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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분석&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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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곤 유

on 14 April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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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분석&비판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분석&비판
Ⅱ-1.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부정적 시선
목 차
Ⅰ-2. 체육의 소극적, 적극적 정당화
Ⅰ-1. 체육의 내재적, 외재적 정당화



체육의 가치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물론, 학교체육의 수호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은 아까처럼 어떤 경험적 연구결과를 증거로 내세우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수호자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학교체육의 가치를 개념적 또는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개념적 정당화는 어떤 것의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그 의미 자체가 가치 있음을 밝힘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하려는 시도이다.
의미(개념)에 의존하여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개념적 정당화”라고 하며, 논리적 방식으로 가치를 밝힌다는 점에서 “논리적 정당화”
라고 한다.

학교가 “훈련”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 한, 학교체육의 가치를 개념적으로 정당화하면 체육교과는 그 의미의 한 부분으로 학교교과의 하나로서 정당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 즉,
“체육은 교육의 한 부분이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체육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본다면,
“교육은 그 의미의 한 부분으로 체육을 포함하고 있다. 학교는 그 개념상 교육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말해서, 학교는 반드시 체육을 가르쳐야 한다.” 개념적 정당화는 내재적 정당화라고도 불리운다
. 그것은 정당화하려는 대상에 붙박혀 있는 의미 안에서 그 가치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의미 바깥의 것에 의존해서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노력은 외재적 정당화라고 한다. 체육은 내재적 정당화에 의해서만 학교교과로서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Ⅳ. 요약 및 결론
학교체육을 이처럼 경험적 방식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이 같은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이 같은 결과란 학교체육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어떤 판정을 확정적으로 내리지 못하는 결과를 말한다.
“무엇 무엇이다”라는 방식으로 확정적인 결과에 의해서 근거를 정당화하는 것,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적극적 정당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무엇 무엇이다”도 확실히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증거를 발견해서 정당화 근거를 박탈당하거나 부정당하지 못한 것도 아닌 상태로 정당성을 유지 받는 것을 “소극적 정당화”라고 한다
. 소극적이란 말은 자신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드러내어 인정받지 못하고, 단지 적극적으로 부정되지 못해서 마지못해, 혹은 어쩔 수 없어서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 학교체육의 좋은 점이 인정되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점이 확실히 인정되지 못해서 잔류되는 것을 말한다.



교과로서의 학교체육은 적극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학교체육의 가치는 적극적 방식으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이 말은 체육수업이 학교에서 행하는 교육의 한 영역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함을 말한다. 절대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지 않는 한, 학교교육은 “교육”으로서의 조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
학교가 교육이라는 특별한 인간활동이 진행되는 장소가 되려면, 반드시 체육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교육의 개념적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임을 강조하는 정당화방식이다. 학교라는 곳은 개념적으로 교육을 하는 장소이며, 교육의 개념적 의미에는 체육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학교체육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체육의 신체적, 정신적 가치를 모조리 무시한 채,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체육의 근본적 가치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학교 안에서의 체육은 재미도 없고 의미는 더욱더 없다고 주장한다.
체육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 교육적으로 별반 가치 없는 내용들이고, 그것들이 실제로 학생들에게 배워지는지 조차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체육교과의 가치라고는
꽉 막힌 교실에서 있다가 확 트인 운동장에 나와서 스트레스를 해소
하는 정도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정도는 교과가 아닌 쉬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학교체육의 무용성을 이런 방식으로 주장한다. “학교체육에서는 인지적, 심동적, 정의적 영역의 목표를 추구한다. 체육교육은 학생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켜주고, 체력과 운동기능을 증진시키며 사회성과 감수성을 길러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이런 주장이 실지로 어느 정도나 실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체육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머리가 똑똑해진다든가, 전에는 미약했던 운동기능과 체력이 훨씬 좋아졌다던가, 또는 말도 안 듣던 학생이 눈에 띄게 착한 행동을 한다는 등의 결과가 나타났는지 의문이다. 그동안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학교체육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학교체육은 별 가치가 없다.”
이런 논지이다.


Ⅲ-1. 체육의 외재적 정당화 비판
①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 담론 분석

Ⅰ.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
1. 체육의 내재적, 외재적 정당화
2. 체육의 소극적, 적극적 정당화

Ⅱ.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시선
1.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부정적 시선
2.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긍정적 시선


②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 담론 비판

Ⅲ.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비판
1. 체육의 외재적 정당화 비판
2.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 비판


Ⅳ. 요약 및 결론

학 과 : 체 육 교 육 과
학 번 : 2 0 0 9 2 5 0 3
이 름 : 유 태 곤
체 육 의 정 당 화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시선
Ⅱ-1.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에 대한 긍정적 시선

반면, 학교체육의 수호자들은 이런 반박을 펼친다. “체육수업 시간에 이 같은 목표가 성취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연구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실지로 목표가 성취되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체육교사가 많기 때문이며, 만약 제대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인지적, 심동적, 정의적 영역의 목표들을 만족할 만한 정도로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과로서의 체육이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며, 다만 좀더 제대로된 체육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라고 반론한다.


