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 마르크스주의(Western Marxism) 문화이론들의 공통점
문화는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독자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함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왜 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함
휴머니즘적 요소가 강력하게 작동(경험,의식,자유,소외,창조성,행복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탄생
- 프랑크푸르트대학에 있던 사회조사연구소(1920년대)에서 활동한 독일지식인 집단
- 가치중립적인 사회조사와 실증주의 분석을 비판정신을 결여한 목적없는 활용이라고 비난(형식합리성에 대한 비판)
- 기술이 대중문화의 재생산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
- 대중문화의 기능을 분석
- 정신분석(프로이트)의 영향으로 인간의 섹슈얼리티와 인성의 형성에 관심
- 진정한 자유에 대한 관심
발터 벤야민
"예술작품들을 사진으로 복제하는 작업이 예술의 기능에 끼치는 영향은 체험을 “카메라의 노획물”로 만드는 사진을 다소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예술로서의 사진 vs 사진으로서의 예술
'기술복제(Mechanical Reproduction)'의 시대?
대량 복제가 가능한 기술력을 생산방법으로 삼는 시대
발터 벤야민: 예술복제에서 기술복제로
19C말~20세기 초: 사진과 영화
1960년대 이후: 텔레비전, 라디오
1990년대 이후: 인터넷
발터 벤야민: 초기 사진의 아우라
1) 유일물 : 초기 사진의 경우 기술복제임에도 대량복제는 아니었다. 초기 사진에는 아우라가 있었다. 초기 사진 조건 자체가 대량 복제할 수 없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2) 노출시간: 초기 사진은 노출 시간이 길다. 모델은 회화의 모델과 같이 오랫동안 카메라 앞에 있어야 했고, 사진사는 화가처럼 사진의 구도를 잡아야 했다. (구성적 사진)
3) 시선의 마주침 : 초기 사진의 아우라적 체험은 그것이 노출이 길고 인물사진이어서 시간의 종합이 관여하게 되기 때문이며, 모델과 사진사 사이의 모종의 연관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아우라의 개념
사전적 의미
: 영기, 신비스러운 효력, 신비스러운 분위기, 어떤 사람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정기.
대부분 종교적 의미
철학적 의미
: "아우라란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멀리 떨어진 어떤 것의 일회적 현상이다."
특정된 시공간에서 일회적으로 경험하는, 종교가 사라진 시대의 종교감정.
전통적인 예술작품의 본질로도 많이 간주됨.
아우라의 특징
일회적 현존성, 진품성, 원본성
"가까이 있어도 먼 곳의 일회적 현상" 즉 복제품에서는 불가능한 현상
시선을 되돌려 줄 수 있는 능력
: 대상과의 교감과 도취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
아우라의 발생기제
: 대상의 객관적 속성으로부터 기인하여 주체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나타남
아우라의 특징
아우라의 몰락
20세기 예술의 변혁
- 회화의 대상성이 사라지고 추상회화가 등장
- 음악의 화성이 사라지고 무조음악이 등장
-연극의 인과관계가 사라지고 부조리극이 등장
- 시의 의미가 사라지고 무의미시/구체시 등장
“찰나적인 영상을 고정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독일에서 철저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와 같이 불가능한 일일뿐더라 그런 것을 바라는 마음 자체가 이미 신성모독이다.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신의 상은 어떠한 인간의 기계를 통해서도 고정시킬 수 없다.
신적인 예술가가 신성의 영감에 감동되어 신과 같은 인간의 특성들을 지고로 신성한 순간에 그의 천재의 고귀한 명령을 받아, 어떤 기계의 도움도 받지 않으면서, 재현할 엄두를 낼 수 있을 뿐이다."
-라이프치히 시보
Mondrian, New York (1942)
Kandinsky, Composition 8 (1923)
Stéphane Mallarmé , Un coup de dés (1897)
기술복제시대의 아우라의 몰락
기술복제시대 이전: 사진복제는 회화의 복제하여 기록, 혹은 원본을 보조했다.
