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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_하이데거_들뢰즈_서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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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4e ^^

on 13 Octo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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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칸트_하이데거_들뢰즈_서동욱

목차

서문 표상적 사유와 비표상적 사유

제1부 사유의 새로운 지평
제1장

들뢰즈
의 사유의 이미지와 발생의 문제 ─재인식 대 기호 해독
1. 사유의 이미지의 공리들
I. 사유의 이미지에 대한 일반적 기술
II. 선의지
III. 공통 감각
2. 사유의 이미지의 공리들의 임의성
I.
칸트
에게 능력들의 일치라는 문제가 있는가?
II. 발생의 관점에서
III. 초월적 도식 작용론에 대한 비판
IV. 고전주의 시대의 구성적 유한성과 인간의 탄생
3. 발생적 사유의 이미지와 기호
I. 숭고와 발생적 사유의 이미지
II. 기호의 성질들: 우연성, 강제성, 수동성, 필연성
III. 기호의 우연성과 사유의 필연성에 대한 니체적 해석
─‘주사위 던지기’의 의미
IV. 표현과 기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프루스트

V. 기호 해독과 발생적 사유의 이미지
VI. 꿈, 주체의 사라짐
4. 맺음말: 니체적 문화론의 탄생
─사유에 가해지는 폭력과 문화의 훈련
제2장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 ─
프로이트,
들뢰즈
, 레비나스, 프루스트, 바르트, 메를로-퐁티

1. 철학과 정신분석학에서 트라우마
2. 트라우마와 문학 비평
3. 트라우마, 사진론, 회화론
4. 맺음말: 계시(啓示)의 시대, 그리고 우리 문학
제2부 주체와 타자
제3장 주체의 근본 구조와 타자 ─
레비나스

들뢰즈
의 타자 이론
1.
레비나스
철학의 문제
2.
레비나스
의 타자 이론: 주체의 탄생과 타자
3.
들뢰즈
의 타자 이론: 공간적 지각과 시간 의식의 탄생
4. 무엇이 새로운가?─ 공통점과 차이점
5. 타자의 부재와 주체의 종말
인간의 의무는 불행한 우주에 항의하기 위해서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
------------

제4장
사르트르
의 타자 이론─
레비나스
와의 비교
1. 왜 지금
사르트르
인가?
2. 이제까지의 타자 이론들에 대한
사르트르
의 비판
I. 타자와의 내적 관계와 외적 관계
II. 실재론과 관념론 비판
III.
후설

하이데거
비판
3. 타자의 비표상성과 직접성
I. 눈oeil과 시선regard
II. 이타성과 분리
III. 얼굴
4. 대상화의 의미: 비반성적 층위에서 주체의 출현
I. 비인격적 순수 의식과 자아
II. 타자는 수치를 통해 나의 코기토를 가능케 한다: 유아론 극복 I
III. 주체의 탄생에 있어서
사르트르

레비나스
,
라캉
과의 비교, 자유에 대한 수치
5. 타자의 여러 성격
I. 부재와 타자 존재의 필연성: 유아론 극복 II
II. 타자의 초월성과 신의 관념
III. 타자 출현의 우연성, 존재론은 형이상학을 전제한다
6. 맺음말: 부빌의 초상화들과 타자의 시선, 역전 가능성
제5장
들뢰즈
의 주체 개념 ─ 눈[目] 대 기관 없는 신체
1. 1960년대 풍경: 주체, 타자, 시선
2.
들뢰즈
에서 주체의 발생
보충적 논의:
들뢰즈

비트겐슈타인

3. 기관 없는 신체, 비인칭, 고백체와의 대결
보충적 논의: 익명적 중얼거림 대 고백체
4. 주체 이후엔 누가 오는가?
5. 맺음말: 비밀리에 보고 있는 시선의 종말
제3부 법과 사회: 억압에 대항하는 싸움
제6장
들뢰즈
의 법 개념
1. 법과 선(善)의 관계
2.
카프카
와 우울증적 법 의식
3. 법에 대한 대항의 두 형태: 사드와 마조흐
4. 유대주의 대
스피노자
주의
제7장
들뢰즈

가타리
의 기계 개념
1. 하나의 개념은 어떻게 하나의 글쓰기에 진입하는가?
2. 사용으로서의 기계 개념: 욕망의 합법적 사용과 비합법적 사용
3. 대상 a(objet petit a), 라캉의 기계 개념
4. 절단으로서의 기계 개념
I. 구조와 기계
II. 형이상학과 기계
II-1.
플라톤
적 상기와 모사물, 개념적 차이
II-2.
프루스트
적 상기와 시뮬라크르, 차이 자체
II-3. 반복이란 무엇인가?
III. 보충적 논의: 전쟁 기계와 국가 기구에 관한 노트
5. 맺음말
제4부 세속적 삶, 초월, 그리고 예술
제8장 아이와 초월 ─
레비나스, 투르니에, 쿤데라

1.
레비나스
: 나이며 타자인 아이
2.
투르니에
: 고아, 헐벗은 어린이
3.
쿤데라
: 죽은 아이
4. 맺음말
제9장 일요일이란 무엇인가? ─
레비나스

사르트르
의 경우
1. 백수들, 야곱의 시간과 에사오의 시간
2.
레비나스
: 수고, 봉급, 여가 ─경제적 시간으로서 일요일
3.
사르트르
: 사교, 식사, 놀이 ─부빌의 일요일
4. 구원의 시간, 타자의시간 ─존재론적 모험과 모험의 느낌
제10장 예술의 비인격적 익명성 ─
레비나스

들뢰즈
의 예술 철학
1. 주체성이 부재하는 카오스
2. 비인격적 익명성의 양태들─사례 분석
3. 예술적 형식의 문제: '외관'과 '집'─예술 작품의 건축적 본성
4. 혁명과 우상숭배─레비나스와 들뢰즈는 어떻게 다른가?
5. 맺음말
각주찾기
차이와 타자_서동욱
목차

서론: 초월적 방법
칸트에서의 이성
능력이라는 말의 첫 번째 의미
상위 인식 능력
상위 욕구 능력
능력이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
능력의 두 의미 사이의 관계
1장: 순수 이성 비판에서 능력들의 관계
선험적과 초월적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종합과 입법적 지성
상상력의 역할
이성의 역할
능력들 사이의 관계 문제―공통감각
합법적 사용, 비합법적 사용
2장: 실천 이성 비판에서 능력들의 관계
입법적 이성
자유의 문제
지성의 역할
도덕적 공통감각과 비합법적 사용
실현의 문제
실현의 조건
실천적 관심과 사변적 관심
3장: 판단력 비판에서 능력들의 관계
느낌의 상위 형식은 있는가?
미감적 공통감각
숭고에서 능력들의 관계
발생의 관점
자연에서의 상징주의
예술에서의 상징주의 또는 천재
판단력은 능력인가?
미학에서 목적론으로
결론: 이성의 목적들
능력론
목적들에 관한 이론
역사 또는 실현
부록 1 영역판에 붙이는 서문: 칸트 철학을 간추린 네 개의 시구
부록 2 역자 해설: 지킬 칸트와 하이드 들뢰즈씨
칸트의 비판철학_들뢰즈
사상사 개설_고영복
• 어떤 인식도 경험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경험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은 것이다. 단순한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개개의 사실, 소재에 불과하고 종합된 인식을 하는 것은 감각적 수용을 넘은 선천적(a priori)인 형식이며, 이것에 의해 인식은 그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증 받는다.
• "주체가 대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주체로 향한다"라는 이성비판을 시도.
• 이성은 본질상 물자체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성에는 비감성적 주관, 초감성적 주관이 없기 때문에 영혼, 신 등과 같은 문제에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순수이성의 이율배반(Antiomie)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거쳐야 실천이성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 신과 자유와 영혼불멸의 문제를 실천이성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확인하려고 한다. 즉 그 실천적 사용에 있어서 이성은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 작용하고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감성적 충동에서 독립하여 이성이 의지를 형식적, 합법칙적으로 규정할 때 성립한다.
• 가령 자살한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생명이 끝날 때까지 비참하지 않는 상태로 지속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이용하는 것이며, 거짓의 약속을 하는 사람은 타인의 인격을 자기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한다. 또 나태하고 자기의 소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목적으로서의 인격을 충분히 실현하지 않게 된다. 국가란 많은 이성적 존재자의 공통의 법칙에 의한 체계적 결합이다. 실천이성의 원칙은 단지 보편적인 법칙일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해 한 국가가 '목적의 왕국'이 가능하게 되는 법칙인 것이다.
• 제13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사적 이해
o 1.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이론적 기초
1)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2)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o 2. 포스트모더니즘의 후기구조주의적 특징
1) 후기구조주의의 지적 전통
2) 후기구조주의의 탈현대적 사고
o 3.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쟁점
1)
료타르
의 탈현대(postmodern)구상
(1) 총체성의 극복 : 소서사의 출

(2)
료타르
의 숭엄성의
미학

2)
하버마스
의 계몽기획
(1) 신보수주의 비판
(2) 근대성의 재구성 : 의사소통론을 중심으로
3)
마르크스
주의 진영의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1)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
(2) 독점자본주의 문화논리
• 인용문헌
• "포스트모던한 것이란 표현 자체 내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제시하는 일을 모던한 것 안에서 해내는 것이고, 획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향수를 집단적으로 공유하게 하는 일치된 취향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보다 강렬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료타르의 숭엄성의 미학 (사상사개설, 1996.4.1, 사회문화연구소)
• 사상사 개설
• 서문

• 제1장 고대사회의 사상
o 1. 고대사상의 형성
1) 인간의 역사와 사상의 발생
2) 그리스 사회의 특징
3)
소크라테
스 및 소피스트의 사회사상
4)
플라톤
의 사회사상
5)
아리스토텔레스
의 사회사상
o 2. 헬레니즘의 사회사상
1) 헬레니즘의 특징
2) 스토아 학파의 사회사상
3) 에피쿠로스의 사회사상
o 3. 로마 세계의 사상
1) 로마 사회와 사상
2) 로마법

• 제2장 중세사회의 사상
o 1. 원시기독교
1) 유태교에서 기독교로
2) 로마 세계로의 기독교 보급
o 2. 로마 세계에서 게르만 세계로
1) 기독교의 확립과 아우구스티니즘
2) 고대세계의 붕괴와 수도원의 역할
o 3. 중세적 질서의 성립
1) 카알 대제와 봉건제의 확립
2) 봉건사회의 사상구조
3) 십자군과 동방문화

• 제3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o 1. 르네상스
1) 르네상스의 태동
2) 르네상스의 의의
3) 르네상스의 영향
4) 마키아벨리의 사상
5) 르네상스기의 사회과학
o 2. 종교개혁
1)
루터

캘빈
의 사상
2) 종교개혁기의 사회사상
3) 유토피아 사상
• 제4장 근대사회사상의 대두와 형성
o 1. 시민적 세계상의 형성
1)
프랜시스 베이컨

2)
데카르트
,
파스칼
과 프랑스의 절대주의
3)
홉스
와 기계론적 사회관
4)
스피노자

5)
라이프니츠
와 독일의 후진성
o 2.
로크
와 영국경험론
1) 시민혁명의 달성과 영국사상
2)
존 로크

3)
버클리



4)
아담 스미스

o 3. 프랑스 계몽사상과
루소

1) 18세기의 프랑스
2)
몽테스키외

볼테르

3) 백과전서운동과
디드로

4)
루소

o 4.
칸트
와 독일관념론
1) 독일의 계몽사상
2)
칸트
의 비판철학


3) 피히테와 쉘링
4) 헤겔

• 제5장 새로운 세계상의 설계
o 1. 산업혁명의 진전과 사상의 동향
o 2. 영국에서의 공리주의와 공상적 사회주의
o 3. 프랑스에 있어서의 실증주의와 공상적 사회주의
o 4. 독일에서의
헤겔
학파의 분열
o 5.
마르크스
주의의 탄생

