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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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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n SHIN

on 29 April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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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풍속화

풍속화
- 풍속화를 통해 본 조선 복식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풍속화란?
-풍속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생활상을 담은 그림.

-당대의 풍습이나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삶의 모습을 주된 소재로 한 것.

-풍속화 속에는 신앙, 종교, 정치, 생활, 사상 등 삶의 온갖 모습이 펼쳐져 있음.


01. 풍속화의 개념
김홍도 [1745 ~ 1806?]
김홍도의 '우물가'와 '빨래터 (18세기 후반) '

1. 저고리의 단소화 경향
저고리의 단소화 경향은 어느 한 계층에서만이 아닌 전반적인 사회현상. (단오풍정)
처음에 저고리는 허리 아래까지 오는 긴 모양이었는데, 몽고 복식의 영향과 유행을 점차 짧아짐.
소매가 좁고 짧은 가슴의 삼회장저고리에 속옷을 여러 겹 껴입음.

김홍도의 '자리짜기'에 나타난 서민 복식
조선시대의 화가.
영.정조의 문예부흥기부터 순조 연간 초기에 활동.
도화서 화원이 되어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 잡음.
모든 장르에 능하였지만,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김.



김홍도의 '대장간'에 나타난 천민 복식
대장장이 (천민)
낫가는 장인 (천민)
바지와 저고리 차림
흰색의 옷을 입고 머리에는 수건을 감싸듯이 천을 메었으며 저고리의 소매는 길고 옷깃은 동정을 달았으며 옷폭은 일하기 편하게 넓고 옆이 트임.
바지 앞에는 주머니를 달고 있으며 긴 바지에 짚신을 신음.
더운 대장간에서 반팔을 입지 않은것은 몸을 보호하기 위함.
저고리의 옷깃에는 동정이 없이 둥그스러운 깃을 이루고 있으며 안쪽깃이 좀더 깊게 여며져 있음.
옷고름의매듭을 옆으로 깊게 여미므로 여러 주름이 생기며 상의는 옆이 트여 활동하기 편하도록 되어있음
대장장이와 마찬가지로 대장간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긴 옷을 입고 주머니를 차고 짚신을 신고있음.

창옷. 소매가 넓은 옷으로 무가 없고, 양옆이 완전히 터졌으며 소매는 두리소매. (창옷은 중치막, 소창의라 불리며 상류층은 집에서나 활터나 야유회 때 입었고 외출 때에는 겉옷의 밑받침 옷으로 입었고, 하류층에서는 겉옷으로 입음.)

옷감 - 상류층은 사나 명주, 하류층은 포나 목면 사용.

색 - 백색 ·흑색 ·청색 ·옥색

관모 - 사방관 (망건과 갓으로 머리를 정제하는 일이 기본 예절. 초립은 가는 대나 나무껍질을 엮어 만들어 양반과 상민이 함께 착용했고 흑립은 말총으로 만들어 상류층에서만 착용했으나 중기에는 천민을 제외한 모두가 평등하게 씀).

김홍도의 '장터길'에 나타난 상인 복식
신윤복 [1758 ~ ?]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양반층의 풍류와 남녀 간의 연애, 기녀와 기방의 세계를 도시적 감각과 해학으로 펼쳐 보임.
가늘고 유연한 선과 원색의 산뜻하고 또렷한 색채사용. 현대적인 구도와 독특한 상황 설정으로 조선시대 풍속화의 영역을 보다 다채롭게 넓혀 줌.


상인으로 보인는 남자가 머리에 쓴 것은 삿갓.
갈대나 대오리로 거칠게 엮어 비나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쓴 모자.
겉은 주로 대오리를 엮어 만들엇으며, 안에는 미사리를 넣어 머리에 고정되도록 함.
부녀자들이 썼던 삿갓도 있어 부녀삿갓이라 분류되는 것도 있음.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되던 갓(15세 이후 관례를 치르고 성인이 된 후부터 갓을 씀).

신윤복의 '미인도'에 나타난 여자 복식
소매가 좁고 짧은 가슴의 삼회장저고리.

속옷을 여러 겹 껴입어 배추처럼 부풀린 치마는 하후상박(아래는 두텁게 위는 얇게)이라는 상의는 좁고 하의는 풍성한 복식미를 나타내고 있음.

앞에 늘어진 흰 치마끈은 당시에 유행하던 복식이었음.

가체(여자의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려고 덧 넣은 땋은머리)

신윤복의 '연소답청'에 나타난 서민 여자 복식
연두색 저고리를 입은 기녀를 보면 품과 소매가 좁은 것을 알 수 있음.
쓰개치마에 달린 흰 옷소매는 두루마기의 형태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장옷’으로 주로 서민 부녀자들의 쓰개.
길고 풍성한 치마를 저고리 위로 걷어 올려 큼직하게 주름잡듯 접고 허리띠로 매어 고정시킴.
이러한 착장법은 활동을 용이하게 했을 뿐 아니라 치마의 형태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려 하기 위함.

오른쪽 하단의 여인을 보면 기녀 뿐만 아니라 하류층의 부녀자도 가슴이 다 드러날 정도로 짧은 저고리를 착용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음.
이를 통해 저고리의 단소화 경향이 어느 한 계층에서만이 아닌 전반적인 사회현상임을 알 수 있음.

