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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위 '현상 너머의 진정한 객관적 실재'를 밝힌다는 과학의 이념이 의식과학에는 통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의식과학에서 다루는 의식이란 주관적 경험(subjective experience)을 말하는데, 주관적 경험은 현상vs실재의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주관적 경험에서는 현상이 곧 실재요 실재가 곧 현상이다. 무슨 말인가.
2. 이는 주관적 경험에서 현상과 실재가 구분될 경우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결과가 나오는지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가령 주관적 경험의 대표격인 통증의 '현상'은 주관적으로 아프게 느껴진다는 것일 것이다. 아프게 느껴진다는 것 외에 통증의 '실재'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다르게 현상하는 실제 통증, 즉 '주관적으로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 객관적 통증'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 통증이란 이미 통증일 수조차 없다! 당사자가 아프지 않다는데 통증이 있다는 건 알아들을 수 없는 넌센스다. 이처럼 의식에서는 현상 외에 실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현상과 실재의 간극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실재 '사이'에서 유지될 뿐, 주관적 경험 '내부'에서 성립할 수 있는 구분이 아니다. 주관적 경험에서는 그것이 무엇과 같은지(what it is 'like')가 그것이 무엇'인지'(what it 'is')를 결정하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주관적 경험이 무엇과 같은지는 어떻게 알려지는가? 아픈 사람은 통증이 아프게 느껴진다는 걸 어떻게 아는가? '그냥' 안다. 통증이 아프게 느껴진다는 걸 알기 위해 남에게 물어본다거나("나 아프냐?") 객관적인 데이터를 확인해야한다는 건("내가 아픈지 잘 모르겠으니 fMRI를 찍어봅시다") 터무니없다. 적어도 일반적인 조건에서, 우리는 주관적 경험이 무엇인지를 그냥, 곧바로 안다. 그리고 그냥 곧바로 안다는 걸 두고 우리는 '직관'(intuition)이라고 부른다.
4. 의식과학이 여타의 과학과는 전혀 다른 방법론적 토대 위에 구축되어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의식이 주관적 경험이고, 경험의 현상=실재가 직관을 통해 알려질 수밖에 없다면, 의식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방법적으로 직관을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관을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의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직접적인 인식적 경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직관을 방법적으로 가장 섬세하고 엄밀하게 다듬은 학문은 누가 뭐래도 현상학(phenomenology)이다. 따라서 현상학은 의식과학에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현상학 없는 의식과학은 애당초 의식과학일 수조차 없는 것이다.
-문규민의 facebook
(1856~1939)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는 근본적인 분열이 있다.
-의식과 무의식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한다.
- 의식과 무의식은 뇌의 해부학적 구조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자아의 측면들을 지시하는 것이다.
ego: 안정적인 자아감을 유지하고 현실에 적응. 이성과 상식의 장소
Id/es: 직접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다양하고 원초적인 본능
super-ego: 양심과 도덕성의 감정, 부모와 사회의 권위의 내면화
현대인은 우리의 충동(특히 성욕)을 지속적으로 좌절시켜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신경증
도착증
정신병
-쾌락원칙과 현실원칙
자아는 불쾌를 해소하려는 욕구가 있다.
자아는 이드의 원초적/본능적 욕구(needs)의 만족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쾌락원칙)
그러나 직접적 만족으로 인해 일어날 불쾌를 예방하기 위해 적절히 우회한다.(현실원칙)
우회하기 위해서는 충동(식욕,배설,성욕)을 적절히 통제하고 조절해야 하는데, 이 충동을 억압함으로써 무의식이 형성된다.
무의식 속의 충동은 억압되어 있으나 때때로 농담 등의 무의도적 행위와 함께 회귀한다.
후기 저작, <문명 속의 불만>
에로스(삶충동): 사랑, 우정, 창조성, 연대 (자기보존욕구+성욕구)
타나토스(죽음충동): 공격성, 파괴 (생물체가 무생물로 돌아가려는 충동)
"문명은 본능(충동)을 단념하는 것을 토대로 세워지며, 또 거기에는 대단히 많은 강력한 본능의 불만족이 전제된다. 이 문화적 좌절은 인간 존재들 사이의 사회관계의 대부분을 지배한다."
타나토스를 제어하기 위해 문명(승화)을 이루었지만 항상 완전한 만족에 이르지 못한다.
허버트 마르쿠제의 <억압적 탈승화>
: "기술의 진보와 보다 안락한 삶은 리비도적 구성요소들을 상품의 생산과 교환의 영역에 체계적으로 포함시켜버렸다."
(1901~1981)
*자아구성에 있어서의 계기
생물학적 욕동(프로이트) => 언어와 문화(라캉)
즉, 라캉은 프로이트의 억압기제를 충동에서 언어로 치환함
자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상상계
실재계
상징계
보로메우스의 매듭
*자아구성에 있어서의 계기
생물학적 욕동(프로이트) => 언어와 문화(라캉)
즉, 라캉은 프로이트의 억압기제를 충동에서 언어로 치환함
무의식과 언어
요구(언어)
기표는 끊임없이 기의 주위를 맴돈다.
욕구와 욕망
(쾌/불쾌)
상상계
실재계
상징계
보로메우스의 매듭
상상적 자아감
주체의 탈중심화
욕망
주체 구성에 있어서 문화/사회/이데올로기의 작용이 중요
알튀세 (이데올로기와 호명)
뤼스 이리가레(검시경Speculum, 라캉 정신분석학의 남근중심주의 및 시각중심주의 비판)
줄리아 크리스테바(압젝트Abject)
- 과학적 검증 불가
- 맑스주의처럼, 정신분석이론/정신분석학은 그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구성해옴
- 정신분석은 사람들이 억압되어 있고, 신경증적이며, 심지어 병이 들어 있다는 선험적 믿음 속에서 작용한다(???)
- 치료인가 사회문화 분석인가?(Critique or Clin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