• 제6장
마르크스
주의의 형성과 발전
o 1. 제2인터내셔날과
마르크스
주의의 발전
1)
엥겔스
와 제2인터내셔날
2) 수정주의 논쟁
3)
베른슈타인
과 사회민주주의
4)
카우츠키
와 제2인터내셔날
o 2.
레닌
과 러시아 혁명
1)
레닌
주의의 형성과정
2) 제국주의론과 일국사회주의 혁명
o 3.
모택동
과 중국사회주의
1)
모택동
의 사상형성
2)
모택동
의 철학적 기초
3) 문화대혁명과 역사적 의의
• 제7장 현상학과 실존주의
o 1.
훗설
의 현상학
o 2. 존재론적 실존주의
1) 인간으로부터 실존주의로
2)
마르틴 하이데거

3) 후기
하이데거
의 관심과 해석학
o 3. 프랑스 실존주의의 전개
1)
사르트르
의 실존주의
2)
메를로 퐁티
의 실존주의

• 제8장 현대관념철학의 조류
o 1. 과학의 발달과 철학의 변모
1) 과학에의 도피와 과학으로부터의 도피
2) 신
칸트
파와 그 주변
3) 생(生)의 철학과 그 주변
o 2. 분석철학의 논리
1)
프레게
에서
러셀

2)
비트겐슈타인

3) 논리실증주의
4) 일상언어학파
o 3. 기호론과 프래그머티즘
1)
퍼어스
의 논리
2) 프래그머티즘의 전개
3)
미드
의 논리

• 제9장
프로이트
와 신
프로이트
이론의 전개
o 1.
프로이트
혁명
o 2. 신
프로이트
이론의 대두
o 3. 신
프로이트
주의의 문제

• 제10장 서구
마르크스
주의
o 1. 서구
마르크스
주의의 출현과 배경
o 2. 서구
마르크스
주의의 기원
1)
루카치
(1) 초기
루카치
사상과 『역사와 계급의식』
(2) 현대사회의 물상화
2)
코르쉬
(1)
코르쉬
의 사상의 기원과 평의회운동
(2)
코르쉬
의 철학과 혁명이론
3)
그람시
(1) 초기사상과 평의회운동
(2) 헤게모니론의 형성과 발전-『옥중수고』를 중심으로
o 3. 비판이론의 형성과 발전
1)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형성과 철학적 기초
2)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의 『계몽의 변증법』
3)
하버마스
의 철학적 관심과 이상적 대화
o 4. 구조주의적
마르크스
주의
1) 구조주의의 등장과 사상적 배경
2)
알튀세르
의 과학적
마르크스
주의
(1)
알튀세르
의 유물변증법과 사회구성체
(2)
알튀세르

마르크스
독해
3)
니코스 풀란차스
의 구조주의 국가
(1)
풀란차스
의 국가론
(2)
풀란차스
의 파시즘론
o 5.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
1)
바란
의 독점자본론
2) 종속이론의 등장과 배경
3)
프랑크
의 저발전의 발전
4)
아민
의 주변부 자본주의론
5)
월러스타인
의 세계체제론
6.
마르크스
주의와 유토피아

• 제11장 페미니즘
o 1. 페미니즘 사상의 대두
o 2. 현대 페미니즘 이론의 다양성
o 3. 성불평등이론
1)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2)
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
(1)
마르크스

엥겔스

(2) 현대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o 4. 성억압이론
1)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이론
2) 급진적 페미니즘
3)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 제12장 구조주의
o 1. 구조주의의 기원
o 2. 사회학적 변형
o 3. 후기구조주의
목차
제1부 하이데거와 존재와 시간 1
제2부 개념 체계도 5
제3부 존재와 시간의 주요 개념 분석 6
1. 존재물음 6
1) 존재 7
2) 존재물음의 근본 목표 10
3) 존재물음의 필요성 13
4) 존재물음의 형식적 구조 21
5) 존재물음의 우위 26
(1) 존재물음의 존재론적 우위 27
(2) 존재물음의 존재자적 우위 31
6) 존재물음의 방법 39
2. 세계 47
1) 세계 일반의 세계성의 이념 48
(1) 세계와 세계성 48
(2) 세계와 자연 49
2) 환경 세계 안에서 만나는 존재자의 존재 52
(1) 배려 52
(2) 도구 54
3) 용재자(用在者)의 세계 적합성 60
4) 세계의 세계성 64
(1) 적소성 64
(2) 유의의성 68
5) 공간성 73
(1) 용재자의 공간성 74
(2) 현존재의 공간성 78
(3) 공간명도 85
3. 세인(世人) 88
1) 타자 90
2) 공동 존재 92
(1) 현존재의 실존론적 규정으로서의 공동 존재 93
(2) 고려 95
3) 실존범주로서의 세인 99
4. 내-존재 105
1) 개시성 107
(1) 정상성(情狀性) 109
(2) 이해 120
(3) 말 139
2) 일상적 개시성 146
(1) 빈 말 147
(2) 호기심 148
(3) 애매성 150
(4) 퇴락 152
5. 현존재의 존재: 마음씀 157
1) 불안 157
2) 마음씀 163
3) 실재성 167
4) 진리 174
(1) 전통적 진리 개념: 일치 174
(2) 전통적 진리 개념의 존재론적 기초 177
(3) 진리의 근원적 현상 181
(4) 진리의 존재양식과 진리를 전제함 186
6. 현존재의 본래적 전체 존재 가능: 죽음과 양심 189
1) 죽음 190
(1) 죽음의 경험 불가능성 190
(2) 죽음에 이르는 존재 193
(3) 죽음의 실존론적 존재론적 구조 199
(4) 죽음에 이르는 비본래적 존재 203
(5) 죽음에 이르는 본래적 존재: 선구 206
2) 양심 212
(1) 부름 213
(2) 책임 220
(3) 결의성 232
3) 선구적 결의성 238
7. 현존재의 존재의 의미: 시간성 242
1) 마음씀의 존재론적 의미로서의 시간성 244
2) 본래적 시간성과 비본래적 시간성 255
(1) 개시성 일반의 시간성 257
(2) 세계-내-존재의 시간성 273
(3) 현존재적 공간성의 시간성 286
3) 통속적 시간 289
(1) 현존재의 시간성의 일부(日附) 가능성 289
(2) 공공적 시간과 세계시간 294
(3) 통속적 시간개념 발생 301
참고문헌 309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_이선일
사상사 개설_고영복
차이와 타자_서동욱
칸트의 비판철학_들뢰즈
차이와 반복_들뢰즈
감각의 논리_들뢰즈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_서도식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_이선일




그렇다면 철학이 그토록 사랑하는 참된 지식은 어떻게 구할 것인가? 진리와 이성, 그리고 좋은 삶을 위한 기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도전적으로 선언한 것처럼 철학의 죽음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지식을 추구하는 인류의 노력에서 발견의 횃불을 들고 있는 과학에 그 역할을 넘기면 되는가? 아니면 과학은 또 하나의 형이상학이기 때문에 진리 추구라는 버거운 짐을 훌훌 벗고 주어진 맥락 속에서 각기 서로 다른 답을 찾아가면 되는 것인가?

하버마스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모든 인식은 언어에 삼투되어 있기 때문에 의식철학에서 언어철학으로 이행한 언어학적 전회 이후 그의 철학을 집대성한 [의사소통이론] 앞머리에서 하버마스는 “오늘의 철학은 더 이상 세계와 자연, 역사와 사회 전체를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지식의 지위를 주장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 이후, 또는 의식 철학 이후, 도대체 철학은 왜 필요하며,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가 찾은 단서는 언어화용론을 통한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다. 하버마스는 2권으로 나누어진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심을 달리하는 많은 사상가들을 초대해서 끈질기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이 새로운 길을 통해서 사회이론과 도덕, 법,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지난 20세기 후반기에 나온 저서 중에서 이미 고전적 지위에 오른 이 책 읽기에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숙제 하듯 의무감에서 읽을 필요는 없다. 모든 비판적 학문은 철학과 같은 일을 한다. 이것은 필자의 말이 아니라 하버마스가 한 말이다. 모든 철학, 모든 철학자에게 다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이해하기 힘든 철학 용어와 철학 사상을 암기하듯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 하는 길이 아니다. 그 점에서 하버마스 철학은 읽고, 쓰고, 토론하는 법을 보여주는 모범적 사례다.


글 정재영 / 철학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30대에 언론사 기자를 지냈다. 나이 40에 늦깎이 유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워릭대에서 사회 존재와 인간의 이해에 대한 리얼리즘 접근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 있는 대부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철학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권이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Jrgen Habermas)는 지금까지 ‘철학의 숲’에 소개된 철학자 가운데 살아있는 인물로는 처음 등장하는 현존 철학자다. 단지 생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팔순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펜을 놓지 않은 현역이다. 그의 왕성한 활동은 업데이트가 잘 된 [하버마스 포럼]에서 쉽게 확인된다. 지금은 괴테 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1994년 퇴직한 이후에도 그는 거의 해마다 책을 출간했다. 젊은 시절부터 그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자이트(Die Zeit)]를 비롯해 영향력 있는 매체에 현안 문제를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그야말로 평생 현역이라고나 할까?

하버마스의 최근 이력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발견된다. 197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가 수여하는 헤겔 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컬리지에서 주는 율리시스 메달을 받기까지 모두 14차례나 상을 받았다. 유럽에서 주는 권위 있는 상은 대체로 지방자치단체나 대학에서 제정한 것이다. 상의 이름은 그 도시 또는 그 대학이 배출한 인물에서 따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슈투트가르트는 철학자 헤겔이 태어난 곳이며,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UCD)는 [율리시스]를 쓴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나온 대학이다. 2000년대 들어 지난 10년간 7차례를 수상했으니 거의 해마다 상을 받은 셈이다. 다작만큼이나 상복도 유난히 많은 철학자다.

