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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전
즉위 후
영조의 탕평책
왕세손(정조)
대리청정
1762년
즉위 전
출처 위키백과
1766년 즉위_정조의 업적
탕평책
규장각 설치
수원화성 축조
왕실 도서관, 학문연구기관, 정책 연구소로 활용
아버지 장조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고 새롭게 성을 축조하였다. 1789년(정조 13년) 10월 묘를 이장하고 현륭원이라고 하였고인근에 화성을 축조하였다.
연구에서 얻은 성과들은 정책으로 연결
정조의 왕권 강화와 이상 정치를 실현
정조
영조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
노론과 소론 등 붕당의 인물 가운데 비교적 온건한 사람들을 등용하여 타협책을 이끄는 완론탕평
출처 위키백과
1780년_홍국영 축출
권세
홍국영은 정조의 신임을 마침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궁궐에 들어가 국왕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홍국영을 찾아보아야 했다
즉위 초기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홍국영을 내세워 안정적 권력 기반을
구축한 정조는 홍국영을
의리의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총애했다
홍국영은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조정의 실직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담은 은퇴 상소를 올렸으며, 정조는 당일 이를 수락한다
홍낙순이 파직과 문외출송되고, 다음달 김종수의 탄핵상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다
시간
1778
1780
1779
1776
1800년_재위 말기
1800년 (정조 24년) 음력 6월 초 정조는 종기를 앓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종기는 등으로 번졌고 종기의 크기는 점점 커지기 시작하여 피고름이 나올 정도로 상태가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 결국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을 잃은 정조는 음력 6월 28일 (양력 8월 18일) 유시 (오후 5시~7시) 에 창경궁 영춘헌에서 47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위키백과, http://bit.ly/2KUh0rY
조금 뒤에 환지 등이 문 밖 가까이 다가가 큰소리로 신들이 이제 들어가겠다고 이뢰었다.
자궁이 대내로 들어가자 환지 등이 다시 들어왔다. 부제조 조윤대가 성향정기산을 받들고 들어오자
시수가 받들어 올리면서 숟가락으로 탕약을 떠 두세 숟갈을 입안에 넣었는데 넘어가기도 하고
밖으로 토해내기도 하였다. 다시 또 인삼차와 청심원을 계속 올려드렸으나 상은 마시지 못했다.
시수가 또 명길에게 진맥하게 하였는데 명길이 진맥을 한 뒤에 물러나 엎드려 말하기를,
"맥도로 보아 이미 가망이 없습니다."
하자, 제신이 모두 어찌할 줄 모르며 둘러앉아 소리쳐 울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http://sillok.history.go.kr/id/kva_12406028_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