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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상무룡리 유적에
대한 소개
https://imnews.imbc.com/replay/1987/nwdesk/article/1802706_29505.html
- 조사단과 행정당국의 협의하에 긴급히 구제발굴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발굴 조사
- 상무룡리유적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발굴
- 수입천과 서천이 마주치는 사이의 강언덕에 위치한 Ⅰ지구는 중기구석기 문화층과
후기구석기 문화층을 같은 지역에 위·아래로 갖고 있는 지역
- 또 하나의 후기구석기유적은 상무룡리 Ⅰ지구보다 서천을 쫒아 1,500m 상류에 위치
- 북한강유역에서는 최초의 구석기유적 발굴.
- 본 유적의 발굴에서는 흑요석을 포함하여 6천여점의 석기가 출토
- 흑요석 및 수정으로 만든 좀돌날몸돌 및 좀돌날이 주를 이루는 잔석기
유물양상
- 한 시기의 문화유형으로 설정할 수 있을 만큼 특징적인 양상으로 우리나라의
후기구석기 최말기 혹은 중석기시대의 문화양상을 논의하는 본격적인 출발점
- 본 유적의 중기구석기문화층의 연대는 125,000B.P.로 연구
- 후기구석기문화층의 연대는 18,000B.P.로 추정
- 연대폭에 있어서 연구자간 다소 차이는 있으나 중기구석기시대와 후기구석기
시대의 문화적인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는 대규모 유적이라는 데에는 견해차가
없음.
- 강원지역은 북쪽의 금강산 일대에서 남쪽의 태백산, 동쪽의 동해안 지역에서 서쪽의 북한강,
남한강 일대까지의 넓은 지역을 포함
-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고서저의 지형
- 동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해안평야와 석호, 백두대간 서쪽편으로는 남한강.북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충적평야와 분지가 발달
- 동해안의 석호와 주변 해안평야 지대, 남.북한강 유역의 충적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많은
선사시대 유적지들이 분포
ex.) 고성 문암리, 속초 조양동, 양양 오산리, 강릉 초당동 유적지가 있는 동해안
춘천, 영월, 양구, 홍천 등 한강 주변 지역
- 강원지역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산악지형
- 서쪽은 하천에 의한 충적대지와 크고 작은 분지가 발달하였으며, 동쪽은 동해안을 따라 좁고 긴
해안 평야와 사구, 석호가 형성
-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얻어지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들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강원지역에는 많은 선사 유적이 곳곳에 분포
- 이후 다른 지역보다 이르게 나타난 신석기문화가 동해안의 사구지대와 내륙의 하천을 끼고 발달
하였으며, 지금부터 3000년 전부터 점차 청동기문화로 변화
- 구석기시대는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하여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사냥과 채집경제에
따른 이동생활을 한 시기
- 도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내어 만든 뗀석기가 사용
- 강원지역의 바닷가와 강가, 내륙의 깊은 골짜기에는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의 유적
들이 분포
ex.) 양구 상무룡리, 홍천 하화계리 유적을 비롯하여 강릉 심곡리, 동해 평릉동.월소,
홍천 백이, 춘천 거두리.금산리 갈둔 유적 등
-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 내어 만든 것으로 석기시대의 가장 주요한 도구
- 뗀석기의 종류나 만드는 기술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구석기 시대를 구분
- 전기는 강자갈돌로 가장자라만 날카롭게 가공한 주먹도끼와 가로날도끼, 찍개류 등의 대형 석기가 대표적
ex.) 강원지역에는 강릉 심곡리와 양양 도화리 유적
- 중기(10만년 전 ~4만년전)는 일반적으로 대형 석기가 줄어들고, 석기의 기능에 따라 형태가 분화되어 새기개,
뚜르개 등이 새로이 출현
ex.) 강원 지역에는 양구 상무룡리 유적 아래층 문화가 해당
- 후기는 석기 가공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시기
특히, 이 시기의 특징적인 돌날기법은 흑요석이나 혼펠스 등에 사용되어, 석기 생산의 능률을 향상
홍천 하화계리 유적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석기제작장을 실물 크기로 이전, 복원해 놓은 것으로, 후기 구석기인들이 석기를 제작하던 곳
- 많은 돌조각들이 직경 2m 정도의 범위에 밀집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음.
