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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복궁
by

민지 김

on 16 Octo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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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경복궁

경복궁 경복궁이란 '큰 복을 누리며 번성하라' 라는 뜻을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궁이다. 경복궁 설명 종 목 사적 제117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시 대 조선시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궐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역성혁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그 지지자들은 고려의 서울인 개경으로부터 도읍을 한양성으로 옮겨 신도 경영에 착수하는 동시에 궁궐의 조성도 착수하였다. 1394년(태조 3) 9월 신궐조성도감을 두고 청성백 심덕부, 좌복야 김주, 전정당문학 이염, 중추원학사 이진 등을 판사에 임명하여 실무를 담당, 해산을 주산으로 삼고 임좌병향의 터를 잡았다.
원래 태조는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새로운 왕조의 뻗어나는 기세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좁은 터전이라 하여 그 남쪽에 따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일단 옮긴 태조는 수도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12월 3일에 궁궐과 종묘를 짓겠다고 산천신에게 고사하고, 이튿날 개기하여 주야로 작업을 진행, 1395년 9월에 낙성을 보게 되었다. 명칭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介爾’이란 글귀에서 따서 경복궁이라 하였다. 궁내에 준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1) 근정전
경복궁의 정전으로 조하를 거행하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국가의 중요한 의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다.
2) 사정전
경복궁의 편전으로 왕이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이다.
3) 천추전
편전일곽의 서편전에 해당하는 천추전으로 고종 2년(1865년)에 중건한 건물이다.
4) 강녕전
왕의 침전으로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를 하거나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이다.
5) 수정전
세종대왕때 집현전이 있던 자리에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은 건물로 고종 초기에는 침전으로 사용되고, 편전의 역할을 하였으며, 갑오개혁 시절에는 군국기무처 및 내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6) 경희루
경복궁 내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외국사신의 접대나 연회장소이다.
7) 교태전
왕비의 침전이다. 뒤쪽으로는 인공으로 조성된 언덕이 있는데, “아미산”이라고 한다.
8) 자경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신정왕후를 위하여 지은 건물로 뒤편에는 십장생과 박쥐문, 당초문을 새긴 굴뚝인 십장생 굴뚝이 있다.
9) 향원정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지은 2층의 정자이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취향교라는 구름다리가 있다.
10) 건청궁
고종 10년(1873년)에 지은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고종은 이곳을 좋아하여 왕비와 함께 자주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1)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과 더불어 당초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복궁으로 옮겨왔다.
12) 태원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로 후에는 빈전이나 혼전으로도 쓰임.
13) 자선당과 비현각
자선당과 비현각은 동궁의 주 전각이다.
동궁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으로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
14) 동십자각
궁성의 동남쪽 모서리에 서있는 각루이다. 동십자각은 서십자각과 함께 궁성 전면 양 모서리에 궁궐 안팎을 감시할 수 있도록 세운 것이며,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에 헐려버렸다. 경복궁의 건물 <경복궁의 문>

1)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이다.

2) 건춘문
궁성의 동쪽 문으로 만물의 기운이 움트는 ‘봄이 시작 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3) 영추문
경복궁의 서쪽문으로 ‘가을을 맞이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4) 신무문
신무문은 궁성의 북쪽 문이다. ◈ 경복궁 만든 사람과 시기
경복궁은 누구 한사람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며 굳이 누가 세웠냐고 꼭 말해야 한다면 경복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1395년에 지은 왕궁이라 한다. ◈ 경복궁 보존상태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크고 작은 궁전들이 불에 타 사라지고, 안타깝게 그 주춧돌만 남은 채 폐허가 되었으나 1868년 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의 자리에 처음의 규묘대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 경복궁의 가치와 의의

경복궁이라는 이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할 때 가장 큰 공을 세운 삼봉 정도전이 연구하여 지었습니다. 중국의 시서 <시경>에 나오는 귀절을 떠올려 (군자의 만년 빛나는 복을 빈다) 는 뜻이 담긴 경복이라는 구절을 따서 지어진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 근정전에 대하여

근정전은 조선시대의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서 신하들이 임금에게 신년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행사를 거행하고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던 곳입니다. <근정> 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
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은 조선중기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이를 1867년(고종 4) 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근정전도 지어졌는데 처음 있던 건물에 비해 많이 변형되여 지어졌다고 합니다.
앞면과 옆면이 5칸 크기의 2층이며 지붕은 여덟 팔자 모양의 지붕으로 지어졌습니다. 10533 김민지 광화문光化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원래의 이름은 오문이었으나, 세종때에 와서 광화문으로 명칭이 바뀐다.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1395년에 만들어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으나, 광화문 복원 공사를 하면서 잠시 이동하였다. 광화문에는 총 3개의 문들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2010년, 복원 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에 공개되었다. 건춘문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문으로, ‘동쪽은 봄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건춘문이라
이름하였다. 주로 왕족, 척신, 상궁이 드나들었던 문이었다. 건천문의 앞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자리잡고 있으며, 건춘문의 천장에는 청룡이 그려져 있다.
문 안에는 왕세자가 거처하던 춘궁이 있었으며, 문 밖에는 왕실의 종친들을 교육하는
종학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방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흥선 대원군이 재건하였다. 영추문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문으로, ‘서쪽은 가을에해당하여 가을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영추문이라 이름하였다. 문 밖에는 명당수가 흐르는 개울이 있었다. 주로 일반 관료들이 드나들었다. 영추문의 천장에는 백호가 그려져 있다. 문 안에는 궐내 각사가, 문 밖에는 궁궐에 물자를 조달하는 관청이 자리잡고 있었다. 경복궁의 건물 흥례문은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간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목조 건물이다. 영추문 건춘문 흥례문 광화문 근정문은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으로 정면 3칸, 좌우로 각각 1칸씩의 옆문을 배치한 중층 구조로 되어 있다.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정문과 행각은 고종 4년(1867년)에 근정전과 함께 중건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금천교, 어구, 흥례문을 비롯하여 이곳도 해체ㆍ철거되었는데, 조선총독부 청사를 헐고 이 일대를 재건하면서 원래 모습을 찾았다. 근정문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문이며 세종재위 15년인 1443년에 건립되었다. 신무문이 건립되자 동쪽의 건춘문, 서쪽의 영추문秋門迎, 남쪽의 광화문과 함께 비로소 경복궁의 4대문이 갖추어지게 되었으며 4대문의 각 명칭은 세종이 집현전에 명하여 지었다. 조선시대에 신무문의 북악산의 노기를 막기위해 늘 닫아두었다고 전한다. 고종 때 중건되었고 현판은 이현직이 썼다 신무문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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