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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진 yo

on 22 Sept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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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ㅇ

'나'는
10611 권효진 한번은 유치원을 졸업하고.. 또 한번은 일산 전설의 오마초에
전학을 가며 온다...... 1996년 성남시 중원구 은행 2동에서 태어난 덥수룩한
머리의 약간 큰 아기 권효진은 앞으로의 미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기였다! 이 귀여운 아기의 순진무구함은 딱 두 번의 고비를 맞는다! 1996 2012 2002 March (cc) image by jantik on Flickr 귀여운 아기 권효진은 고향 성남에서 채 1년도 살지 못하고 일산에 정착할 때까지 수많은 이사를 하게 된다..... 게다가! 성남 평촌 구리 남양주 시화 97 98 00 01 일산 이 곳이 바로
내가 살았던 구리의 주공아파트로,
내 인생의 황금기 제 1번이었다. 이 때 나는 엘림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생일이

96년생 중에서도 빠른 1월생이라서 그냥 95년생들과

함께 같은 반을 했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과는 달리

굉장히 적극적이고 밖에서 노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했었다. 항상 제일 먼저 손

들고, 제일 많이 말하는 아이였다. 그 때의 친구 손소영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좋은 친구였다. 항상 이 친구와 함께 일명 동네 탐험을 했었는데, 하루는 소영이

와 함께 701호 집의 수족관 속 해파리 모형을 몇시간이고 보고 있었다. 그 새에

엄마는 내가 불러도 불러도 오지 않아 없어진 줄 알고 동네 사람 모두 나를 찾고

심지어는 경찰도 왔었다. 이렇게 한 바탕 난리가 났었지만, 여전히 왜 그러는지

는 전혀 모를 정도로 걱정 하나 없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처음 걱정이라는 것을

해 본 것은 내가 한 바탕 소동을 일으킨 지 며칠 만에 갓 태어난 귀여운 동생

유진이가 우유를 먹다 목에 걸려 숨을 갑자기 못 쉬는 엄청난 일이 생겨버렸다.

정말 이대로 숨을 안 쉬면 어떡하나 정말 걱정, 또 걱정해서 복도로 나가 온 아

파트에 소리를 지르고 다녔는데, 집에 다시 돌아와보니 멀쩡해져 있었다. 걱정

하던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찾아올 때 마다 정말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정말 나댔구나 하는 생각이 네다섯의 어린 나이에

들기 시작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윤소영 나 이 곳은 나에게 있어 17년 인생 동안 살아 본 곳 중

최악의 도시로, 내 인생의 고비 제 1을 이 곳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백화점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부천점으로 발령이 나서 이 도시 시화로 이사가게

되었는데, 첫인상부터 정말 최악이었다. 남양주 덕

소의 시골같은 분위기에서 유유자적 친구들과 초코

렛이나 까먹다가 갑자기 공단이 즐비한 도시라니..

남양주에서 살 때는 없었던 아토피에, 초등학교

까지 괴롭혔던 천식, 비염, 축농증, 농가진 모두 이

도시에서 생겼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의외로

유치원에 있었다. 아토피 덕에 이렇게
좋은 로션을 쓸 수 있었다 이 쭉 늘어선 공장들! 집에서 굴뚝 연기가
생생히 보였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난 지금
정상 96이다 난 원래 96이지만 95로 살아가고 있었다... 잠시 말했듯 시화에서 겪은 마지막 여행

때문이다. 시화에서 살 때의 내

나이가 7살로, 유치원을 다니는

마지막 해였다. 어린이집 때처럼

나는 여전히 매우 나대는 아이였다.

그게 선생님의 눈에 매우
거슬렸나보다.
평소에도 선생님은
나에게 친절한 편이 전혀 아니시긴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가 좀 나대도, 아프다고 할 때도
불친절하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심하지 않을까?
유치원 졸업 여행을 갔을 때, 갑자기 너무 아파서 토를 하는 날 보고 그 선생님이 더러우니 가라고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렇게 혼자 끙끙앓다가
집에 간 후 병원에 갔더니 300년전에 유행했던
성홍열이라는 전염병에 걸렸다고 했다. 독방에서
치료를 받느라 학교도 가지 못했다. 그 때 처음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유치원 때 모습을 반성하며,
더 이상 나대면 나도 커서 어른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그 이후부터
아주 얌전한 아이가 되었다.





