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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을 둘러싼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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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김

on 24 Dec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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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자원을 둘러싼 분쟁

자원을 둘러싼 분쟁
아부무사 섬
이란,아랍에미리트(UAE)가 원유 수송 기지를 두고 분쟁을 하는곳
동중국해
- 세계 5대 자원 분쟁지 중 하나
기니 만
앙골라, 적도기니, 나이지리아, 콩고, 가봉(유전지대영유권 다툼)
원인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분쟁 해역에 4군데의 가스전(춘샤오,찬슈,톈와이톈,돤차오)이
있는데 면적이 남한의 22% 정도 이며 천연가스와 석유가 72억
톤이 있다.

이는 중국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150억톤)의 절반정도이다.

중국과 일본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다르다.

"우리 땅과 연결된 대륙붕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뻗어있다.이곳을 EEZ 경계선으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스전은 당연히
모두 우리의 것이다."

"말도 안된다. EEZ는 마땅히
양국 해안선으로부터의 중간선을
잡아야 한 다. 이 경우 EEZ가 가스전을 양분하며 지나게 된다.
이 때문에 양국은 우선 EEZ 경계선 협상부터 해야 한다."

진행과정
1968년, UN, 동중국해에 석유 매장되어 있다는 조사보고서 발표

1969년, 일본, 데이코쿠석유회의가 시굴권(특정한 광구 안에서 어떠한 광물을
시험적 으로 캐낼 수 있는 권리) 신청

1971년, 중국, 외교부 성명을 통해 조어도 (댜오위다오)열도 영유권주장

2004년 6월, 일본, 중국에 동중국해 유전 공동개발 요구 → 중국측 거부

2004년 8월, 중국,
춘샤오천연가스관
부설공사 시작

2005년 2월, 일본, 중국 춘샤오 유전개발이 일본 자원 훼손 우려있다며
개발중지 요구→ 중국측 거부

2005년 7월, 일본, 데이코쿠석유에 천연가스 탐사 및 개발 승인

2005년 9월, 중국, 텐와이텐 가스전에서 생산 시작

해결방안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양보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굽히지 않고 맞서게 된다면 이 분쟁은 쉽게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인
아부무사는 적은 면적에 인구도 2,038명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원유매장량과 더불어 페르시아만의 관문인
호르무즈
를 통하는 선박은 반드시 아부무사를 거쳐야한다. 이러한 점으로 이란과 아랍 에미리트(UAE)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영유권을 주장하여 분쟁이 발생하였다.


*
호르무즈
: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협으로 중요한
원유 수송로
진행과정
아부무사 분쟁의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은 1971년 11월 아부무사 섬에 대해 샤르자 토후국과 공동으로 주권을 행사(북부는 이란, 남부는 샤르자 토후국이 관할권 행사)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협정에서 이란 군대의 주둔과 매장된 석유로부터 나오는 수입의 공유를 인정하였으며, 연간 석유 수입이 약 700만 불에 도달할 때까지 이란이 샤르자 토후국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양측은 또한 아부무사 섬 주변 12마일을 영해로 인정하였다. 이란은 아부무사 섬에 영유권을 라스 알 카이마 토후국에게 요구하였으며, 협상이 실패하자 그 섬들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그러나 라스 알 카이마 토후국은 영국군의 철수와 함께 보호 세력이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에 이란의 강제적인 지배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1년 12월 아랍토후국연합(UAE)이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된 연방국가로 독립하였다. 그렇게 됨과 더불어 당시까지의 이란과 각 토후국간 영유권 분쟁은 이란과 아랍토후국연합간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이란은 마침내 1992년 3월 아부무사 섬을 완전 장악하였고, 아랍토후국연합은 4월 자국 주재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대사에게 이란의 그와 같은 행동을 설명하였다.

1992년 9월에는 이란과 아랍토후국연합이 분쟁을 빚어온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 후 한 달 후인 10월 이란은 아부무사 섬에 미사일기지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이후 동 분쟁은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1998년 양측이 도서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합의한 바 있다.

이란과 UAE 간의 갈등은 직접적 충돌보다는 이란과 미국 간의 긴장관계의 연장선에서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이란이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추진에 반발하여 원유 해상물동량의 1/3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위협을 하자, UAE과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새로운 송유관을 가동하고 미 해군의 걸프지역 군사력 추진배치에 협력하는 등의 간접적으로 이란에 타격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과 UAE간 무력충돌 가능성은 낮으나,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해 미국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UAE를 비롯한 걸프 지역 국가와 이란의 긴장 수위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해결방안
최근 이란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에 UAE는 이란에 대한 금융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으로 하여금 이란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UAE를 제외한 아랍국가들도 이란의 지역적 패권 추구와 핵 개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앞으로 ‘이란의 점유 지속과 UAE에 의한 국제사회에의 호소’라는 잠재적 분쟁 성격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란이 핵 개발을 지속하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에 UAE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경우, 이란이 UAE를 위협하는 군사행동을 시작하고, 국제사회가 이에 개입하는 형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모든 문제를 직접대화를 통하거나 국제법률재판소 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 분쟁을 멈출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니만이란?
적도 근처 ‘로페즈 곶’에서 ‘팔마스 곶’까지 아프리카 대륙 서해안에
위치한 대서양의 해역이다.
원인
불명확한 해양 국경과, 밑에 매장되어 있는 유전의 등장으로
분쟁이 일어났다.
기니 만
*1990년대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 이후 '새로운 중동'으로 각광
(사회적 관심이나 흥미)받고 있음.

*하루 470만 배럴(1 배럴 -> 158.9 리터)의 원유가 생산되고 원유
매장 량만 240억 배럴에 이른다.
과정
15세기 - 제국주의를 찬양한 서양 열국에 의한 아프리카의
식민지화.

19세기 - 아프리카 분할 식민통치 결정.

세계대전 - 아프리카 독립운동 및 서양의 침체 상황에 의한
식민지 탈피

20세기 이후 - 점차 기니 만 밑에 매장되어 있는 유전이 들어남
-> 불명확한 해양 국경으로 기니 만 연안에 위치한 여러 국가
(앙골라,카메룬,콩고,가봉,적도기니,나이지리아 등)는
서로의 영유권을 주장.
1. 강대국의 개입으로 지역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2. 나이지리아의 정정 불안 심화와 서아프리카국가들이 부패 문제로 정국이 혼란해지고, 석유 이권을 둘러싼 싸움이 일어난다.
->국제적, 국내적으로 분쟁이 증가하여 유전은 국민들에게
또 다른 저주가 될 것이다.
결과(예측)
해결 방안
기니 만 주변 지역 국가들이 현재 공동개발 지역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해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좀 더 심화시켜야 한다.
카메룬
나이지리아
두 나라는 바카시 반도의 영유권을 놓고 수십 년간 갈등과 반목을 거듭되었다.
바카시 반도는 기니만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기니만에 위치하고, 상당량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고,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황금어장(조경수역)으로서 영국과 독일이
서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를 분할할 때, 양국 간 국경을
해안선까지 연장하지 않은 것이 분쟁의 발단이 되었다.
원인
ex)
결과
그린트리 협정을 체결하면서 평화적 해결이 가능했으나
나이지리아 의회는 협정이 무효임을 선언, 그러나 정부는
협정의 이행에 계속 주력하였다.

-> 나이지리아가 공식적으로 통치권을 카메룬에게
인도함으로써 영토분쟁이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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