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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 of 을지문덕과 살수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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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hyun cho

on 14 Jun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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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Copy of 을지문덕과 살수대첩

을지문덕과 살수대첩
살수대첩의 의의
612년 (영양왕 23) 고구려가 중국 수나라의 군대를 살수 (지금의 청천강) 에서 크게 격파한 싸움.
싸움의 승리로 고구려의 위상과 사기가 높아졌다. 수나라를 멸망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개설
살수대첩을 비롯한 고구려와 수나라의 일련의 충돌은 4세기 이래로 분열을 거듭하던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함에 따른, 동아시아 세력권의 재편성과정에서 나타난 충돌의 하나였다.
역사적 배경
581년 고구려와 수나라는 외교사절을 파견하는 등 표면적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지만 수나라가 통일제국을 수립하고, 주변세력에 대한 압력을 가하였다. 때문에 요서 방면으로의 진출을 노리는 고구려와 충돌을 빚게 되었다. 598년 (영양왕 9) 에 일어난 수나라의 제1차 침공 이후 양국은 다시 평화관계를 유지하는 듯하였으나 양국의 대립은 여전했고, 수나라는 고구려 침략준비를 추진하였다. 고구려 또한 국경지대를 정탐하고 경계태세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돌궐과 고구려가 은밀히 접촉하고 있음을 알게 된 수나라 양제는 백제·신라의 충동을 받아 마침내 고구려에 대한 대규모 침략을 결정하였다. 이에 군수물자를 대규모로 제작하는 등,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구려 침공준비에 시달리던 산둥지역을 중심으로 한 군도의 봉기 등 많은 무리가 따랐지만, 양제가 고구려침공을 강행한 것은 그만큼 고구려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았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경과와 결과
612년 수나라는 두 번째의 고구려침공을 개시하였다. 수나라 육군에 지원된 병력은 모두 113만 3800명, 군량운반자의 수는 정규군의 배가 되었으며, 군대를 출발시키는 데도 40일이 걸렸다.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으로 수나라는 30만5천명의 별동대를 편성해 고구려의 평양성으로 직공해 대세를 결정지으려 하였다. 하지만 별동대는 겨우 평양성 30리 지점에까지 진군하였고,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더이상의 진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고구려 주장 을지문덕은 이러한 약점을 알아채고 거짓항복을 청해 퇴각할 구실을 만들어주는 척하면서 수나라 군대를 추격하였다. 퇴각하는 수군이 살수를 건너고 있을 때 이들을 배후에서 공격해 큰 전과를 올려 요동성까지 살아간 수나라 병력은 겨우 2,7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처럼 막대한 손실을 입은 수는 요동성 공격을 중단하고 총퇴각함으로써 두 번째 침략도 실패로 끝났다.
을지문덕
612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터진 수나라와의 전쟁은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을 낳았다. 살수대첩의 지휘관이었던 고구려의 장군 을지문덕이다. 을지문덕은 침착하고 굳센 성격에다 글 짓는 솜씨도 비범하였다. 큰 나라의 군대 200만 명을 맞이하면서도 전혀 겁내지 않았고, 힘만으로 무찌를 수 없음을 알아 온갖 작전을 동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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