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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천문학 역사!

한국의 천문학
by

HAN SEONMI

on 15 August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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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우리의 천문학 역사!

The History of Astronomy in Korea
첨 성 대 [신라 : 640년 경]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 : 1395년]
칠정산 내외편 [조선 : 1444년]
홍 대 용 [조선 : 1731-1783]
학 습 목 표
첨 성 대
천상열차분야지도
칠 정 산
우리의 천문학 역사!
"한국의 천문학"
세계의 여러 문명이 그랬듯이 우리나라도 천문학을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옛 천문학은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이 섞여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하늘에 대한 관심을 현대의 시각으로 폄하할 수는 없다. 그들이 이룩한 지식은 오늘날의 천문학에도 많은 귀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첨성대, 천상열차분야지도, 칠정산, 그리고 홍대용의 우주관을 통해 우리의 토종 천문학 역사를 파헤쳐보자.
1. 우리나라 천문학의 발달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2. 우리나라 천문학 역사와 서양의 천문학 역사를 서로 비교할 수 있다.
3. 선조들의 지혜를 통해, 한국 천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배양할 수 있다.
632-647
??
첨 성 대
* 조선 태조 4년 제작
* 한국의 전천천문도
* 석각본 (국보 228호)
* 만원권 뒷면 배경
* 다양한 천문자료 수록
천상열차분야지도
1395
* 내편(조선 세종 24년)
* 외편(조선 세종 26년)
* 우리 실정에 맞는 달력
* 60진법 (360도 적용)
* 이순지, 김담 등 편찬
칠정산 내외편
1444
* 조선 후기 문신
* 실학자, 과학 사상가
* 중국 유학(서양 문물)
* 경제정책 개혁 주장
* 지전설 설파
* 무한우주론
홍 대 용
1731
~ 1783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science/science_openning_03.jsp?first=3&second=5&content=3&content_name=%B0%E6%C1%D6%20%C3%B7%BC%BA%B4%EB
http://blog.daum.net/hwangcpa/17934960?
http://mong41.com.ne.kr/sunbm.html
홍 대 용
http://larca.egloos.com/3828629
* 석조 건축물(국보31호)
* 신라 선덕여왕
* 동양 최고(old) 천문대
* 사용된 돌 수는 362개
* 정확한 용도는 미스터리
경 주
서 울
천 안
[1] 첨성대!
http://www.heritagechannel.tv/Photo/EssayView.asp?htmlIdx=6429
첨성대는 경주시 반월성 동북쪽에 위치한 신라 중기의 석조 건축물로,
선덕여왕때에 세워진
,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
로 알려져 있다.

362개의 화강암 벽돌
을 사용하여 원통형으로 축조하였다.
높이는
9.17미터
, 바탕의 지름은
5.17미터
, 상층부 지름은
2.5미터
이다.
[보존상태]
북쪽으로 7.2센티미터, 동쪽으로 2.4센티미터 정도
기울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원인은
북동쪽 지반이 무르고 수분이 많은 탓으로 보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은 한국 전쟁 이후 기울어짐이 심해졌으며
당시 탱크 등에 의해 지반이 약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우려할 수준은 아니며,
국내외 연구진에 의한 연구 결과 또한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상태
임을 밝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1223134042
사실, 첨성대는 수수께끼 혹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첨성대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규모적인 측면에서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여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라는 찬사가 무색할 정도이다.
첨성대의 관련 기록을 찾아보면,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에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고,
그 뒤
일연의 <삼국유사(1281)>

기록이 단 하나
있을 뿐이다.
"<별기>라는 책에 선덕여왕 때 돌을 갈아서
'첨성대'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 삼국유사
이로부터 우리는 이름이 '첨성대'라는 것, 선덕여왕 때(632-647) 건립되었다는 것, 돌을 갈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냈을 뿐이다.
http://pds23.egloos.com/pds/201212/09/81/2012-12-08_chumsungdae
그리고 고려 말 중신이자 시인이었던
'안축'

<첨성대>
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를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첨성대가
하늘을 살핀 천문대라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나간 시대의 흥망이 세월을 지나
천 자 높이의 석대만이 하늘에 솟아 있네.

