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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위인들

'백세인생'동아리 발표
by

지윤 염

on 5 Nov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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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간호사위인들

메리 시콜 (Mary Seacole)
흑인간호사 메리 시콜 (Mary Seacole)
김수진 간호사님
한국 최초 간호사 이정애
간호사위인들
나이팅게일
백의천사 나이팅게일
1857년 1월 26일 스코틀랜드 ∙ 모레이주의 쉐니 ∙ 하우스에서 태어나 1947년 3월 13일 런던시 코롤니에서 90세로 사망, 노틴검의 소아병원의 견습 간호사로 시작해서 런던 병원에서 정규 간호사가 되고, 그 재능을 인정받아 1881년 24세로 센트 ∙ 바솔로뮤병원의 총간호부장이 되었다. 1887년 영국 간호협회를 설립, 베드포드 ∙ 펜위크 Bedford Fenwick 의사와 결혼하고, 1926년에 영국 간호사 전문학교 설립, 간호사 국가등록제도를 확립하였다. 1899년에는 ICN(국제간호협의회)를 설립하여 제1회 총회회장으로서 세계 간호사 연합조직을 만들었다. 나이팅게일 이후의 영국 간호계의 근대화와 부인운동의 지도자이다.

펜위크(간호의 제 2혁명) 업적

1916년 - 간호사에게 특수분야의 연구과정을 제공하여 간호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런던에 로열 간호대학 설치.
이 기관에 전국간호학교에 대한 관리감독 역할과 간호사 면허 등록 등의 기준을 관리하게 함.


이정애 (1901-1954)

한국 최초의 여성 간호사는 이정애이다. 이씨는 서울 출생으로 이화대학을 졸업하고, 1928년 하와이에서 간호학을 공부한 후 1947년 콜롬비아대학에서 간호행정학을 전공하였다.
1931년 간호학 공부를 마치고 세브란스 병원 간호실 부원장으로 취임을 하였으며, 후학을 위하여 간호학과의 간호윤리라는 과목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37년 7월 21일 영국에서 열린 국제 간호원대회 조선 간호협회장 자격으로 파견되어 조선에도 명실공히 조선인 간호사가 있음을 유감없이 알리기도 하였다.
1947년 간호협회장으로 추대되었는가 하면, 이화여대의 의약대학 교수로서 재직하여 후학을 육성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탄생 133주년인 1953년 5월 12일에 정부로부터 간호 관련자로서는 처음 표창장을 받았다.

1881년 - 펜위크는 맨체스터 병원에서 간호교육을 받고 런던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성 바들로뮤 병원의 간호원장에 취임

1887년 - 의사 베드포트 펜위크와 결혼한 후 성 바들로뮤병원에서 간호상황을 혁신적으로 개혁 일정한 기준에 따라 무자격 간호사를 자격 있는 자로 교체, 간호교육을 실시하기 시작

1887년 - 영국 간호사 협의회 조직, 간호사들의 단결을 도모, 미국 간호협회 조직결성을 돕고 국제간호협의회(ICN)을 창시
단체를 통한 펜위크의 주장
1.간호사 시험제도를 채택하여 간호를 독자적인 직업으로 공히 인정받는 것
2.시험위원은 반드시 간호사 이어야 할 것을 주장

1919년 - 간호사 면허법이 의회에서 통과, 시험국이 설치, 간호사 시험위원

1893년 - 영국간호협회의 기관지인 “Nursing Times"를 발행

영국의 간호는 간호사가 되는 동기를 사명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나이팅게일의 주장과 간호의 직업적 독립을 중시하는 펜위크의 입장이 오랫동안 견해의 차이를 보이면서 꾸준한 간호의 기틀을 마련함.
나이팅게일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간호사이자 위인 중 한명이다.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이팅게일장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크리미아 전쟁 당시에 영국군은 높은 사망률과 부상병을 위한 간호의 소홀함으로 국민 여론이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1854년 나이팅게일은 40명으로 된 간호단을 인솔하고 전지로 향했다. 일행이 도착했을땐 야전 병원에 위생시설이나 간호를 위한 공급제도가 전혀 없어서 먼저 청소와 세탁, 급식상황을 혁신했다. 환자와 부상병들을 손수 돌보았으며 매일 20시간을 근무했다. 밤에 등불을 들고 환자를 순시하여 ‘등불을 든 여인’으로 알려졌다.
허버트 장관의 건의로 간호교육기금을 모집하여 간호사 양성소를 세움. 1860년 성 토마스 병원에 간호교육과정을 설치했다. 간호교욱의 새로운 전환을 가져온 두가지 의미 1.간호교육을 완전히 비종교적인 배경에서 교육적인 교율을 시키자는 점이다. 2.세계최초로 운영상 독립을 한, 완전한 기금으로 세운 간호학교다.
후반기 업적: 인도의 위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안에 착수,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 책을 집필 ‘병원에 관한 일들’, ‘간호에 관한 일들’ 적십자사 창설의 도움을 줌.
(1).학력