- 빙하기 이후 달라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이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고 정착생활을 시작한 시기
- 신석기인들의 생활
1) 물과 식량이 풍부한 바닷가나 강가에 움집을 짓고 고기잡이와 사냥, 야생식물을 채집하면서 살았으며 늦은 시기에는 조, 기장
등을 재배하는 밭농사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짐
2) 실로 짠 옷감이나 동물가죽으로 간단한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3) 옥.동물뼈와 뿔.조가비 등으로 몸을 치장
- 출토 유물
1) 강원지역의 집터와 무덤유적에서는 빗살무늬토기, 덧무늬토기, 그물추, 작살, 결합식 낚시 등의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
2) 우리나라 이른 시기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하거나 신석기시대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
- 대표적인 유적
양양 오산리.지경리, 고성 문암리, 춘천 교동 등을 비롯한 50여곳의 유적이 확인
- 양양군 오산리의 호숫가 모래언덕에 우치하는 집터 유적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유적지 중의 하나로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
- 최하층에서는 소량이기는 하지만 좀돌날 몸돌과 좀돌날이 출토되어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
로 이행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은 아래층에서 덧무늬토기와 아가리가 넓은 납작바닥의 눌러찍은 무늬토기,
가운데층에서 납작바닥의 무늬없는 토기, 위층에서 우리나라 중서부지방의 전형적인 뾰족바닥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
- 오대산 자락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대표적인 하천인 남대천 끝자락에 자리한 늪지대처럼
생긴 지형에 있는 선사유적지
- 오산리 선사유적지는 낙산사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4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는 당시의 집터와 복원한 움집, 유물전시관 등
- 주변 지형과 자연환경 등을 살펴보면서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데
의의가 있는 유적지
- 춘천시 후평동 봉의산 기슭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동굴유적
- 발견 당시 동굴 안에서 세 구의 사람 뼈와 함께 생활용구인 석기와 토기, 꾸미개인 대롱옥 등이 출토
- 토기는 모두 납작바닥으로 무늬가 없는 한 점을 제외하고 모두 아가리 부분에 점이나 선으로 이어진
무늬(우리나라 동북지방과 양양 오산리 유적의 토기에 많이 보이는 양식)
- 유물은 오산리 출토품과 같은 이음식 낚시바늘과 후포리 출토품과 같은 대형 돌도끼 등
신석기인의 신앙을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은 원시종교 또는 당시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
- 개.새.곰.멧돼지의 동물모양 토제품(토테미즘)
- 흙을 만든 여성의 전신상(모계씨족사회에서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
- 사람얼굴모양의 토제품과 조가비,사람모양의 토우, 생식기형 석물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짐승이나 물고기의 뼈.뿔.이빨.돌.옥.흙 등으로 만든 치레걸이,
팔찌, 발찌, 귀걸이 등은 신석기인들이 자신의 몸치장뿐만 아니라 신앙과 의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는 유물
- 러시아 아무르강과 동북3성,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동북아시아 신석기 유적 중 최남단
에 위치한 유적
-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사람이 정착했던 지역으로 추정
- 석호인 영랑호와 송지호 사이에 위치
- 동해안에서는 농토가 넓은 지역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어로와 농경생활을 같이 영위했던 것으로
추정
귀걸이(고성 문암리)
꾸미개(영월 공기리)
- 석기시대의 도구를 만드는 기술의 혁기적인 변화는 숫돌로 재료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갈아서
만드는 간석기의 출현
- 구석기인들과는 달리 돌이나 뼈를 원하는 형태에 맞춰 잘라내고, 갈고, 구멍을 뚫어 날카롭고
정형화된 도구를 제작
- 석기의 용도에 따라 사냥용, 고기잡이용, 농경옹, 일상생활용 등으로 구분
1) 사냥용: 화살촉과 창끝 등
2) 고기잡이용: 이음낚시 축, 그물추, 작살 등
3) 농경용: 괭이, 보습, 낫 등
4) 일상생활용: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공구용의 도끼, 끌, 대팻날, 자귀 등
5) 곡물이나 도토리 등 열매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만드는데 쓰이는 조리용의 갈돌과 갈판,
공이 등
6) 이밖에 의식주 생활에 기본적으로 쓰이는 칼, 송곳, 가락바퀴, 바늘, 발화석 등과 석기를 만들
때 쓰이는 망칫돌과 숫돌
- 신석기인들은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며 이동하던 구석기시대와 달리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른 식량
확보를 위해 물고기와 조개 등 먹을 거리가 풍부한 강이나 바다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바닷가나
강가에 자리잡고 정착생활을 시작
- 신석기시대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이음낚시, 그물추, 돌살촉, 탄화된 도토리, 갈돌과 갈판 등과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각종 짐승과 물고기의 뼈 등은 신석기인들의 주요 생계수단이 고기잡이와
사냥, 채집 생활이었음을 보여주는 자료
- 낫, 괭이, 뒤지개 등의 농경에 관계되는 석기를 비롯하여 조, 피, 기장 등 탄화된 곡물과 개뼈 등이
출토
점차 밭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 직접 식량자원을 생산하고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자료
-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무늬 구성의 방법에 따라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로 크게 구분
- 덧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토기로, 토기 표면에 진흙띠를 붙이거나 겉면이 도드라
지게 무늬를 만든 것
1) 주로 우리나라 동남해안 지역에서 출토되며,
2) 강원도에서는 양양 오산리, 고성 문암리 등의 유적에서 출토
- 빗살무늬토기는 그릇의 겉면에 각종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토기로,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대표
1)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형태와 무늬구성에 차이
2) 강원지역에는 납작바닥의 깊은 바리가 대표적이며, 이른 시기에는 짧은 선이나 점으로 구성
된 무늬가 몸통 윗부분 또는 아가리 둘레에 새겨진 것이 많고, 중기 이후에는 타래무늬가
등장
- 후기에는 번개무늬나 붉은칠토기와 함께 민무늬토기의 비율이 증가
- 대표적인 유적으로 양양 지경리.가평리.송전리, 강릉 교동.안인리, 고성 철통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