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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가 포함된
윌슨의 '14개조 원칙' 채택, 베르사유 조약 체결
→ 독일의 국외 식민지 상실 / 알자스- 로렌 지방
프랑스에 양도 / 군비 축소 및 전쟁 배상금
지불 등
- 1920~30년대 평화를 위한 각종 시도
1) 국제연맹 창설 / 워싱턴 회의 / 로카르노
조약 / 켈로그-브리앙 조약
2) 독일이 물어야 할 배상금의 액수와 기간을
감면해 줌(도스 안, 영 안, 로잔느 회의 등)
로카르노 조약 당시
독일, 영국, 프랑스 대표들.
- 전 세계적인 반제국주의 운동과 민족 국가의
수립
- 대다수의 신생 국가들이 ‘공화정’을 채택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오스트리아 공화국,
터키 공화국 등)
- 전쟁 중 산업활동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던
하층 계급과 여성들의 참정권이 법으로 보장
되기 시작
영국은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 위안스카이 사후(1916) 중화민국 중앙정부의
유명무실화와 군벌의 난립으로 혼란
- 신문화 운동 : 지식인 층을 중심으로 전근대적
풍토를 비판하고 ‘과학과 민주주의’를 주장
(★ 천두슈의 ‘신청년’ 발간 등)
- 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일본은 연합국의
편에서 독일에 선전포고, 독일의 아시아 내
영토(산둥반도, 남태평양의 섬들) 점령
- 위안 스카이에게 중국 내에서 일본의 이권을
보장하는 '21개조 요구' 제출(1915), 일부 수용
5.4 운동 당시의
천안문 광장 시위.
- 파리 강화 회의에서 군벌이 장악한 중화민국
정부가 성과를 얻지 못함, 일본에 이권을 허용
→ 베이징 대학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5.4 운동이
전개, 전국적으로 확산
- 정부가 민중들의 요구 수용, 파리 강화 회의에서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 서명 거부
- 이후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창설,
민중과의 연계를 시도
- 군벌에 의한 분열의 종식을 위해 1924년
제 1차 국-공 합작 성사, 1926년부터
북벌 시작
- 공산당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장제스가
4.12 쿠데타(상하이 쿠데타)를 통해
공산당 축출, 국-공 합작 결렬
- 1928년 국민당 정부가 난징(남경)에 수도를
두고 중국 전체를 통일
- 공산당은 국-공 합작이 깨진 이후 ‘홍군’을
조직해 국민당과 대립하기 시작
- 마오쩌둥이 루이진에 소비에트 임시 정부
(1931) 수립 → 국민당의 ‘초공작전’으로
인한 어려움
- ‘대장정(1934)’을 단행, 옌안 지역으로
이동하여 근거지 재정비
- 만주 사변과 상하이 사변, '만주국' 수립으로
일제의 침략에 대한 중국 내 여론 악화
- 학생과 시민들이 공산당 토벌 중지 및 항일
투쟁 요구 + 중국 공산당의 협조 제의
- 장쉐량이 장제스를 체포 및 감금(시안 사건),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이 합작하여 항일
투쟁을 벌이는 조건으로 장제스를 석방
- 중-일 전쟁의 발발로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이 제 2차 국-공 합작을 성립
1) 인도의 민족운동
- 영국의 롤라트 법 제정과 인도 자치 불허
→ 간디와 네루를 중심으로 한 반영 민족운동
전개
- 영국의 '신인도 통치법'(1935)을 통한
인도 각 주의 자치 인정, 군사권과 외교권은
여전히 영국의 인도 총독에게 존재
★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건
1947년 8월 15일!
- 제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청년 튀르크당
당원인 ‘무스타파 케말’이 쿠데타를
통해 오스만 제국을 붕괴시키고 터키
공화국 선포(1923)
- 세속화, 서구화 정책 : 술탄제 폐지,
이슬람교의 사회적 영향력 축소,
일부다처제 폐지, 로마자 표기법 도입 등
- 입헌혁명으로 수립된 정부가 러시아군에
의해 붕괴(1911)
- 이후 레자 칸(레자 샤)에 의해 팔레비 왕조
수립(1925), 군부 독재 시기 시작
→ 국호를 ‘이란’으로 확정하고 산업 육성,
신식 교육 도입 등 근대화 개혁 추진
- 2차 대전 중 영국과 소련이 이란 침공(1941)
후 레자 칸 축출, 팔레비 2세 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