
백년 전쟁 2기
-1364년 샤를 5세의 즉위

내정의 정비와 재정의 재건에 착수
귀족들을 선동하여 영국의 지배에 반항
양국 사이가 다시 악화→전쟁이 재개

-1369년 영국의 프랑스 침입
영국의 패배
브레티니화약에서 영국에 할양한 영토의
대부분을 탈환


백년전쟁 3기
1412년 로렌주의 농민의 딸로 출생

1425년 13세 신의 계시를 받음

백년전쟁 3기
-1435년 부르고뉴파와 아르마냐파 아라스에서 화의→프랑스 내란 종결

-이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산발적인 전투

-1444년 툴에서 휴전이 성립
영국은 프랑스 내에 멘 ·보르도 ·칼레 ·노르망디 등의 영토를 계속 보유
2015250109 김경현
2015250126 서지현
2015250128 이예원

1337
1364
백년전쟁 2기

-1375년 부뤼지에서 휴전 협정을 체결
-1377년~1380년 영국: 리처드 2세 즉위
프랑스: 샤를 6세 즉위
→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은 오랫동안 중단


1375
잔다르크의 등장
백년 전쟁의 종결
-1445년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적 교섭 타결 X
샤를 7세 →영국 지배하의 여러 도시를 점령

-영국:
랭커스터왕가의 지배에 대한 요크가의 반항

-샤를 7세는 영국 내의 혼란을 틈타 영국군을 격파

-1453년
영국군 최대의 거점인 보르도시를 맹공격, 점령

영국은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내의 모든 영토를 잃음

1. 장기간에 걸친 영국군의 가혹한 지배와 약탈행위
→프랑스의 시민과 농민들 사이에 반영감정이 고조
2. 샤를 7세에 의하여 보병 ·포병을 주력으로 한 프랑스 국왕군이 강화
슬라이스 해전
1340년

영국군의 승리
푸에티에 전투
페스트 진정 된 후 영국의 프랑스 재침입
크레시 전투
1345년

에드워드 3세 노르망디에 상륙

1만영의 장궁병 투입

프랑스군 패배

칼레시로 진격

1347년 칼레시민의 항복을 받아냄
당시의 전투 방식
흑태자 에드워드
전투시 항상 흑색 갑옷을 입었다해서 붙여진 이름

16세에 크레쉬 전투에 참여

26세 프랑스 재침입시 사령관

아키텐을 중심으로 프랑스 남부 일대 대부분을 점령
1350년 필리프 6세 죽고 장2세가 즉위

장 2세 남부로 출정

흑태자 푸아티에로 후퇴

장궁병의 활약으로 영국의 승리

장2세는 흑태자에게 포로로 잡힘



결과
영국의 승리
브레티니 조약의 체결
*프랑스는 장 2세의 석방보상금으로 300만 크라운을 지불

*아키텐 지방 전부와 칼레시 등의 영토를 영국에 할양
영국의 상황
프랑스의 상황

* 리처드 2세 와트와일러 반란 진압 → 친정을 선포

*플랜테저넷 왕조 vs 랭커스터 가문

* 헨리 4세 즉위 , 랭커스터 왕조 시작
귀족들의 내전

*부르고뉴파 vs 아르마냐크파
헨리 5세
*내부 안정
→플레테저넷 왕조를 다시 복위하려는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

* 부르고튜파와 결탁

-1422년 헨리 5세, 샤를 6세 사망

→영국: 헨리 6세가 영국과 프랑스
두나라의 국왕자칭

→프랑스: 샤를 7세로 왕위에 즉위함 선포

-샤를 7세의 거점인 오를레앙을 포위
아쟁쿠르전투
헨리 5세의 요구

-아키텐지역, 노르망디 지역

-샤를 6세와 혼담을 제한 후
어마어마한 지참금 요구


영국군의 대승
트루아 조약
(1420)
① 영국왕 헨리 5세는 프랑스 왕녀 카트린과 혼약
(헨리 6세의 프랑스 왕위 계승권 획득)

② 지참금으로서 영국 왕에게 '백합꽃의 왕국'을 증여

③ 영국 왕은 현 샤를 6세의 재세 중 섭정권을 인정
왕이 죽으면 계승권을 가짐
1453
백년 전쟁의 결과
정치적
*영국
-완전한 섬나라가 되어 오로지 본토에만신경

-항해와 항로개척에 관심

-이후에 일어난 장미전쟁의 영향으로
유럽에서 가장 먼저 튜더 절대 왕정체제가 성립

※장미전쟁: 왕위를 두고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가문이 1455년부터 30년 동안 벌인 싸움

*프랑스
-봉건세력이 무너짐
기사들 대부분이 전쟁에서 죽어 그들이 가진 땅은 국왕이 차지

-상비군을 바탕으로한 절대왕정시대
사회적
잔다르크는 국민의식을 고취시키는데 공을 세움

백년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국민국가의 형태로 나아감
경제적
*영국
플랑드르에 있던 기술자: 영국으로 이주
영국의 모직물공업 발달

*프랑스
봉건제후들이 몰락하고 신흥 부르주아가 등장 →그들의 세금으로 관료제와 상비군 갖춤
잔다르크의 죽음
1431년 5월30일 19살의 나이로 화형

‘잔이 들은 목소리는 사악한 목소리며 잔의 목소리는 실제의 육성이나 지옥으로부터 온 것이다. 잔이 여성의 복장을 거부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불복종을 의미한다.’

교회의 입장
-잔이 들은 계시는 악마의 소리
→교회의 입장과 사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서만 하늘과 연결

(어린 소녀가 사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것은 교회에서 난감한 일
→악마의 소리라는 것을 인정할 것을 종용)

잔다르크의 아이러니
교회의 이분법적 기준
(천국 or 지옥, 천사 or사탄, 남자 or 여자)

여자가 치마를 입지 않고 다리를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은 남자를 유혹하는 행위
→부도덕 , 사악한 행위

잔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고 전장에 나감

요안나의 아이러니
-잔다르크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 하더라도 직접 전장에 나갈 필요는 없었음

-그녀가 단순히 계시를 이행하려 했던 것 이상으로 두 언니에 대한 복수심과 영국군이 행한 유린에 대한 보복심 때문

샤를 7세의 대관식
-대관식이 거행되는 랭스를 영국군이 점령
→프랑스 황태자 : 샤를 6세 죽었지만 정식적인 왕으로 인정 X

-잔다르크가 대관식을 하도록 도움
→적은 수의 병사로 오를레앙을 탈환
→계속해서 랭스를 탈환함

-샤를 7세는 대관식을 통해 적법한 프랑스의 왕으로 확립
(트루아 조약의 무효화)

*대관식을 하려던 이유
잔에게 내려진 계시 ‘왕을 도와 내 딸들을 구하라’
→프랑스를 단결시키라는 의미
→단결을 위해 왕을 세워하함

그 후....
-부르고뉴가 지배하는 생피에르와 라샤리테 탈환작전
→지원이 오지 않아 실패

-부르고뉴가 콩피에뉴를 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싸움터에 나감

-1430년 잔 다르크는 부르고뉴파에게 체포되어 영국측으로 인도

-영국측은 잔다르크의 몸값을 요구하나 샤를 7세는 돈을 보내지 않음

- 1431년 2월 21일 잔 다르크는 40명의 재판관이 기다리는
루앙 성의 성당으로 끌려가 종교재판을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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