기녀들의 바지는 하류층의 바지에 비해 폭이 넓었음을 알 수 있음.(바지는 치마의 실루엣을 풍만하게 하기 위한 역할을 함. 그래서 기녀들이 폭이 넓은 바지를 입었으며, 풍성한 치마를 위해 많게는 10여개의 속옷을 입음.)
차액:'가리마'라고도 불리며 검은색 사각판의 모양.
기녀,의녀 등 특수 계층에서 유행했던 쓰개.
치마 속 치장된 누비바지를 입고 있음.
치마를 높이 올려 입으면서 바지가 노출됨에 따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녀들은 바지에 장식성을 더함.

기녀의 쓰개치마 : 신분상승의 욕구로 상류층 복식을 모방.

갓과 비슷한 모양으로 원형에 크기는 어깨를 넘을 정도로 넓었음.
상류층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기녀와 같은 하류층에서만 사용했던 쓰개.

신윤복의 풍속화에 나타난 기녀 복식
신윤복의 '단오풍정'
신윤복의 '청금상련'
신윤복의 '월야밀회'
신윤복의 '야금모행'
신윤복의 '전모 쓴 여인'
김득신[1754∼1822]


조선후기의 화가.
그는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졌으나, 풍속화 이외에 도석인물을 비롯하여 산수 ·영모 등도 잘 그린 것으로 알려짐.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풍속화는 그 경향이 두드러 짐.

김득신의 '투전도'를 통해 본 중인복식



  중인의 계급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투전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모습
실내에서 투전을 즐기고자 탕건을 쓰고 도포에 답호를 걸치고 있으며, 특이하게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입은것- 탕건(평상시 망건의 덮개로 쓰거나 외출 시 갓 아래에 받쳐 썼다), 저고리, 바지, 도포 (조선시대 선비들이 평상시 입던 겉옷. 형태는 요즘 두루마기와 같이 곧은 깃에 무를 달았으나, 소매가 넓고, 뒷자락을 더 댄 것이 특징),
답호(형태는 옷깃은 곧은 깃이고 반소매가 팔꿈치에 이르며, 넓은 섶이 가슴을 덮어 겨드랑이 밑에서 여며지며 옷 길이는 발목까지 오는 긴 길이로 옆트임이 있다.),
안경 (안경테는 주로 쇠뿔을 가장 널리 사용하였으며, 간혹 동물의 뼈나 거북의 등껍질, 놋쇠를 가공하여 쓰기도 하였다.)
 
 
 

송하기승


소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에 열중하는 모습

승려 - 머리에는 고깔을 쓰고 목에는 염주를 하고 있는 승려의 모습으로 흰 속 저고리 위에 납의를 입었는데 보통 납의라 함은 낡은 헝겊을 모아 기워 입었다는 뜻으로도 쓰이나 위와 같이 중이 입는 옷을 가르키기도 한다.
발에는 흰 버선에 짚신을 신고 있다

고깔(천이나 종이를 배접하여 꼭대기를 뾰족하게 만든 것),

납의(승려들이 입는 회색 웃옷, 사람들이 내다버린 헝겊 등을 모아 기워 만든 옷)

저고리, 바지

염주,(여러개의 보리자를 실에 꿰어서 염불할 때 쓰는 물건)

흰 버선(버선은 발을 따뜻하게 하고 무명 광목 같은 것으로 모양을 맵시 있게 만들며 ‘족의(足衣)’라고도 한다)

짚신(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신발로 실용성에 있어서 재래 신발의 대표. 재료는 짚으로 만들고 있으나 삼이나 삼으로 꼰 노끈도 사용하였고, 왕골이나 부들로도 만들었다)

기녀와 선비 - 작자미상

  길거리에서 마주친 기녀와 선비를 묘사한 것.

양반- , {조선시대 한량의 대표적인 모습 :부채, 두루주머니 (염냥이라고 일컬어지며, 일반적으로 선비들이 가장 많이 지니는 주머니였고 그 색조는 귀주머니와 같으나 모양이 더 둥글었다),노리개(허리에차는 장신구)}

갓-흑립(흑립은 패랭이, 초립 등의 단계를 거쳐 정립된 조선시대 갓의 전형으로 사대부나 서민 모두에게 널리 사용되었으며, 섬세하고 미려한 형태로 우리나라 사람의 고유한 멋을 잘 나타내는 의관이 되었다. 상투 튼 머리에 망건과 탕건을 쓰고 그 위에 흑립을 쓰는데, 외출 때나 의례행사 등 의관을 갖추어야 할 때 사용되었다.)

도포(조선시대 사대부 남자들이 즐겨 입던 겉옷으로, 뒤트임이 있으며 그 트임을 덮어주는 뒷자락이 있는 겉옷이다. 도포를 입을 때는 허리에 세조대라고 하는 실로 짠 가는 허리띠를 두른다.외출시에는 갓, 평상시에는 사각 형태의 평평한 동파관이나 방관등을 각각 쓴다. )

혜(신목이 없는 모든 신발)
김득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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