어떤 사람이 오늘날 하늘을 살핀다면
'문성'이란 별 한 점이 '사성'이란 별로 되었다 하리."

- <첨성대>
조선 시대에 들어서 첨성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의 <지리지(1454)>
는 전국의 유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경주 지역에 첨성대가 등장한다.
(출처 : 신동원. 한국 과학사 이야기. 책과함께어린이.)
"당 태종 때인 633년에 지어졌다."
"가운데가 비어 있어서 사람이 올라가게 했다."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원형이다. 높이가 19.5척, 위 둘레가 21.6척, 아래 둘레가 35.7척이다."

- 세종실록 <지리지>
하지만, 첨성대를 '천문 관측소'라 칭하진 않았다.
100여 년 후인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첨성대가 등장하는데,
"속이 통해 있어,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관측을 한다."
http://livemiri.tistory.com/entry/%EC%8B%A0%EC%A6%9D%EB%8F%99%EA%B5%AD%EC%97%AC%EC%A7%80%EC%8A%B9%EB%9E%8C%EC%A0%9C29%EA%B6%8C%E6%85%B6%E5%B0%99%E9%81%93%E9%AB%98%E9%9D%88%E7%B8%A3%EA%B1%B4%EC%B9%98%EC%97%B0%ED%98%81-39750319
그러나, 이 책은 첨성대 건립 후,
800여 년이 지나서 나온거라,
전의 기록들을 인용한 건지..
자신들의 추측을 기록한 건지..

분명하지 않다.
http://cd.blogwa.net/science/s27/astro/ancient/obs_instrument/ast_observation/sinra_obs/4_1_03.htm
첨성대에 대한 믿을 만한
기록은 이것들이 전부다.
우리는 첨성대를 천문대라 분명히 말할 수 있을까?
천문대라고 해도,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천문대와 그 기능이 같을까?
<첨성대를 둘러싼 여러 주장들>
1) 돌의 수가 28단 362개이므로, 우리나라 별자리 28수
와 1년의 날 수를 표현한다. (천문학적 의미)

2) 호리병 같이 생긴 첨성대의 모습은 수미산을 본뜬 것
이다. (불교의 우주관 표현)

3) 첨성대는 우뚝 서서 해시계 구실을 하였다.

4) 별을 점치는 의식을 행하는 제단이다.

5) 첨성대 꼭대기의 '우물 정'자 모습이 우물에서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신라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다.
최근 학자들이 밝힌 첨성대에 담긴 돌의 '수'나 '비례'의 의미가 틀렸다고 하더라도..

첨성대를 설계한 사람은 그 '수'나 '비례'를 통해 어떠한 비밀을 담으려 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비밀은 하늘을 관측하여 알게 된
밤하늘
혹은
우주
와 관련된 것으로 현재 학계는 해석한다.
(출처 : 김장훈(2009). 첨성대 건립에 대한 시공방법론.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42).
아마도 첨성대는..
천문 관측의 역할만 한 것은 아니지만,
천문 관측이 고대 신라 시대에 매우 중요했음을
알려주는 건축물일 것이다.
고대 우리 선조들은 별을 통해 우주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관측이 바탕이 된 별점(점성술)을 통해, 길흉화복을 점쳤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첨성대 건립은 우리 역사에 큰 과학적 의의가 있다.

고대 사회에 어떤 형식과 도구를 통해 별을 관측했다는 점
, 바로 그것이다.
첨성대는
우리나라
"천문학 태동"

상징물이다.
[2]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 왕조가 개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395년(태조 4년)
고구려 천문도의 전통을 계승

새로운 형태의 천문도
가 제작되었다.
도 지 야 분 차 열 상 천
1) 천상 : 하늘의 모습.
2) 열차 : 차례대로 늘어놓다.
3) 분야지도 : 구역을 나눈 그림
http://www.ticmd.com/goods/view.php?seq=22
"하늘의 모습을 차례로 늘어놓고
구역을 배당하여 그린 그림"
이 천문도가 제작된 경위는
조선 개국공신이자 성리학자인
"권근(1352-1409)"
의 글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조선 초에 고구려가 망할 때 천문도 석각본이 전란에 의해 대동강에 빠져 버렸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인본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고려에 계승되었다.

