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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역사 스물일곱 번째 시간 - 원간섭기

레터릭 쇼 rhetoricShow@gmail.com
by

채명 임

on 9 Jul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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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중2 역사 스물일곱 번째 시간 - 원간섭기

중2 역사 27번째
zoom in out
원 간섭기와 공민왕
원나라
just
.
원간섭기와 공민왕의 개혁
공민왕이 추진한 개혁 정치의 내용을 목적에 따라 나누고, 그 의의를 찾아낼 수 있다.
공민왕, 개혁군주, 로맨티스트
권문세족
내정 간섭
영토할양
개혁의 결과
- 쌍성총관부 : 함경도 지역
- 동녕부 : 평양 지역
- 탐라총관부 : 제주도
관제격하
- 왕실의 격식과 여러 관청이 축소, 폐지
- 죽은 고려왕은 원에 충성했다는 의미로
'충' 시호를 받음 (충렬왕, 충선왕...)
일본 원정
- 몽골은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고려에
정동행성
을 설치
- 일본 원정 실패 후에는 내정 간섭 기구로
변화
경제적 수탈
- 금, 은, 매 등 각종 공물을 요구
- 여자들을 공녀라는 이름으로 끌고감
-> 몽골에서는 고려양이 유행하고
반대로 고려에서는 몽골풍이 유행
- 원 간섭기에 등장한 새로운 지배세력
- 원나라에 기대서 부와 권력을 유지
- 고위 관직을 독점하고 을 운영
농장
1356년 첫 번째 개혁
- 몽골의 풍습 폐지
- 고려 내의 친원 세력 제거 (기철)
- 쌍성총관부를 수복 (이자춘의 도움)
농장
- 권문세족이 가지고 있던 대토지
- 구입하거나 빼앗거나, 개간으로 확대
- 산과 산, 강과 강을 경계로 하기도 함
- 권문세족 마음대로 백성을 수탈
1366년 두 번째 개혁
- 신돈
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농민을 되찾기
위해 설치
- 성균관을 부흥하여 인재를 양성
- 백성들에게는 환영을 받음
그러나 권문세족들의 반발에 부딪힘
- 신돈은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다가 제거
공민왕도 왕비 노국공주가 출산 중 죽자
정치에 흥미를 잃기 시작
- 1374년에 공민왕이 신하에게 시해당하며
개혁은 실패 (자제위라는 미소년 부대)
공민왕의 개혁은 고려의 자주성 회복과
새로운 정치 세력 성장의 계기가 됨
목표는 반원자주
목표는 왕권강화
-> 동녕부와 탐라총관부는 반환됨
-> 원은 필요할 때마다 임금을 교체
(고려왕이 원 황제의 사위가 됨)
고려 속의 몽골, 몽골 속의 고려
몽골풍
고려양
-치(하는 사람)
고려 청자
고려 떡
고려 여인과의 혼인
입성책동
고려 말 친원파들의 주장
"우리 고려를 원나라의 한 성으로
만들어서 다스려 주십시오!"
고려의 정치인들의 반대로 실패
-> 고려왕들의 개혁 노력은 권문세족과
원나라의 압력으로 실패
- 원나라에 10년간 볼모로 잡혀있다가
원의 공주인 노국공주와 결혼
-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원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원나라의 멸망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음
- 14세기 중반, 명나라에 의해서
원나라의 세력이 점차 약해짐
-> 개혁의 기회라고 판단
-> 신진사대부의 성장
공민왕의 애틋한 사랑
"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왕이 그 시신 옆을 지켰다. 최영이 와서 다른 궁전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니 왕이 '내가 공주와 그러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나만 편한 곳에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고려사"
"왕이 손수 공주의 초상을 그려놓고 생전과 마찬가지로 밤낮으로 마주하여 식사를 권하며 슬피 울었다. 삼년동안 고기 반찬을 입에 대지 않았다."
-"고려사"
"왕이 죽은 공주를 위해 거대한 영전을 건축할 것을 지시했다. 신하들이 거듭하여 중단할 것을 아뢰자, 왕이 '평생 나와 고려를 위해 헌신한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죽어서 쉴 곳 하나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어찌 지아비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며 물리쳤다.
-"고려사"
<공민왕과 노국공주>
사랑의 끝
공민이라는 이름은
명나라에서 내려준 것
- 고려가 원나라와 강화를 맺으면서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기 시작함
- 정부와 백성들의 강력한 대몽항쟁의 결과
나라 이름과 고려의 문화는 유지
-> 그러나 원나라의 정치 간섭과 각종 수탈에
시달리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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