상복이 유난히 많은 철학자 하버마스 <출처: Wolfram Huke at en.wikipedia>
상복이 유난히 많은 철학자 하버마스 <출처: Wolfram Huke at en.wikipedia>

잠깐! 철학자가 상을 받는 것이 그렇게 큰 영예인가? 일찍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상 중의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벨 문학상(노벨상에는 철학상은 없다)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작가를 분류하고 문학을 등급 매기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하지 않았는가? 해마다 빠지지 않고 책을 내놓듯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상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때 방송사에서 주는 가요대상을 해마다 휩쓸었던 가수 조용필도 후배에게 양보하겠다며 모든 방송사에서 주는 상을 거부하는 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하버마스는 상을 소통하는 공간으로 삼았다. 물론 상을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영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하버마스에게 상을 받고, 축하를 받고, 연설을 하는 것은 그와 관련된 공동체와 의사소통을 하는 하나의 행위다. 하버마스의 수상 연설은 흔히 보는 감사와 칭송의 장이 아니다. 그 담화 공동체에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다. 좀 딱딱한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하나의 발화 행위(speech act)다. 거기에는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는 공동체가 있다. 그 담화 공동체에 듣기 좋은 말이나 잔뜩 늘어 놓는 것은 상을 주는 사람도 상을 받는 사람도, 그리고 축하하러 오는 청중들에게도 맥 빠지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 20세기 후반 서양 지성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근대-탈근대 논쟁의 불씨도 1980년 프랑크푸르트 시가 주는 아도르노 상 수상연설에서 비롯되었다. ‘실패했지만 끝나지 않은 근대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수상 연설에서 하버마스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를 싸 잡아서 신보수주의자로 규정했다. 이 수상연설에서 하버마스는 그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선배 학자인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서 제기한 근대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멈추어 서야 할 것이 아니라 계속 추진되어야 하는 미완의 프로젝트라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근대 프로젝트가 미몽을 깨뜨린 계몽이 아니라 그 자체가 미몽이라는 아도르노의 지적에 동의한다. 이성이 도구화되었다는 진단에도 의견을 같이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이성이 기획한 계몽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그러나 하버마스가 보기에 근대는 전근대에 비해 개혁적이고 건강한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는 전근대적인 야만이 독버섯처럼 남아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탈근대의 이름으로 근대 프로젝트가 지닌 개혁적 추동력을 멈춰 세우려는 새로운 보수주의를 경계했고, 그 구체적 인물로 푸코와 데리다 등을 콕 집어서 거론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하버마스 식 강연이다. 그의 강연은 주례사나 잔칫집에서 덕담을 나누는 수준의 강연이 아니다. 유탄을 맞은 것은 신 보수주의자로 낙인 찍힌 푸코와 데리다였지만, 하버마스가 직접 겨냥한 대상은 작고한 그의 선배 아도르노가 아니었을까? 아도르노에게서 비판으로서의 철학적 전통을 물려받은 하버마스에게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같이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것이 아니다. 하버마스는 “철학은 그의 위대한 전통을 거부함으로써 그 전통에 충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버마스와 푸코, 그리고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뒷 이야기를 잠시 더 해보자. 지난 1960년대 실증주의 논쟁을 시작으로 해서 크고 작은 논쟁을 주도해 온 하버마스 식 철학 하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푸코는 자신을 신종 보수주의자로 규정한 하버마스의 글을 읽고 크게 분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푸코와 하버마스의 대담을 기획했지만, 갑작스런 푸코의 죽음으로 20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의 대담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푸코가 사망했을 때, 하버마스는 푸코를 추모하는 글을 통해서 자신이 푸코를 상당 부분 오해했을지 모른다고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나 탈근대 논쟁에 대한 하버마스의 집약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그는 다시 푸코를 두 장에 걸쳐 통렬하게 비판했다. 물론 죽은 푸코는 말이 없다. 하기는 푸코 철학을 자주 인용한 하버마스와는 달리, 푸코는 생전에도 하버마스 철학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적이 없다. 죽은 푸코 편에서 보면 병 주고 약 주기, 또는 약 주고 병 주기 식이었지만, 그것이 바로 하버마스가 철학 하는 방식이다.

데리다와는 행복한 화해를 했다. 한 학술대회에서 데리다와 만난 하버마스는 먼저 그에게 접근했고, 두 사람은 완벽한 상호 이해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프랑크푸르트와 파리에서 각각 열린 학술대회에 상대방을 초대했고, 미국 9.11 사건 이후에는 ‘테러시대의 철학’이라는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뉴욕 철학자가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각각 따로 만나 인터뷰를 하고,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지만 그들 사이에 신뢰가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이었다.

하버마스의 주요 활동 무대인 도시 프랑크푸르트 <출처: Thomas Wolf at en.wikipedia>
하버마스의 주요 활동 무대인 도시 프랑크푸르트
<출처: Thomas Wolf at en.wikipedia>
한 인터뷰에서 하버마스는 자신과 푸코 사이의 탈근대 논쟁은 논쟁이라기보다는 비판적 리뷰에 가깝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맞다. 논쟁은 쌍방향이 되어야 성립하는 법이다. 하버마스는 또 비판적 리뷰에 대해 푸코가 기뻐할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어쨌든 그것이 하버마스 식의 철학 하기다. 그는 앞 선 시대의 철학자든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철학자든 상관하지 않고 말 걸기를 시도한다. 그들의 생각을 자기 식으로 재정리해서 비판한다. 그것은 강연을 통해서든, 저술을 통해서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버마스가 쓴 책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또 연구 분야가 다른 수 많은 사상가들이 하버마스의 틀 안에서 분해되고 재구성된다. 하버마스가 말을 거는 인물은 칸트와 헤겔, 니체와 같이 고전적 지위에 오른 철학자로 국한되지 않는다. 또 푸코와 데리다와 같이 그와 같은 동년배의 세계적 명성을 가진 인물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세계적 명성에서 그보다 뒤지는 인물도 조리대에 오르고, 때로는 그가 직접 가르친 제자도 등장한다.

하버마스의 관심은 좁은 의미의 철학에 갇혀있지 않다. 언젠가 하버마스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그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사회학자로 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또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조사연구소에서 아도르노의 조교로 일하기 전에는 5년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고정적으로 서평을 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사회의 현안문제에 대해서 세계 유수의 매체에 기고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를 소개할 때는 보통 철학자이며 사회학자, 그리고 실천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 자리를 매긴다. 이러한 폭 넓은 관심 때문에 그의 연구영역은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법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최근에는 종교문제와 국제평화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우물만 파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날로 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최근의 학문 추세에서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많은 분야를 두루 섭렵할 수 있었을까? 게오르게 리히트하임(George Lichtheim)이 “하버마스의 동년배들이 자기 전공분야의 한 구석을 힘겹게 정복하고 있을 때 과학이론, 지식사회학, 형이상학 등 방대한 서구의 고전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들을 하나의 새로운 지적 체계로 재구성해냈다”고 글을 쓴 것이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 1971년 [인식과 관심]이 출간된 때였다. 물론 그때는 하버마스가 독일 해석학에서 영미 분석철학의 성취를 접목한 ‘언어학적 전회’ 또는 ‘화용론적 전회’라고 불리는 본격적인 자기 철학을 수립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리히트하임의 그때 그 서평을 지금 그대로 인용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버마스를 인용할 때마다 거의 빠짐 없이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존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형용구를 그는 40년 동안 달고 다녔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건강이 유난히 뛰어나기 때문에? 그의 두뇌가 천재적이기 때문에? 아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버마스는 선천성 언청이다. 다섯 살 때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다. 2004년 교토 상 수상연설에서 그는 개인적 체험과 사상을 접목해서 강연을 해달라는 주최 측의 요구에 따라 그의 자전적 사상 편력을 강연한 바 있다. 그는 불명확한 발음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에 아이들의 심한 놀림을 받았고, 요즈음 말로 말하면 ‘왕따’도 당했다고 했다. 그가 담화(Diskurs) 행위를 강조하는 철학자가 된 것은 심한 아이러니다.

하버마스는 머리를 순식간에 때리는 영감을 붙잡아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를 설파하는 천재형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무오류성을 추구하는 철학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모든 지식의 최종 근거(Letzte Begrundung)가 되는 철학을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철학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자신이 철학의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했다고 자부했던 철학자들이 있다. 또는 적어도 자신이 제시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언젠가는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던 철학자들도 있다. 하버마스는 그 대척점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이 항상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이 반박의 여지가 없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다면, 그렇게 많은 이들의 주장을 세심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버마스는 독일의 권위지 [디 자이트]에 젊은 시절부터 기고를 해온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의 기고문은 세계의 주요 매체에서 번역해서 싣고 있다.

하버마스는 독일의 권위지 [디 자이트]에 젊은 시절부터 기고를 해온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의 기고문은 세계의 주요 매체에서 번역해서 싣고 있다.

하버마스가 엄청나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그리고 지치지 않고 말을 건네고 듣는, 그 원동력은 그의 타고난 건강도 아니고, 그의 타고난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 하는 방식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해석학적 통찰을 외면하지 말 것, 해석학적 미덕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희생하지 말 것, 역사적 맥락에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울 것, 언제나 반대 의견들의 장점을 염두에 둘 것, 그러면서도 의지와 의식이 이끄는 삶을 위한 이성적 정향을 찾아내기 위해 철학의 소명에 충실하고, 다년생 식물처럼 끈질기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체계적으로 답할 것”

위 인용은 하버마스가 그의 본 대학 선배이자 친구이며, 또 평생 협력자인 칼-오토 아펠(Karl-Otto Apel)의 프랑크푸르트 대학 정년퇴임 기념 강연에서 아펠의 철학적 정향에 대해 언급한 말이지만, 아무런 수정 없이 하버마스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은 대목이다. 정말 그랬다. 하버마스는 한때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시드는 꽃이 아니라, 다년생 식물처럼 끈질겼다. 반대 의견에 세심하게 귀 기울였다. 그러나 항상 이성적 정향을 추구했고, 체계적으로 답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쓰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끈질기게. 하버마스가 생각한 철학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버마스는 독일의 파국을 경험한 전쟁 후 세대다. 사춘기 시절 전쟁을 경험했고, 나치 독일이 패망한 1945년에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Gymnasium)을 마치고 본 대학에 들어갔다. 하버마스의 눈에 비친 독일 사회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쟁 이전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전쟁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도덕적 파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거기에 없었다. 철학적 분위기도 그랬다. 당시 유행처럼 번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 속에서 전쟁 전과 다름 없이 하이데거 철학은 여전히 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전쟁 이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도대체 독일이 전쟁 기간 무슨 일을 했는지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불감증의 원인을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들은 비판적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찾았다. 부당한 권위의 정당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단지 주어진 권위에 순응한 채, 그것을 도구적 합리성과 결합할 때 일어난 참극이 아우슈비츠에서의 유대인 학살로 나타났다면, 이성이 비판적 측면을 상실하고 도구적 측면과 다시 결합할 때 또 어떤 비극이 일어날 것인가? 하버마스는 청년 시절 경도되었던 하이데거 철학에서 벗어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에 합류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비판으로서의 철학’이라는 생각을 그는 선배 세대와 공유했다.