태조는 즉위하자마자 새 천문도를 갖기를 염원하였는데, 바로 그 고구려 천문도의 인본을 바치는 사람이 있었다. 태조는 그것을 제대로 복원하라 명하였으나, 서운관에서는 그 연대가 오래되어 성도에 오차가 생겼으므로 새로운 관측에 의해 오차를 교정하여 새 천문도를 만들기를 청하였다."
조선 태조는
새 천문도를 돌에 새길 것을 명했고
, 서운관은 별들을 다시 관측하여
1395년에 완성
하였다.
권근은 예로부터 왕은 천명을 받으면 먼저
'관상수시'
를 시행하는 법이라 밝혔다.
* 관상수시 : 하늘의 형상을 관찰해 백성에게 농사에 필요한 절기를
알리던 일 (제왕의 의무이자, 유교적 이상 중 하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이 천명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순우 천문도(1247)>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이다.
가로 122.8 cm, 세로 200.9 cm의 흑요석에 새겨졌다.
http://blog.ohmynews.com/songpoet/162584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크게
별자리를 그린
'성도'

설명문인
'도설'
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의 중심 원에는 1,467개의 별이
크고 작은 다양한 점으로 새겨져 있다.

점의 크기는 별의 밝기에 따라 구별
한 것으로 중국의 <순우천문도>를 비롯한
전통 천문도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전통적인 천문도 중
밝기에 따라 별을 각각 다른 크기의 점으로
표현한 유일한 천문도이다.
http://www.ticmd.com/goods/view.php?seq=22
성도 주위 여백에는 각종 천문 자료들이 적혀 있다.
성도 아래부분에는 개천설과 혼천설 등 전통 우주 구조론에 대한 설명이 있고, 28수 거극분도가 쓰여져 있다.

그 아랫단에는 제작 경위와 함께 조선 태조를 찬양하는 글이 있고, 제작에 참여한 학자들의 관직과 성명 및 제작 연월일이 기록되어 있다.
성도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 천문 자료들은 역법에 중요한
표준 상수
들을 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28수의 거극분도는 북극에서 떨어진 각거리 값을 말하는데, 이러한
상수들은 세차 운동 등의 영향으로 수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새롭게 측정해 기록
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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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수는 간격이 들쭉날쭉한데, 잘 보이는 별들을 뽑아 선정했기 때문이다.

천체의 운행을 파악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출처 : 신동원(2010). 한국 과학사 이야기. 책과함께어린이.)
(출처 : 신동원(2010). 한국 과학사 이야기. 책과함께어린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또한, 황도와 적도 원이 그려져 있다.
황도
는 태양이 가는 길이며,
적도
는 남반구와 북반구를 가르는 선이라는 것을 우리 선조는 알고 있었다.

또한 두 원의 차이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어, 지구 자전축이 약 23.5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었다.
(출처 : 신동원(2010). 한국 과학사 이야기. 책고함께어린이)
견우별(알타이르)과 직녀별(베가) 사이를 가르는
은하수(은한)
또한 표현해놓았다.
이렇듯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시대의 표준 천문자료를
총망라한 것으로,
중국의 하늘이 아닌 조선의 하늘을 담고 있는 수준 높은 천문도
였다.
http://blog.daum.net/gijuzzang/3908370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국보 제228호)
[3] 칠정산!
(우리의 달력)
http://classroom.re.kr/uploadfile/content/content01/second03/data10/data10_2/5year/5year_04.htm
예나 지금이나 달력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의식주 만큼 중요한 존재이다.
달력이 없는 생활을 상상해보자.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겠는가?
인류는 문명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달력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그러나 달력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1) 천체 운행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2) 관측 기구가 있어야 하고,
3) 관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4) 오랜 기간 주기적으로 관측하려면 제도도 필요하고,
5) 관측을 얻은 지식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http://cd.blogwa.net/science/s27/astro/ancient/obs_instrument/ast_observation/chosun_intro/4_3_07.htm
http://cd.blogwa.net/science/s27/astro/ancient/obs_instrument/obs_position/so-ganui/1_3_05.htm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중국에서만 달력을 만들었다.
이웃나라에서는 중국의 달력을 가져다 썼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동지 때 달력을 받으러
중국에 사신
(동지사)
을 보냈다.
동지는 해가 가장 짧은 날
이라, 동지 다음 날에 양의 기운이 시작된다고
여겨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3119220
동지사가 중국에 가면 중국 황제가
황력
(중국 황실에서 기념하는 사항이 기록) 10권,
민력
(농사짓는 데 필요한 사항 기록) 100권을 하사하는 행사를 치렀다.
즉, '천자의 나라'인 중국이 오랑케로 여겼던,
이웃 나라들에게 '문명'을 내려 주는 일종의 의식을 치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법은 조선에서는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았다.
천문 관측은 관측지에 따라 관측값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http://blog.daum.net/sunji7/13971136
조선 4대 왕 '세종'은

