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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사

Jemae Republic
by

Yanghyeon Je

on 30 Jun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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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국악사

국악사
상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현대
통일신라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라면 고구려와 신라, 백제, 가야가 제각기 고유한 국가체제와 문화를 형성하였던 3세기 경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삼국시대에는 외국과의 정치 · 문화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중국과 서역의 음악이 전래하였으며 삼국의 음악이 중국, 일본에 진출함으로써 전례 없는 국제교류시대가 전개되었다.
황해도 안악 제3호분에는 고분의 전실에 입고 · 소 · 노래로 편성된 악대가 묘사되어 있고, 회랑의 행렬도 중에 연주자 4명이 북 · 소 · 각 요를 연주하는 것을 보여주며, 또 후실에는 완함 · 종적 · 거문고로 보이는 현악기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무악도가 그려져 있다.
★ 거문고

거문고는 『삼국사기』 악지에 의하면 진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당시 제2국상이었던 왕산악이 악기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 구조를 개조하여 새 악기를 만든 후, 이 악기를 위해 십여 곡을 지어 연주를 하니 갑자기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므로 '현학금'이라 이름 붙였는데 훗날 '현금', 즉 거문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수서』 동이전 - 오현비파 · 쟁 · 피리 · 횡취 · 소 · 고 등이 연주

『일본후기』 - 고구려는 일본에 군후(궁꼬, 거문고로 추정) · 횡적 · 막목(마꾸모, 관악기의 일종으로 추정)으로 춤을 반주하는 음악을 전수
삼국 중에서 일본에 가장 많은 영향

고구려의 거문고가 백제를 통해 일본에 전수

중국 남조와 교류
★ 기악무

『일본서기』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인 미마지가 612년 일본에 귀화하면서 중국 남조의 오나라에서 배운 가면극의 일종인 기악무를 일본에 전수

기악무는 교훈적인 불교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주로 사찰을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기악무의 줄거리와 구성이 우리나라의 <양주산대놀이>와 비슷함.
가야금에 노래와 춤을 곁들인 소박한 음악이 주류
★ 신라의 음악기관 - 음성서

신라 음악사를 살피는 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음성서'라는 국가음악기관이다.

설립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진덕왕 5년(651)에 음성서의 관직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어 대개 7세기 경에 제도화된 듯하다.
★ 가야금

가야금의 원조 나라인 가야의 음악문화는 『삼국사기』의 가야금에 관한 기록에 일부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가야금은 가야의 가실왕이 중국 수 · 당의 쟁을 본따서 만듬.

가야국의 성열현 사람인 우륵은 가야금을 위해 12곡을 지어 가야금 시대를 열었다.
전기
후기
신라보다 높은 수준의 음악문화를 누리고 있던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을 수용

삼현삼죽(가야금 · 거문고 · 비파 · 대금 · 중금 · 소금)이 주축을 이루는 향악의 전통을 수립 -> 향악

당나라의 음악, 서역음악을 더 넓게 받아들여 통일왕국다운 음악 시대를 열어 나감 -> 당악

불교음악이 본격적으로 전래 -> 범패

상류사회 지식계층에는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금가(거문고 음악) 발달 -> 금가
향악 - 우리 고유의 음악

『삼국사기』 악지에서 언급한 향악은 거문고·가얏고·향비파·대금·중금·소금·박·대고 등 8종의 악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향악편성은 통일 이전에 가야금 하나로 노래와 춤을 반주하던 것에 비하여 매우 확대된 것으로 여기에는 고구려의 악기 거문고와 서역의 악기 향비파, 당나라의 악기 박판과 대고 등이 복합적으로 수용되어 있다.
당악 - 당나라 음악으로 당 현종(742) 이후의 민속악

『삼국사기』 악지에 비파 즉, '당비파'와 구분하여 신라의 악기 '향비파'를 소개하고 있고,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에서와 같이 '향악'이라는 명칭은 '당악'의 존재를 암시한다.

