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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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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화 최

on 12 Jun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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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메이크업

메이크업
한국 메이크업의 역사
1) 백색 피부를 호상이라 선호하였고 미남 미녀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청결을 존중하였다.
2) 엷은 색조에 은은한 화장으로 타고난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미용의 주안을 두었다.
고조선시대

1)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을 먹게 하였다.
2) 쑥과 마늘은 민간에서 널리 행해진 미용 처방으로 쑥을 달인 물에 목욕을 하고 마늘을 찧어 꿀과 함께 얼굴에 바르면 기미,주근깨,잡티제거와 미백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햇빛을 보지 않으면 흰 피부를 가질 수 있으므로 그 당시 여성들의 미의 기준은 흰피부를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3) 돼지기름을 피부에 발라 추위를 이기고 동상을 예방하였다.
고구려
1) 고구려 사람들은 남여 모두 깨끗한 옷을 입기를 좋아하였으며 밤이면 남여가 여럿이 모여 배우놀이와 음악을 즐겼다.
2) 신분과 직업에 따라 각기 달리 치장했으며(삼국사기)에는 무녀와 악공이 연지 화장한 사실이 기록되었다.
3) 서기 5~6세기경 수산리 고분벽화 귀부인상을 보면 머리에 관을 쓰고 뺨과 입술이 연지로 단장되어있다.
4)쌍용총고분벽화의 여인상도 여관 혹은 시녀로 보이는데 동그란 얼굴에 뺨과 입술에 연지로 화장이 되어 있다.
삼국시대
백제
1) 백제인들의 화장 경향은 시분무주(:분은 바르데 연지는 바르지 않는다)라고 기록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엷고 은은하고 세련된 화장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2) 일본 옛 문헌을 보면 일본인은 화장품도 만들 줄 모르고 화장술도 몰랐으나 백제로부터 화장품 제조기술과 화장기술을 익혀 비로소 화장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의 화장문화는 일본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신라시대에는 영육일치사상(: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의 영향으로 남여 모두가 자신의 외모와 미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화장과 화장품의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목욕재계와 향 사용 등이 대표적입니다.
백분과 같은 화장품이 제조되었고 화장이 행하여졌습니다.
팥, 녹두를 가루로 내어 세제로 사용하였으며 콩이나 팥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하여 향료를 사용하였습니다.
머리 손질은 동백이나 아주꽈리 기름으로 하였고 얼굴에는 분꽃씨 가루나 활석가루 등으로 분을 만들어 물에 개어 발랐으며 눈썹은 나무재를 물에 섞어서 그렸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고려의 태조 왕건은 신라의 정치제도와 문화전통을 계승하는 정책으로 화장술과 화자품 제조 또한 전승,발전되었습니다.
그 결과 화장은 외형상 사치스러워지고 내면으로는 탐미주의 색채가 농후해졌습니다.
화장이 이원화 되었는데 여성의 신분과 직업에 따라 분대화장(:짙은화장)과 비분대화장(:옅은화장)으로 나누어집니다.
분대화장은 기생 중심의 화장으로 분을 도포한 긋이 하얗게 많이 바르고 눈썹을 가늘게 다듬어 또렷하게 그렸으며 머릿기름은은 반질거릴 정도로 많이 바르는 것이 특징
비분대화장은 여염집여성이 기생으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분대화장을 기피하였는데 서긍의{고려도경}에 교려 귀부인의 화장에 대하여"향휴를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바르지 않았다.
고려시대
신라의 정치제도와 문화전통을 계승하는 정책으로 화장술과 화자품 제조 또한 전승,발전되었습니다.
그 결과 화장은 외형상 사치스러워지고 내면으로는 탐미주의 색채가 농후해졌습니다.
화장이 이원화 되었는데 여성의 신분과 직업에 따라 분대화장(:짙은화장)과 비분대화장(:옅은화장)으로 나누어집니다.
분대화장은 기생 중심의 화장으로 분을 도포한 긋이 하얗게 많이 바르고 눈썹을 가늘게 다듬어 또렷하게 그렸으며 머릿기름은 반질거릴 정도로 많이 바르는 것이 특징
기생을 훈련하고 분대화장법도 교육됨으로써 분대화장은 기생의 상징이며 진하고 야한 화장을 분대라고 지칭
비분대화장은 여염집여성이 기생으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분대화장을 기피하였는데 서긍의{고려도경}에 교려 귀부인의 화장에 대하여"향휴를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바르지 않았다. 눈썹은 넓게 그리고 비단향난을 패용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기녀들의 세련되고 짙은 화장에 비해 귀부인들은 은은하고 우아한 멋을 내는 자연스럽고 기생과 대조되는 화장을 즐겼습니다.
조선시대
유교적 도덕관념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상으로 고려시대의 사치와 퇴폐풍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화장에 대해 여러차례 금지령을 내린바 있습니다.
