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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여진정벌과 금의 사대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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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 강

on 26 Apri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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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고려의 여진정벌과 금의 사대요구

제작자 : 강병화 고려의 여진정벌과
금의 사대요구 여진의 세력확대 동여진의 고려귀순 완안부의 여진세력통합 천리장성까지 영역확장 고려와의 마찰이 지속 윤관의 여진족진압 실패 윤관 1107년(예종 2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이끌고 여진 정벌군의 수장이 되어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동북 9성을 쌓고, 재침하는 여진을 평정하여 1108(예종 3년) 개선하였다. 그때 여진 5천 명을 죽였고, 130명을 생포하였다. 여진족을 몰아내고 북진 정책을 완수한 공으 별무반? 목차 1. 고려의 여진정벌 과 금나라의 사대요구PPT 2. 한국사 학습지 풀이 3. 질의 응답 4. 연극 - 고려의 여진정벌과 금나라의 사대요구 뉴스 5. 마무리 역사 수행평가
2조 : 고려의 여진정벌과
금의 사대요구 2조

조장: 노현수
조원: 강병화
박승우
김연규
강경민
김대현
이동수 별무반의 구성 신기군: 별무반의 핵심군대, 전쟁터에 나갈 때 자기 소유의 말을 탔다. 부유한 사람이 많았다.
신보군:걸어서 싸우는 보병군대 ,말이 없는 남자나 과거를 보지않은 20세 이상의 젊은이로 이루어짐.

항마군: 스님으로 이루어진 군대 ,수원승려로 구성

특수군: 도탕·경궁·정노·발화군등의 특수군으로 구성 노역이나 경작을 하는 승려 수원승려란? 도탕: 적이 싸울준비를하기도전에 공격하는 군대

경궁: 말없는사람들중 센활을 쏠수있는사람을 징집한 군대

정노: 쇠뇌를 쏘는군대

발화군: 불을지르거나 일으키게하는 군대 별무반의 의의 1. 정규군과 함께 훈련을 받게 하고 전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함
여진족 토벌에 크게 공헌하였다.



2. 엄격한 군율에 병기와 병술을 개량한 별무반을 이끌고 1107년 윤관은 여진족을 정벌하고 9성을 쌓는 공적을 세움 .



3. 임시적인 군사조직이었으나마 전국적인 규모의 농민 중심의 군사조직이 생겨 고려의 고려제도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음 별무반의 생성계기 1104년(숙종9년)에 윤관이 여진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윤관은 숙종에게 아뢰어 여진족을 정벌하기위한 전국적 농민중심의 별무반을 편성하게됨 완안부의 귀화 여진추격 고려의 여진정벌 고려의 동북9성 고려의 여진정벌 여진을 몰아내고 점령지역을 확고히 하기 위해 윤관은 전쟁 기간 동안 추진하던 동북 9성 축조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완공되자 남쪽에 주민들을 이주시켜 살게 한 뒤 수비 약간만을 두고는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돌아왔다. 예종은 벼슬을 주어 윤관의 공을 크게 치하하였고, 이로써 여진 정벌은 마무리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시기하는 신하들이 예종을 부추겨 유지가 어렵고, 여진에서 다시는 국경을 넘어오지 않겠다고 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동북 9성을 반환하기에 이른다. 그후 여진정벌은? 고려의 여진정벌 순서 윤관의 별무반 편성 숙종의 국상으로 토벌실패 왕명으로 별무반으로 출정 토벌성공, 동북9성축조 여진의 반격으로 고려군난항 화의맺은후 개경으로 개선 고려의 여진정벌 금의 사대요구 금의 사대요구 요나라의 세력도 금나라의 세력도 금나라의 세력확장 고려의 의견충돌 이자겸 등 지배권력층 권력도모와 정권안정을 위해, 백성의 피해와
경제력손실을 근거로 사대요구에 찬성 대부분의 신하와 백성 작년까지만해도 우릴섬기던 여진이 형제관계를요구하고, 무례한 서한을 보냈으므로
사대요구에 반대 '형인 대여진 금국 황제는 아우인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 우리가 조상 때부터 한 모퉁이에 끼여 있으면서 거란을 대국이라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아 공손된 마음으로 섬겼다. 그런데 거란이 무도하여 우리의 강역을 짓밟고 우리의 인민을 노예로 삼고 자주 이유없이 군사를 보내므로 나는 마지못하여 항거했더니 하늘의 도움을 얻어 거란을 멸할 수 있게 되었다. 부디 우리에게 화친을 허락하여 서로 형제로 맺어짐으로써 대대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게 되길 바라노라'

