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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lightenment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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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Kim

on 29 Decem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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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Enlightenment Era

계몽주의란 프랑스어로 Siècle des Lumières '빛의 세기'를 뜻하는 말로 17세기, 18세기에 유럽과 신세계를 휩쓴 정치, 사회, 철학, 과학 이론 등에서 광범하게 일어난 사회 진보적, 지적 사상운동으로, 현재의 자본주의의 근간이며 계몽사상 이라고도 부른다.

계몽주의는 실제적인 도덕을 지향하였으며 형이상학보다는 상식, 경험, 과학을, 권위주의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특권보다는 평등한 권리와 교육을 지향하였다. 이 계몽주의는 1760년경 이후 강력히 대두되게 된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은 이성으로 적법성을 판단할 수 있으며, 이성은 권위의 요소이자 권위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계몽주의" 또는 "계몽주의 시대"라는 용어는 어떤 하나의 운동이나 사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속하는 사상가들은 서로 충돌되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고,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계몽주의는 어떤 사상의 집합체라기 보다는 가치의 집합체에 더 가까웠다. 전통적 관습, 의례, 도덕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계몽주의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여러 대립하는 철학 사이에도 비슷한 부분이 상당했다. 심지어 계몽주의에 반대했던 철학자들까지 계몽주의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성의 시기"는 보통 계몽주의 사상의 전주곡으로 여겨진다.[2]
계몽주의의 뜻[편집]
Enlightenment(프랑스어: Lumières, 독일어: Aufklärung)를 번역한 한자어 계몽(啓蒙)이란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Enlightenment 사상의 다만 한 부분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자어 번역이 대개 그렇 듯, 이 번역은 한국어로 뚜렷한 뜻을 전달해 주고 있지는 않다. 한편, 칸트는 인간이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지도없이 이성적으로 사는 것 또는 미완성 상태에서 완성태로 나아가는 것을 계몽이라 했다
17,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이른바 계몽사상은 인간이 이룩한 문화와 문명에 고취되어 인간의 지성 혹은 이성을 바탕으로 문화와 문명을 진보, 발달 시키려는 사상 또는 그러한 행동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다시 말해 인간의 지성 혹은 이성의 힘으로 자연과 인간 관계, 사회와 정치문제를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명료하고 자명한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고 낙관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대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계몽사상은 이와 같은 정신으로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권을 강조함으로써 유럽의 중세 시대를 지배한 전제군주와 로마 가톨릭교회와 신학의 족쇄로 부터 인간 이성의 해방을 주창했다. 계몽사상의 의의는 국가·정부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다. 정부가 더이상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민중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인간의 권리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는 당연히 국민의 동의를 받지않고는 존재할 수없다.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민의를 배반한다면 민중은 혁명적인 저항권을 발동해 국가를 교체, 폐지할 수 있다[3]. 이런 연유로 계몽사상은 17, 18세기 시민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한 것이다. 이 노력의 첫 장을 연 철학자로는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 존 로크를 손꼽을 수 있다. 이후 계몽주의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백과전서파 (디드로, 볼테르),루소와 칸트에 영향을 주어 이후 사상들의 출현에 기여했다.
몽테스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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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

출생 1689년 1월 18일
프랑스 왕국의 기 프랑스 왕국 지롱드 주 샤토 드 라 브레드
사망 1755년 1월 10일 (65세)
프랑스 왕국의 기 프랑스 왕국 파리
국적 프랑스 왕국
직업 철학자
제2대 몽테스키외 남작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프랑스어: Charles-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ède et de Montesquieu, 1689년 1월 18일 ~ 1755년 2월 10일)는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정치사상가이다. 권력분립론에 관한 명확한 설명으로 유명한데, 이 권력분립론은 정부에 대한 근대의 논쟁에서 허용되었고, 전 세계 많은 헌법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자유주의 입장에서 권력분립에 의한 법치주의를 제창하였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계몽주의 운동이 거의 동시에 이런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대서양 주변 국가에서 일어난 각종 혁명을 통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러시아,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런 움직임을 따랐으며, 라틴 아메리카 역시 아이티 혁명을 통해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다. 미국 독립 선언과 영국 권리 장전, 프랑스 인권 선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제정한 1791년 5월 3일 헌법은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1]
프랑스의 계몽사상
프랑스의 계몽 사상은 프랑스 혁명 이전에 시작되었다.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디드로,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étius)등 백과전서파들이 주도하였다.