비판으로서의 철학이라는 화두로 하버마스는 지치지 않고 모든 철학적 전통을 비판해 왔다. 그에게 철학은 더 이상 모든 학문에게 최종 근거를 부여하는 기초학문(Grundwissenschaft)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제일 철학을 자임해온 형이상학적 사고를 거부한다. 또 데카르트와 칸트에 이르러 제일철학의 위치를 새롭게 차지한 인식론, 또는 그가 즐겨 쓰는 용어로 바꾸면 의식철학(Bewußtseinsphilosophie)을 거부한다. 도대체 무엇이 형이상학과 인식론에 학문 중의 학문, 또는 모든 학문의 근거를 제공하는 ‘자리 지킴이’(Platzhalter)로서의 지위를 부여했는가? 그래서 하버마스는 탈 형이상학 사고(Nachmetaphysisches Denken)와 의식철학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요청한다.
위르겐 하버마스_비판으로서의 철학
목 차
제1부 철학자 및 철학 문헌 해제
1. 위르겐 하버마스의 생애 및 저작 1
1.1 생애 요약 1
1.2 생애 해설 1
1.3 생애 연보 12
1.4 저작 14
1.4.1 이론과 실천 14
1.4.2 인식과 관심 15
1.4.3 의사소통행위이론 1/2권 15
2. 인식과 관심 해제 17
2.1 인식과 관심 요약 17
2.2 인식과 관심 해설 18
2.2.1 인식 비판의 위기 18
2.2.2 경험분석적 과학과 기술적 관심 21
2.2.3 역사해석적 과학과 실천적 관심 24
2.2.4 비판지향적 과학과 해방적 관심 26
2.3 인식과 관심 상세 목차 29
2.4 주요 용어 30
2.4.1 인식 30
2.4.2 관심 30
2.4.3 비판 31
2.4.4 해방 32
제2부 철학 지식지도
1. 철학자 지식지도 35
2. 철학 문헌 지식지도 36
3. 철학 용어 지식지도 38
3.1 인식 38
3.2 관심 38
3.3 비판 39
3.4 해방 40
4. 철학 문헌 내용 지식지도 41
제3부 인식과 관심 내용 분석 연구
1. 인식 43
1.1 인식 비판의 위기 43
1.1.1 인식 비판의 위기의 실체 44
1.1.2 인식 주체의 자기반성력의 상실 45
1.1.2.1 절대지의 과학으로서의 정신현상학 45
1.1.2.1.1 초월적 의식에 대한 현상학적 비판 45
1.1.2.1.2 정신현상학 속에서 실종된 인식 비판 46
1.1.2.2 인식 범주로서의 사회적 노동 48
1.1.2.2.1 사회적 노동 48
1.1.2.2.2 유물론적 종합 49
1.1.2.2.3 도구주의 인식론 50
2. 인식적 관심 53
2.1 인식적 관심의 3가지 유형 54
2.1.1 기술적 관심 55
2.1.1.1 실증주의 비판 56
2.1.1.2 콩트의 실증 개념 57
2.1.1.3 마흐의 현상주의 58
2.1.1.4 퍼스의 탐구 논리 60
2.1.1.4.1 탐구 논리에서 인식과 행위의 관련성 60
2.1.1.4.2 탐구 논리의 도구적 행위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 62
2.1.2 실천적 관심 63
2.1.2.1 딜타이의 해석학적 이해 이론 64
2.1.2.1.1 정신과학의 방법론 64
2.1.2.1.2 자아동일성의 형성 66
2.1.2.2 해석학적 이해와 실천 행위의 관계 67
2.1.3 해방적 관심 68
2.1.3.1 반성적 이성의 관심으로서의 해방적 관심 69
2.1.3.2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70
2.1.3.2.1 심층해석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 70
2.1.3.2.2 정신분석학의 이론적 구조 72
2.1.3.2.3 정신분석학에서 이해와 설명 73
참고문헌 75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_서도식
5. 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
1절 차이와 잡다
2절 차이의 소멸
3절 강도, 질, 외연 : 소멸의 가상
4절 강도의 첫 번째 특성 : 즉자적 비동등
5절 강도와 미분
6절 체계의 진화
결론 : 차이와 반복
1절 재현에 대한 비판
2절 이유로서의 근거 : 근거의 세 가지 의미
3절 허상들
4절 반복, 동일자, 부정적인 것
5절 시간의 형식과 세 가지 반복
참고 문헌
들뢰즈 연보
옮긴이 해제 - 들뢰즈 존재론의 기본 구도
찾아보기
목차

서론 : 반복과 차이
1절 반복과 일반성 : 첫 번째 구별(행동의 관점에서)
2절 반복 철학의 프로그램 : 키에르케고르, 니체, 페기
3절 반복과 일반성 : 세 번째 구별(개념의 관점에서)
4절 반복은 개념의 동일성이나 부정적 조건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5절 두 가지 반복 : 개념의 동일성이나 부정적 조건에 의한 반복, 이념 안의 차이와 광잉에 의한 반복
6절 개념적 차이와 개념 없는 차이
1. 차이 그 자체
1절 차이와 어두운 바탕
2절 개념적 차이 :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차이
3절 일의성과 차이
4절 차이와 망아적 재현 : 무한대와 무한소
5절 차이, 긍정, 부정
6절 플라톤에 따른 차이의 논리학과 존재론
7절 차이의 문제에서 결정적인 것
2. 대자적 반복
1절 반복 : 무엇인가 변하고 있다
2절 시간의 두 번째 종합 : 순수 과거
3절 데카르트적 코기토와 칸트적 코기토 : 규정되지 않은 것, 규정, 규정 가능한 것
4절 반복과 무의식 : "쾌락원칙을 넘어서"
5절 유사성과 차이
6절 플라톤주의의 참된 동기는 허상의 문제에 있다
3. 사유의 이미지
1절 철학과 전제들의 문제
2절 두 번째 공준 : 공통감의 이상
3절 차이론적 인식능력 이론
4절 다섯 번째 공준 : '부정적인 것' 으로서의 공유
5절 여섯 번째 공준 : 지칭의 특권
6절 여덟 번째 공준 : 결과로서의 앎
4. 차이의 이념적 종합
1절 이념 : 문제제기의 심급
2절 미분
3절 미분법과 무한소의 무용성
4절 이념과 다양체
5절 이념과 미분적 인식능력 이론
6절 이념과 반복
7절 이념과 잠재성
8절 분화 : 이념의 현실화 과정
차이와 반복_들뢰즈
감각의 논리_들뢰즈


14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
이집트와 눈으로 만지는 공간 제시 / 본질과 우발적인 것 / 유기적 재현과 촉지적. 광학적 세계 / 빛과 색, 광학적인 것과 눈으로 만지는 것
15 베이컨이 지나온 길
눈으로 만지는 세계와 그 변종들 / 색채주의 / 새로운 변조 / 반 고흐와 고갱으로부터 베이컨으로 / 색의 두 양상 : 순수 색조와 혼합 색조, 아플라와 형상, 해변과 색 유출
16 색에 관한 한마디
색과 회화의 삼요소 / 색-구조 : 아플라와 그 분할 / 검정색의 역할 / 색-힘 : 형상들, 색 유출, 혼합 색조 / 색-윤곽-회화의 취향 :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17 눈과 손
코드적, 촉각적, 손적, 눈으로 만지기적 / 돌발 흔적의 응용 / '전혀 다른' 관계들 / 미켈란젤로 : 회화적 사실
베이컨 연보
그림 목록
서문
일러두기
1 동그라미, 트랙
동그라미와 그 유사물들 / 형상과 구상적인 것의 구분 / 사실 / '사실 관계들'의 문제 / 회화의 3요소 : 구조, 형상, 윤곽 / 아플라의 역할
2 과거 회화와 구상 사이의 관계
회화, 종교와 사진 / 두 개의 반-의미
3 운동 경기
첫 번째 움직임 / 구조로부터 형상으로 / 고립 / 운동 경기 / 두 번째 움직임 / 형상으로부터 구조로 / 신체가 빠져나간다 : 비열함 / 수축, 흩어짐 : 세면대, 우산, 거울
4 신체, 고기와 기, 동물-되기
인간과 동물 / 비구분의 영역 / 살과 뼈 : 살은 뼈로부터 흘러내린다 / 연민 / 머리, 얼굴과 고기
5 베이컨의 여러 단계와 양상
고함에서 미소로 : 흩어짐 / 베이컨의 연속적인 세 시기 / 모든 움직임의 공존 / 윤곽의 역할
6 회화와 감각
세잔과 감각 / 감각의 층위들 / 구상적인 것과 격렬함 / 전위의 움직임, 산책 / 감각들의 현상적인 통일성 : 감각과 리듬
7 히스테리
기관 없는 신체 : 아르토 / 보링거의 고딕 선 / 감각에 있어서 '층위의 차이'가 의미하는 것 / 진동 / 히스테리와 현재함 / 베이컨의 의심 / 히스테리, 회화의 눈
8 힘을 그리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 : 회화가 당면한 문제 / 외형의 변화도 해체도 아닌 근본적인 변형 / 고함 / 베이컨에게 있어서 생의 사랑 / 힘들의 열거
9 짝들과 삼면화
짝지어진 형상들 / 감각적 투쟁과 짝짓기 / 공명 / 리듬적 형상들 / 진폭과 세 리듬 / 두 개의 '사실 관계'
10 삼면화란 무엇인가
증인 / 적극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 추락 : 층위 차이의 적극적 현실 / 빛, 결합과 분리
11 그리기 이전의 회화
세잔과 판에 박힌 것에 대한 투쟁 / 베이컨과 사진들 / 베이컨과 가망성들 / 우연의 이론 : 우발적인 표시들 / 시각적인 것과 손적인 것 / 구상적인 것의 위상
12 사용된 돌발표시
베이컨에 따른 돌발 흔적(터치와 얼룩) / 돌발 흔적의 손적 성격 / 회화와 대재난의 경험 / 추상 회화, 코드와 시각적 공간 / 액션 페인팅, 돌발 흔적과 손적 공간 / 이 두 길의 각각에서 베이컨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13 유사성
세잔 : 돌발 흔적으로서의 모티프 / 유사적인 것과 코드적인 것 / 회화와 유사성 / 추상 회화의 역설적인 위상 / 세잔의 유사적 언어와 베이컨의 유사적 언어 : 면, 색, 덩어리 / 변조하기 / 뒤찾은 닮음
즐거움 또는 고통 등의 감각은 선험적 표상을 가지고 있는가?
느낌은 오직 경험적으로만 알 수 있다.
도덕적 법칙은 선험적, 순수형식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가?
법칙의 결과로서의
지성적 만족은 즐거움의 상위상태
존경은 고통의 상위상태
칸트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족_감성적 결과 X_특정한 느낌 X_느낌에 대한 지성적 '유비'
이유
------
------
상호 간에 대응하여 존재하는 동일성
--------------------
법칙의 결과로서의
미감적 판단에서 형식이라는 반성된 표상은 아름다움이 주는 상위 즐거움을 일으킨다.
존경
지성적 만족
미적 판단_객관성, 필연성, 보편성을 요구.
_형식의 관점에서 단칭적 대상을 반성한다.
_지성의 규정되지 않은 개염과 관계한다.
_지성 개념에 따라 활동하도록 규정 된다.
_대상의 형식을 반성함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자유를 보여준다.
_가능한 직관의 임의적 형식의 원천으로서 자발적이며 생산적이다.
그러므로
자유로서의 상상력