또 통일신라의 향악에는 당악기로 추측되는 박과 대고가 편성되어 있어 신라의 당악 수용을 확인시켜 준다.
범패 - 불교의 의식음악

불교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3∼4세기경으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일련의 의식음악이 소개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월명사조에 보면 경덕왕(742~765) 때에 하늘에 해가 둘이나 떠오르는 변고가 생겨 당시 화랑이었던 월명사에게 범패를 불러 변고를 물리쳐 달라는 청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하여 월명사가 '나는 범패는 모르고 향가만 할 줄 안다'고 대답한 기록이 있어 이미 8세기 경에는 범패가 신라에 유포되었음을 반증해준다.
그 후 신라의 진감선사는 830년에 당나라에서 돌아와 경상남도 하동의 옥천사에서 범패를 가르쳐 신라 불교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9세기 경에 중국 산동성의 신라인촌에 머물면서 신라인들의 불교의식을 기록에 남긴 일본 원인자각대사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신라의 범패가 인도에서 전래된 고풍, 중국에서 중국화한 당풍, 한국에서 한국화한 향풍의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있어 신라에서의 범패 전승양상을 확인시켜준다.
금가 - 거문고 반주에 의한 노래, 또는 거문고 독주

삼국이 통일되자 고구려의 거문고는 신라로 전해졌지만 처음에는 천존고에 신기로서 보관되었다.

『삼국사기』 악지에 의하면, 후에 귀족출신의 음악가 옥보고가 8세기 중엽 지리산으로 들어가 50년 동안이나 거문고를 익혀 30여곡의 거문고 음악을 지었고, 그의 금가전통은 속명득을 거쳐 귀금선생에 전하여 이후 몇 번의 단절위기를 거쳐 안장과 그의 아들로 전해진 다음부터는 금으로 업을 삼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고 한다.
옥보고가 지은 거문고 곡명은<춘조곡>·<추석곡>·<유곡청성곡> 등 한문으로 되어 있어, 우륵이 지은 가야금곡이나 우리말 가사를 가진 사뇌와는 구분된다.

즉, 옥보고의 거문고 음악은 신라의 선율에 한시를 담은 곡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귀금과 그의 계승자들도 역시 금가를 남겼으며, 이와 같은 통일신라의 거문고 음악 유산은 고려시대의 금가인 <풍입송>류의 음악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고려시대의 음악사는 의종(, 1146~1170)말년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는 향가와 화랑의 전통, 팔관회와 연등회 등 통일신라의 유풍이 강하게 전승되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아악이 전래되어 향악 · 당악 · 아악의 전통이 정립되었다.

후기에 들어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유풍이 점차 사라지고 중국에서 들어온 아악의 전통도 주변 정치상황에 의하여 문란해졌고,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음악이 출현하였다.
★ 향악

고려전기의 향악은 향악기 및 사뇌·삼국악·양부악의 전통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거의 통일신라의 향악을 계승하였다.

고려 향악에 사용된 악기를 보면 신라의 향악과 같이 거문고·가야금·향비파·대금·중금·소금·대고·박의 편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밖에 당악연주에 사용된 장구가 새로이 첨가되었다.
★ 당 악

고려시대의 당악은 송나라의 음악을 일컫는다.

통일신라로부터 이어받은 당악의 기반 위에 11세기에는 문종이 적극적으로 당악을 요청한 바 있고, 1114년에는 송나라의 연향악이 들어왔으며, 이 밖에 12세기 초에는 고려의 여기가 송나라의 명주에 가서 대무를 배워 귀국하였는데 이러한 당악의 유입이 고려시대 당악의 주류를 이루었다.

현재 보허자, 낙양춘 두 곡만이 전승되고 있다.
★ 아악

아악은 종묘·사직 등 국가의 중요한 제사에 사용된 중국 고대의 거식음악이다.