적대자와 수호자들의 갑론을박은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치지 않다. 서로 다른 이론적 근거 위에서 행해진 연구들은 서로 상반되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으며, 현장에서의 체험담도 각기 다른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이유로
학교체육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체육은 이런 상황에서 교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쓸모가 있다는 증거가 확정적으로 나와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와 반대로 쓸모가 없다는 정도 최종적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기존에 이미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으므로 기득권자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체육의 정당화 비판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은 학교교육에서 필요한 교과로서 체육교과의 정당화에 관한 최근의 논의이다. 내재적 정당화론은 기존의 체육의 정당화 관점인 ‘신체를 위한 교육’의 관정과 ‘신체를 통한 교육’의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하였다. 즉
기존의 체육에 대한 정당화 방식은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경험적 증거는 물론 논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 따라서 학교의 상황에 따라서는 학교교육에서 체육교과는 불필요한 교과의 지위로 전락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치 ‘모래기반’과 같은 기존의 정당화 논의를 넘어서‘학교교과로서의 체육은 지진 같은 요동에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확고부동한 이론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위에서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은 기존의 체육의 정당화 관점을 비판하면서 등장하였는데, 기존의 두 관점에 대한 내재적 정당화의 주요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신체를 위한 교육’의 관점에서 체육은 신체활동을 통하여‘신체를 성장시키는’교과로서 학교교육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과 가운데 유일하게 신체를 다루는 교과로 정당화된다. 이 관점에서는 신체의 교육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신체적 효과로서 생리적 기능이 향상되거나 근력의 증진, 민첩성, 지구력 등이 향상된다는 등의 체력 증진 내지는 건강 증진의 효과를 근거로 들어 체육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내재적 정당화론에 의하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체육수업을 통해서 건강이 증진되거나 체력이 향상되었다는 경험적 근거에 대한 결정적 근거자료는 제시되지 못 하고 있다. 특히 일선 학교의 체육 수업 시간은 체력 향상을 가져오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체육수업을 통한 신체 활동이 건강 증진이나 체력 향상을 가져온다는 ‘신체를 위한 교육’의 관점을 현실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
. 따라서 ‘신체를 위한 교육’에 의거한 체육의 정당화는는 불완전한 정당화이다.


‘신체를 통한 교육’의 경우 신체활동을 통하여 교육적 효과, 즉 신체적 효과뿐만 아니라 정신적 효과인 인지능력, 사회성, 정서적 측면의 성장 등 전반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체육활동을 통해 특별하게 바람직한 덕성 함양 및 성격 형성 등의 사회성이나 정서 등이 길러진다는 경험적 근거는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 또한 논리적으로도 체육활동 자체가 다양한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가령 바람직한 성격 형성을 위해서 반드시 체육교과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다른 활동을 통해서도 바람직한 성격은 얼마든지 형성될 수 있다
. 따라서 체육교과는 사회성 형성과 같은 교육적 효과에 대한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신체활동을 통한 교육적 효과는 경험적, 논리적으로 부정될 수 있는 우연적인 관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체를 통한 교육’에 의한 체육의 정당화 방법은 학교교육으로서 체육을 가르쳐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 확고부동한 정당화라고 하기 어렵다.


Ⅲ-2.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 비판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의 논의를 주도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최의창(2003)은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의 논의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논리적 구조를 피터즈의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에서 가져오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을 구성하는 논리적 구조의 근거는 사실상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에 토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의 논리적 한계가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의 논리적 한계 내에 있다는 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과연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이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의 논리적 구조를 온전하게 가져오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 하도록 한다. 물론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는 어떤 특수한 개별 교과만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 교육일반의 정당화, 그것도 학교교육의 정당화에 대한 교육 절학적 접근 방법이다. 그에 반에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는 학교교육의 특수한 개별교과로서의 체육에 대한 정당화의 시도이다.


여기서는 우선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이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의 논리를 적절하게 가져오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학교교과로서의 확고부동한 토대를 얻기 위한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의 논리적 주장은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을 잘못 수용하고 있는데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의미론적 비판에서 드러난 바 있는 다소의 논리적 난점들 역시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에 대한 잘못된 수용에서 기인한바 크다는 점이 제기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용상의 문제점들은 단지 교육의 정당화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수용 방식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일반의 정당화와 개별 교과의 정당화가 (특히 체육의 경우)논리적으로 다른 논의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이며, 이에 따라 체육의 정당화는 학교교육의 정당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되어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게 될 것이다.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에서 수용하고 있는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론의 논리적 내용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우선 교육이 교육 아닌 것에 의해, 혹은 교육의 밖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닌 교육 자체가 가진, 혹은 교육 자체에 내재한 가치로서 교육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인 ‘안’과 ‘밖’의 구분, 또는 ‘내재’와 ‘외재’를 구분하는 논리적 방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결국
외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우에는 수단-목적의 논리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서 내재적 가치가 제시되었던 만큼 수단-목적의 관계에 대한 검토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둘째,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를 이해하기 위한 주요개념인 ‘삶의 형식’으로서의 ‘공적 전통’과 ‘지식의 형식’과 같은 개념들이 체육의 내재적 정당화에 적절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또는 과연 이러한 개념들이 체육의 정당화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들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교육의 내재적 정당화는 교육의 내재적 가치를 ‘선험적’으로 정당화 하는데, 과연 체육의 내재적 가치가 ‘선험적’으로 정당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 또한 필요할 것이다.

! 선험적 : 경험을 초월하다. 경험하기전 이미 인식 되어있는 상태.





현재 한국의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는 안정되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과 오래 전의 체육수업과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체육수업의 격차가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고, 그에 따른 명확한 해결책 또한 없는 상태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닌 복합적이라 빠른 시간 내에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체육의 교육적 정당화를 하기 위해서는 현재 체육교사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체육 분야에 있는 모든 전문가들이 체육이 단순하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아닌 심동적, 정의적, 인지적으로 모든 분야에 도움이 되어 체육이 선택적이 아닌 필수적인 과목이 되도록 노력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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