-금 태조 아골타가 고려에 보낸 서신- 사대요구 이후 1. 이자겸 일당의 실권으로 새로운 정권등장

2. 금나라에 포주를 달라 요구하여 얻고 의주로 개명

3.금나라가 포주영유를 대가로 충성서약 요구 고려 충성서약 맹세 4. 고려의 자주성을 잃게 되는 계기

5. 고려의 북진정책이 실패하게된 계기 쉽게보는 동아시아 정세 감사합니다. 남쪽의 주민을 이주시킨 이유?

남쪽 양광도 아래 지역은 사람의 밀집도가 높고 농토가 부족하여 농토가 필요한 상황이였다 . 윤관의 이주정책은 그것을 고려한결과이다. 조선 학자들과 현대 일부학자들이 주장하는 동북9성의 위치 송나라와 여진이 협약을맺어
송은 연운16주를 , 여진은 요나라를 차지하기로하고 협공함 요를 멸망시키고나서도 송은 금을 오랑캐로보고 천대
금나라는 송의 수도를 점령하고 송은 남송으로 남하 고려의 호국불교 이념과 일치되는 부분 고려의 전쟁 방식은 속전속결이었다. 먼저 계략을 써서 완안부의 수장이었던 우야소(금나라의 강종)를 남쪽까지 내려오도록 했다. 그리고 고려에 반대하던 여진의 지도부를 불러 잔치를 벌이고, 그 틈을 타 그들을 모두 죽였다. 고려를 의심하며 성 밖에 있던 여진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도망치려 했지만 고려 기병이 그들을 공격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우야소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급하게 완안부로 돌아갔고, 고려는 우야소가 완안부로 돌아가는 사이에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17만 7천 병력이 전격적으로 북진해서 여진의 성들을 함락시키고 그 일대를 장악했다. 당시 고려의 전진이 얼마나 빨랐는지 여러 여진의 성주와 부락들이 군사를 합쳐서 대항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고려와의 전투에서 죽은 사람이 별로 없고, 대부분 포로로 잡히거나 고려의 신민이 되어버렸을 정도다. 이 정도면 고려의 기동력이 거란의 기동력과 막상막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전략을 차근차근 수행해나가던 고려에 갑자기 수난이 닥친다. 장악한 땅에 성을 세우고 다음 정벌을 준비하기 위해 이동하던 윤관을 여진이 기습했다. 이때는 이미 여진족 전체에 고려의 공격이 알려졌을 테고, 고려에 대항하기 위한 군세를 조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고려군은 엄청나게 당황했는데, 여진족이 등장할 수 없는 곳에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정보가 잘못되었던 것. 기록에 의하면 당시 하나의 길만 막으면 여진이 침범할 수 없다는 정보를 믿고 출전했는데, 알고 보니 엄청나게 많은 길이 있어서 사방에서 적이 몰려왔다고 되어 있다. 윤관은 길에 성을 쌓고 강동 6주와 마찬가지로 성들이 서로 지원할 수 있는 방어벽을 형성하려 했지만, 그게 불가능해졌다. 이 기습을 시작으로 고려와 여진은 국력을 총동원해서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포문은 여진이 열었다. 여진은 강병 2만을 동원해 윤관이 쌓은 동북 9성 가운데 하나인 영주성을 공격했다. 영주성에 있던 고려군 역시 꽤 많은 편이었지만, 여진군의 강력함에 두려워 공성을 결정했는데 척준경이 반대하고 정예 기병을 이끌어 여진군의 예봉을 꺾었다. 척준경과 척준경을 따른 고려 기병이 예봉을 꺾자 여진은 두려워하며 군을 물렸다고 한다.