기술복제시대 이후: 그러나 이제 화가는 사진사의 눈을 학습한다. 사진의 보급으로 사람들의 지각방식이 카메라의 지각방식과 같아지고 화가는 인간의 눈이 아닌 기계의 시선을 쫓는다.
=> 복제를 흉내내는 원본의 몰락
아우라의 몰락 이후의 지각방식
기술복제시대 예술(사진, 영화)
아우라의 몰락, 전시가치의 대상
정신산만의 유희
전통적 예술(회화, 조각)
아우라, 숭배가치의 대상,
관조적 침잠
예술작품이 숭배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 경험되기 위해서는 몰입과 침잠을 통해 작품과 순간적 동일화가 일어나야 한다.
대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 불가능
작품 앞에서 무릎꿇고 숭배하는 대신, 그저 보고 듣고 즐기기 위한 감각적 대상으로 간주한다. 여기서는 정신을 집중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신을 분산하는 방식, 작품을 오락적 대상으로 여기는 방식이 된다.
결론적으로, 벤야민은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지각방식을 바꾸었고, 그에 따라 예술에 대한 지각도 전통적인 설명방식이 아닌 다른 설명방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이다.
영화, 정신산만한 비평가의 태도
카메라 테크놀로지
: 영화의 관중은 연극에서처럼 배우와의 직접적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들은 ‘비평가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대중의 태도
: 미술관의 감상자들은 오로지 눈과 정신만을 가진 존재로 예배를 드리는 태도로 침묵할 것을 강요 받지만, 영화관의 관람자는 ‘개별적 반응의 총화가 집단 반응’을 이룰 수 있는 자유스런 태도를 갖는다.
“정신산만한 비평가의 태도”
대도시 일상의 새로운 지각체험
영화의 지각
사고의 흐름은 영상의 변화 때문에 끊임없이 중단됨. 영화 속에서 폭탄처럼 밀려드는 영상의 흐름 경험 (충격효과)
대도시 일상의 지각
대도시에서의 일상 경험과 유사(가스등, 달리는 기차, 교통신호 등) 빠른 속도감은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스쳐 날아가도록 한다. '깊이'의 차원이 사라지고 파편적이고 파노라마적인 시각만 남는다. (인상주의 태동과 연관) => 산보자(플라뇌르)의 경험
현대적 시각 경험은 순간성, 불연속성, 파편성을 특징으로 한다.
몽타주, 영화의 충격효과
영화의 충격효과:
영화를 보는 사람의 사고의 흐름은 영상의 변화로 인해 끊임없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영화 속에서 포탄처럼 밀려드는 수많은 영상들의 흐름이 관객에게 주는 경험은 "충격 체험"이다. 이는 과도한 자극으로 우리의 심적 기관의 평형상태가 깨지는 경험을 말한다.
Ivan Mosjoukine Experiment, Kuleshov effect
몽타주의 환상체험:
몽타주는 영화의 최소단위인 숏들의 연결과 편집.
영화의 효과는 몽타주의 결과이다. 즉 영화제작소의 기계적 장치라는 이물질에서 벗어나게 될 현실의 순수한 모습은 하나의 특수한 처리과정, 즉 편집이라는 카메라의 조작을 통한 조립의 결과이다. 그것은 환상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충돌과 지적인 면모를 보일수도.
예술의 정치화인가, 정치의 심미화(예술화)인가?
정치의 심미화: 스펙타클 미학의 정점
레니 리펜슈탈, <의지의 승리> 관련 다큐
“Sderot Cinema”(2014)
https://tv.kakao.com/v/416070359
예술의 정치화:
영화의 오락성(충격체험훈련)이 아닌 예술성은 관중을 불쾌하게 함으로써 특정한 (정치적) 인식에 다다르는 도구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성비판: <계몽의 변증법>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는 대신에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계몽(Enlightenment)은 신화와 마법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서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또록 하는 "이성의 각성된 사유양식"을 일컫는다.
