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국주의 유럽 국가들의
대외 진출 경쟁
(특히 영국-프랑스 vs 독일)
2. 발칸 반도의 갈등
- 민족과 종교의 다양함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vs 세르비아
→ 보스니아 지역의 합병으로 인해 충돌
-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사라예보 사건, 1914)
- 3국 협상(연합국) vs 3국 동맹(동맹국)의
구도, 여기에 여러 국가들이 가담
- 이탈리아는 동맹국에서 연합국으로 노선 변경
(전쟁 시작 직후)
- 중국과 일본은 연합국 측에 가담
-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가 동맹국에 가담
-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들도 전쟁에 동원됨
→ 전 세계가 연관된 대규모 전쟁으로 변화,
각종 신무기 출현(비행기, 탱크, 기관총 등)
1918년 전쟁 막바지,
독일 항구인 '킬'에서 수병들의 폭동이 일어나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 발생
→ 1918년 독일과 조약을 맺고 전쟁에서 이탈
-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의해 미국 선박
격침, 1917년 미국이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전쟁 수행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독일보다 먼저 연합국 측에 항복
- 1918년 독일이 항복 선언, 전쟁 종결
- 전쟁 직후 ‘파리 강화 회의’를 통해
‘베르사유 조약’ 체결
-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 지불과
해외 식민지의 상실을 겪게 됨
- 러시아,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밑의 민족 다수가 독립
- 세계 평화를 위해 1920년 ‘국제연맹’
창설 → 정작 미국은 미가입, 군사적
제재 권한 없음
주최자인 미국이 없는
국제 연맹?
- 근대화와 양적 산업화의 기반 마련
- 정치적으로 여전히 '전제 군주제'
- 옛 사회 구조의 잔재가 민중을 억압
- 지식인과 노동자 중심으로 사회주의가
확산
피의 일요일 사건은
러시아 민중들이
'차르'의 전제 정치에
의구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 1905년 생존권 보장과 노동 처우 개선,
의회 설립 등을 요구하는 시위 전개
- 차르의 군대가 이를 무력 진압
(피의 일요일 사건)하면서 전국적으로
시위 확산
- 차르의 개혁 약속으로 무마 이후
정부의 시위 탄압 및 온건 개혁 진행
1905년 이후
7~8년간
제정 러시아의 개혁을
주도한
'표트르 스톨리핀'.
- 연합국의 일원으로 러시아가 전쟁에 참여 →
연이은 패전 물자 부족으로 민중의 고통 가중
- 1917년 3월에 노동자 중심으로 전쟁 중지와
식량 배급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져
황제를 몰아내고 임시정부 수립(3월 혁명)
- 임시정부는 전쟁 계속 선언, 대중의 신뢰
상실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
러시아로 돌아와
전쟁 중지와 혁명 완수를
선포하다. (1917.4.)
1920년의
코민테른 회의 모습.
저 멀리
태극기가 보인다.
- ‘블라디미르 레닌’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
‘볼셰비키’가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 획득
(11월 혁명)
- 독일과 협상해 전쟁 중지, 반혁명 내전 진압
- 각국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당을 연결하는
조직 ‘코민테른’ 창설
- 1922년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성립 선포
1. 민족자결주의와 '3.1 운동'의 연관성
2. 소련의 성립과 사회주의의 확산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
- 정답은 없으니,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성실하게 써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