"우리 조선은 문명국이다! 가장 고난도 분야인 역법을 통해 자주 문명국의 위상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을 통해 백성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겠다!"
세종은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중국에 대한 정신적인 독립 선언이었다.
세종은 '우리의 달력'을 개발하기 위해 전담팀을 구성했다.
<연려실기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432년 세종은 정인지에게 말씀하시길

"고려 때 원나라 수시력을 가지고 들어와 그것으로 예측했다. 조선을 세우고도 일식, 월식, 오성의 궤적을 계산하지 못해서 수시력을 그대로 썼다. 계산에 밝은 그대가 '정초'와 더불어 고전을 연구하고, 관측기구를 제작하여 이 문제를 풀도록 하라.
우리가 중국 문명 수준에 도달했는데, 유독 하늘을 관찰하는 공부와 기구가 부족하다. 이 곳 한양에서 본 북극을 기준으로 새 역법을 만들라.
"

이에 명령을 받들어
정초, 정흠지, 정인지가 고전을 연구
하여 수시력의 수학적 원리를 깨달았다. 또
이천과 장영실로 하여금 각종 관측기기를 제작
토록 했고,
이순지와 김담이 명나라에서 새로 들어온 역법과 아라비아 역법을 연구
하여, 1444년
우리의 역법 <칠정산> 내편과 외편을 간행
했다. 이윽고 천문현상을 예측했더니 딱 들어맞았다.
http://sdwo.cafe24.com/calendar/20090130-6.htm?PHPSESSID=3a6fc3f16664b282a7a1cceb6a3b0f18
이런 과정으로 세종 때, 우리의 역법 <칠정산>이 탄생했다.

<칠정산>
을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7정'을 계산한 수학책
이다. 7정은
태양


, 그리고
오성
을 더한 일곱 천체를 뜻한다.
'오성'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지칭
한다.

'오성'은 그 시대 사람들이 믿고 있던 '음양오행'의 자연관에서 핵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중요했다.
그런데, 역법임에도 불구하고 '역'이 아닌, '산'이라 명명한 이유는 중국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중국과 같이 '역'자를 사용하면, 중국에 대항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칠정산 내편>은 중국 원나라 때 만들어진 '수시력'을 기본 틀로 삼았다. 즉,
<내편>은 수시력을 이용하여 조선 한양에서 관측한 자료에 맞추어 새로 작성
된 것이다.
한양의
북극고도 38도 1/4
의 측정치를 기준으로 사용하면서
1년의 길이를 365.2425일
로 정하고,
한 달의 길이를 29.530593일
로 정해 수시력과 같은 수치를 적용하였다.
상, 중, 하 3권으로 엮인 <내편>은 편찬 경위와 천체 운행의 기본수치를 제시하였고, 역일, 태양, 달, 일월식, 오성 등에 대한 운행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끝에 한양을 기준으로 일출시각, 일몰시각, 밤낮의 시간표를 기록해두었다.
<칠정산 외편>은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바탕으로 편찬하였는데,
회회력은 고대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를 기본으로 작성된 역법이다.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이 조선 세종 때에 우리나라에서 재해석된 결과물
이다.
당시 명나라에서도 회회력을 번역하였으나,
이순지

김담
은 이에 대한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여, 더 훌륭한 번역본을 완성한 셈이다.
<칠정산 외편>은 한문으로 쓰여진 이슬람 천문역법서 중 최고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편>은 <내편>과 마찬가지로 태양, 달, 일월식, 오성 등의 운행을 해석해 놓았는데, 그 각도의 표시법이 <내편>과 기본적으로 다르다.

