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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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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Nmy

on 12 Ma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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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31년 ~ 2011년

박완서
작가
1 - 작가 소개
2 - 시대 배경
3 - 줄거리
4 - 책의 제목
5 - 감상
조선 황해북도 (당시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태어났음
3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음
7살 때 어머니와 서울로 이주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
-> 1남 4녀가 태어났음

1970년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음

1988년 5월 남편을 잃었고 8월 연이어 아들을 잃었음
-> 충격 받아 서울을 떠나고 부산 분도수년원에서 지냈음

2011년 1월 22일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
-> 1남 4녀가 태어났음

1970년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음

1988년 5월 남편을 잃었고 8월 연이어 아들을 잃었음
-> 충격 받아 서울을 떠나고 부산 분도수년원에서 지냈음

2011년 1월 22일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
-> 1남 4녀가 태어났음

1970년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음

1988년 5월 남편을 잃었고 8월 연이어 아들을 잃었음
-> 충격 받아 서울을 떠나고 부산 분도수년원에서 지냈음

2011년 1월 22일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
시대 배경 소개
일제 강점기
1910~1945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조선왕조)이 망한 이후부터 45년 8월 15열의 광복에 이르기까지 35년 동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한 시기

8월 15일에 일본의 항복과 함께 해방되었으나 조선총독부는 이후에도 한동안 존속, 9월 2일 미군정과 소련 군정 주둔 후 행정권 인수인계 기간을 거쳐 9월 28일까지 유지되었음
6.25 전쟁
(조선 전쟁/한국 전쟁)
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냉전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 주의인민공화국(북한) 사이에서 한반도의 주권을 둘러싸고 북한이 국경을 넘어 침공함으로써 발발한 국제 분쟁
여러나라가 호전 세력으로서 참전 한반도 전역이 전장이 되고 황폐했음
1953년 휴전에 이르렀다 만, 북위 38도선 부근의 휴전시 전선이 군사 분계선으로 인식되고 남북 양자 분단되었음
책 제목의 의미
<그 많던
싱아

누가 다 먹었을까>
10. 암중모색
오빠는 올케 죽은 후에 점점 말도 없어지고, 우울한 성격으로 변했다. 그리고 공산당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계속 걱정을 했고, 우리를 데리고 이사하고 다녔다.

11. 그 전날 밤의 평화
오빠는 재혼했고, 올케는 첫 아들을 낳았다. 오빠가 아이를 생긴 후 공산당 일 그만두고 학교에 취직했다. 작가가 대학에 합격했고, 가족들을 어느정도 안정 됐고,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묘사했다.

12. 찬란한 예감
6.25 전쟁을 시작했다. 이것이 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같은 한국 사람들이 공산당과 민주당의 전쟁이었다. 작가가 이런 같은 민족의 전쟁에 대해 마음을 아팠고, 자신 가족들이 빨갱이로 취급하기 때문에 벌레처럼 살고 있다고 묘사를 했다. 오빠는 의용군에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 동안 숙부는 사형을 당했고, 숙모도 사형을 당할 뻔했다. 올케는 두 번째 아이를 낳고, 하지만 돌라온 오빠는 태어난 아이를 안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오빠 돌아온 이후 모든 걸 관심이 없었고, 계속 불안한 상태였다. 오빠 돌아오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 피난을 갔고, 도중에 오빠 다리에 총을 맞았다. 오빠는 비명한 번 안 찌르고, 희망을 잃은 평온함을 보였다. 오리 도망가다 결국 현저동로 다시 왔다. 처음에 서울 올 때와 비교해 이곳에서 모든 것이 잘 보였고, 나는 이 모든 것이 보면서 서울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이 나면서 복수하려고 결심했다. 그것이 소설을 통해 이 시대에 증언하는 것이다.
줄거리
1992년에 발표한 작가 자신과 그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 소설임.

송도 부근 박적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이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할 무렵까지의 이야기들을 세세히 복원해낸 소설임.

해방을 거쳐 6.25 전쟁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들을 담고 있다.
'나' - 박완서 작가
어머니
오빠
할아버지 & 할머니
북순

내용
&
줄거리
1944년 숙명 여자고등학교 입학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
당년 여름 한국 전쟁 발발함으로 숙부와 오빠 잃었음
-> 집안 비극적인 사건들이 겹쳤음
-> 학업 중단
중요한 인물
1. 야성의 시기
'나'는 일본동제시대의 조선 황해북도(당시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태어났다. 자연 속에서 본능 그대로 살고 있었다. 가족은 조부모, 어머니, 오빠, 고모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2. 아득한 서울
엄마는 오빠의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조부모, 고모와 함께 시골에서 보냈다.