규정되지 않은 지성
의 일치가 있다.
이 일치가
미감적 공통감각
(취미)을 규정한다고 보아야 한다.
상상력은
'느낌이 전달될 수 있다.'는 우리의 가정은 능력들의 주관적 일치의 이념 위에 근거한다.
'이것은 숭고하다'
숭고의 경우 상상력은
_형식적 반성과는 완전히 다른 활동을 한다.
_자기 능력을 극단까지 몰고가는 맹렬함을 체험한다.
_포착(부분들의 연속적 포착)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계를 가지지 않는다.
_동시적 총괄의 최대를 가진다.
_광대함(자연적 대상, 감성적 자연으로부터 나오는)에 직면할 경우
최대의 불충분함을 체험하고 한계를 확장하려 하나 다시 자기 자신 속으로 위축된다.
숭고의 느낌은
_
무형
혹은
광대함
또는
강력함
에 직면할 때 체험된다.
자연의 광대함을 하나의 전체로 통일시키도록 하는 것은 오로지 '이성'이다
----
숭고의 느낌은__무형 혹은 광대함 또는 강력함에 직면할 때 체험된다.
숭고를 통한 상상력과 이성적 요구의 주관적 관계는 불일치며 모순이다.
그러나 불일치의 심층에는 일치가 있어 고통을 넘어서는 즐거움을 가능케한다.
감성적 경계를 제거하여 상상력을 감성적인 것에서 떼어놓는 분리는 소극적이지만, 무한의 현시이다. 이는 정신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성과 상상력은 초감성적 목적지를 가진다. 이러한 일치 속에서 정신은 모든 능력들의 규정되지 않은 초감성적 통일(집중점)로 감지 된다.
문화+숭고의 느낌 -> 초감성적 통일(공통감, 불일치 속에서 발생한 것, 실천적으로 규정 된 이념) -> 운명을 지배하는 본질적인 것(도덕적 존재로서 우리에게 부과된 움명, 목적지, 소명)을 배움(높은 합목적성을 준비하고, 도덕법칙의 출현을 준비하는)
숭고는_
_모든것이 주관적이다.
_오로지 투사를 통해서만 대상과 관계한다.
_연역적이지 않다
_
아름다움은_늘 무관심하지만 이것이 종합적으로 통합되는 관심은, 공통감각으로서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의 발생을 위한 규칙을 줄 수있다.
아름다움을 통합하는 관심은 무엇인가?
_경험적 사회적 관심(후험적 관련) + 이성적 관심(선험적 관련)
_형식적으로 반성될 수 있는 대상의 산출을 위해 질료와 관계
무엇이 아름다움의 대상적 형식에 개입하는 최초의 질료인가?
_액체 <- 분해되거난 증발하여 남는 질료이전의 질료
_아름다움을 구성하는 부분이 아님
_아름다음의 감각을 구성하는 부분도 아님
_아름다움의 산출과 관련 됨
아름다움을 통합하는 관심은 우리 안에서의 아름다움의 감각적 발생 원리로서 기여할 수 있다.
_이것에 종속하는 대상은 없다.
_이것의 상위형식에는 대상에 대해 입법하는 능력은 없고
오직 활동적 능력들의 주관적, 자발적 조화만이 있다
느낌의 능력
상위 인식 능력
선험성의 특성_보편성, 필연성
ex)선험적 종합을 수행 한 예
'직선은 최단 거리이다', '변화하는 모든 것은 원인을 갖는다'.
(B는 그 자체가 선험적 표상이다. 반면 A는 선험적 표상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선험적 종합은 상위 인식 능력을 정의 한다.
우리는
자연의 산물
들과 우리의
무관심한 즐거움
사이의
우연적 일치
에서 이성적 관심을 체험한다.
우리는
자연의 산물
들과 우리의
무관심한 즐거움
사이의
우연적 일치
에서 이성적 관심을 체험한다.
-----------------------
미감적 이념은
_모든 개념을 넘어선다.
_우리에게 주어진 것과는 다른 자연의 직관을 창조한다.
_이성적 이념이 내포하고 있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
_'이차적' 표상, 이차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_상징주의에 매우 근접해 있다.
(
천재
자신은 또한
지성의 확장

상상력의 해방
을 통해 이 상징화를 수행한다.)
_다른 자연을 상상적으로 창조하는 가운데 이차적으로 이념을 표현한다.
이성의 이념
_경험을 넘어선다.
_표현 불가능한 어떤 것을 내포한다.
천재는
_취미가 아니다
_
영혼
또는
질료
를 부여함으로써 예술에 있어서 취미에
생명
을 불어넣어 준다.
_
상상력

지성

일치

생명
을 얻게 해 준다.
_다른 천재를 부른다.
_모든 능력의 초감성적 통일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_자연에서의 아름다움의 결과들이 예술에서의 아름다움으로 확장될 수 있는 규칙을 제공한다. 또한 자연 속의 아름다움이 선의 상징일 뿐 아니라, 예술 속의 아름다움도 천재 자신의 종합적 발생적 규칙 덕분에 선의 상징이다.
취미는
_단순히 자유로운 상상력과 확장된 지성의 형식적 일치일 뿐이다.
_지성을 확장할 수 있고 상상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심급과 관계하지 않는다.
_활기 없고 생명 없는 상태에 머물고, 단순히 가정될 뿐이다.
_다른 천재를 부르는 매개가 되며, 다른 천재의 출현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해준다.
천재
다른 천재
상상력
지성
영혼
다른 영혼
지성의 확장
상상력의 해방
지성의 확장
상상력의 해방
천재
다른 천재
상상력
지성
영혼
다른 영혼
지성의 확장
상상력의 해방
지성의 확장
상상력의 해방
대전 직후에, 소설은
무의식
의 연구 쪽을 향해 간다. 세계 공황(1929~1932년) 때부터는, 소설은
사회
묘사로 돌아오고 위협받는
개인
을 옹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경향은 있어도, 어떤 문학적 유파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 소설가는 자기 개인의 기법을 갖고 있고 자기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들을, 특히 인간의
인식
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인간을 다시
사회
속에 갖다 놓고 있는 사람들,—인간에게 다시
윤리
를 주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들로 나눌 수는 있다.

Ⅰ. 인간의 인식.—모두가 무의식의 신비를 캐내려고 노력한다(이 무의식은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해 탐구되었고, 프로이트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서 예찬을 받았다.)—1. 맨 먼저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 그는 생애의 전기를 사교계에서 지냈고, 후기에는 흘러간 시간의 독특한 매력을 회상하기에 전념했다. 그래서 그의 방대한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소설과 시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날카로운 지성
에 의해서 비판되고 동시에
감탄한 마음
에 의해서 느껴진, 소설화된 회상집이다.—2.
앙드레 지드
(André Gide, 1869~1951)는 자아의 도야에 마음을 쓰는 개인주의자로 자인했는데, 그는 이 자아를 항상
열정
의 상태 속에 유지하고 그것을
독단 없는 복음주의
로 강화하기를 바란다. 그는
무의식
의 문제를 검토하고, 대담하게도 솔직한 자서전을 내놓았다. 그가 식민지의 폐단을 고발하고, 공산주의에 잠시 가담했다가 포기한 것은, 두 가지 경우 모두 개인의 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것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작품은, 심리적이든 도덕적이든 간에
인격
의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3.
프랑스와 모리악
(François Mauriac, 1885~1970)은
본능
의 폭발 속에
하느님의 사랑
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
를 알아본다고 믿는다.
정열
적인 방황의
열광
적이고도 강력한 화가인 그는
은총
이 작용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중단한다.—4.
쥘리앵 그린
(Julien Green, 1900~)은 프랑스 어를 사용하는 미국인 작가인데, 그의 대부분의 소설들 속에서, 작자도 잘 모르는
신비로운 힘
에 위협당하는 인간을 보여 주고 있다.—5.
자크 드 라크르텔
(Jacques de Lacretelle, 1888~1967)은
영혼
의 더없이
불합리한 움직임
을 아주 고전적인 명확함을 가지고 그리고 있다.—6. 끝으로
콜레트
(Colette, 1873~1954)는 아주
본능
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프랑스의 가장 훌륭한 문장가들 중의 하나이다.
Ⅱ. 사회 속의 인간.—7.
조르즈 뒤아멜
(Georges Duhamel, 1884~1966)은 전쟁의 고통을 통해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미천한 사람들의 노력이며 가장
착한 사람들
의 실패에
동정
하고, 기술적인 완벽함보다도 정신적인 교양에 더 마음을 쓰는
우애적인 집단
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는 심리 분석가인 동시에 모랄리스트이다.—8.
쥘 로맹
(Jules Romains, 1885~1972)은 더
객관적
이다. 위나니미슴의 창시자인 그는
집단적인 영혼들
—우연한 사건에서 태어나는 일시적인 집단적 영혼들로부터, 한 시대 전체를 초월하는 집단적 영혼들에 이르기까지—의 연구에 몸을 바쳤다. 그는 우리의 시대를, 그러한 거창한 목적에 답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에 따라서 구상한 방대한 소설 〈선의(善意)의 사람들〉 속에서, 이 시대의 모든 양상 아래서 힘차게 되살려 냈다.—9. 한층 더 객관적인
로제 마르탱 뒤 가르
(Roger Martin du Gard, 1881~1958)는 그의 시대의 사상적
알력과 도덕적 문제들
을 불편부당하게 그렸다.—10.
앙드레 모르와
(Andréd Maurois, 1885~1967)는 특히 그의 에세이와 조사(調査)에 의해서 이 그룹에 결부될 수 있다. 그는 모든 인간 문제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지만, 소설에 있어서는 오직
사랑의 문제
밖에 고찰하지 않는다.

두 소설가(11, 12)는 세계의 정확한 모습을 그려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세계의 외관을 가지고 놀기를 더 좋아했다. 그것은
무궁무진한 환상
을 가지고 있었던
장 지로두
(Jean Giraudoux, 1882~1944)와,
인간들의 괴상함

사물들의 생생한 모습
을 한마디로 묘사하는 데 능한
폴 모랑
(Paul Morand, 1888~1976)이다.
Ⅲ. 윤리의 탐구.—
지드

뒤아멜
은 선구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이제 그들의 것보다도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한다.—13.
앙리 드 몽테를랑
(Henry de Montherland, 1896~1972)은
경멸을 수반한 고매한 정신
을 가질 것을 권고한다. 그렇게 하면 개인은 자기 자신의 눈으로 봐서 타락하지 않는다는 유일한 조건 아래서 무슨 일이고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4.
앙드레 말로
(André Malraux, 1901~1976)는
인간의 존엄성

무질서

부정
에 대한 반항—아무리 이것이 절망적인 것이라 하더라도—위에 세우고 있다.—15.
앙트와느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는
직업
을 깊이 파고들 것을 주장한다. 그도 역시
행동
을 사랑한다. 그러나
훈련된 행동
, 문명에
봉사하는 행동
, 그리고 그것에 의해 인간이
자기를 능가
하는 것, 즉 '정신'을 구제하려고 힘쓰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을.—16. 카톨릭 소설가요, 강력한 환상가인
조르즈 베르나노스
(Georges Bernanos, 1888~1948)는 일체의 관례주의를 배척하고, 각인이,
하느님과 악마

영혼
속에서 벌이고 있는 싸움에 참가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자신의 끝까지 갈 것'을 바란다.—17. 반대로
장 지오노
(Jean Giono, 1895~1970)는 문명인이
원시적인 본능
에, 문명인을 보편적인 생명 속에 녹여 넣고 그가 잃어버린 기초적인 기쁨을 그에게 돌려줄 그런 원시적인 본능에 빠져들기를 바란다.