계몽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계기가 되었으며 민중들에게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은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혁명을 통해 깨부수어야 한다는 강한 사회개혁 의지를 심어주었다. 민중들의 이러한 사회의식은 프랑스 혁명의 원천이 되었으며, 지금도 민중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저항권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존중되고 있다.[5]

볼테르나 몽테스키외, 디드로는 앙시앵 레짐(舊制度) 사회에 고착(固着)하는 종교적 편견, 사회적 기성 관념에 비판을 가했는데, 특히 볼테르는 이신론(理神論), 종교적 관용(寬容)을 가지고 교회에 대한 공격을 실시했으며, 몽테스키외는 신랄한 사회, 문명 비판을 전개했다. 이 기간, 데카르트의 이성(理性)은 정적(靜的)인 진리의 선험적(先驗的)인 보유자라는 성질에서 기능적(機能的)인 진리의 추구자(追求者)라는 성질로 변했으며, 한편에서는 영국에서 뉴턴 물리학의 경험주의, 로크의 감각론(感覺論) 등이 수입되어 이러한 요소는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Enlightenment Era
1748년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발표되는 해는 프랑스 사회의 경제 번영, 경제 자유주의의 성장을 배경으로 계몽주의의 결전 개시기라 불린다. 앙시앵 레짐 사회에 대한 자연법이나 사상적·정치적 입장에서의 비판은 차츰 체계화되어, 1752년에는 ⟪백과전서로서 결실을 보았다. 이 시기의 철학자 가운데는 콩디약, 엘베시우스, 라메트리 등과 같이 감각론, 이신론의 입장에서 유물론, 무신론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한편 정치 비판은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같이 전체 사회질서에서 국가의 기본 원리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었다.
1770년경 이미 계몽주의는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 미국 혁명이나 프랑스를 방문한 프랭클린(1707-1790)의 정치적 활동의 영향 등에서 자극을 받아 사회·정치 변혁의 이론적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모루레(1727-1819)나 마블리(1709-1785) 등이 이 세대이며, 자연법을 하나의 구체적 목표로 하고 공동 소유의 사회를 상정(想定)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직전, 철학은 전국의 개명적(開明的) 부르주아를 사로잡아 '생각하는 대중'을 조성(造成)하는 것으로써 실천적인 변혁의 사상이 되었다. 혁명의회에서 전개되는 모든 정치사상은 이미 계몽주의에 원형(原型)으로서 내포된 것이며, 그것이 전쟁이나 경제 위기, 정치적 역관계(力關係)를 계기로 전개된 것이다. 19세기 전반기 계몽주의의 인식론, 과학론, 역사론은 콩트의 실증주의에 계승되었고, 한편 보편적 이성(理性)에의 신뢰는 루아이에 코랄, 주프로와(1796-1842) 등에 계승되었다.
영국의 계몽사상
넓은 의미로서의 영국 계몽철학은 17세기 초의 프랜시스 베이컨에서 18세기 말의 애덤 스미스, 제러미 벤담에 이르는 경험론의 철학과 거의 같다고 해석되는데, 좁은 뜻으로는 존 로크에서 스미스까지의 18세기 철학을 총칭한다. 그 가운데서 신학적으로는 이성의 우위(優位)를 설명하고 후에 무신론으로 경사(傾斜)를 보인 이신론(理神論)의 흐름(앤서니 콜린스, 존 톨런드, 제3대 샤프츠버리 백작)이 있고 도덕철학으로서는 인간에 내재(內在)하는 모랄센스를 강조하는 도덕감학파(道德感學派, 샤프츠버리)와 유물론에의 경향을 가진 공리주의(데이비드 하틀리, 조셉 프리스틀리, 버너드 맨더빌)가 대립되어 있으며, 인식론으로서는 경험과 감각을 중시하는 경향(흄)이 나타났다. 흄은 회의론(懷疑論)에 빠졌는데 이것은 오히려 예외적이며, 대세(大勢)는 도덕감을 강조하든 이기심(利己心)을 강조하든간에 밝은 낙관론(樂觀論)과 인간 중심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계몽사상과 같은 사회 비판은 없고, 온건하고 현상(現狀) 긍정적이며, 이 점에 영국 계몽사의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단지 샤프츠버리에서 프랜시스 허치슨을 거쳐서 존 밀러나 애덤 퍼거슨에 이어지는 소위 스코틀랜드 역사학파에는 역사적 관점에서의 사회 비판이 나타났고, 18세기 말에는 차츰 첨예화하는 경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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