3. 문밖에서
어느 날,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어머니가 '나'를 데리려고 내려가셔다. '나'는 서울에 가는데 불안감과 기대감을 느꼈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시골과 도시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4. 동무 없는 아이
어머니는 ‘나’를 신여성으로 키우려 ‘서울 문 안’의 소학교에 보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혼자 산을 하나 넘어 다녔으며 ‘서울 문 안’에 사는 아이들과 동무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6 년 동안 동무는 아이로 지냈다.

5. 과불 마당집
오빠가 졸업한 후에 취직하게 돼서 살림도 좋아지는데 엄마가 여전히 삯바늘질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집주인과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기 때문에 어머니가 남의 돈을 몰래 쓰고 집을 샀다. 그 괴불처럼 생긴 마당이 있는 집은 묵지만 자기의 집이라서 세모자가 아주 행복했다.

6.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드디어 친구가 생겼고 복순이라는 그 친구와 같이 도서관을 다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책 읽기가 아주 즐거웠다.
7. 오빠와 엄마
일제치하 바탕으로 나 중학교 졸업하고 여가고등하교에 입학했다. 징용문제 때문에 엄마가 오빠를 징용할 까봐 걱정이 많았다.

8. 고향의 봄
오빠가 철공소에서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결혼생활 시작했다.

9. 패대기 처진 문패
해방 후에 우리가족이 고향에서 친일파로 몰려 당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다시 서올 올라왔다. (그동안 올케언니 돌아가셨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살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젙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이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서울에 있는 학교 다녔을 때 싱아를 산 속에서 찾아 헤맸지만 한 포기도 없었음. 자기 고향 뒤동산을 헷갈리고 있었을 뿐이었음. 그래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음.
다른 말로 말하면 싱아는 작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음.







