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presentation...

Present Remotely

Send the link below via email or IM

Copy

Present to your audience

Start remote presentation

  • Invited audience members will follow you as you navigate and present
  • People invited to a presentation do not need a Prezi account
  • This link expires 10 minutes after you close the presentation
  • A maximum of 30 users can follow your presentation
  • Learn more about this feature in our knowledge base article

Do you really want to delete this prezi?

Neither you, nor the coeditors you shared it with will be able to recover it again.

DeleteCancel

조선 전기의 과학기술

No description
by

선영 jang

on 12 July 2015

Comments (0)

Please log in to add your comment.

Report abuse

Transcript of 조선 전기의 과학기술

시보장치 - 앙부일구, 자격루
칠정산 내외편
관측기구
천문학의 발전 1
천문학의 발전 3
천문학의 발전 2
해시계, 물시계, 혼천의와 함께 조선의 천문대에 설치한 가장 중요한 관측기기이다. 오늘날의 각도기와 비슷한 구조를 가졌으며, 혼천의를 간소화한 것이다.
적도환은 주천(공전)을 365도 1/4로 나누어 동서로 운전하면서 칠정(태양, 달, 수성, 화성, 금성, 목성, 토성) 중 외관입수의 도분을 재며, 12시 100각으로 나눈 백각환은 적도환 안에 있는데, 그것으로 일구(시각)를 알고, 밤에는 중성(해가 질 때와 돋을 때 하늘 정남쪽에 보이는 별)을 정했다.
간의
『칠정산』은 1444년(세종 26)에 이순지와 김담이
우리나라 역대의 역법을 정리
한 것에
원나라와 명나라의 역법을 참고
하여 만든 것으로 내편과 외편으로 이루어졌다. 외편은 서역의 회회력법을 연구하여 해설한 책인데 비해, 내편은 원나라의 수시력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한 책으로서,
서울을 기준
으로 칠정의 운행이 나타나 있다. 칠정이란 해와 달, 수성, 화성, 목성, 토성, 금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는 천체의 운항을 정사에 비유한 것이다. 칠정산은 1653년 시헌력법을 도입하여 시행할 때까지 기본적인 역법이 되었다.
$1.3
Sunday, July 5, 2015
Vol XCIII, No. 311
세종대왕의 과학사랑
의학 관련 서적 편찬 - 향약집성방
의학&약학의 발전
세종 대에는
왕권과 신권이 조화
를 이루면서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졌고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중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집현전을 설치
하여 젊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 서적, 편찬 등 학문을 진흥하여 유교정치의 기반을 다졌다. 집현전의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 과학 기술 개발, 서적 편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종의 정책을 뒷받침
해주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어 민족 문화의 큰 번영을 가져왔으며,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또
부국강병과 민생안정
을 위해 과학 기술에서는 측우기, 해시계, 물시계 등을 만들어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과학기구는 세종 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15세기 전반 한성의 문화 수준은 세계에서 독보적이었다.
향약집성방은 1433년(세종 15)에 왕명에 의해 편찬된
향약에 관한 의약서
이다.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
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나라산의 총칭이다. 정종 때에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을 기본으로 하여 향약의 모든 약방문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하고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게 하였다.
세종은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기 위하여 먼저
향약과 당재를 비교, 연구
하고, 각 도 각 읍에서 생산되는
향약의 실태를 조사
하게 하고,
향약채취월령을 반포
하도록 하였다.
조선 전기의 과학기술
앙부일구
살리겠습니다, 조선의 과학기술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보급된 이 해시계는
오목한 솥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형상
을 하고 있다. 앙부일구라는 이름도 그러한 형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절기선이다. 그 다음에 위도에 맞추어 북극을 향해 영침을 비스듬히 꽂았다.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치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
를 알 수 있다.
앙부일구는 우리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완전한 창작품은 아니며, 중국의 앙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모방한 것은 아니며 조선 특유의 형태로 개량하여 제작된 것이어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세종 때 만들어진 앙부일구는 남아 있지 않으며,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들만 전한다.
측우기와 수표
측우기는
강우량을 측정