1939~1945년의 사건들은 혼란을 증대시켰다. 사람들은 이제까지보다도 더 자기들의 존재 이유를 알고 싶어하고, 그 이유를 철학자적 소설가들에게 묻는다.—18.
무신론적 실존주의
의 이론가
사르트르
(Sartre, 1905~1980)는, '
이유'는 없다
, '
인간은 헛된 정열이다
',
무(無)에서 나와 무로 돌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이다, 라고 대답한다.—19. 사르트르보다 덜 형이상학자인
카뮈
(Camus, 1913~1960)는 적어도 하나의 이유는 있다고 대답한다. 즉, 인간은 인간성의 특성이라고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을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며, '
불행의 세계에 항의하기 위해서 행복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대변동의 직후에는, 소설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 주거나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들의
운명을 설명해 주기
를 더 노리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소설은 여전히 가장 뛰어난 문학 형태로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전쟁 직후에는, 소설도 역시 심각한 변화를 입었다. 즉, 역사 소설이라거나, 단순히 사실주의적인 소설은 그 수효가 적어졌고, 사람들은 미학적인 형식화라거나 풍습의 연대기 따위에는 전만큼 흥미를 갖지 않게 된 것이다. 새 세대는
새 영역
을 탐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의식
이 그 중의 하나이고,
모험
이 그 중의 또 하나이다. 그래서 소설가들이 처음에 전념한 것은 때로는 이
알 수 없는 힘들
(같은 시기에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이것을 해방하기를 바라고 있었다)의 탐사였고, 때로는 여행이나 꿈 또는 환상에 의한 도피였다. 그러나 갑자기 전쟁과 혁명의 위협을 북돋운 세계 공황(1929~1932년) 후에는, 그들은
불안한 사회의 묘사

위협받는 개인의 옹호
에 더 많이 바쳤다. 이 둘째 번 시기에 있어서는, 그들의 작품은 동시에 모든 문제를, 심지어 형이상학적인 문제까지도 제출한다. 거기에는, 미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던 심연(深淵)의 바람으로 고민하는 이
시대의 불안
이 뚜렷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제 문학의 유파는 없다. 전후는, 매우 다양한 개성들이 제각기 제 자신의 재능의 방향에서, 자유롭게 펼쳐진 하나의 경탄할 만한 꽃불이다. 고작해서, 설명의 편의상, 소설가들을 다음과 같이 묶을 수밖에 없다. 즉, 특히
내적 생명
에 관심을 가졌던 소설가들(
프루스트, 지드, 모리악, 그린, 라크르텔, 콜레트
),—
현대 세계의 방대한 종합
을 실현한 소설가들
(뒤아멜, 로맹, 로제 마르탱 뒤 가르
), 또는
현대 세계의 갖가지 양상들을 탐구
한 사람들(
모르와
),—
현대 세계의 생생한 모습
을 가지고 논 사람들(
지로두, 모랑
), —끝으로,
현대 세계에 어떤 윤리를 다시 주려고 노력
한 사람들(
몽테를랑, 말로, 생-텍쥐페리, 베르나노스, 지오노
). 제2차 세계 대전은 이
마지막 문제의 해결
을 더 절박한 것으로 만들었는데, 소설에 의해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기를 선택한 두 철학자,
사르트르

카뮈
가 그 일에 몰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설 (랑송불문학사, 1997.3.20, 을유문화사)
프랑스 현대 소설
프루스트

1918년부터, 당시는 대전 전의 대소설가들이 아직도 몇 해 동안1) 자기들의 작품의 성격을 바꾸지 않고 제작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40세를 훨씬 넘은 두 작가, 프루스트와 지드가 갑자기 젊은 소설가들의 대열의 우두머리가 되고, 그 동안에 그들과 같은 연배인 발레리가 모든 시인들을 압도한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쓰기 시작하고 있었던 이 세 사람 모두의 작품이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에 꼭 들어맞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187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동생도 의사가 되었다. 그는 집안이 유복해서 한가로이 살아갈 수 있었는데, 이는 신병 때문이기도 했지만(그는 아주 젊어서 천식의 발작으로 고생했다), 일찍부터 눈뜬 그의 문학 취미도 그의 그러한 생활을 설명해 준다. 즉, 예술 작품이 그에게는 썩 일찍부터 인생 최고의 목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35세까지, 그는 사교계의 살롱과 호화로운 레스토랑 그리고 유행의 해변 등 인공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고, 모든 것에 호기심을 품고, 질문하고, 하인들을 시켜서 자료를 모으고 했는데, 이런 점에서 그는 생-시몽(Saint-Simon)과 같다고 비교도 되었지만, 그는 생-시몽과 같은 격렬한 정열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가정(假定)을 세우는, 더 없이 미묘한 심리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1906년, 실컷 관찰을 했을 뿐만 아니라, 신병의 재발 때문에 집 안에 틀어박혀 있지 않을 수 없게 된 그는, 자기의 화려했던 모든 과거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라는 총제(總題) 아래,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첫째 권(〈스완 댁 쪽으로〉(Du côté de chez Swann))은 1913년에 나왔는데, 아무런 주목도 끌지 않았다. 반대로 둘째 권(〈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은 1919년에 공쿠르상을 탔는데, 이것이 영광의 시작이었다. 프루스트는 다음의 두 권(〈게르망트 쪽〉(Le côté de Guermantes),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을 겨우 출판하고 나서 죽었다(1922년). 그의 죽음으로도 작품의 간행은 중단되지 않고 1927년까지 계속되었다(〈사로잡힌 여인〉(La Prisonnière), 〈사라진 알베르티느〉(Albertine disparue),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

마르셀 프루스트는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해 주기를 무척 바라고 있었고 실제로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있었던 귀여운 사람이었다. 그는 '스노브(snob)'였을까? 그는 사교계의 모임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의 지적인 빈곤을 썩 잘 비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야 어쨌든, 그의 경험이 오늘날의 프랑스를 거의 대표하고 있지 않는 그러한 인위적인 환경들에만 제한되어 있었음은 유감이다. 그의 감성(感性)과 감수성은 극도로 날카로웠으며, 그것들은 그의 작품을 유례 없는 직관으로 풍부하게 해 주었다. 그의 신병은 그의 밝은 눈을 조금도 흐려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씩씩하게 자기의 작품을 위해 자기의 신병을 이용하고 있었다. 빈사 상태에 빠져 있었던 그는, 자기 주인공 하나의 빈사 상태가 묘사되어 있는 원고를 가져 오게 하여 그것을 고치고는, '이제 나도 거의 같은 상태에 와 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각주
1) 바레스와 로티는 1923년에, 프랑스는 1924년에, 부르제는 1935년에 죽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루스트 (랑송불문학사, 1997.3.20, 을유문화사)
작품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총제를 갖고 있는데, 여기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매우 신경질적이고 매우 귀염받는 어린이인 주인공이, 사교계의 오락과 사랑의 유혹 속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커가는데, 그러한 것들은 한때밖에 그를 붙잡지 않는다. 왜냐 하면, 사랑은 그에게는 이내 어떠한 객관적인 현실도 없어져 버린 것 같고, 사교계의 멋은 시대에 뒤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우연한 기회(한 잔의 차 속에 적신 마들레느 과자의 맛)가 그에게 불현듯이 추억들을 되살려 준다. 이 추억들은, 그것들이 오직 그의 지성에게만 말하고 있는 한은 그에게는 아무 흥미도 없는 것같이 보였지만, 그것들이 그의 마음 속에서 파닥거리고 있는 지금은 반대로 신기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이 때부터 화자(話者)의 생활은 하나의 목적을 갖는다.

그것은, 그의 자발적인 기억력이 재구성할 사건들을 따라서, 딴 데서 오는 저 눈부신 추억들을 긁어 모으고, 그것들을 깊이 파고들고, 그것들을 해명하여, 비록 그것들이 '지성의 세계에는 음악의 모티브처럼 생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예리하고도 황홀한' 시각(視覺)은 설명이 된다. 예리하다는 것은, 이 시각이 더 없이 미세한 사건들의 얽히고 설킨 원인들을 규명하기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고,—황홀하다는 것은, 이 시각이 흔히 경탄하고 있는 관조(觀照)이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작자는 이 방대한 작품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끌어 냈다. 이것은 소설일까? 오히려 어떠한 동일시도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바꾸어놓고 소설화한 한 사회의 연대기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작품의 흐름은 지극히 완만하다. 왜냐 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되찾은 시간을 샅샅이 즐기자는 것이지, 하나의 간단한 줄거리를 그 결말 쪽으로 서둘러 몰고 가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자는 여기서 넓이에 있어서나 깊이에 있어서 선인(先人)들보다도 한없이 더 규모가 큰 심리적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다.

넓이에 관해서 말하자면, 프루스트는 한 사람의 변함없는 본성 위에 뚜렷이 눈에 띄는 성격의 이러저러한 결점, 예컨대 질투 같은 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격의 총체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 가는 그 전체의 성격 자체를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순간의 정확한 보고를 하기 위해서는, 단지 사람이 느낀 감정만이 아니라, 사람이 뿌리쳐버린 생각이나 어렴풋한 추억, 사람이 느낀 감동, 등등도 적는 것이 당연하다. 깊이에 관해서 말하자면, 프루스트는 고전적인 심리 분석가들보다도 더 깊이 무의식의 심연 속에 뚫고 들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심연이 광대무변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하나의 작품이 알 수 없는 힘들에 커다란 몫을 주고 있으면서도 어둠 속에 빠져드는 일이 없이 여전히 명료하고 명확한 것으로 머물러 있다는 역설을 갖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루스트의 작품 (랑송불문학사, 1997.3.20, 을유문화사)


화자(話者)는 먼저, 아주 어렸을 때 휴가를 보낸 콩브레의 커다란 마을을 회상한다. 어머니, 할머니, 그 여자들의 주위에 있었던 충실한 천민들, 그리고 즐거운 산책 등이 눈앞에 떠오른다. 이 산책은 때로는 메제글리즈-라-비뇌즈 쪽으로 했는데, '사람들은 이 쪽을 스완(Swann) 댁 쪽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왜냐 하면 그리로 가려면 스완 씨의 소유지 앞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또 때로는 게르망트(Guermantes) 쪽으로도 갔는데, 이것은 이 어린이가 꿈꾸고 있는 접근할 수 없는 공작 부인—왜냐 하면 부인은 죄느비에브 드 브라방(Geneviève de Brabant)의 후손이기 때문에—의 소유지였다. 작품의 제2부 '스완의 사랑'(un amour de Swann)은 독자를 완전히 스완 댁 쪽으로 끌어 넣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인상이 아니라, 이미 청년이 되어 자기의 연애관을 정해 놓고 있는 화자가 훗날 들은 이야기의 추억이다. 섬세한 예술 애호가로서, 대단히 총명하고, 매우 유복하고, 매우 사교적인 스완은 행실 나쁜 여자 오데트 드 크레시(Odette de Crécy)에 홀딱 반했고, 이 여자는 온갖 방법으로 그를 괴롭히다가, 마침내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수많은 단역(端役)들이 이 연애 사건에 참여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기할 것은, 대중을 업신여기고 예술가들을 환영하는 체하는 부유한 부르즈와인 베르뒤랭(Verdurin) 집 사람들이다. 스완의 결혼에서 태어난 것이 소녀 질베르트(Gilberte)인데, 이 소녀를 화자는 아주 어렸을 때 샹-젤리제에서 만나곤 했다(〈스완 댁 쪽으로〉).

질베르트 스완은 오랫동안 화자와 순진한 우정으로 사귄 뒤 그로부터 떨어져 나갔으나, 그는 이내 발벡에서 자기 마음의 쓸 곳을 다시 찾아 낸다. 발벡은 처녀들이 '꽃피어 있는' 사교적인 해변인데, 이것이 둘째 권에 그 상징적인 제목을 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 처녀들을 모두 한꺼번에 사랑하지만, 나중에는 그 여자들 중의 하나인 알베르티느(Albertine)에게 유난히 더 애착을 느끼는데, 이 처녀 쪽에서는 그를 매몰차게 대한다. 발벡에서도 역시 그는 이 작품의 다른 중요한 인물들을 만나는데, 예컨대 성도착(性倒錯)의 기인 샤를뤼스 남작(baron de Charlus), 화가 엘스티르(Elstir), 작가 베르고트(Bergotte) 등이다(〈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



다음에 화자는 게르망트 쪽으로 돌아선다. 그는 공작 부인 댁으로 들어가, 그 여자에게 희망 없는 사랑을 고백하고, 또 귀족들이 사는 교외의 여기저기 살롱에 드나든다(〈게르망트 쪽〉). 그는 마침내 〈소돔과 고모라〉의 수치스런 행위를 샅샅이 캐내고, 발벡의 처녀들 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했던 처녀인 알베르티느에게, 사랑에서라기보다도 오히려 질투심에서, 죽자 살자 달라붙는다.