칸트: "계몽"은 인간은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 인간이 자신의 지성적 능력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지니는 것. 이성의 깨우침을 통한 진보적 사유이자 자율적 의지에 따라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힘.
아도르노: 칸트에서 더 나아가, 계몽이란 인간에게서 자연의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 자신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 이러한 이성의 힘은 마법이나 신화, 무지몽매함, 권위와 편견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토대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계몽을 가능하게 한 인간의 합리성은 이미 파국의 씨앗이 담겨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성비판: <계몽의 변증법>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는 대신에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아도르노에게 계몽은 자연의 위협에 맞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데서 시작. 즉 계몽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욕망.
그리하여 이성적 인간은 자연에 굴복하지 않고 자연을 지배하려함. 자연에 맞서는 대립적 관계.
어떻게 자연을 지배? 집단적 힘과 사회관계를 통해,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통한 사회지배양식을 발전시킴으로써 자연지배를 완성함.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의 폭압으로부터 벗어나기위해, 이제 인간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라는 사회체계 강화.
즉 이성의 힘으로 인간을 순종하게 만드는 사회적 통제와 구속을 완성시킴.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성비판: <계몽의 변증법>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는 대신에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졌는가?
다시 말해, 인간은 외적 자연의 지배자임과 동시에 사회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인간 자신 안에 존재하는 내적 자연을 이성적 통제 하에 복종시켜야 했으며, 내적 자연의 존재를 부인해야했다. (인간의 내적 자연: 육체, 환상, 욕구, 감정 등)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의 기쁨을 희생하고 단념하는 '이성적 통제'는, 나 자신에 대한 무자비판 폭력, 나 자신에 대한 철저한 자기검열.
인간의 자기보존
인간에 의한
사회지배`
인간에 의한
내적자연지배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
계몽에 의한 지배의 총체화:
인간에 의한 인간 자체의 말살
계몽의 변증법의 전개과정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성비판: <계몽의 변증법>
예술의 운명
오디세우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선원들은 노래의 위험만을 알 뿐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오디세우스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그를 돛대에 묶인 채로 내버려둔다."
아도르노에게 이것은 예술의 운명이다.
"살아남고 싶은 자는 회복될 수 없는 유혹을 들어서는 안된다. 그 유혹을 들을 수 없을 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사회는 항상 이를 위해 배려한다. 노동하는 사람은 건강한 몸과 집중된 마음으로 앞만 보아야 하며, 옆에 있는 것은 무시해야 한다. 그들은 기분을 전환하고 싶은 충동마저 그 이상의 노력으로 집요하게 승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실제적이 되는 것이다."
- <계몽의 변증법>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성비판: <계몽의 변증법>
예술의 운명
현대 노동자들의 삶을 은유하는 노젓는 부하들.
현대의 노동자들은 아름다운 예술(세이렌)의 향유로부터 소외된 채 매일 고역스러운 노동에만 종사해야 한다. 선원들이 자신의 노동을 향유할 수 없듯이, 노동자 또한 강압 속에서 절망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이라면 자발적인 자기 실현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반면 지배자였던 오디세우스는 노래를 듣고 향유한다. 그런데 세이렌의 노래는 목숨도 빼앗는 막강한 능력의 예술이었지만, 오디세우스는 이로부터 합리적 지략을 이용해 자기보존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래를 향유한다. 세이렌의 노래가 함축하는 위대한 예술의 유혹과 힘은 무하되고, 달짝지근한 동경으로 중화된다. 이제 예술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떠한 현실적인 영향력이나 실제적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다.