<내편>은 중국 전통에 따라, 원주를 365.25도, 1도를 100분, 1분을 100초로 했는데, <외편>은 60진법의 고대 그리스 전통에 따라
원주를 360도, 1도를 60분, 1분을 60초로 하고 있다.
- <칠정산> 편찬의 의의와 찬란한 한국 과학사 -
사실상 과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은 오랜 기간 중국에 근접해 있었지만 넘어서진 못했다. 그러나
조선 세종 시대인 1418년에서 1450년 동안의 32 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과학기술 문명을 자랑했다.
http://mirror.enha.kr/wiki/%EC%84%B8%EC%A2%85%EB%8C%80%EC%99%95(%EB%AC%B8%EB%AA%85%205)
http://ggcf.tistory.com/59
http://blog.daum.net/manhoc/15972407
http://masw.tistory.com/24
http://www.heritagechannel.tv/Story/View.asp?serviceMenuIdx=2&htmlIdx=6122
이때
유럽
의 근대 과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중세),
이슬람
의 찬란한 문화는 쇠퇴에 접어들었다.
원나라 때 가장 수준이 높았던
중국
의 과학도 진전을 멈추었다.
일본에서 만든 '세계과학사 연표'를 보면, 1400년대 과학 업적의 대다수가 조선의 과학 유물로 채워져 있을 정도이다.
<칠정산> 또한 화려했던 이 시기에 만들어진 역법이며,
당시 세계 최고의 달력이었다!!

어떤 학자는 세종 시대 최고의 과학 업적을 <칠정산> 편찬이라 주장한다..!!
한국 현대 천문학의 1세대인
고(故) 소남 유경로
(1917-1997) 서울대 교수의 말...
"도대체 모르겠다. <칠정산>에 적힌 수치들이 현대 천문학의 방법으로 얻은 수치와 거의 일치하는데, 이순지와 김담 같은 조선의 학자들이 이걸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다. 발달한 서양 천문학 지식으로 무장한 우리 천문학자들도 이런 계산은 쉽지 않다. 우리 선조가 어찌 이렇게 정확한 관측값을 얻었을까? 참으로 놀랍다!!"
http://blog.koreadaily.com/media.asp?action=POST&med_usrid=Rotex&pos_no=502498
http://jus.knu.ac.kr/sub1/sub1_5.html
[4] 홍대용의 우주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eakhill&logNo=140169146990
담헌 홍대용(1731-1783)
홍대용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독특한 과학사상가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지전설'과 '무한 우주론'을
주장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수학과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촌 홍대응의 기록..
"홍대용은 매번 잠자리에서도 격물궁리의 공부에 열중했고,
가끔 풀기 어려운 수의 계산으로 인해 잠을 잊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http://www.science.go.kr/boardRead.bs?dataSid=3815&boardId=SCI_SCIASTROGEO&category=all&searchType=all&searchText=&pNum=1
http://blog.daum.net/seok2404/103?
당시 성리학의 학문적 분위기에서 천문학은
만물의 근원인 하늘을 탐구하는 분야였고,

유학자라면 당연히 공부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홍대용의 천문학에 대한 관심은
다른 유학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기구를 이용한 관측과 수학적 계산이
하늘을 탐구하는 올바른 방법이라 생각했다..
1765년 홍대용의 나이 35세가 되던 해,
그는 중국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에는 1년에 한 번씩 청나라에 '연행사'라는 사절단이 파견되었는데, 홍대용은 연행사절이 된 숙부를 따라 북경에 3개월간 머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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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bs.co.kr/1tv/sisa/historyspecial/view/vod/1707720_30885.html
북경 천주당 18세기 북경 천문대
홍대용은 독일에서 중국으로 파견 온 선교사들을 세 번 만났는데,
그들은 중국 국립천문대인 '흠천감'의 총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홍대용은 그들이 머물고 있던 천주당을 방문하여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측하고, 여러 천문 기구도 구경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홍대용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홍대용의 북경 여행은 조선 성리학자들의 중화주의적 사상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박지원(1737-1805)을 비롯한 훗날의 북학파 실학자들은 중국 및 서양인들과 교류하는 홍대용에 감명을 받았고, 이를 자기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홍대용이 닦아 놓은 인맥을 토대로 중국을 방문해 그들과 교류하였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22760&logNo=70145512598
http://newdle.noonnoppi.com/xmlView.aspx?xmldid=50031
홍대용은
<의산문답>
이라는 재미있는 형식의 과학수필을 썼다.
자신을 상징하는
'실옹'
과 조선의 일반 성리학자들을 상징하는
'허자'
를 등장시켜, 당시의 편협하고 고루한 세태를 비판했다.

