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92.테오도시우스
(기독교 국교화)
AD325.니케아공의회
(아리우스정죄)
로마의 교회 박해시기
AD330.콘스탄티노플
수도 천도
AD313.콘스탄틴 밀라노 칙령
AD395.동-서 로마 분열
(게르만민족 대이동)
AD590.그레고리1세 교황 즉위
AD476.서로마 멸망
AD496.게르만족 클로비스의
서로마 지역 장악
AD732.찰스 마르텔
뚜르 전투
(AD622.이슬람 세력의 확장)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한
찰스 마르텔의 손자
중세 유럽의 아버지
수많은 전쟁과 영토확장
(서로마 멸망이후 처음으로 서유럽을 통일)
서로마 제국의 부활
서방세계 최고의 통치자임을 천명
황제에 대한 교황의 우위를 상징
동로마 황제의 종속을 벗어남
로마 바티칸 궁전의 샤를마뉴 대관식 그림 -라파엘로
전쟁을 통한 이민족의 기독교 개종
교회 재원(토지)의 바른 사용
모든 교회의 사도신경 고백
샤를마뉴 서체개발
뛰어난 학자들을 초청하여 문화와 학문의 부흥을 꾀함
궁정학교 및 도서관 건립 -활발한 고전 연구
고전적 기독교 문화의 부흥 및 중세 문화 발전의 밑거름
알퀸 -고전 기독교 문화 부흥, 중세 전기 신학적 교육의 기틀을 마련
그 업적은 중세 후기 대학의 설립과 근대에까지 영향
노르만족 출신
사절단을 파견후 그리스정교회를 받아들임
동로마 황제 바실2세의 여동생 앤(Anne)과 결혼
주후 989년 그리스 정교회를 러시아 국교로 지정
많은 러시아인들이 기독교로 개종
이후 천년간 러시아 동방 정교회의 시대가 열린다
성 소피아 성당
" 저희는 그 광경을 도대체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그곳에 하느님이 존재하며
그들의 예배가 다른 나라들의 의식보다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블라디미르 사절단이 소피아 대성당에 대해 남긴 기록-
콘스탄틴 대제의 수도 천도 이후 로마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동/서로 나눔
AD 476년 게르만에 의한 서로마제국의 멸망 / 동로마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번성 (비잔티움제국)
서로마지역은 타 민족들이 개종후 교회아래로 , 동로마는 교회가 국가에 종속
동방교회
서방교회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지심
동상을 포함한 모든 성상숭배를 찬성
모든 성직자의 독신 제도 주장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다"고 주장
⇒ 로마 카톨릭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에서 신성이 인성을 포함
동상을 제외한 모든 성상 숭배를 반대
하위 성직자들의 결혼을 허용
성령께서 "성부에게서만 나오셨다"고 주장
⇒ 동방 정교회
서방교회와 콘스탄티노플(동방교회)의 대립은 포티우스의 동방교회 총주교 임명으로 점화
포티우스 사후 1054년 서로마교황 레오9세와 동방교회 케루라리우스 총주교 의 대립
각각 서로를 파문,출교함으로 동서양 교회는 분열하여 다른길을 걷게 된다.
이탈리아 알프스 한 농장주의 아들
->벡 수도원 을 프랑스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이끔
주후 1093년 영국 켄터베리의 대감독
서임권 문제로 두번의 유배
중세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
안셀무스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철학
"스콜라" - 샤를마뉴 대제의 궁정 ‘학교’를 스콜라라고 부른데서 유래
안셀무스를 통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그 후에 쇠퇴
안셀무스의 저서 "논설(Proslogium) -하나님 존재의 논리적 증명 시도
하나님은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분이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즉 가장 완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이성에서만이 아니라 실재로도 존재해야 마땅하고,
그런 존재가 바로 하나님이다.
사람의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그 영광에 손상을 입었다.
사람을 용서해주시기 원하시나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간과할 수 없다.
죄에 상응하는 속죄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람만이 속죄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속죄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고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가 속죄를 이루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국가의 역할을 감당해온 로마교황체제
(국가에 종속되어온 동방 교회와는 달리)
영토내의 잦은 반란과 전쟁, 섭정통치등으로 왕권의 약화
서임권 행사로 인한 충돌
제왕의 권위가 교황의 권위 아래로 무너진 상징적인 사건
황제 헨리4세
그레고리 7세
무릎 꿇은 헨리 4세
카노사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