아악은 팔음(여덟 가지의 악기재료) 악기를 당상악과 당하악으로 구분하여 배치함으로써 율려에 맞게 교대로 연주하는 독특한 음악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악장과 춤이 반드시 따르는 악 · 가 · 무 총체의 음악으로서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가장 이상적인 음악으로 인식되어 왔다.
아악은 고려 예종 11년(1116)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고려에 수용된 대성아악기는 중성·정성의 편종과 편경, 5등금과 슬 및 중성·정성의 지 · 적 · 소 · 소생 · 화생 · 우생 · 훈 · 박부 · 진고 · 입고(일명 . 건고 · 삭고 · 응고 셋이 한 짝을 이룸) · 축 · 어의 20종에 달하고, 수량만 해도 등가악기 30점, 헌가악기 374점에 이르는 대규모였으며, 560개의 편종·편경의 무게만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었다.
장구가 고려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문종(1046~1083) 때부터이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당악과 향악 연주에 다같이 사용되었다.

또한 『고려사』 악지에 의하면 백제악 5곡, 신라악 5곡, 고구려악 5곡 등 삼국악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에 전해졌음을 알 수 있으며, 이밖에 고려의 궁중연향에서 당악과 향악이 각각 동쪽과 서쪽에 배치되어 교대로 연주하는 전통도 역시 통일신라로부터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불교억제정책으로 말미암아 고려 전래의 연등회와 같은 불교관련 행사가 폐지되고,

숭유를 바탕으로 하여 예악이 숭상됨에 따라 아악이 크게 일신된 점,

건국 대업을 칭송하기 위하여 많은 신악이 창작된 점,

이와 같은 음악제도를 잘 보존하기 위하여 『악학궤범』과 같은 악서가 발간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 가곡

시조시를 가사로하여 관현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5장 형식 (대여음 - 1장 - 2장 - 3장 - 중여음 - 4장 - 5장)

장단은 16박과 10박의 두가지가 있다.
★ 가사

가사체로 된 산문시를 노래함

가사는 별곡과 함께 장가에 속하는 노래로 단가인 가곡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가곡이 음악 중심인데 비하여 가사는 음악보다는 사설이 중심이 되는 노래이다.

백구사, 죽지사, 어부사, 길군악, 권주가 등 12가사가 전해짐.
★ 시조

고려 말기부터 발달하여 온 우리 고유의 정형시이다.

시조라는 명칭의 원 뜻은 시절가조,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이다.

시조는 장구나 무릎 장단으로도 반주할 수 있다.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

장단은 5박과 8박으로 번갈아 친다.
★ 판소리

'타령' 또는 '잡가'라고 불렸던 판소리는 광대 한 사람이 소리와 말(아니리)로 <춘향가>와 같은 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극음악이다.

판소리는 조선후기에 발생한 것으로, 그 하나인 <춘향가>는 일찍이 18세기 중엽에 한문시로 소개되었다.
★ 민요

민요는 크게 '통속민요'와 '토속민요' 혹은 '향토민요'로 나뉘는데, 통속민요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불려지는 민요이다.

반면에 향토민요는 일정한 지역에 한정하여 전승되는 것으로, 주로 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나 부녀자들의 노래, 또는 어린이들의 동요가 여기에 속한다.
★ 잡가

잡가는 전문적인 소리꾼들이 부르던 노래로 좌창과 입창으로 구분된다.

좌창은 실내에 앉아서 부르는 노래로, 주로 독창으로 부르는데, 민요에 비하여 긴 가사를 노래한다.

잡가는 각 절이 반복되는 형식이나, 그 때마다 변하는 노랫말에 따라 곡조가 변화하기도 한다.

입창으로 주로 부르는 노래는 경기지방과 서도지방의 산타령, 남도지방의 선소리 등인데, 이 노래들은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며, 독창으로 메기고, 함께 받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 정간보의 창안



정간보를 읽는 순서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 줄에서 왼쪽 줄로 읽어나간다.

다만 정간 속의 율명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은 다음 위에서 아래로 읽는다.

쉼표는 '△'로 표시한다.
수제천

‘정읍’이라고 함.