일산 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살고 있는
곳이고, 지금까지도 일산에서 쭉 살아 오고 있다. 일산

에서도 물론 몇번 이사를 다니기는 했다. 일산에서의

시작은 일산역이 있는 현대홈타운 2차에서였다. 학교

를 예정보다 1년 늦게 가게 되자 심심한 나를 가엾게

여기신 엄마가 플레이스테이션 2를 사주셨다. 내 인생

의 황금기 2 게임인생이 이 때 시작되었다. 나의 동생 유진 Tip 그러나
이건
게임도 아니었다! 처음 하는 게임이었던
마그나카르타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이라고 하면

온라인 게임에서 흔히 보여지는 형태인

RPG 게임을 떠올리기 쉽상인데, 사실

이런 게임은 진정한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단순하고 초보적인 수준의 것일 뿐이다.

정말 어려운 RPG 게임은 단지 몬스터를 잡는 것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시험, 대인 관계 모두 신경

써야 한다. 또 RPG 외에도 정말 영화보다도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도 얼마든지 많다. 완다와 거상이라는

내 인생 최고의 게임은 유수의 영화감독들조차 극찬

을 아끼지 않는다. 각종 상을 휩쓴 명작 완다와 거상 나의 행복한 게임 인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때에는 일산초등학교를 다녔었는데,

전교에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대여섯명 밖에 되지 않

는 평범한 학교였고, 나는 늙은 96으로써 다른 아이들

보다는 공부를 훨씬 잘했다. 그러나 일산 최고의 극성

학교인 오마초등학교에 전학을 가면서 나의 게임 인생

에 막이 내려졌다. 반 전체에 학원을 안 다니기는 커녕

모두들 기본으로 2개를 다니고 아이들

역시 공부 얘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전학생이 나는 엄청난 위기감이

들었다. 처음으로 공부가 걱정되어

문제집을 최초로 사보았다. 다행히도

지나친 걱정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서

오자마자 1등을 했다. 전학생이 바로

1등을 했다고 다들 놀라는 분위기에

그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이 때부터는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다. 논술 학원 같은 걸 안 다니는 대신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야 될 것 같아

책도 엄청 읽었다! 그리운 시절! 중학교 역시 우연치 않게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전설의 오마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1학년 때는 기존에 하던 영어와 너무 다른

내신 시험에 많이 놀라기도 하고, 인원도 정말

많아 (무려 한학년에 600명) 등수 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2학년 때 완전 적응, 등수도

제법 잘 나와 '외고'를 그 때 처음 꿈꾸기 시작했다.

또 공부에 쏟는 부담이 줄어들어 이 때 책도 다시

읽고, 음악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3학년 때는 외고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지냈었다. 물론 주말에는

친구들과 꼭 신촌으로 빵 투어를 가며 숨을 돌렸었다.

음악감상에 대한 나의 자세
우선 음악은 CD로 듣는 게 정석인 것 같다.

MP3로 들으면 원하는 곡, 원하는 부분만

골라듣기가 쉬워진다. 하지만 제대로 된

한 장의 음반이라면 트랙의 배치, 흐름, 구성

또한 중요하게 작용하기에 이러한 태도로는

바르게 음악을 감상할 수 없다. 또한 앨범의

가사집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안의 색채,

CD의 장식, 글씨체 같은 편집 요소도 함께 보아야

하는데, MP3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왠만하면 CD를 사서 듣는 편이다.
하지만 학교에 있으면 CD를 듣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P3를 쓴다. MP3의 경우 각 제조사마다 소리

의 성향이 굉장히 다른데, 소니의 경우에는 일본 소비

에 맞춰 저음 성향이 강한 편이 강하고 스튜디오 같은

음향을 추구하는 반면 삼성의 경우에는 좀 더 팝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소비자에 고음 성향이고,

공간감 형성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이어폰 또한 마찬

가지로 제조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브랜드를 맞추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에는 주로 일본 음악을 많이 듣기

때문에 전부 소니를 사용하고 있다.








나의 수집품들 16만원 주고 샀는데 요즘 30만원에 거래
되는 내 자랑스런 MP3와 훌륭한 이어폰
XB90EX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본 가수들은
정말 유명한데도 불구하고 전부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싱어송라이터도

없고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가진 사람이 없어지는

것 같다. 아이돌만 판치고 예전에 있었던 몇안되는

가수들도 이제는 점점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인디밴드

가 뜨고는 있지만 사실 자우림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이

외국 가수를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미국 가수들도 80

년대를 끝으로 퇴보하고 있다. 노래 잘부르는 가수도

좋지만, 자기 노래를 부르는 진짜 가수는 언제나 한국

에 다시 나올까?


끝으로..........



겨울방학하고 1주면 민증나온다!!!

나의 인생은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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