영주성 전투가 끝나자마자 고려는 또다시 시련과 마주한다. 여진은 최정예군단을 총동원해서 수만 명에 이르는 군대로 웅주성을 포위해버렸다. 웅주성에서 다른 지역에 빨리 연락을 취한다면 여진군이 아무리 많아도 극복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 동북 9성은 성과 성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다른 성에 연락도 못 하고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웅주성에서 척준경이 빠져나왔다. 당시 웅주성을 포위한 적의 진지가 100km에 이르렀는데, 척준경은 이 진지를 가로질러 다른 성에 연락을 취해 지원군를 이끌고 여진군을 쓸어버린다. 이 전투에서 여진군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는 이후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로 수백 명 단위로 여러 지역을 약탈하는 방식의 게릴라 작전을 펼쳐야 했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헌데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여진의 게릴라 작전이 고려에 제대로 먹혔다. 동북 9성 지역에 이주한 고려 사람들은 농사조차 짓지 못하고 성으로 도망치기를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17만 7천의 병력이 넓은 지역을 정벌했다. 게다가 백성들까지 동북 9성으로 이주시켰는데 이들을 먹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하지만 여진이 수십 수백 단위로 약탈 전쟁을 시작하니 그게 될 리가 없다. 결국, 모든 군량을 남쪽에서 끌어와야 했다. 육로로도 끌어왔겠지만, 고려의 배가 약탈당했다는 기록을 보아서 바다를 이용해 보급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쟁의 흐름을 뒤바꾸기 위해 고려 역시 게릴라 작전에 대항하기로 하고 척준경에게 정예 기병을 주어 여진의 습격을 막게 했다. 아마도 최정예 기병 수백 명 정도로 동북 9성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진을 토벌했던 모양이다. 이번엔 여진이 당황할 차례였다. 척준경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기습 공격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소모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고려와 여진 양쪽 모두가 지치는 상황이었다. 여진의 병력 소모도 끔찍했겠지만, 고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너무 길었다. 아무리 전성기의 고려라곤 하지만 3년이나 정벌전을 계속할 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진군으로부터 결정타가 날아왔다. 여진군 2만이 길주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진은 긴 시간 게릴라전으로 고려를 괴롭히면서 후방에서 군사를 모았던 모양이다. 아주 많은 병력은 아니었던 모양인데, 그래도 최정예 군사였다. 왜냐하면, 오연총이 군사를 모아 길주를 구원하러 가다가 여진군에게 엄청난 패배를 당하고 구원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당시 길주를 지키던 사람은 허재였는데, 성의 군민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구원군을 패전케 한 여진의 위력을 보아서 군민이 아무리 많아도 지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고려 조정에선 길주를 포기하지 않았을는지.



이런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자 고려 조정은 여진의 화친 제의를 받아들였다. 완안부의 수뇌부는 '외교'가 뭔지 알았다. 그들은 대군으로 길주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동시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했던 것이다. 고려로선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었다. 여진 역시 길주를 포위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전쟁이 끝나자 여진이 기왓장 하나도 고려 땅에 던지지 않겠다고 했다거나 되돌아가는 고려 사람들에게 수레까지 제공하고 호송해줬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과장된 기록이 아닐 것이다. 여진은 주력군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고, 점점 결속력을 잃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얼른 고려와 전쟁을 끝내는 게 목적인 마당에 고려의 심기를 건드리면 최악의 상황으로 번지게 된다. 게다가 길주에선 허재가 무려 130일 동안 여진의 공격을 막아내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괴력이었냐면, 포위하고 있던 여진군이 오히려 큰 피해를 보았는지 포위를 풀었을 정도다. 이미 여진은 긴 시간 쌓아올린 군사력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기 직전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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