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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가요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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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abal 98

on 18 Ma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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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1960년대 한국가요의 특징

플라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60년대를 풍미한 대표 가수로 비애감을 잘 표현하여 '엘레지(비가)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애절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주목받은 이미자는 1964년에는 《동백아가씨》를 불러 국내가요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에서 35주 동안 1위를 기록, 25만 장이란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세웠으나 이후 왜색 가요 시비에 휘말렸다가 1987년에 해금되었다.
1965년에는 <흑산도 아가씨>, 1966년에는 <섬마을 선생님>을 발표해 크게 히트하기도 했다. 또한 1967년에는 <엘레지의 여왕>을 히트 시키면서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960년대 한국가요의 특징

전쟁의 상처를 딛고 차츰 사회적,경제적으로 안정되어 가고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시기이다. 미국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서양의 7음계가 정착되는 시기로 미8군에서 노래하던 가수들이 대중가요계에 등장하면서 이지리스닝의 음악과 트로트가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였다. 1960년대 발표된 노래들에선 전쟁을 딛고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만날 수 있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모든 자원이 서울로 집중되기 시작하던, 그 당시 서울은 이상과 욕망의 상징이었다.
패티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에 나타난 도시 서울은 꿈이 이뤄지는 희망의 도시다.

반면 지방을 소재로 한 노래들도 많았다. 서울이 이상향이었다면 지방은 소외된 현실이었다.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임을 그리워하며 애를 태우는 슬픔의 땅으로 묘사됐다. 이촌향도 현상이 심해지는 데 따른 부작용과 아픔의 반영이었던 셈이다.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춘천댁사공’ ‘서울이여 안녕’ ‘소양강 처녀’ 등에는 안타깝고 절절한 이별 이야기와 처연한 슬픔이 묻어 있다.

(참고:2014.12.5일자 경향신문 기사 '대중가요, 시대의 ‘그곳’을 노래하다')
동백 아가씨 (1964년도)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비밀 장소로 파고든다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의 거장 배호
배호(1942년 4월 24일~1971년 11월 7일)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60년대 후반에 〈누가 울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그는 1958년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해 1960년 부평 미군부대 Camp Market 관할 클럽 등에서 2년간 악단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하였다.
1967년 투병중에도 <돌아가는 삼각지>를 발표해 크게 히트 하였고, 연이어 <안개 낀 장충단 공원>도 크게 힛트함으로써 인기가수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으나 1971년 만 2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동백아가씨(1964)
한국 락의 거장 신중현
신중현은 1938년에 태어났으며 1955년 용산 미 8군 연예단에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58년 기타 솔로로서 처음으로 《히키신》이라는 앨범을 냈다. 영국에서 비틀즈가 막 활동을 시작하던 1963년경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시작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록 그룹에드 포(Add 4)를 결성하고 1집 《빗속의 여인》을 냈다. 이들이 만든 음악은 한국 최초의 창작 락 음악으로 기록되어 있다. 트로트 일색이던 1960년대 한국 가요계에 〈커피 한 잔〉 같은 곡을 만들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60년대를 넘어 70년대에도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많은 히트곡을 제작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동백 아가씨는 1964년 이미자가 부른 대한민국의 트로트 곡이다.
발표 당시 기록적인 인기와 함께 금지곡으로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사연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작곡자는 백영호, 작사자는 한산도(한종명)이다. 1964년 제작된 엄앵란과 신성일 주연의 동명 영화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져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했다. 당시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으로 이름을 알린 신인급 가수였는데, 이 곡이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어 ‘엘레지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미자의 수백 곡에 달하는 히트곡 가운데서도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대표곡이 되었다. 나중에 작곡가 백영호선생이 죽고나서 아들 백경권 씨는 "음반 제작 당시 '동백아가씨'라는 제목이 촌스럽다고 레코드사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부친께서는 직접 레코드판을 들고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을 찾아 홍보활동을 벌였다"고 백영호 추모 강연회에서 동백아가씨의 비밀 이야기를 밝혔다.

빗속의 여인 (1964)
누가 울어 (1967)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2 오정현
(조장)
20211 심기범
(이미자,패티김 조사 및 ppt제작)
20206 김지수
(배호 조사)
20205 김중혁
(신중현 조사)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이정표, 패티김
패티라는 예명은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패티김의 등장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지켜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스타가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이끌어 가는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해방 이후 최초로 일본에 진출하고 이어 미국무대에도 선 패티김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함께 따라다니는 가수이자 대중음악계의 이정표와 같은 존재로서 활동했다.

〈초우〉, 〈이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생명의 꽃〉, 〈서울의 찬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그녀는 2012년 은퇴를 선언하고 1년간의 이별 콘서트 투어를 통해 전국의 팬들과 이별을 고한 뒤, 2013년 10월 26일 55년 가수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서울의 찬가(1969)
길옥윤 작사/작곡
신중현 작사/작곡
한산도 작사/백영호 작곡
한산도 작사/백영호 작곡
전우 작사/나규호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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