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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생애와 작품에 묻어난 삶의 태도

상업적인 용도의 사용을 금합니다.
by

유진 함

on 9 Februar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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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윤선도의 생애와 작품에 묻어난 삶의 태도

목 차
감사합니다 !

윤선도의 생애와
작품에 묻어난 삶의 태도
Ⅰ. 윤선도의 생애

Ⅱ. 윤선도의 작품에 드러난 삶의 태도

Ⅲ. 윤선도의 사후 평가








윤선도는 우리 시가문학에 한 획을 그을 만큼 훌륭한 작품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시가문학의 역사적 전개에 탁월한 지적 성취를 보인 인물이다. 그러나 문학사적인 위치가 높게 평가가 되는 것에 비해 그는 정치적으로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 정치적으로 열세에 있던 남인가문에 태어나 집권세력인 서인 일파에 강력하게 맞서 왕권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년의 유배생활과 19년의 은거생활을 하게 되고 이로써 정치적 이상은 실현시키지 못한 채 자연으로 귀의하는 삶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화려한 은거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그의 탁월한 문학적 역량은 이러한 생활 속에서 표출될 수 있었다.



서론
녹우당 - 해남 윤씨(윤선도) 종가고택

고산 윤선도의 초상

윤선도의 생애
윤선도의 작품에 나타난 삶의 태도

고산 윤선도 유적지

「견회요」

견회요
슬프나, 즐거우나, 옳다 하나, 그르다 하나
내 몸의 할 일만 닦고 닦을 뿐이로다.
그 밖의 다른 일이야 생각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의 일이 잘못된 것인 줄 나라고 하여 모르겠는가?
이 마음 어리석은 것도 모두가 임(임금)을 위한 탓이로구나.
아무개도 아무리 헐뜯더라도 임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경원성 진호루 밖에 울며 흐르는 저 시냇물아!
무엇하러 밤낮으로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가?
임 향한 내 뜻을 따라 그칠 줄을 모르는가?

산은 끝없이 길게길게 이어져 있고, 물은 멀리 굽이굽이 이어져 있구나.
부모님 그리운 뜻은 많기도 많다.
어디서 처량한 외기러기는 울어울어 나의 마음을 구슬프게 하는가?

어버이 그리워할 줄을 처음부터 알았지마는
임금 향한 뜻은 하늘이 만드셨으니
진실로 임금을 잊으면 그것이 불효인가 하노라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당시 집권세력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병진소를 올렸다가 이로 인하여 이이첨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당하고 만다. 그곳에서 지은 시가 ‘견회요’이다.
정치에 발을 들이기엔 아직 어린나이였던 윤선도가 유배지에서 느꼈을 자신의 신념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 충과 효, 치열한 당쟁의 위력은 이 작품 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견회요에 드러난 삶의 태도


산수간 바위 아래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
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고들 있지만,
나같이 어리석은 시골뜨기의 마음에는 이것이 분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노라.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뒤에,
바위 끝이나 물가에서 실컷 노니노라.
그 밖에 다른 일이야 부러워할 것이 있으랴.

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서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찾아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산이 말씀하거나 웃지 아니하여도 나는 그를 한없이 좋아하노라.

누군가가 상공보다 낫다고 하지마는 만승천자라고 한들 이만큼 좋겠는가
이제 생각해보니 소부와 허유가 영악했도다.
아마도 자연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어라.

내 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시고서,
인간 만사를 하나도 맡기지 않으시고,
다만 한 가지 다툴 것이 없는 강산을 지키라 하시도다.

강산이 좋다고 한들 내 분수로 이렇게 편안히 누워 있겠는가
이 모두가 임금님의 은혜인 것을 이제야 더욱 알겠노라.
하지만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내가 해드릴 일이 없구나.

