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실업률 지표.
대공황 직후에 실업률이
급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공황으로 인해 생긴 빈민촌.
미국인들은 당시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의 이름을 따서
'후버 빌리지'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대공황으로 인해
참전 보너스를 받지 못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
1) 생산력 폭증에 비해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서민들의 구매력이 성장하지 않으면서
소비 증가 미미
2) 미국 기업에 대한 낙관적 전망으로 증권, 주식
가격이 폭등, 과도한 거품 발생
3) 1929년 10월부터 거품이 가라앉고 주식이
폭락, 미국의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
→ 세계의 여러 지역에 연쇄적인 타격
미국이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대규모 댐 공사인
'테네시 강 개발 공사'의 모습.
- 미국 :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 사회 간접자본 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노동자들의 권익 보장, 국가가
개입하는 시장 경제의 틀을 만듬
- 영국과 프랑스 : 식민지 및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과 함께 ‘경제 블록’을 형성해
보호 무역 실시
미국의 고용 인원 수.
1930년대 중반 이후
뉴딜 정책의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국의 경기는 단박에 살아난다.
무솔리니와 그의 추종자들인
'파시스트 당'이
검은 셔츠를 입은 채로
로마 시내로 진군하여
정권을 장악한다. (1922년)
-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은 자본주의 국가의
후발주자 + 적은 식민지로 인해 미국, 영국,
프랑스같은 대처가 어려움
- 전체주의와 군국주의가 퍼지면서 독일은
히틀러와 ‘나치 당’이, 일본은 군부가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잡음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당’)
- 외부로의 침략 전쟁을 통한 국내 위기의
개선을 꾀함
영국, 프랑스 군이
독일군의 공세를 피해
대규모로 철수 작전을 감행한
'다이나모 작전'.
독-소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의 모습.
-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탈리아와 일본과 함께 동맹
- 전쟁 초반 독일의 승승장구 : 프랑스 점령 및
발칸반도, 북아프리카로 세력 확장
- 소련과 전쟁 전에 맺은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과의 전쟁 시작
- 미국의 연합국 참전 및 소련의 반격으로 인한
전세 역전 → 이탈리아와 독일이 차례로
항복하면서 유럽 지역의 전쟁 종결
처형된 채 거꾸로 매달린
무솔리니와 그의 추종자들.
1944년 4월,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초대형 상륙작전을 개시한다.
-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꼭두각시 정부 ‘만주국’을 세움
- 1937년에는 중국 본토를 침략해
중-일 전쟁을 일으킴
- 1940년 독일-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자원 확보를 위해 동남아시아 침공
→ 미국이 일본으로의 석유 수출 금지를
통해 제재
베트남 사이공에 입성한
일본 제국의 군대.
미드웨이 해전 당시의 모습.
이 전투를 통해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다.
1944년, 필리핀의
레이테 섬에 상륙한
맥아더 장군과 미군.
- 1941년 일본군이 하와이의 진주만에 있는
미국 태평양 함대를 공격(진주만 공습)
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됨
- 1942년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미국이 1945년 일본 본토까지
진격
- 항복을 거부하는 일본에 1945년 미국이
원자폭탄을 2차례 투하하면서 전쟁 종결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선언을
담은 '옥음 방송'을
청취하는 일본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