분대화장을 기피하고 한국인의 고유 미의식인 신체가 청결해야 마음도 청결하다는 사상
내면의 미와 외면의 미가 동일하다는 사상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화장품 생산이 위축되거나 화장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화장개념의 세분화가 촉진되어갔습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을 강요받았던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있어서 화장의 필요성이 점차 상실되어 자신의 아내 혹은 며느리로서의 여성상에 대해서는 '얼굴이 둥글고 통통하며, 살빛은 흰 편이고 흉터나 잡티가 없다 전체적인 골격의 이상형은 건강하고 머리숱이 많고 검으며 이중은 길고 입술색은 붉은 빛을 띠어야 아들을 잘낳고 인내심이 강하고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라 여겼습니다.
조원
김서현
유서희
이슬기
최선화
최재숙
메이크업의 기원
1)장식설
원시인류는 자연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꽃,동물문양 등을 회화,조각,문신 등의 형태로 피부에 남겼는데, 이것이 오늘날 메이크업의 시초였다고 추청되기도합니다.
부족간의 전투 후 승리한 원시의 투사는 자신의 신체에 남아있는 상처와 얼룩진 피가 감탕과 존경의 대상이 되며 용맹의 상징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후 자연스럽게 표식이나 장식을 계속하려는 욕망이 원시의 지도자들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다채로운 색채의 진흙을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인감심리의 욕구와 미적 본능의 장식적인 수단에서부터 메이크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장식설은 현재에 까지 가장 신빙성있는 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2)이성유인설
인간은 이성에게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신체를 장식하거나 가꾸었다고 보는 설이 이성유인설입니다.
찰스다윈은 "동물에게 암컷,수컷이 있는 것과 같이 인간에게도 남,여가 있다. 동물은 암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울음소리를 수단으로 하는데 비해 인간은 메이크업이나 몸치장을 수단으로 하여 이성의 주의를 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미적기준은 달랐지만 상대방의 관심이나 시선을 끌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문신이나 장신구를 사용하여 얼굴이나 몸을 치장한 것은 누구나 공통된 심리였고, 현대 메이크업의 가장 가까운 기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보호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하여 힘이 약할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보호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어떤 종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위장하거나 혹은 은폐시키기 위해 했던 치장이 미화 수단으로 발전했다고 봅니다.
고대 이집트 여인이 눈에 짙게 메이크업을 한 것은 태양빛으로 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것이였으며, 향료의 사용은 곤충들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함이였습니다.
또한 몸의 문신은 악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부적으로 믿고 그려졌으며, 이러한 것들이 차츰 장식적인 요소로 발전했습니다.
4)종교설
종교설은 일종의 주술적. 종교적 욕구로써 특정한 형태의 의복이나 신체를 장식하여 잡귀나 악마를 물리치고 자신과 부족의 심리적 보호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세계 각 지역에서 색상을 부여하거나 향을 이용하여 병이나 재액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행위에서 부터 점차 발달하여 메이크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공식적인 메이크업의 시초로 보고 있는 이집트의 경우 그들이 숭배하는 신의 제단에 가기 위한 청결의식으로 얼굴에 채색을 하고 향수를 뿌렸다고 합니다.
인류 4대 문명의 발생지역인 이집트의 나일강.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유크라테스강, 인도의 인더스강, 중국의 황하강 유역에서 발견된 유적에서 나타난 메이크업의 흔적은 종교의식으로서 메이크업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를 잘보여주고 있습니다.
5)신분표시설
신분표시설은 지위나 계급,성별,혹은 기혼과 미혼의 구분과 같이 집단 안의 개인을 구분해 주는 표시로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지금도 인도 여성등 사이에 행해지는 미간의 붉은 점은 기혼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아프리카 부족들 사이에 행해지는 문신,코걸이,팔찌 등도 족장의 신분을 표시하거나 각 종족들 간의 구분을 위한 표시로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현대메이크업의 역사
1)1940년대
1945년 해방을 계기로 서양문물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퍼머넌트의 유행으로 일반여성들도 퍼머 세팅 아이롱으로 웨이브를 내어 멋을 내었습니다.
1948년에는 서울시 위생과의 관리하에 미용사 자격시헙이 제정되었습니다.
화장에 있어서는 일본이나 유럽등지에 나가있던 사람들의 귀국으로 인하여 기초 미용마사지법이 국내에 보급되었습니다.
2)1950~1960년대
6.25전쟁으로 국내화장품 산업은 위축되고 미군의 영향으로 밀수 화장품이 국내화장품을 주도하였습니다
기초화장품 사용에 있어서는 콜드크립의 보급으로 윤기가 흐르고 번들거리는 화장법이 유행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영화의 수입으로 '오드리 햅번'화장의 영향을 받아 피부통을 밝게 하고 눈썹을 두껍고 진하게 그리고 아이라인을 길게 빼서 그려줌으로서 눈매를 강조했습니다.