인상 깊은 장면
1. (pg 29)
어머니가 어렸을 때를 서울에서 보내다가 시골에 시집을 왔다. 어머니는 '나'의 아버지 죽은 이유를 시골 탓으로 생각한다. 시골에 있었기 때문에 시골에 환경이 나쁘단 생각이 가지고 또한 서울에 가면 좋을 것이란 자신감도 가지고 계신다. 자식들에도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을 시키고 싶다. 어머니는 시골의 거부감이 많이 있기 때문에 시골에서 벗어나서 시골에서 평생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딸을 신여성으로 만들고 변함감을 느끼게 살 고 싶은 것이다.
그 때 조부모나 숙모에게 욕을 받고 있던 것인데 그때도 강하게 자기 생각이 옳단 자신감이 가지고 있어서 멋있다고 생각한다. 단단하게 자기에 생각을 말하는 것이 옛날 사람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말해버리는 '나'의 어머니가 멋있다.
2) (pg 43)
이제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장면이다. 어머니가 나름대로 서울에 올라가는 것을 결정하시기 때문에 '나'의 생각 없이 조부모나 숙모와 헤어지게 될 장면이다. 할아버지와 하직 인사를 한다. 말로는 "어허, 망측한지고"하고 한번 크게 꾸짖으셨다. 그러고는 쌈지를 뒤적여 50전짜리 은화 한 닢을 휙 던져 주셨다. '이왕 주실 거, 던져주실 게 뭔가.'하고 자족심이 상했지만, 나는 장판을 데구루루 구르는 은전을 손바닥으로 덮쳐서 꼭 쥐고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올렸다. 이 장면은 손자를 서울에 보내는데 자신과 마음의 갈등이 표현하는 것 같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과 보내주고 싶지 않는 마음 사이에 그렇게 행동해버린 것이다. 할아버지가 만약에 약한 마음이 표현했었다면 '나'는 시골에 남을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다. 이 장면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영원한 이별의 인사처럼 보였으니 걸랐다.
3)수학여행 갈때 만나러역으로 가신할머니와 장면
‘수치감과 분노로 화끈해진 얼굴을깊이 숙이고모르는 척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복순이의 손을 꼭 붙들었다.’
‘할머니한텐 좀 안됐지만 눈딱 감고, 귀먹은 셈 치고이 고비를넘기자, 그런 속셈이었다.’ – (pg. 138)
작가는 원래 가족들이 마중과 배웅하러 만나는것이 싫어서 동무들이 많은 곳에서 할머니를 만난 것이 괜히 창피했다. 자기 조선말 이름이 불렸은때 모른척했지만 할머니께서 일본 이름 부르셨을 때 더이상 무시못 할 것을 알아서 할머니 만나서 반가운 것처럼 거짓 우는 체했다. 이 장면 읽을 때 작가의 유치에 웃고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도 느껴져서 행복해질 수도 있다.
4)
‘그러나 아이들사회에서 그런주종관계가 일단성립되면 극것뒤바꾸기는 쉽지않다. 나는 학교생활이 지옥같았고, 집에 와도심심해서 몸이비비 꼬였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자연히 우리 동네학교 다니는아이들끼리만 몰려다녔다. 산까지 넘어 문안에 있는학교에 다니는, 중뿔난 시골뜨기를 인단시했다.’ -- (pg. 79)
이장면의 생각을통해서 작가의외로움을 잘느겨진다. 이 동네에살지만 산하나 넘어있는 학교에다녀서 여기도저기도 친구를못 사귀었다는 사실은 매우 슬폈다. 어머니 강한 교육열때문에 이고비를 걲게됐는데 어머니께서 눈치 못 챘다는사실도 딱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교육열, 그 고비야말로 박 작가를 만든 요소라고 동감한다.
6) (pg 188)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읽은 걸 결코 잘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 하고 하여튼 읽긴 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는 안 읽었고, 누가 그런 걸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알고 그럴까 열등감 반 의심 반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이런 읽긴 읽었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가 못 하는 마음의 묘사 공감을 느낄 수 있다.
5)선생님의 체벌 (pg 142)
‘일제고사 성적이 그 반보다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자기 점수에 상관없이 전체가 벌을 받았는데 선생님은 손끝 하나 까딱 안 하고 우리에게 가혹한 체벌을 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건 짝끼리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상대방의 뺨을 선생님이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때리게 하는 방법이었다.’
선생님의 엄격한 처별을 무섭다고 생각한다, 그런 지옥처럼 공부해야 하는 것은 인상이 깊다.
7) 엄마의 설득 (pg 210)
"엄마는 원래 자식들이 좋아하는 거나 옳다고 여기는 건 무조건 따라 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빨갱이 짓에 한해서는 집안 망치고 제 몸 망친다는 일관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이승만 박사는 싫다. 그렇지만 일생을 독리ㅣㅂ운동만 한 어른이니 한 번 대통령 해먹게 눈감아줘야지 어떡하니? 빨갱이들은 어쩌면 그렇게 의리가 없냐? 하긴 에미 애비도 몰라보고 어머니 도무, 아버지 동무 한다니까."
엄마의 설득방식을 특히 인상이 깊었다. 직설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말 하지 않고 돌려서 빨갱이 의미가 없다고 하고 아들이 빨갱이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저에게 준 느낌은 아들이 하는 일을 인정하고 싶지만 위험 하는 것이 아니까 돌려서 하지마라는 방식으로 아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8)숙부와 숙모는 동안 고발을 당하기 때문에 사형을 당했다 (pg 270)
"그러나 우리는 의리 없게도 거기를 직접 가보지 않았다. 마침 우리가 가택수색이네 연행이네 하도 경황이 없을 때이기도 했고, 집안 내에 사형당할 만한 빨갱이가 또 있다는 게 알려지면 또 무슨 꼴을 당할까 싶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숙부에게 옥바라지도 제대로 할 형편이 못 됐다."
숙부 숙모와 친하게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없기 때문에 작가한테 잘해줬고, 자기 집에 없는 독방도 숙부네 집에 살았을 때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시체를 찾으러 도 안 갔고, 숙부의 죽음에 대해 슬픔 한마디도 없다는 것 너무 충격적이었고, 이해를 못했다.
저희의 의견들을 나눴다. 공동적으로 세 가지의 공동점이 나타났다. 첫 번째는 소설의 내용이 어려웠다.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근대 문학이라고 하지만 내용의 표현보다 그 시대 배경이 감이 오지 않고 상상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모임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했다. 두 번째는 등장인물 중에 '나'의 어머니가 제일 인상이 깊었다. 저희는 어머니의 사랑과 생각에 대해서 관심이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항상 행복하게 사는 것에 뭐가 중요하는가를 항상 생각하신 거 같다. 그거들이 남에게 이해가 가지 않아도 우리 식구들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한 행동들 것이다. 세 번째는 '나'의 어머니를 만났다가 갑자기 고향에 저희의 어머니를 생각이 났다. 자식들 위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 어머니가 어렸을 때 해주셨던 많은 것들이 겹쳐 보였다. 어머니를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느낌과 감상
감사합니다
싱아
라는 식물은 작가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의 산에 흔한 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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