"세이렌의 유혹은 한갓된 관조의 대상, 즉 예술로 중화된다. 사슬에 묶인 자는 연주회에 참석하지만, 이후의 콘서트 방문자처럼 미동도 없이 경청하는 사람이 된다. 해방을 향한 감격스런 요구는 박수갈채처럼 희미하게 사라진다. ...예술향유와 노동은 서로 결별한다."
노동에서 면제된 자는 아름다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이제 행복은 노동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다.
계몽적 주체(오디세우스)의 자기보존은 자기를 부정하기(내적 욕망과 충동을 부정하기)를 통해 얻은 귀결이다.
결국 문명의 역사는 계몽적 주체의 <자기희생>이 내면화된 역사이자 체념의 역사이다. 계몽의 논리는 노젓는 부하들 뿐만 아니라 지배자도 소외되고 기형화되게 만든다.
즉 아도르노는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역할에 대한 신뢰를 포기함.
"신화 이래로 순종적인 프롤레타리아트들의 듣지 못하는 귀는 지배자의 움직이지 못함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노동자의 무능력은 산업사회의 논리적 귀결!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성비판: <계몽의 변증법>
동일성 원리의 총체적 지배
동일성 원리의 총체적 지배
개념적 인식(대상의 특수성 제거)
외적 자연의 지배
상품교환원리(노동의 질적특수성제거)
사회적 지배
동일성의 원리란,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을 주체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강제하는 지배원리. 이 원리가 바로 도구적 이성(베버의 목적합리성, 계산가능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이성)의 기저에 깔려 있는 원리이다.
동일성 원리를 통해, 한편으로 주체는 대상들의 고유한 차이를 무시하며 대상을 계산가능하고 대체가능한 것으로 파악한다. 다른 한편으로, 주체의 주관적 형식을 대상에 부과함으로써 대상으로 하여금 주체의 형식에 따르도록 강제한다.
내적 자연의 지배
문화산업으로서의 대중문화
이런 총체적 지배는 인간을 '기능'으로 전락시키고 개인의 자율성과 비판적 반성을 없애버린다.
지배 및 통제의 양식: 총체적으로 관리되는 사회
(즉, 전체주의적 사회질서. 아도르노는 후기자본주의를 '잠재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고 봄.)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비판: <문화산업론>
잠재적 전체주의로서의 후기자본주의 사회가 대중의 저항과 반발 없이 안정적인 이유?
대중문화가 아닌 문화산업!
"우리는 대중문화 옹호자들이 좋아할 의미를 처음부터 차단하기 위해,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이라는 낱말로 대체할 것이다. 대중문화 옹호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중들로부터의 자발적 문화나 현대적 형태의 민중예술일 것이다.
문화산업은 이와 같은 의미의 대중문화와 극명히 구별된다."
문화는 이제 일상과 대중의 표현이 아니라, 비즈니스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비판: <문화산업론>
문화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
"모든 것이 교환될 수 있는 것만큼의 가치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라 시장성이 예술의 가치를 결정한다."
예술이 상품의 지위를 얻게 되면서, 그것의 특수한 사용가치는 밀려나고, 교환가치 자체가 향유의 대상이 되고 물신화된다.
소비자는 값비싼 음악회의 표를 구매하면서 실제로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음악 그 자체를 좋아하고 숭배하기보다는, 연주회 입장권을 사기 위해 자신이 지불했던 돈을 숭배한다. 대중의 쾌감은 입장료의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증가한다. 그 음악은 더 고상하고 가치있는 것이 되고, 대중 또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배가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비판: <문화산업론>
문화산업의 특성 1: 표준화와 도식화
"오늘날의 기술적 이성이란 '지배하는 이성' 그 자체이다."