3)197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과 신문 tv 잡지 등의 매스미디어의 보급으로 패션과 메이크업이 보편화 대중화 되었습니다
또한 화장품 업계도 활기를 띄었으며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인하여 메이크업이 대중화되었습니다.
1971년에는 국내 최초로 메이크업 캠페인이 실시되어 메이크업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색채화장 계몽에 기여하였습니다.
투명한 피부화장에 가느로 긴 눈썹 아이섀도우는 핑크,보라색을 사용하여 둥글고 깊은 눈매와 볼연지 화장으로 여성미를 더했습니다.
4)1980년대
GNP가 상승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교복자율화와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생활문화 수준이 향상되면서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컬러티비보급과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색채의 사용이 다양해지고 뚜렸해졌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색감이 진하고 눈 주의를 강하게 표현했으며 디스코의 영향과 함께 펄이 들어간 메이크업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이 유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후반에 들어 오존층의 파괴가 주된 사회지 경향과 함께 자연스럽고 청초한 메이크업이 부각되었습니다.
88올림픽 즈음에 아침 방송의 시작은 여성들에게 시사 교양 미용 전반에 관심과 호응을 증가시키며 여권신장과 여성의 미에 대한 욕구를 증가시켰습니다.
5)1990년대
과학과 산업의 급속한 발달과 고학력 여성의 사회진출이 지속적으로 증가되면서 캐주얼한 패션의 착용이 증가하였고 또한 경제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영향으로 획일적인 삶을 버리고 개인 중심의 성향을 보이는 감성세대의 등장으로 생활 패턴의 변화에 따른 화장품에 대한 요구도 고급화 다원화 되었습니다.
특히 패션에 민감한 젊은층은 개석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색조제품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1900년대
20세기 초는 19세기의 영향으로 안한 듯한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이 지속되었습니다
1990년 러시아 발레단의 파리 공연으로 오리엔탈 붐이 일어나 동양적인 신비스럽고 강한 색조가 인기를 끌게 되자 메이크업의 색조도 풍부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디자이너 '뽈 쁘와레' 에 의해 전개된 오리엔탈 분위기의 의상에 맞춰 이에 어울리는 메이크업 형태가 등장하였습니다.
또한 눈을 옆으로 길어보이게 하는 아이라인, 눈썹과 눈사이에 황색분이나 강렬한 색을 바르는 동양적인 분위기의 눈 메이크업 등이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밝은 색이 인기를 끌게 되어 핑크와 붉은 입술 메이크업이 등장했으며 속눈썹을 위로 말아 올리고 눈썹을 검게 칠하는 기법의 눈 메이크업이 유행했습니다
이런 메이크업은 아직 대중여석들에게까지는 큰호응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일부 선도적인 여성들에 의해 시도 되었습니다.
1910년대
서양메이크업
1910년대 메이크업은 대중 스타의 스타일이 일반대중에게도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모든 여성들에게로 보편화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화장법은 무성영화 시대의 대표적인 화장법은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배우였던 '테다바라'와 '폴라네그리'가 마스카라를 발라 눈매를 더욱 신비롭고 그윽하게 표현하여 관능적인 매력을 나타내면서 일반인들도 튜브형 검은 펜슬로 눈썹을 가는 일자형으로 그리고, 눈주위에 강하게 음영을 넣는 메이크업을 유행시켰습니다.(:현대스모키화장)
대중스타의 영향으로 멩크업의 열광은 사교계 여성에서 판매직 여성에게까지 강좌를 들을 정도였으며
주요 상점과 호텔어서는 여성 고객이 사용하는 탈의실과 화장실에 화장품을 배치하였습니다.
화장품의 대량생산이 합법화되고 미용 클리닉과 성형수술이 성행하였으며 '뷰티전문가'라는 직업을 탄생시켯습니다.
1920년대
이 시대 메이크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이전까지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벗어나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였습니다.
유명한 여배우 '마를린 디트리히'의 영향으로 눈썹을 뽑아서 아주 가느다랗고 실날 같은 초생달 눈썹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눈썹연필로 그렸으며, 아이섀도는 비취색,초록색,갈색,검정색 등으로 강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입술화장은 또렷하고 선명하게 반짝이는 붉은 입술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가리켜 큐피드의 활,장미봉오리,벌에쏘인 뾰루퉁한 입술로 칭하였습니다.
1930년대
그레타 가르보는 눈썹을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뽑아 가늘고 둥근 아치형으로 그렸으며 눈뼈 부분의 하이라이트를 강조하여 검은색과 흰색으로 음영을 강조한 아이 홀은 움푹 꺼진 눈을 강조하였습니다.
마릴린 디트히리의 가는 눈썹과 야윈 볼, 존 크래포트의 나비형태의 뚜렷하게 강조된 입술 등의 보습이
당시 여성들의 메이크업과 패션의 이미지를 주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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