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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겐조는 1970년 파리에 입성한 지 5년 만에

문화복장학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티크 ‘정글 잽(Jungle Jap)’을 오픈하였다. 그는 앙리 루소(Henry Rousseau)의 이국적인 화풍을 연상케 하는 정글 그림을 내부에 가득 그려놓고

동양적인 요소가 믹스된 새로온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자금이 충분치 않았던 겐조는 새로운 원단을 구입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일본에서 사온 유카타(浴衣: 목면으로 된 홋겹 기모노. 여름철의 평상복이나 목욕 후 착용하는 의복)용 프린트된 실크와 면 원단, 주변 벼룩 시장에서 구입한 값싼 원단으로 옷을 만들었다.

그러나 예상치도 않게 첫 컬렉션 작품 중 하나인, 마의 잎사귀 문양의 일본 직물로 만든 헐렁한 셔츠가 1970년 6월 [엘르(Elle)]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그는 파리 패션계에 새로운 스타로 등장하였다.

정글 잽은 곧바로 젊고 패셔너블한 젊은이들의 아지트로 부상하였다.

With its abundant prints, vibrant color combinations and cultural influesnces from all over the wolrd, Kenzo offers a luxuriant and versatile world where spontaneity takes control.

welcome to the urban jungle!

Creation date : 1970

CEO: Eric Marechalle

Head office: 18, rue Vivienne, 75002 Paris, France

Website: www.kenzo.com

다카다 겐조

화려한 색상과 꽃무늬로 파리 패션계를 물들인 최초의 동양인 디자이너

정글 잽(Jungle Jap)

다카다 겐조는 1939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찻집에서 태어났다. 겐조의 아버지는 5번째 아이이자, 3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현명한 셋째 아들'이라는 뜻의 '겐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에 걸맞게 명석했던 겐조는 학과성적이 매우 우수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의 조용한 소년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또래 소년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누나들의 패션 잡지를 보는 것을 즐겼다.

패션 잡지 속 외국 모델처럼 눈이 큰 예쁜 여자아이의 그림을 그리고, 잡지 부록으로 온 패턴으로 옷을 만들면서 어린 소년은 패션의 세계와 그것의 본고장인 유럽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다.

문화복장학원 진학!

취업 성공!

겐조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고베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누나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함께 간 기모노 매장에서 꽃, 새, 나무, 풀, 산, 강 등 아름다운 자연이 그려진 교유젠(헤이안 시대에 교토를 중심으로 발달한, 견직물에 있어 최고의 염색 방법) 실크 원단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패션이 자신의 길임을 직감한 그는 대학을 중최하고 도쿄로 건너가 문화복장학원(Bunka Fashion College)에 진학하였다.

꿈에 그리던 파리에 도착ㅠㅠ!

1960년 겐조는 소엔 잡지 패션 컨테스트에서 소엔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졸업과 함께 미쿠라, 산아이와 같은 브랜드에서 기성복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기성복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은 젊은 고객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빠른 시간에 많은 디자인을 해내는 좋은 훈련이 되었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1965년 1월 겐조는 6주 간의 바다 여행을 마치고 파리에 도착하였다.

불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26세의 왜소한 일본 청년은 파리의 문화, 파리지엔, 파리의 패션에 압도되어 생면부지의 도시 파리에 남기로 결심하였다.

문화복장학원은 1958년부터 남학생의 입학을 허용하였는데, 겐조는 그 곳의 첫번째 남자 신입생이 되었다.

생계를 위해 도장일을 하고 학교에서는 준코 코시노(Junko Koshino)와 같은 재능있는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그는 3년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매일 새로운 디자인을 스케치하고, 디자이너 부티크와 잡지사를 찾아가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파리 패션계의 바닥부터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였다.

디자이너 루이 페로(Louis Féraud)의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그는 여러 백화점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시작으로 후에 ‘Relation Textiles’에서 니트 디자인 테크닉을 익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살던 도쿄의 아파트가 철거하게 되면서 거액의 보상금을 받는 행운이 찾아왔다.

이 보상금은 겐조가 항상 동경하던 유럽으로 향하는 여비가 되었다.

겐조는 편도 이등석 티켓을 구입하고 프랑스 마르세유로 가는 배에 승선하였다.

1968

1965

1958

1961

2000

2005

1970

1939

2010

1976

Kenzo

1970년대 중반 겐조는 이미 이브 생 로랑, 소니아 리키엘과 함께 파리 프레타 포르테의 주역이 되어 있었다.

그는 파리 기성복 조합의 멤버로 활약하면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1976년에는 미국에 진출하면서 비속어를 포함한 ‘정글 잽(Jungle Jap)’이 아닌 ‘겐조(Kenzo)’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빅 룩(Big Look)

“너무 큰 것이 곧 알맞은 사이즈다.”

Much too big is the right 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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