"영화나 라디오, 잡지는 각 분야에서나 전체적으로나 획일화된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화산업은 세계의 획일하를 촉진하는 대중기만의 매커니즘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비판: <문화산업론>
문화산업의 특성 1: 표준화와 도식화
"여러 유형의 인기가요나 인기배우, 멜로물들이 돌고 돌지만 실제로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처럼, 오락물들도 겉보기에는 내용이 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변화가 없는 반복일 뿐이며 세부사항들만이 대체된다." - <문화산업론>
대중음악의 표준적 구성원칙: 보통 32마디, 음역은 9도 내로 제한, 기본적 화성을 중심으로 전개. 몇 마디만 들어도 노래가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가능. 추측이 맞아떨어지면 행복감을 느낌. 친숙함에 기뻐함. <머니코드, 머니샷 등>
문화산업의 산물들이 사실상 공장 상품들처럼 표준적 도식에 따라 끊임없이 재생산된 것.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비판: <문화산업론>
문화산업의 특성 2: 사이비 개성화
" 대중문화에서 새로운 것이란, 새로운 것을 배제하는 것이다. 소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직 시험해보지 않은 것은 위험부담이 있는 것으로 배제된다...바로 그 때문에 모두에게 친숙한 것이지만 아직 존재해본 적 없는 무엇인가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만드는 말인 '참신한 아이디어', '신선한 무엇', '경이스러운 것'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들먹여진다." - <문화산업론>
문화산업은 대중에게 항상 새로운 것, 특수하고 개성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문화산업은 '참신' '창조'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달고 산다. 이것은 개성을 가장하는 사이비 개성에 불과하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비판: <문화산업론>
문화산업의 특성 2: 사이비 개성화
이제 문화산업으로 사람들의 여가시간은 획일적 생산물, '항상 동일한' 문화산업산물들로 채워진다.
이제 가치의 유일한 척도는 얼마나 이목을 끄는가, 또는 얼마나 포장을 잘하는가에 달려있다. 문화산물의 실제적 가치보다는, 마케팅이(심지어 노이즈마케팅이라도) 더욱 중요하다. (뮤비, 게임, 영화 마케팅)
이 모든 가짜 차이들은 "소비자들을 분류하고 조직하고 장악하기 위한 차이"에 불과하다. 이런 장악을 통해, 자본과 권력을 독점한 자들의 의도에 따라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산물들을 우리는 대량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인가가 마련되어 있지만, 그것은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가요무대도 있고 미스트롯도 있고 음중도 있지만 실상 이런 다양성과 차이는 어느 누구도 문화산업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통제하려는 생산자들의 의도의 반영이다. (수 백개의 채널은, 우리에게 미리 주어진 수준에 맞게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는 환상을 주지만, 그 수준은 동일하고 변함없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비판: <문화산업론>
문화산업의 효과: 상상력과 사유의 마비, 지배질서 순응기제, 허위의식
표준적이고 획일화된 문화산업은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반응만을 만들면서, 수용자의 적극적이고 반성적이니 사유를 위축시킨다.
대중은 별다른 정신적 노력 없이도 문화산업의 산물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잠시의 위안을 가질 수 있는 것에 기뻐하며 만족한다.
자동적 반응에 익숙해진 대중은 문화산업의 산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속에서도 어떠한 정신적 노력이나 긴장도 회피하려 들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정신적 불구가 되어버린다. 획일화된 산물처럼, 인간도 획일화된 채 재생산된다.
"즐김은 도피이며, 이 도피는 저항의식으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한다. 오락이 약속해주는 해방이란 '부정성'을 의미하는 사유로부터의 해방이다." "그것에 넋을 잃는 것, 자신의 것을 가진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의 빈곤하고 황폐한 삶을 보상해준다."
문화산업은 대중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힘', 동일성의 원리의 강제에 맞서서 비동일성과 (진짜) 차이를 생각할 수 있는 힘, 현실의 지배와 억압을 비판하고 부정할 수 있는 힘을 외면하게 만든다. => 사회의 지배질서에 순응하게 만드는 '사회적 시멘트' 역할을 한다.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에 대한 비판
그런데 대중은 항상 기만당하는가?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에 대한 비판
그런데 대중은 항상 기만당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