실옹
은 새로운 서양의 과학기술을 공부한 사람이고,
허자
는 주자학만 고집하는 이념주의자였다.
http://bookletter.eeel.net/?p=17919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booklove&logNo=60053743412&parentCategoryNo=8&viewDate=&currentPage=1&listtype=0
<의산문답>은 새로운 학문으로 무장한 실옹이 허자의 어리석은 우문에 서양의 과학을 빌어 현답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지전설', '무한우주론'과 같은 그의 과학사상이 나타난다.
<의산문답>에 나온
'지전설'
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무릇 땅덩어리는 회전운동하길, 하루에 한 번씩 한 바퀴를 돈다.
땅의 둘레는 9만리이고 하루는 12시(당시엔 2시간 간격으로 시간을 나눔)다. 9만리를 12시간에 도니, 그 운행의 급함은 번개만큼 빠르고, 포탄보다 빠르다."
그는 또한
'무한우주론'
을 설명했는데, 이는 지구중심설도, 태양중심설도 아닌 당시엔 매우 획기적인 우주관이었다(현대 우주관과 유사).
"하늘은 끝이 없고 별 또한 끝없이 많다.
끝없이 넓은 이 엄청나게 큰 우주에 동서남북이라든가 위아래와 같은 구분이 있을 리 없다.
"
더 나아가 홍대용은
은하계가 무수한 별들이 모여 있는 곳
이고,

은하계 밖에는 무수한 은하계가 있을 것이라 추측
했다.
이에 대한 <의산문답>의 글은 다음과 같다.
"은하계란 여러 계를 여러 계를 총칭한 것으로 우주 공간을 두루 돌면서 하나의 큰 고리를 이루었다. 이 고리 가운데는 많은 계가 있는데, 그 수가 천만이나 된다. 태양계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은하계야말로 태허 중의 일대계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구에서 볼 때 그러할 뿐,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바깥에도 은하계와 같은 것이 몇 천만, 몇 억이 될 지 모를 일이니, 나의 아득한 눈으로 '은하계가 일대계다'라고 경솔하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
< 홍대용 사상의 한계와 의의 >
홍대용이 서양 과학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다른 실학자들에 비해 독창적인 과학 사상을 가졌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그의 사상 체계 전반은
유교적인 틀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특히 그의 우주관은 사색적이고 있을 법한 이야기 수준으로 전개되었지,
진지한 과학적 탐구로 이어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http://theplace2012.tistory.com/12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kdrms00001&logNo=10152367094
청나라를 오랑캐로 간주하고 현실에 눈을 감은 당대의
유학자들에게 홍대용은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통해
상대적 관점에서 세상과 우주를 바라볼 것을 권유
한 것이다.
어쩌면, 이 넓은 우주에서 지구가 중심이 아닌 것처럼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조선도 중심의 권위를
갖을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사학계 및 과학계에서는
홍대용
을 근대적 의미의 과학자가 아닌,
북학파 실학자
로 분류한다.
< 학 습 활 동 >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 천문학사의 일부 사건 및 내용만을 살펴봤다.
인터넷 및 각종 문헌들을 활용하여, 아래와 같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천문학사 연대표
를 작성해보자.
(출처 : 신동원(2012). 한국 과학사 이야기-부록 : 한 눈에 살펴보는 한국 과학사. 책과함께어린이)
- 참 고 문 헌 -
1. 신동원(2010). 한국과학사 이야기. 책과함께어린이.
2. 정인경(2007). 청소년을 위한 한국과학사. 두리미디어.
3. 위키백과 : ko.wikipedia.org
4. 네이버캐스트 : navercast.naver.com

The End
세종 대왕 시대의 간의 개발 및 한양 위도 측정
(KBS 드라마 '대왕 세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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