그는 알베르티느와 꼭 결혼하겠다고 결심을 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여자를 사로잡힌 여인으로 자기 곁에 붙잡아 두는 어떤 권리를 갖기 위해서, 그 여자와 약혼 관계를 맺는다. 그는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을까? 너무나도 뻔한 거짓말로 그의 질투심이 불타올랐을 때는 그는 그 여자를 사랑한다. 그가 그 여자를 신뢰한다고 자신하는 때에는 그는 더 이상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옛날에 오데트 드 크레시도 스완의 순진함을 악용하고 있었다(〈사로잡힌 여인〉). 알베르티느는 어느 날 달아난다. 그 여자는 투레느의 한 아주머니 댁에 몸을 숨긴다. 그리고 거기서 말 사고로 죽는다. 이것이 화자에게 비통한 명상의 주제가 된다(〈사라진 알베르티느〉). 그는 오랫동안 파리를 떠나 있다가, 전쟁 중에 다시 돌아온다. 전쟁은 변화를 재촉했다. 소설의 첫머리에서는 전연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이 서로 접근했다. 예컨대 베르뒤랭 부인은 게르망트 공작과 결혼했다.

뿐만 아니라 모두 머리가 반백이 되었거나 백발이 되어 있다. 이 때다, 몸은 다 망가졌고 남들의 늙음을 보고 자기 자신의 늙음을 깨달은 화자가, 게르망트네 저택의 안뜰에서, 두 개의 포석(鋪石) 위에서 비틀거리면서, 작품의 첫머리에서 한 잔의 차 속에서 마들레느 과자를 적셨을 때 이미 느꼈었던 그 계시를 받는 것은. 이 계시란 곧,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아질 수 있다, 우리들에게 행복의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있는 이 희미한 눈부신 환영들을 지나치면서 붙잡아, 그것들을 예술작품 속에 고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되찾은 시간〉).

[네이버 지식백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줄거리 (랑송불문학사, 1997.3.20, 을유문화사)
진리 인식을 위한 사유자의 능력들_지각력, 기억력, 지성, 상상력, 감성 등
인식_전제된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대한 모든 능력들의 조화로운 활동, 모든 능력들이 특수성을 동일성의 형식에 관련 시킬 때

능력들의 협력이라는 주관적 원리, 즉 능력들의 조화로서 공통 감각에 의존한다.
들뢰즈_선 철학적인 전제들인 능력들의 조화(이미지의 공리들)란 근거 없는 것이다.
지성과 대상의 일치
외재적 원인_신의 선성(데카르트), 예정 조화(라이프니츠, 흄_경험론자)
관념과 대상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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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관념과 자연의 과정과의 연합
우리는 우리의 사유와 개념이 여전히
___자연의 대상들과 동일한 과정 위에 있음을 발견한다
모든것을 이성의 능력으로 내재화시켜보자는 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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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이 해결 해야 할 주요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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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적 감성을 통해 다양은 주어지며
능동적 지성은 이에 입법하여 경험 대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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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의 혁명
초월적 관념론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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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지성은 어떻게 일치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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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연역
인식_대상과의 관계_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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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철학_대상이 개념과 일치해서 주어질 수 있는 조건_초월적 도식
대상이란 그저 경험적인 대상이 아니라 감성을 통해 주어진 다양을
상상력의 종홥활동이 하나늬 표상 속에 정립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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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작가, 실존주의사상의 대표자 중 하나. 사르트르 사상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의 주저 『존재와 무』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인간 의식의 현상학적 분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게서 의식이란 항상 “어떤 것에 대한 의식”(conscience de quelque chose)이다. 다시 말해 의식은 자기의 존립을 위해 항상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대상에의 의식에 관한 의식을 위해서는 또 하나의 의식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이 '전(前)반성적 의식'(präreflexive cogito) 또는 '순수의식'이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가 정립되기 위해서도 이러한 전반성적 의식이 전제될 수밖에 없는데, 곧 그것은 전혀 내용을 갖지 않는 '존재성'만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이 순수의식은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 대상을 필요로 하며 그때서야 비로소 의식현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순수의식의 끊임없는 대상의 정립을 '동적(動的)작용'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의식의 자기초월성이 나타난다. 의식의 자기초월성이란 곧 의식의 자기존재의 확대임과 동시에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부정은 근원적인 '무'(neant)의 분출에 의해서이다. '무'란 어떤 비(非)정립적 자기의식 상태를 말하는데,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liberté)란 이러한 상태를 가리킨다. 때문에 이러한 자유는 곧 '불안'과 이어지며, 이는 인간의 모든 외부적 상황으로부터의 자유(free)와 함께 자기정립의 필연성을 낳게 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ecede l'essence)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성립한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관념론에 입각한 사르트르의 여러 개념들은 그러나 곧 자기정립의 필연성과 함께 대상의 선택에 대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즉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인간은 행동에 있어서 무엇을 그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여기에서 책임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나 이미 외적인 상황에 의한 인간의 규정성 자체를 무시하고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만을 강조한 기본사상에 비추어 볼 때 책임 자체는 “스스로를 결정하는 자기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선택하는 입법자”라는 애매하고 관념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기도 했으나 그 기본사상인 실존주의에 입각한 관념론적 사상은 그의 휴머니즘적 사상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결코 해소되지 못했다.

요약 20세기 전반(前半)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
프란츠 카프카의 집
체코의 프라하 황금소로에 소재.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생(生)의 철학’이나 현상학의 계보를 잇는 이 철학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문학이나 예술의 분야에까지 확대하여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한 유행사조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 성립 당초의 실존주의의 주장 내용이 희미해져 실존이란 말뜻도 애매해진 감이 없지 않다. 실존주의 철학을 초기에 수립한 야스퍼스나 하이데거를 오늘날 실존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실존이란 말은 원래 철학용어로서 어떤 것의 본질이 그것의 일반적 본성을 의미하는 데 대하여, 그것이 개별자(個別者)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여, 옛날에는 모든 것에 관해 그 본질과 실존(존재)이 구별되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에서는 실존이란 특히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술어로 사용된다. 그것은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의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他者)와 대치(代置)할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을 강조하기 때문인데, 이와 같은 경향의 선구자로서는 키르케고르나 포이어바흐를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헤겔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 정신을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으로 보아 개인의 주체성이 진리임을 주장하고(키르케고르), 따라서 인류는 개별적인 ‘나’와 ‘너’로 형성되어 있음을 주장했으며(포이어바흐), 바로 이와 같은 주장이 실존주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야스퍼스의 ‘실존’을 예로 들면, 실존이란 ‘내가 그것에 바탕을 두고 사유(思惟)하고 행동하는 근원’이며, ‘자기 자신에 관계되면서 또한 그 가운데 초월자(超越者)와 관계되는 것’이지만, 한편 그러한 실존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실존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의 진리는 ‘좌절하는 실존이 초월자의 다의적(多義的)인 언어를 지극히 간결한 존재확신으로 번역할 수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분류에 따르면 이와 같은 초월자 또는 신(神)의 존재를 인정하는 야스퍼스나 마르셀은 ‘유신론적(有神論的) 실존주의자’이고, 사르트르 자신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임을 주장한다. 즉 사르트르의 생각으로는, 인간에게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先行)하며,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에서 스스로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선택하게끔 운명지어져 있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결정되어 있다면 개인은 다만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지만, 본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 한사람 한사람의 자각적인 생활방식이 실로 중요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거운 짐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생긴, 자유와 니힐리즘을 표방하는 실존주의의 한 파(派)는 사르트르의 아류(亞流)로서, 사르트르의 자유에 관한 사상을 오해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로는 이 밖에 L.셰스토프, N.A.베르자예프, 부버를 들 수 있고, 문학자로는 사르트르 이외에 카뮈, 카프카 등을 들 수 있으며, 실존주의의 시조(始祖)로서는 F.W.니체나 도스토옙스키, 나아가서는 B.파스칼까지도 거론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바르트나 불트만 등의 변증법 신학자가 실존주의 신학자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개인의 실존을 중시한다는 점일 뿐, 그 사상 내용에는 상당한 차가 있음에 주의하여야 한다.


실존주의[ existentialism , 實存主義 ] 두산백과
_실존주의자_존재와 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인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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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적 분석
어떤것에 대한 의식
자기존립을 위해 항상 대상을 필요로 한다.
| 전반성적의식 |
| 대상 |
| 의식 |
-->
--->
이것을 바라보는
| 의식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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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_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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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식의 끊임없는 대상의 정립_동적작용
| 무 |_ 비정립적인 자기의식 상태
---
| 자유 |
| 불안 |
---
자기정립의 필연성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
--->
스스로를 결정하는 자기 + 전인류를 선택하는 입법자
자기정립의 필연성과 함께 대상의 선택에 대한 문제를 발생
----->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인간은 행동에 있어서 무엇을 그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
애매하고 관념적인 해결책-->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전개한 존재론
--->
| 알버트 카뮈 |
이방인_부조리성과 반항의 의욕_시지프의 신화
부조리에 반항하며 살아야하는 인간의 숙명
존재의 부조리성
모든것이 부조리함을 의식하는 인간
실존과 자유를 도덕적인 면에서 연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과 습관으로 마비되어 있어,
자기들을 막무가내로 죽음쪽으로 끌고 가는 인간 조건의 비극을 보려고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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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 충격 --> 왜 사는가? --> 대답을 끝내 얻을 수 없음
--> 고뇌의 감정(사르트르의 구토) --> 희방없는 각성과 무제한의 자유에 도취
--> 유지를 위해 --> 운명의 불합리에 대해 끊임 없는 반항 상태로 유지
--> 스스로 자주적 가치를 만들어내야하는 부조리성의 인간
부도덕과 관능성
원초적 향락에 빠졌던 시기 --> 철학적 시기 --> 도덕적 시기
소설 속 부조리의 영웅,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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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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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과의 싸움
재난 속의 인간 --> 찬찬 할 만한 것이 나타남 --> 오직 공감만이 우리를 평화로 이끌 수 있다
부조리한 우주 앞에서, 인간성을 결정 짓는 질서와 정의의 요구
--
포스트 칸트주의자_마이몬의 관점 --> 들뢰즈_
발생
의 문제 ----------------------> 칸트는
발생
의 방법에 대한 요구를 무시했다
칸트철학
-------------------
-------------------
들뢰즈_심성 능력들 간의 일치의 이념은 칸트 비판 철학의 항상적인 특성이다
후기 후설 철학의 가장 중요한 술어.
발생
하는 것은
의미
이다.
의미의 발생
이라는 결합으로 자주 사용된다. 발생 중에서
능동적 발생

수동적 발생
이 구별된다. 능동적 발생은
자아가 자아작용으로서 기능하는 경우의 의미 발생
을 말하는데, 이때 자아작용은
의미 형성적
이고 자아는
구성적
이다.
논리적-이론적인
이성을 기능하게 하는 이와 같은 자아작용
을 후설은
실천적 이성
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의미의 산출로서의 의미의 능동적 발생은 요컨대
특수한 능동성
을 다양하게
결합
하고
종합
하여 새로운 대상을
의미로
서 근원적으로
구성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의식에 입각한 방식에서 보면 집합은 모으는 활동에 의해, 수는 헤아리는 활동에 의해, 부분은 분할하는 활동에 의해 구성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능동적 발생은 언제나 이미 앞서 주어진 수동성의 층을 전제한다. 이러한 선행적인 수동성의 층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후기 후설의 특색이다. 이러한 수동적 발생에 의한 구성은
의식의 심층 차원
에 의한
종합
에 다름 아니다. 본래 수동적인 의미 발생은 의식의 깊은 차원에서
연합
이라는 방식으로 법칙화된다. 따라서
연합

수동적 발생의 원리
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것이 다른 것을 지시한다
'고 하는 연합의 기본적 의미는 후설의 경우에 흄의 의미에서의 연합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으로부터는 선을 긋고 있다.

