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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유목민족 왕조와 고려, 일본

- 동아시아의 고대 말 ~ 중세

-학습활동

유목민족의 '이원적 통치체제',

과연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온라인 강의를 듣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교실에서 뵈어요 :)

일본의 '헤이안 시대' (794 ~ 1185)

1) 일본의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를 잇는 고대 시기

2) 헤이안 시대의 전개

- 초, 중기에는 천황과 율령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 활성화

- 10세기 ~ 11세기에는 유력 가문이 천황을 대신에 '섭정'을 함

- 12세기에는 천황에서 퇴위한 '상황'을 중심으로 정치 전개

→ 귀족과 상황 세력이 새로운 지방의 무력 집단인 '무사'를

중앙 정치에 개입시킴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1185)

'서하'의 성장 (11-12세기)

1) 12세기 유력 무사 가문인 '다이라'와 '미나모토'

가문의 대립

2)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이끄는 군대가 다이라

가문을 격파, 일본의 정치를 장악

3) '가마쿠라 막부'를 건립하고 자신을 따르는 무사들을

각 지방에 파견

→ 기존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은 유명무실화, 천황은

실권을 잃고 상징적 존재로 격하

- 티베트 계통의 민족인 '탕구트 족'이 건국 (1038)

- 송나라와 1044년 '경력화약'을 체결

(송나라에게 신하의 예를 취하는 대신 세폐 제공 약속)

- 비단길의 주요 지역 점령, 동-서 무역의 중개로 이득

- 독자적 문자를 제작하여 사용, 불교를 숭상

요(거란)의 고려 침입

1) 배경 : 송나라와 우호관계인 고려, 고려의 북진정책→ 고려 견제 목표

2) 3번에 걸친 침입

- 1차 침입 (993) : 외교관계의 단절을 목표로 침공, 서희의 외교전으로

'강동 6주'를 획득

- 2차 침입 (1010) : 고려 내의 쿠데타를 구실로 침공, 개경이 함락

→ '양규'의 활약을 기점으로 격퇴

- 3차 침입 (1018) : 강동 6주의 반환을 목적으로 침공, 강감찬의 개경 방어와

'귀주대첩'에서의 대승

금나라와 고려의 관계(12세기)

1) 12세기 초

- 여진족의 남하로 국경 위협 → 윤관을 중심으로

특별군 조직 (별무반)

- 동북 9성 축조, 유지의 어려움으로 여진족에 반환

2) 금나라가 강성해진 이후에는 금나라에서 요구한

사대 관계를 수용, 조공하게 됨

3) 송-남송과는 꾸준한 우호 관계 유지

중국의 송나라 시기는

주변 유목민족의 성장이

두드러진 시대!

금(여진)의 성장과 남송의 건립

요(거란)의 성장(10~11세기)

- 중국 대륙 : 송-남송 vs 요, 서하, 금

- 한반도 : 후삼국 시대 → 고려의 통일

- 일본 : 헤이안 시대 말기 → 가마쿠라 막부

- 12세기부터 만주 지역의 여진족이 급격히 성장, 고려와 요를 위협

- 1115년 금을 건국, 송나라와 함께 요나라의 세력을 멸망시킨 후

수도를 '중도(베이징)'로 천도

- 이후 1126년에는 송나라의 수도인 개봉(카이펑)을 함락

→ 송나라 황실이 강남 지역에 '남송'을 건립(1127)

- 남송과 금은 이후 화친을 맺어 금나라를 황제국으로 모시고

매년 일정한 양의 세폐를 바치게 됨

- 요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원적 통치체제 실시 (맹안-모극제 / 주현제)

- 여진 문자의 제작 및 사용, 과거제 실시

- 916년, '야율아보기'라는 인물이 거란족을 통합, 요를 건국

- 926년에 발해를 정복, '연운 16주'의 차지를 두고 송나라와 대립

- 10세기 말 ~ 11세기 초 고려를 3번에 걸쳐 침입

- 1004년에 송나라와 '전연의 맹'을 체결

(송나라를 형님으로 모시는 대신 세폐의 제공 약속)

- '거란 문자'라는 독자적 문자를 제작

- 이원적 통치체제 실시 : '북면관제'와 '남면관제'

(유목 민족에게는 부족제를, 한족과 발해인에게는 '주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