정읍사를 노래하는 음악이었다.

현재는 가사 없이 관악 합주곡으로 연주한다.

‘처용무’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한다.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악곡의 백미이다.
각 부족 간에 행하여진 제천의식과 연관되어 발전

부여 – 영고

고구려 – 동맹

동예 - 무천
향악의 특징은 선율이 곱고 아름다우며 남녀의 사랑을 노래함.

동동, 풍입송 , 서경별곡 등이 있다.
★ 세종대왕의 업적

악기도감을 설치하여 악기를 제작하고 개량함.

여민락, 정대업, 보태평 등을 작곡함. -> 종묘제례악으로 채택 (세조)

정간보를 창안함.
★ 문묘 제례악

‘문묘 제례악’은 다른 이름으로 ‘석전악’, ‘응안지악’이라고도 한다. 중국 상고 시대에 기원을 둔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들어 왔고, 지금도 성균관 대성전에서 봄. 가을 석전 의식에 쓰이고 있다.

문묘악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 음악이 아니고 중국 고대 음악, 즉 아악에 속하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으로 본 고장 중국에서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이며 오직 우리나라에만 남아서 전한다.
★ 종묘 제례악

종묘와 영녕전 두 사당의 제사 음악이고, 종묘는 조선 역대 공이 큰 임금19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영녕전은 단명을 했거나 공이 없는 임금과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 등 15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종묘 제례악’은 조선 시대의 기악 연주와 노래, 일무(춤)이 어우러진 궁중 음악의 정수로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현재 종묘 제례는 종묘에서 이씨 종친회를 주축으로 하여 1년에 한 번, 5월 첫째 일요일 종묘에서 시행되고 있다.
★ 시나위

무속 음악의 일종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기악 합주곡
관악기와 타악기가 중심이 되고, 각각의 연주자들이 각자 알아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형태를 가짐
★ 산조

‘흐트진 가락’이란 뜻으로 무속 음악과 시나위 음악에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기악 독주의 민속 음악
느린 장단으로부터 빠른 장단으로 연주됨.
★ 일무

일무 또는 제례무는 문묘와 종묘의 제향에서 여러 무원들이 열을 지어 추는 춤

일무의 규모

8일무(8×8=64명) 문묘제례(공자와 그의 제자)와 황제의 제사
6일무(6×6=36명) 제후나 왕의 제사
4일무(4×4=16명) 대부의 제사
2일무(2×2=4명) 선비의 제사

일무의 종류

문무(보태평지무)는 선왕들의 문덕을 칭송 - 영신, 존폐, 초헌
무무(정대업지무)는 무훈무공을 선양송축한 것 - 아헌, 종헌례

일무의 도구

문묘 문무 - 왼손에 약을 잡고 오른손에 적
문묘 무무 - 오른손에 방패, 왼손에는 도끼
종묘 문무 - 오른손에 소, 왼손에 약
종묘 무무 - 앞줄은 목검, 가운뎃줄은 목창, 뒷줄은 활과 화살을 갖고 춘다.

일무의 음악
문묘악 - 응안지악·명안지악·서안지악·성안지악을 사용
종묘악 - 보태평·정대업을 사용
대취타 Vs 취타
대취타 (무령지곡)

취타란 불거나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음악으로 임금·왕세자의 행차와 군대의 행진 사용한다.

음악의 시작은 지휘자격인 등채가 '명금이하 삼성'이라는 구령을 내리면 징이 3번 울리고 나각이 3번 울리면서 시작된다.

구성
취악기 - 나각·나발·태평소
타악기 - 징·자바라·장구·용고
취타 (관명 - 만파정식지곡, 현명 - 수요남극지곡)

대취타의 태평소 가락을 장2도로 올려서 조옮김하고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을 취타의 주요가락으로 삼는다.

궁중의 연향에 사용되었다.

구성
취악기 - 피리·대금·소금
타악기 - 좌고·장구
현악기 - 해금·아쟁·거문고·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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