- 1942년 여수 출생
- 이화여자대학교 간호학 학사
- 국제 간호 대상

(2).약력
- 좋은 의자 김수진 이사장(서울 사이버대학교 총장)
- 한국인 최초의 간호학 박사
- 미국보스턴대학교(1978)
- 연세대 이화여대 교수
- 이화여대간호대학장
- 간호과학연구소장.대한 간호학회장
- 대한 YWCA 연합회 부회장
- 한국 정신보건 전문간호사 회장
- 한국 호스피스피스 협회장
- 현재 아프리카 말라위
- 대한간호대학에서 교장

★ 제 41회 폴로렌스 나이팅케일 기장상 수상
플레론스 나티팅게일 기장상 수상(간호계의 노벨상)
스위스의 적십사 국제 위원회로부터 간호분야에서 공적이 큰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가장으로 세계최고의 영예이다
나이팅케일탄상의 100년을 기념하여 1920년부터 2년마다
나이텡케일 탄생 기념일은 5월 12일에 수장자를 발표 되고 있다

★대표서적 :사랑의 돌봄은 기적을 만든다 소개:

한국의 나이팅게일 김수지의 감동 에세이 『사랑의 돌봄은 기적을 만든다』. 간호계의 노벨상인 ‘국제간호대상’을 수상한 김수지가 간호철학을 갖고, 45년 동안 묵묵히 걸어온 삶을 소개한다. 진정한 간호란 무엇인지, 다른 사람을 돌보고 봉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며, 환자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돌보는 감동 스토리를 펼쳐냈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 남자를 간호한 부인을 보고 감동받아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어린 시절부터, 간호의 큰 뜻을 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난관을 헤쳐나간 간호사 시절까지 모두 담았다.

★간호사가 된 동기:
간호사의 꿈을 꾼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죽어가는 사람을 밤새 간호해 살려 낸 간호사를 보며 큰 감동을 받아 자신도 사람을 살리는 간호사가 될 것을 결심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으로 환자의 아픈 몸 뿐 아니라 그들의 인생까지 회복시키는 삶을 살았다.

◆ 김수진 선생님이 말한 간호 10계명

1. noticing (신경쓰기)

2.paricipating(동창)

3.sharing(나눔)

4.active listening(경청)

5.companioning(동행)

6.complimening(칭찬)

7.comforting(안위)

8.hoping(희망)

9.forgiving(용서구함)

10.accepting(수용)
1805년 자메이카에서 흑인 어머니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약초와 민간요법을 배워 어릴적부터 의학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도와주며 성장한다. 그러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다친 병사들을 구호하기 위해, 간호단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빈번히 거절당한다.

그러다 그녀는 외지의 군사병동에서 조차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녀 스스로 사비를 털어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최전방에 치료소를 차렸다

그녀는 홀로 많은 병사들을 간호해주고 치료했지만 열악한 환경과 비위생적인 환경, 부족한 자금으로 그녀의 노력은 더욱더 힘들어져 갔지만 그녀는 약초를 찾아 다친 병사들과 콜레라 환자들을 치료해갔고, 또 자신의 사비로 먹을 음식을 사서 병사들의 치료와 회복에 많은 노력을 가했다.
그렇게 크림전쟁이 끝난 후 그녀의 존재는 백인 간호사였던 나이팅게일에 의해 가려졌고, 전쟁의 최전방에서 군사들을 치료하고 돌본 그녀의 존재는 그녀가 치료해준 군사들 이외에는 기억해주는 이없이 그녀는 남은 생을 보냈다.
그러다 그녀가 치료해준 병사들이 영국의 연합군에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녀는 영국,터키, 프랑스의 훈장 3개를 가슴에 달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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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간호협의회 창시자 펜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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