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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국가들의

내부 개혁과

국제 질서의

변화 (1)

~ 청-일 전쟁까지

중국의 각성 :

반외세 운동과 내부 개혁 (1851 ~ 1894)

중국의

상황

쇠퇴하는 청 왕조에 대한 반감,

서양 열강의 침입에 무너진 충격

태평천국 운동 지도자

'홍수전'

태평천국 운동

(1851 ~ 1864)

태평천국 운동

(1851 ~ 1864)

- 제 1차 아편전쟁의 비용 처리와 배상금 지불으로

인한 세금 부담 + 서양 열강 세력의 침투 본격화

- ‘홍수전’이라는 인물이 기독교 교리를 결합한 비밀

결사를 조직해 봉기 → 청 왕조 타도, 토지의 균등

분배, 남녀 평등 주장

-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한때 난징(남경)을 중심으로

중국 본토를 상당 부분 점령

- 태평천국의 내분 및 청 왕조의 지방 세력과 서양

열강의 개입으로 인해 진압당함

중국 상인들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조직된

서양인 + 중국인 용병 부대 '상승군'의 모습.

중국 최대 거물 정치인,

'이홍장' (1823 ~ 1901)

난징의 무기공장인

'금릉기기국'의 모습

양무운동

(1861 ~ 1894)

양무운동

(1861 ~ 1894)

- 이홍장, 증국번 등 지방의 유력 세력에 의해

주로 추진

- ‘중체서용'(중국의 체제 + 서양의 기술)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 군사력 강화와 산업

진흥에 초점

- 개혁 없는 기술 수용, 지역별로 개혁 추진

정도의 차이, 정부 보수파 등의 견제 →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하면서 한계 노출

양무운동 당시 설립된 조선소,

'복주선정국'의 모습

조선의 개항 이후 :

개화의 시도와 격동의 한반도

조선의

상황

- 강화도 조약 이후의 개화 정책과

청나라-일본 사이에서의 줄타기

임오군란(1882)

왼쪽 3명이 별기군, 오른쪽은 구식 군인

임오군란

(1882)

- 강화도 조약 이후 정부의 개화 정책에 대한

불만 +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로 인해 발생

- 고종의 왕비인 민씨 세력 및 일본 공사관 습격,

도시의 하층민도 가담 → 흥선대원군이 사태

수습을 위해 일시 집권

- 민씨 세력의 요청을 받은 청나라 군대의 개입

- 일본과는 ‘제물포 조약’을 체결 → 일본 군대

주둔의 빌미를 제공

갑신정변(1884)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갑신정변

(1884)

- 정부의 개화 정책 노선('동도서기' :

조선의 체제 + 서양의 기술)

→ 개혁 속도에 불만을 가진 급진

개화파가 일본 공사의 지원을 약속

받고 정변을 일으킴

- '14개의 개혁 정강'을 발표하고

정부를 구성하려 했으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실패

'집강소' 운영 모습을 이미지화

동학농민운동(1894)

동학농민운동

(1894)

- 농민층에 동학 확산 + 관리의 수탈에 저항 → '전봉준'이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봉기

-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집강소’를 중심으로

전라도 지역의 자치를 하기도 함

- 봉건적 제도와 외세의 개입에 대한 반대

- 청-일 전쟁 당시 개입한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에 의해 진압당함

조선왕조 마지막 영의정,

김홍집의 사진

갑오개혁-을미개혁

(1894 ~ 1896)

갑오-을미개혁

(1894~1896)

- 청-일 전쟁 시작 직후 일본의 개입으로 인해 시작 →

김홍집 등 개화파 관료 중심

- 1차 갑오개혁 : 신분제 및 과거제 폐지, 과부의 재혼

허용 등

2차 갑오개혁 : 내각제 시행, 지방제도 개편, ‘홍범 14조’

및 ‘교육입국조서’ 반포 등

을미개혁 : 군제 개편, 단발령 실시, 태양력 사용 등

-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인해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면서

종료

이타가키 다이스케

(1837 ~ 1919)

'민선의원설립건백서'

제출 주도 인물

일본의 근대 초기 :

신정부 수립과 근대화 개혁의 진행

일본의

상황

- 막부의 붕괴와 신정부 수립,

서구의 문물을 적극 수용한 개혁

존왕양이 운동과

막부의 붕괴

(1854 ~ 1867)

존왕양이 운동과

막부의 붕괴

(1854 ~ 1867)

- 개항에 찬성한 막부 vs 서양 세력의 유입을 반대

하면서 천황을 지지한 지방 유력 세력과 하급 무사

(존왕양이파)

- 존왕양이 세력이 서양 열강과 충돌 후 ‘막부에는

반대하되 개항에는 찬성’ 입장으로 변화

- 1867년 막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반환(대정봉환)

하면서 막부가 700여 년만에 소멸

메이지 유신(1868 ~ )

메이지유신

(1868~)

-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어 잔여 막부 세력

진압, 서구식 근대화 개혁을 단행

- 기존 행정구역인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 신분제 폐지, 징병제 및 의무교육

도입 실시 등

- 군수 공업, 방직 공업 등 산업의 육성

왼쪽부터

기도 다카요시 / 야마구치 마스카 / 이와쿠라 도모미 / 이토 히로부미 /

오쿠보 도시미치

자유민권운동과

헌법의 제정

(1874 ~ 1889)

이타가키 다이스케

(1837 ~ 1919)

'민선의원설립건백서'

제출을 주도한 인물.

자유민권운동의 전개와

헌법 제정

(1874 ~ 1889)

- 권력에서 밀려난 지배층 및 부농층 등이 ‘민선의원설립건

백서’ 제출 → 메이지 정부 내 일부 세력의 권력 독점에

대해 비판 제기 및 의회 설립을 요구하는 운동 전개

- 정부에서 운동을 탄압하면서도 의회 제도는 수용 →

1889년에 ‘대일본제국 헌법’ 제정, 1890년에는 재산에

따른 제한 선거를 통해 일본제국 의회 구성

- 헌법에 천황의 인사권·전쟁 선포·조약 체결권 등을 명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

1894년,

동아시아 격동의 해

청-일전쟁

-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내정 간섭 심화

- 한반도에 진출하고자 하던 일본의 계획과

충돌

- 한반도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발생, 조선의

정부가 청나라에 구원군을 요청

청-일 전쟁의 전개

청-일 전쟁의

전개

- 동학농민운동으로 조선이 청나라에 구원군 요구

→ 청나라의 구원군 파견에 일본도 연이어 출병

- 일본군의 경복궁 장악 직후 조선에 주둔 중이던

청나라 군대를 공격(풍도해전, 1894.7.)

-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1894.9.) 승리 후 요동반도,

산둥반도까지 일본군이 진출

- 시모노세키 조약(1895.4.)을 체결하면서 전쟁 종결

청일 전쟁의

결과와 의의

청-일 전쟁의결과와 의의

- 일본은 청으로부터 요동 반도와 타이완 할양

약속받음 →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견제로

요동 반도는 청나라에 반환(삼국간섭, 1895)

- 동아시아의 패권이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됨 →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

가던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