만흥에 드러난 삶의 태도

만흥은 작자가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단 이유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해남 금쇄동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이다.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산중생활을 흐뭇하게 즐기는 심정을 읊으면서도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는 지극한 충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만흥으로, 작가의 안분지족하는 삶의 자세와 물아일체의 자연 친화정신이 잘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중 신곡에 수록된 「만흥」

오우가

오우가에 드러난 삶의 태도
오우가는 6수로 서시 다음에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징을 들어 자신의 자연애와 관조를 표현한 고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오우가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물아일체의 경지를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윤선도의 자연적 세계, 무욕의 자세, 안분지족의 자세를 통해 동양적 사고의 태도가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우가」
어부사시사
앞 개에 안개가 걷히고 뒷산에는 해가 비친다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썰물은 거의 나가고 밀물이 밀려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의 온갖 꽃빛이 더욱 좋다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 숲인가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맑고도 깊은 연못에서 온갖 고기가 뛰노는구나

꽃다운 풀을 몸소 밟아보며 난초와 지초도 뜯어보자
배 멈추어라 배 멈추어라
한 조각 거룻배에다 실어놓은 것이 무엇인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아 갈 때에는 안개뿐이었는데
올 때에는 밝은 달빛뿐이로다

낚시줄을 걸어 놓고 배의 창문을 통해 달을 바라보니
닻을 내려라 닻을 내려라
벌써 밤이 들었구나 소쩍새 소리 맑게 나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아아 아직도 남은 흥취가 끝이 없으니
돌아갈 일을 잊었구나

어부사시사에 드러난 삶의 태도
어부사시사는 윤선도가 전남 완도에 있는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 살면서 우리말로 지은 40수의 노래이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정치적으로 기복이 심했던 윤선도가 정계와 멀리하면서 자연속에 묻혀 살고자 했던 열망이 담긴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윤선도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어부사시사」
보길도 흑약암

보길도 유적

보길도 유적

윤선도의 사후 평가

윤선도는 자연을 제재로 하되 그것을 사회의 공통된 언어 관습과 연관시켜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개성적 판단에 의한 어떤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임의로 선택하기도 한다.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 속 그의 삶의 모습과 일생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또 그가 살았던 해남으로 가 윤선도의 눈이 되어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 될것이다.



윤선도의 생애
안수빈(1418) 송서영(1119) 이시연(1129) 송채원(1218)

윤선도의 문학작품
김세연(1205) 백민정(1314) 고다운(1501)
김민경(1503) 함유진(1533) 한소민(1820)
나의 벗이 몇인가 헤아려 보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다. (다섯 벗 소개)
나머지는 그냥 두어라. 이 다섯 외에 더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구름의 빛깔이 깨끗하다고 하지만 자주 검어지네.
바람 소리가 맑다지만, 그칠 때가 많도다. (물의 불변성 예찬)
깨끗하고도 그칠 때가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까닭에 피자마자 쉬이 져 버리고,
풀은 또 어찌하여 푸른 듯하다가 이내 누른 빛을 띠는가? (바위의 영원성 예찬)
아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추워지면 잎이 떨어지는데,
소나무야, 너는 어찌하여 눈서리를 모르고 살아가는가? (소나무의 지조 예찬)
깊은 땅 속(혹은 저승)까지 뿌리가 곧게 뻗은 것을 그것으로 하여 알겠노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시켰으며,
또 속은 어찌하여 비어 있는가? (대나무의 절개 예찬)
저렇고도 사철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다 비추니
한밤중에 광명이 너보다 더한 것이 또 있겠느냐?(없다) (달의 밝음과 과묵함 예찬)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나의 벗인가 하노라
세연정 원림
보길도 완림
고산 윤선도
1587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후사가 없던 해남윤씨 종가에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와 살았다.
11세부터 절에 들어가 학문연구에 몰두하다가 1612년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 이이첨 등의 횡포를 상소하다가 함경도 경원 등지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을 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은거했다.
그 후 보길도로 돌아와 정자를 짓고 효종이 즉위한 이래 여러 차례 부름이 있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왕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1652년 복직, 예조참의 등에 이르렀으나 서인의 중상으로 사직하게 되었고 다시 1657년에 중추부첨지사에 복직되었다.
1658년에는 서원철폐를 놓고 서인 송시열등과 논쟁, 탄핵을 받고 삭직을 당하였고, 효종의 장지문제를 들어 남인의 거두로서 다시 유배를 가게 된다. 부용동으로 돌아간 그는 낙서재에서 85세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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