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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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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전

on 12 Dec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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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위인들

Choice 1
Choice 2
2. 안창호에 대하여...
Choice 3
3. 안중근에 대하여...
Choice 4
★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위인들~! ★
1. 김구에 대하여...
4. 유관순에 대하여...
김구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
하여 이준, 이동녕과 함께 상소를 올리고 1909년에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지휘
하였다.
1910년
신민회에 참가
하고, 1911년에
105인 사건으로 체포
되어 종신형을 받았으나 감형되어 1914년에 출옥되었다.
3·1운동 후에는
상하이로 망명
하여, 임시정부가 충청으로 옮길 때 이를 통솔했으며, 한국광복이 되어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반탁했다. 그 후, 1945년
8·15 광복을 맏아 귀국하여 반탁운동을 지휘,민주의원 부의장 , 민족통일 본부 부총재를 지냈다.
1948년 남한만의 총선거를 실시하라는
유엔의 결의에 반대
하여, 통일 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안
, 평양에 가서
정치회담을 했으나

실패
하고 돌아왔다. 김구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노력하다가 반대파의 안두희에게 암살되었습니다
안창호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
하여 우리민족에 긍지를 알리는데 힘썼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의 농장이나 오랜지농장들을 만들어 한국인들에게 미국에서 잘살수있도록 도와주었다
. 1907년에는
비밀조직 신민회를 조직
하였다. 안창호선생은
대성학교를 설립
하였는데 이는 평양에 세운것으로 청년들에게 고등교육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리고 그는
언론활동
도 했다. 신민회에서 운영하는
대한매일신보를 발간
하였다. 당시 영국인 베델이 운영하는 이 신문은 발행인이 영국인으로 인해 더많은 민족기사를 쓸수있었다. 그는
청년학우회를 새워 청년들을 키우는데 힘썼고 한일 합방이후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국무총리등을 맡아 열심히 일했으며, 한국 독립당을 창당했지만 적발되어 그후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다가 돌아가셨다
.
안중근

대한제국의 교육가, 독립운동가, 대한의병 참모중장
이다.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
해, 독립운동에 투신
했다. 이어
삼흥학교를 세우고 돈의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힘쓰다가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
하였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상 코코브쵸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
하였다.
곧바로 체포되어 일본 정부에 넘겨져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해 3월 26일 처형되었다.
유관순
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학교 고등과 1년생으로
만세시위에 참여
하였다. 1919년 4월1일
아오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헌병에 의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 당하고 유관순은 주모자로 잡혀 고된고문을 받았지만

끝내 굴하지 않았다
.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이에 불복,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 항의하고, 일제법률에 의하여 일제법관에게 재판받음이 부당함을 역설하다가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에도 틈만 있으면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악형을 받았다. 불굴의 투혼으로 계속 옥중항쟁을 전개하다가 1920년 17세의 나이로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지금까지 저희에 발표를 보고,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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