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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매체연구

동묘와 청계천
by

seo seoyoun

on 10 Ma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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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서양매체연구

design by Dóri Sirály for Prezi
원래 이름은 개천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
청계천은?
4조
ppt, 영상편집 서서연
자료조사 박샛별, 윤여경, 이현주, 한지현, 김자현

청계천 볼거리
동묘는 동관왕묘의 줄임말로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숭인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장수인 관우를 신앙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명나라 사람에 의해 동대문 밖에 건립된 묘당이며, 조선 말 관왕을 관제로 숭상하여 관제묘라고도 하였습니다. 또한 1963년 1월 21일에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는 동관왕묘 외에 1598년에 남관왕묘가, 1883년때에는 북묘, 1902년에 서묘가 세워졌었지만 현재는 동묘만이 남아 있습니다. 동묘는 명나라 사람에 의해 건립되었기 때문에 중국의 묘사 건축형식을 본받았으므로, 그 평면이나 외관은 한국의 다른 건축들과는 달리 매우 색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동묘는?
동묘 벼룩시장은?
청계천과 동묘
일제시대의 청계천
광복후의 청계천
청계천의탄생







조선초 도성건립과 배수물길을 위해 개천에 대한 정비작업을 진행했다. 태종때 자연천정비를 하면서 둑을 쌓아 하천의 모습을 만들고, 이후 세종때 지천과 세천에 대한 추가정비를 했으며, 청계천을 처음으로 생활하천으로 규정하였다.


청계천 변화기
오늘날의 청계천의 모습은 영조때 이르러 완성되었다.1760년(영조 36)과 1773년(영조49)때 두번의 개천정비작업을 진행하여, 개천의 폭을 넓히고,양쪽에 돌을 쌓고,수로를 직선으로 만들었다. 이는 인구증가에 따른 하천배수시설확장과 대규모 준척작업을 통해 일거리로 빈민들을 구휼함에 있었다.
일제시대의 청계천
일제시대 초기에 관리부족으로 지난 500년 동안 서울사람들의 생활과 함께 흘러온 청계천이 하수구로 전락하여,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총독부등 주요기관의 청계천이북이전을 위해 청계천 정비작업을 계획했었다.
광복후의 청계천


광복과 전란이후 청계천지역은 슬럼화되었으며,위생과 도심경관의 개선을 목적으로 청계천 복개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1971년 청계천고가도로과 완공되고, 교통혼잡과 환경훼손의 문제가 심해졌으며, 고가도로의 유지보수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등 경제적 비효율성문제도 제기되었다.







청계천 변화기
디지털 상징 조명탑
디지털캔버스
디지털 가든
동전 던지기
동묘 벼룩시장은 1980년대부터 몇몇 상인들이 모여 시장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떠밀려난 상인들이 터를 이루고 이런 식에 각자에 사연을 가진 상인들이 모여 지금 현재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평일에는 평균 250~300개의 좌판이 설치되고 주말에는 600개 정도의 좌판들이 설치됩니다. 벼룩시장은 상가와 길거리 좌판들로 열리게 됩니다. 주말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고 평일에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합니다. 벼룩시장에 나오는 물건들은 대부분 차압되어 경매에 나온 물건들이라 가격이 저렴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이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생활용품부터 의류, 먹거리 등등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좌판에 나오는 제품들은 거의 만원 이상을 넘기지 않습니다. 길거리 좌판에는 대부분 중고품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좌판들도 꽤 있습니다.
동묘앞 3번출구
Start!
감사합니다
청계천의탄생
큰골목에서 나와서 두 번째왼쪽골목!
디지털캔버스
이쁜 청계천 야경
청계천 가는길!
동묘 상인들과 인터뷰
Q. 가게는 보통 몇 시에 여시나요?
A. 모두 여는 시간이 달라요. 새벽부터 점심시간까지 여는 사람 마음이죠. 그래서 딱히 몇 시까지 열고 하는 시간을 말해줄 수가 없어요.(웃음)
Q. 동묘시장에서 일하시면서 힘든 점이 있으신가요?
A.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왔다 갔다 하니까 쓰레기 처리가 가장 힘들죠. 쓰레기통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사람들이 길거리에 많이 버리곤 하는데 이제 그걸 상인들이 치우거나 그대로 방치 되는 경우가 많아요.
Q. 동묘시장에서 일하시면서 좋은 점도 있으시죠?
A. 그렇죠. 제가 이 자리에서 꽤 있었는데 처음엔 사람들도 이렇게 많진 않았어요. 근데 이제 TV나 이런 매체에 많이 타면서 유명해졌죠. 사람이 많아서 그 기도 얻고 좋은 사람들도 얻을 수 있어서 좋죠.
평일의 동묘 vs 주말의 동묘
평일의 동묘
주말의 동묘
사람이 없고 원단 위주로 판매
사람이 늘어났으며 좌판이 길게 늘어짐!
다같이 동묘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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