하기 위하여 쓰는 기구로 조선 세종 때의 측우기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것이다. 1441년(세종 23) 8월에 호조가 측우기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서운관에서 측우기를 제작하고, 다음해 5월에는 측우에 관한 제도를 새로 제정하여 서울과 각 군현에 설치하였다.
자격루
수표는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
하기 위해 세종 때 제작한 측량기구이다. 1441년(세종 23)에 측우기의 제작과 함께 청계천과 한강에 수표를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세종 때 제작한 수표는 현재 남아있지 않고, 수표의 역사적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현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는
서울 청계천 수표(보물 제838호)
와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서울유형문화재 제18호)
이다. 현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수표는 높이 약 3m, 폭이 약 20㎝의 화강석으로 된 부정육면체 방추형의 돌기둥이다. 돌기둥의 양쪽 면에는
1척에서 10척까지 눈금
을 새겼고,
뒷면의 3척·6척·9척 되는 눈금 위에는 ○표
를 파서 수량을 헤아리는 표지로 삼았다.
자격루는
자동으로 시보를 알려주는 장치
가 되어 있는
물시계
로, 1434년(세종 16)에 왕명으로 장영실, 김조, 이천 등이 제작하였다. 자격루는 시, 경, 점에 맞추어 종과 북, 징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
세종 때 만든 것은 모두 없어졌으며 유일하게 덕수궁에 남아 있는 국보 제229호는 중종 때에 장영실이 만든 것을 개량한 것이다. 이 시계는 효종 이후부터 조선 말기까지
표준시계
로 쓰였다.
인쇄술의 발전
활자 주조 & 제지술 발달
경자자는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를 개량
하여 경자년(1420년-세종 2년)에 만든 금속활자이다. 경자자는 계미자보다
4~5배 정도의 증가된 인쇄능률
을 보였다. 하지만 옆줄이 일직선을 이루지 못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갑인자는 갑인년(1434년-세종 16년)에
주자소에서
경자자의 단점을 보완
하여 만든 금속활자이다. 세종의 명에 의해 두 달 동안
20여만 자의 글자
를 주조하였으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6번에 걸쳐 개주되었다.
활자의 모양이 바르고 글자의 크기가 고르게 조립되었으며, 자판의 빈틈에 대나무를 이용하
였으므로 글자가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조선시대 활자의 기본이 되었다. 또한,
하루에 활자를 찍어 내는 양이 40여 장에 달하였다
.
갑인자는 우리 글자를 만들고 처음 만들어진 활자본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제지술의 발달 : 세종 때 종이 만드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인
조지서를 설치
하고 다양한 종이를 대량으로 생산하였다. 조선 초기 가장 큰 인쇄소는 교서관이었는데, 이곳에서는 140여 명의 인쇄공이 소속되어 당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지방에서도 감영이나 사찰, 향교 등에서 목판인쇄에 의한 출판활동이 활발했다. 조선의 종이는 주로
닥나무 껍질
로 만들어 질이 견고하여
명나라에서도 수입
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닥나무 껍질 외에 솔잎, 볏짚 등도 종이원료로 쓰이기도 했다.
화약&화포기술의 발전
신기전
신기전은 1448년(세종 30년) 제작된 병기로서 고려 말기에 최무선이 제조한 로켓형 화기인
주화를 개량한 것
이다. 대신기전, 산화신기전, 중신기전, 소신기전 등의 여러 종류가 있다.
대신기전은 대나무로 만든 화살대의 윗부분에 한지로 만든 약통을 부착하고, 폭탄에 해당되는 방화통을 약통 위에 올려놓고 도화선을 약통과 연결하여 신기전이 목표지점에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폭발
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사정거리는 약 2㎞
에 달하였다. 세종 때 90개가 제조되어 의주성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
산화신기전은 약통의 제원은 대신기전과 같으나 발화통을 변형하여 윗부분이 지화와 발화를 함께 넣어
적을 혼란에 빠뜨릴 목적
으로 사용되었다.
소신기전은 신기전 가운데 가장 작은 형태로서 폭발물이 장치되어 있지 않다. 사정거리는 중신기전이 150m, 소신기전이 100m 가량으로 추정된다. 중·소신기전의 발사는 1개씩 빈 화살통 같은 곳에 꽂아 발사했으나 문종 때 화차가 제작된 이후로는 화차의 신기전기에서 주로 발사하였다.

훈민정음 창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 한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라는 뜻의 훈민정음은 창제자와 창제 시기가 정확히 알려져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이며,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지정되었다. 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겨 훈민정음 창제하였다.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훈민정음해례본>
이 나타남으로써 그 원리가 밝혀졌다.
한글을 일컫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는데,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1908년 주시경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으나,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바로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고친 후, 1913년 4월에는 다시 그 이름을 ‘한글모’로 고쳤다. 이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듯하며,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펴낸 ≪한글≫이라는 잡지에서부터이다.
Full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