초월론적-현상학적인 연합의 개념은
공재

연속
을 기초로 하여 언제나
내적 시간의식
의 근원형식 하에서 성립한다. "발생의 현상학에 의해 비로소 자아는 보편적 발생의 통일성에서 결합된 무한의 연관으로서, 그것도 종합적으로 서로 의존하고 서로 속하는 수행을 수반하는 연관으로서 이해되게 된다"[CM §39]. 발생을 지향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할 때 그 분석은 생의 전체적인 구체적 연관을 향해 있다. 이러한 연관 속에는 의식과 지향적 대상이 존립한다. 예를 들면 판단하는 주관이 놓여 있는 상황 속에는 다른 지시성이 귀속하고 있는데, 따라서 이 경우 구체적 연관의 전체가 물어지게 됨으로써 생의 시간성의 내재적 통일과 그 역사성이 문제로 된다. 이리하여 개개의 각각의 의식 체험이 그 역사성에서의 시간적 발생을 지니게 된다.

발생은 능동적 발생과 수동적 발생을 일괄하여 초월론적 발생으로서 총괄되고 있는데, 이것이 지향성을 기본적으로 특징짓고 있다. 이러한 발생은 의식의 시간성과 깊게 관계한다는 점으로 인해 의미의 역사성과 그 중층적 침전을 지니게 된다. 자아가 역사의 통일성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자아의식의 근본 형식인 종합이 일반적으로 역사성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오가와 다다시(小川 侃)

[네이버 지식백과] 발생 [發生, Genesis, genesis] (현상학사전, 2011.12.24, 도서출판 b)


후설은
어떤 것을 보고 그것과 유사한 것을 상기하는 통상적인 의미의 연합
으로부터
근원연합
이라고도 불리는 연합을 구별하고, 이것을
수동적 발생의 원리
라고 칭한다.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연합이 이미 구성된 대상들 사이에서 생기는 데 반해, 근원연합은
대상 구성의 전제
가 된다. 수동적 발생은
내적 시간의식
에 의한
시간 구성

운동감각(
Kinästhese)에 의한
공간 구성
을 전제로 하지만 이들은 형식적 조건이며, 수동적 발생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연합의 활동이다.
연합의 원리

동질성

이질성
또는
유사

대비
이며, 그 활동은 "유사한 것이 유사한 것에 의해 각기(覺起, 깨달음이 일어나다)되고, 유사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고 하는 사태를 산출한다.

연합의
제1의 활동은
능동적 종합의 전제로서 포치(布置, configuration-배열, 배치) 형성을 행하는 것이다. 유사한 것들이 서로 각기하여
통합
되고 유사하지 않은 것과
대비
된다. 이에 의해 바탕과 그림이 분화하며 떠오른 그림이
자아를 촉발
한다. 자아에 의한 촉발의 수용과 더불어 능동적 종합이 시작된다. 연합의
제2의 활동

통각적 의미의 전위의 기반
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대상의 인식은 자아의
능동적 종합
이며, 거기서 습득된 대상의 통각적 의미는
근원창설
로서 침전되어 수동적 차원에서
습관
으로서 보존된다. 이 대상과 유사한 것이 나타나면 습관으로서 보존되어 있는 이 대상의 통각적 의미가 유사의 연합에 의해 각기되어 지금 나타나 있는 것으로 수동적 차원에서
전위
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이 친숙한 어떤 것이어서 그때마다 파악, 해명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와 같은
통각적 의미의 전위
때문이다. 그러나 통각적 의미의 전위는
친숙함
이라는 안정성의 반쪽 면인바, 의미의 어긋남을 초래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위기』에서의 근대 자연과학 비판은 그와 같은 의미의 공허화에 대한 비판이다. 후설은 특히 타아 경험에 대한 분석에서 연합에 기초하는 통각적 의미의 전위를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 경우에 함께 현전하고 있는
자아의 신체
와 (이후에 타아의 신체로 되는)
물체
와의
유사의 연합
에 기초하여 나라는 통각적 의미가 그 물체로 전위됨으로써
타아
가 통각된다. 능동적 종합의 전제로서의 배치 형성과 통각적 의미의 전위의 기반이라는 연합의 두 가지 활동은 능동성에 선행하는 수동성과 능동성에서 유래하여 침전에 의해 습관이 된 수동성의 구별에 대응한다.

-기노시타 다카시(木下 喬)


<
시간의식
>이란 후설 현상학에서 <시간에 대한 의식> 즉 <시간을 구성하는 의식>을 가리키는 명칭이지만, 후설의 사유가 진전되는 가운데 그 결과로서 환원 후의 의식의 장에서 발견되는
<시간적 연장을 갖춘 대상(시간객관)>에 대한 의식

시간적 확대를 지닌 체험에 대한 내적 의식
,
의식의 끊임없는 흐름 그 자체를 구성하는 절대적 의식(흐름)
등, 다양한 차원의 의식이 <시간의식>이라는 이름 아래 고찰되게 되었다.

후설은 당초
멜로디
와 같은
시간객관에 대한 의식
을 해명하고자 시간의식의 문제에 몰두하여 멜로디 지각과 같은 <그 속에서 시간객관이 구성되어가는 시간 체험>을 시간의식으로서 포착했지만[Hu 10. 3f. 6, 9 참조], 사유가 진전됨에 따라
의식의 지향적 체험
그 자체가
시간적 지속을 갖추고 있다
는 것이 분명해지며[같은 책 232], 또한 체험들을
선반성적 · 비대상화적으로 의식
하는 <
내적 의식
>의 차원의 발견과도 더불어 <
시간의식
>은 <의식의 모든 체험들 그 자체를 내적으로 의식하면서 그것들의
시간적 지속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의식층
>[Hu 24. 243-246, Hu 10. 290ff., 126f. 참조]으로서 파악되게 되었다.

<내적 시간의식>(inneres Zeitbewußtsein)[Hu 10. 369, 370]이라고도 불리는 이 의식은 그러나 의식 체험의 일반적 형식으로서의 시간을 구성함으로써 동시에 의식 체험과 그 상관자 쌍방을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구성의 근원적인 장이게 된다. 후설은 이와 같은 <구성의 최종적인 근거>를 <
시간을 구성하는 절대적 의식(흐름)
>이라고 불렀던 것이다[같은 책 Nr. 54 참조].

시간의식에 대한 후설의 사유는 통상적으로 초기(1893-1911년)와 중기(1917-18년의 베르나우 초고), 후기(1930년대의 이른바 C 초고군)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지면 관계도 있기 때문에 이하 본 항목에서는 유일하게 정돈된 형태로 공간된 초기 시간론[Hu 10]과 『이념들 Ⅰ』의 서술에 기초하여 <시간의식>에 대한 기본적인 논점만을 확인해두고자 한다.

후설에 의하면 현상학적 환원의 수행에 의해 자연적 태도에서 우리에게 타당해 있는 <객관적 시간>(태양의 위치나 시계에 의해 계측되는 시간)은 차단되지만, 환원 후의 의식 현상의 장에서는 다양한 <시간객관>과 나아가서는 그러한 시간객관에 대한 지각이나 상기의 체험을 포함하여 하나의 체험류(Erlebnisstrom)에 속하는
모든 체험들을 통일하는 형식으로서의 <현상학적 시간>
(phänomenologische Zeit)이 발견된다. 여기서 현상학적 시간이란 환원 후의 의식에 주어지는 그대로의 시간이자 체험의 지속과 <지금>, <이전>, <이후>, <동시>, <계기>와 같은 체험들의 시간적인 소여방식의 양태들을 가리키지만, 이에 반해 이와 같은 환원 후의 의식체험의 장의 근저에 가로놓여 있는 현상학적 시간을 구성하고 나아가서는 하나의 의식류의 통일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동시에 궁극적인 의식층>이 <시간의식>으로서 구명되는 것이다.

체험은 어느 것이든 시간의식에 의해 지속을 지닌 것으로서 구성되어 다른 체험들과 더불어 하나의 의식류에 속하게 되지만, 시간의식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의 중심의 하나는 <근원인상>(Urimpression)과 그것의 <과거파지>(Retention)로의 변양에 놓여 있었다. 여기서 <근원인상>이란 지속하는 객관 및 그것을 구성하는 의식 자신이 그로부터 산출되는, 모든 존재의 원천점으로서의 의식이다. 또한 <과거파지>란 근원인상에서 산출된 것을 (이미 생생하게 산출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지금 막 지나가버린> 위상으로서 자기 속에 간직해두는 의식의 활동이다.

후설에 의하면 근원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근원인상이 출현해옴에 따라 과거파지로 변양하고 나아가 과거파지의 과거파지로 변양해감으로써 전체가 하나의 끊임없는 연속체를 이룬다. 더욱이 그에 의하면 이러한 과거파지의 연속에서는 두 가지 측면이, 즉 각각의 과거파지가 끊임없이 선행하는 과거파지의 전체를 이어받음으로써 자기 자신과의 합치통일을 보존하여 <흐름>을 구성해가는 지향적 측면(<종의 지향성> Längsintentionalität)과, 그 속에서 끊임없이 동일한 객관으로 향해가는 대상적 지향성의 측면(<횡의 지향성> Querintentionalität)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과거파지의 연속 속에서 불가분하게 뒤얽혀 기능하는 까닭에, 바로 거기서 <의식의 흐름>이 자기 구성되며 또한 그 속에서 시간객관과 의식의 체험들이 지속으로서 구성된다. 이것이 후설이 드러내 보인 <시간을 구성하는 유일한 절대적 의식(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Hu 10. 378-382].

후설에 의하면 또한 <반성>이라는 현상학의 방법 그 자체도 시간의식에 의해 밑받침되어 있다. 바로 의식 그 자체가 시간의식(특히 과거파지)에 의해 밑받침되어 시간적인 존재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의 지향성들에 대한 <반성>도 가능해진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Hu 10. 118-120]. 덧붙이자면, 초기 시간론에 대해서는 최근에 특히 내적 의식과 절대적 의식의 차원의 발견 및 <파악-파악내용> 도식을 둘러싼 사상의 전회도 포함하여 후설 사유의 변화를 찾아내고자 하는 상세한 연구가 행해지고 있다.

-사카키바라 데쓰야(榊原哲也)

사유는
나의
자발성을 통해 시작되는가?
1. 표상이란 말의 어원론적 의미들과 근대적 주체성의 본성
주관의 능력을 통해서는 결코 표상될 수 없는 것과의 만남
상처(트라우마)를 만들어내는 것
'나'라는 임의적 설정을 배제 한다면,
사유란
어떤 주체적 지반도 가지지 않는
익명적인 것은 아닌가?
표상될 수 없는 것으로 부터의
자극
수동적 발생
사유의
주체가 부재하는 사유의 익명성
들뢰즈 사유 이론의 핵심_매개적 표상을 직접적
기호
로 대체하는 것
표상될 수 없는 것
2.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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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차이나는 다자들을 동일적인 것의 개념적 형식에 종속시킨다_칸트
상기는 다자들을 모범이자 원인이며 본질인 하나의 이데아에 종속시킨다_플라톤
들뢰즈_다자들 사이의 차이란 어떤 상위의 개념도 전제하지 않는 '차이 자체'
프르스트_상기는 다자를 개별적 조각들로 생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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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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