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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정기때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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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임 여자

on 15 Nov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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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일제강정기때 독립운동가

유관순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학교 고등과 1년생으로 만세시위에 여하였다.1919년 4월1일 아오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헌병에 의해서 부모님이 피살 당하고 유관순은 주모자로 잡혀 고된고문을 받았지만 끝내 굴하지 않았다.징역 3년형을선고 받았다. 일제법률에 의하여 일제법관에게 재판받음이 부당함을 역설하다가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틈만 있으면 독립만세를불렀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데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1920년 17세의 나이로 내 옥사하였다.
일제강정기일때 독립운동가
유관순이받은 고문
유관순의생애
유관순에대한 동영상
유관순을 본받을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유관순의 애국심을 본받아야 한다.

유관순의 명언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잊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유관순(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업적
유관순이 죽은 이유
가혹한 고문과 영양실조로 유관순은 끝내 숨지고 말았다. (1920년9월28일)
유관순
조선사람들은 일본인 때문에 수많은 고문을 당했다.
1904년12월16일:유중권의 딸로 태어남1911년 :아버지가 천원에 흥호 학교를 세움
1916년:선교사 부인의 도움으로 사촌언니 애다가 다니는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입학함1919년:독립만세운동을 주도. 부모가 일본헌병의 총탄에 사망.헌병대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함
1920년:10월 12일 아침, 병든 몸을 일으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세상을 떠남.


1.채찍 2.입찢기 3.발바닥 가죽버기기 4.달군 인두로 허벅지 지지기 5.뜨거운물 붓기 6.전기고문 7.밥에쇳가루랑 모래를 넣어서 먹였다.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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