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2반 1조 미술 프레젠테이션-
목차
1. 작자미상-라오콘 군상(BC175~BC150)
2.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32)
3. 프리다 칼로-상처입은 사슴(1946)
4. 터키색 메릴린-앤디 워홀(1962)
구성
1st. 작품 소개
2nd. 예술가에 대하여
3nd. 기타 작품관련 자료
-작품은 시대순으로 배치하였으며 작품(혹은 예술가)의 위치정보 및 시각자료 등을 인용하였습니다.
작가의 생애
터키색 메릴린
베르메르는 21살이 되던 1653년 델프트의 화가조합인 성 루가 길드에 가입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에 서명하고 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장인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베르메르의 유년기에 대한 정보는 많이 남아있지 않은 편입니다. 때문에 화가조합에 가입하기 위해선 6년동안 길드가 인정한 화가 밑에서 수업을 받아야한다는 규정에 따라 적어도 15살에는 그림을 배웠을거라는 추측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가 길드에 들어가기 전 수업을 들은 스승으로 레오나에르트 브라머, 제라르드 테르보르흐, 카렐 파브리티우스 등의 작가들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 또한 확실한 결론은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베르메르가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제자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19세기 이후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있을 뿐입니다. 미술사학자들은 베르메르가 도제 시절 위트레흐트와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 두 도시는 중요한 미술 중심지였고 베르메르는 암스테르담에서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폭 넓은 지식을 얻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베르메르는 길드에 가입한 후 어느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때문에 1662년~1663년, 1669년~1670년 두 번에 걸쳐 길드의 간부를 지냈습니다. 그는 길드에 가입하고 화가로서 독립하기 바로 전 카타리나 볼네스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당시 카타리나 볼네스는 신부 집안으로 베르메르와의 결혼을 반대하여 그는 볼네스를 쫓아 신교에서 가톨릭교로 개종했습니다.
두 부부는 무려 11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고, 베르메르는 화가로서의 활동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그는 부업으로 그의 아버지가 물려 주신 여관을 경영하였으며 그림을 감정하는 화상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베르메르는 작품 제작속도가 느린 편이었기 때문에 그가 남긴 그림은 약 40점에 불과하며 진위 논란 없이 확실한 작품은 유화 32점 뿐입니다.
그는 초기에 신화 등을 주제로 하는 역사화를 그렸지만 1650년 말부터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장르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베르메르의 장르화는 전형적으로 적은 등장인물이 나타나며 그 분위기는 고요한 편입니다. 대부분 여성이 등장하며 그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할 일을 하거나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앤디워홀-1962
팝아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네덜란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32)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으로,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소녀가 걸고 있는 진주 귀걸이그림의 초점으로 사용하였다. 헤이그의 마우리츠호이스에 전시되어 있으며, "북유럽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
페르메이르 특유의 미묘한 빛의 표현, 단순하지만 조화로운 구성, 선명한 색채가 특징이다. 빛의 효과를 사용하여 두 번 이상의 붓터치로 그려진 진주는 왼쪽 윗부분이 밝게 빛나고 있으며, 아랫 부분은 하얀 옷깃을 반사하여 부드럽게 비추면서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라오콘 군상
- (BC175~BC150)-작자미상
- 위치: 로마 바티칸 박물관
- 로마 시대 대리석 모각
라오콘 군상은
에게해 로도스 섬의 유명한 조각가인
아게산드로스, 폴리도로스, 아테노도로스가 합작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신화 속 인물인 라오콘의 최후를 표현한 헬레니즘시기의 조각이다.
이 조각은 1506년 로마의 한 농부가 포도밭을 파다가 우연히 공중목욕탕 유적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이 조각이 발견되었다. 발굴 당시 없었던 오른팔은 1905년 로마의 한 석공의 작업장에서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라오콘 조각의 잃어버린 팔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1960년경에 이르러서야 복원이 이루어졌다.
Side Sory
라오콘군상은 복제품이 아주 많은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우리가중점적으로 다룰 작품은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이다.
라오콘 군상은 그 작가가 불 분명하여 막연히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라오콘군상이야기의 주가 된다.
프리다 칼로의 생애
소아마비
교통사고
사랑의 배신
상처입은 사슴
사산
수없는 수술,육신의 고통
라오콘’은 트로이의 목마와 관련된 그리스 신화 이야기 조각이다.
신의 계시를 전하는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독뱀에 물려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받는 장면이다.
트로이와 그리스는 10 년 간의 지루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리스는 오딧세우스의 계략을 이용해 병사들이 숨은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로 보냈고 얼마 후 목마는 의혹에 휩싸인 채 트로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리스의 계략을 간파한 라오콘만이 트로이 시민들에게 목마를 경계하라고 소리쳤고 병사가 숨어 있는 목마의 복부에 창을 던졌지만 헛수고였으며 라오콘의 이러한 행동은 그리스 편이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샀다.
라오콘의 행동을 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 포세이돈은 괘씸하다는 생각에 라오콘과 두 아들을 죽일 목적으로 두 마리의 바다뱀 퓌톤을 보냈다.
‘라오콘’ 조각은 바로 이를 표현한 것 이다. 뱀은 작은 아들의 옆구리를 물고 온 몸을 감아 실신시키고 있다.
또 다른 뱀 역시 아버지 라오콘의 허리를 물며 고통을 주고 있다. 고통의 신음을 내뱉으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라오콘의 모습이 보이며 오른쪽의 큰 아들도 죽음을 예감한 듯 뱀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어느 한가지라도 중하지않은것이 없다.
1946년
섬유판에 유채
작가:프리다칼로
▶멕시코출생
▶[1907~1954년 7월]
그녀의 인생과 그림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슬프다.
상처입은 사슴은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
칼로의 다른 작품들
작품 해석
-울창하고 빽빽한 숲
-작은사슴의 탄생
프리다 칼로의 작품 경향
-사슴이 내포하고있는 의미
-작품의 대부분이 자화상
-작은사슴의 몸에 박힌 무자비한 화살들
-하단의 문자
-동물이 나오는 자화상
-칼로의 초상
-번개와 폭풍
-자신의 고통과 감정을 표현한 작품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조-
- 제작:김선아
- 리포터:정민경
- 외 서영식 ,김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