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presentation...

Present Remotely

Send the link below via email or IM

Copy

Present to your audience

Start remote presentation

  • Invited audience members will follow you as you navigate and present
  • People invited to a presentation do not need a Prezi account
  • This link expires 10 minutes after you close the presentation
  • A maximum of 30 users can follow your presentation
  • Learn more about this feature in our knowledge base article

Do you really want to delete this prezi?

Neither you, nor the coeditors you shared it with will be able to recover it again.

DeleteCancel

Make your likes visible on Facebook?

Connect your Facebook account to Prezi and let your likes appear on your timeline.
You can change this under Settings & Account at any time.

No, thanks

정몽주와 정도전,갈라진 운명

No description
by

방 효주

on 20 May 2014

Comments (0)

Please log in to add your comment.

Report abuse

Transcript of 정몽주와 정도전,갈라진 운명

느낀점
정몽주는...
1337년 경상도 영천 출생, 초명은 몽란, 몽룡 이였다가 성년이 된 후로 몽주로 고친다.
정몽주는 과거의 삼장(초.중.종장)에서 연이어 장원을 차지하고 이색의 문하에서 정도전 등과 같이 수학하게 된다. 또한 명. 왜나라와 외교를 주도적으로 펼쳐 여러 번 해결하기도 한 유능한 외교가였다.
친명파로 이성계, 정도전과 뜻을 같이 했지만, 그들과의 의견차이 때문에 그들과 정적이 된다. 1392년,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를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성계 일파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게 한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방원은 재빨리 이성계를 개경에 데려오고 이성계의 병문안을 핑계로 왔던 정몽주는 이 날 이방원과의 만남에 유명한 시를 남기게 된다.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정몽주는 이방원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만 이방원에 의해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익양부원군으로 추봉되었으며,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된다. 이 후 정몽주의 충절은 선죽교에 뿌려진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는 전설을 남겼고, 그의 학문과 이념은 조선의 사림파에게 이어졌다.


정몽주와 정도전,갈라진 운명
정도전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이다. 하지만 정적의 칼에 단죄되어 조선왕조의 끝에 가서야 신원이 회복되었다.
과거에 급제한 정도전은 22살때 충주사록에 임명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원나라 사신의 마중을 거절하면서 유배를 당하게 되고, 그 곳에서 백성의 삶을 보고 위민의식을 키우게 된다. 그가 제시했던 민본사상을 허울 좋은 이름이 아니라 진정성이 담보된 것 이였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 이성계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해 줄 것으로 확신하고 군영 앞에 있던 노송에 이런 시를 남긴다.
아득한 세월에 한 그루 소나무
푸른 산 몇만 겹 속에 자랐구나
잘 있다가 다른 해에 만나볼 수 있읗까
인간을 굽어보며 묵은 자취를 남겼구나
정도전은 평소 취중에 ”한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라고 하고다녔다. 한 고조를 이성계에 대비한 것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을 비롯해 현재의 경복궁 및 도성의 자리를 정하였고, 수도 건설의 총 책임자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수도 건설이 마무리 되면서 경복궁 및 성문의 이름과 한성부의 5부 52방 이름도 지었다. 또한, 경국대전의 출발이 되는 조선 경국전을 지어 올린다.
하지만 정도전이 세자로 방석을 지지하고 나서자 정도전은 결국 이방원이 이끄는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조선조 말 고종에 가서야 다시 신원이 회복된다.

정몽주와 정도전의 관계
온건개혁파
고려 말 고려왕조의 테두리 안에서 개혁을 주장했던 개혁세력이다. 이제현, 이색,정몽주,권근,이승인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급진개혁파와 출신기반이나 관리 진출과정등은 공통점이 있었으나, 급진개혁파보다 정치적 연륜이 오래 되었고 정치적 지위나 경제적으로도 우월한 위치였다. 이념상으로도 성격을 달리했던 바, 이들은 유학자이면서도 불교에 타협적인 태도였고, 성리학 이해에서도 종더 이에 치중하는 면을 보였다. 따라서 치인보다 수기에 역범을 두고, 관념적.윤리적 측면에 치중하는 경향이였다. 고려 말 개혁과정 초기에는 권문세족의 토지겸병 반대에 급진개혁파와 공동보조를 취했으나, 위화도회군 이후 추진된 전면적 토지개혁.신왕조 개창공작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였다.
정몽주
이제현
이색
급진개혁파
고려 말 역성혁명을 주장했던 개혁세력들. 정도전, 조준, 윤소종, 남은, 남재,조인옥,조박,정탁,이성계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대부분 지방의 중소지주적기반을 가지고 있었고, 무신란 이후나 말기에 비로소 중앙관계에 등장한 사족 가문출신으로, 문음이 아닌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된 학자적 관인,즉 유교적 지성을 갖춘 관인들이였다. 온건개혁파에 비해 정치적 진출이 늦어, 공민왕 때 공신전이 대량 지급될때도 거의 참여하지 못해 경제력이 미약했다. 또한 이념상으로도 온건파에 비해 불교를 철저히 배격했으며, 성리학 이해에서는 주리이면서도 기를 중시하는 경향이였다. 따라서 수기보다는 치인에 역점을 두었으며, 정치.경제개혁에 관심이 많고, 맹자의 왕도정치 사상과 민본이념, 주례에 입각한 유교적 이상국가 건설을 목표로했다. 이들은 새왕조 건설을 위한 기초로서 전면적인 토지개혁을 추진했다.
정도전
이성계
정탁

정몽주와 정도전은 같은 해에 과거시험을 봐서 정몽주는 3개의 시험에 연달아 장원을, 정도전은 급제를 하여 이색의 수하에서 같이 수학하였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그 당시 같이 수학하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을이 잘 맞아 정도전이 이야기하는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 권문세족으로부터 농민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상에 공감하게 된다.이후 정도전과 정몽주는 오랜 친구로 권문세족과 외척의 발호로 부패한 고려사회를 성리학적 이상향으로 개혁하겠다는 사상적, 정치적 동맹자가 되었다.
친명파로 이성계 일파와 뜻을 같이 했지만 이성계 일파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려는 낌새를 보이자 정몽주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던 정도전을 배신하고 그들과 정적이 된다.
이성계 일파가 이씨가 나라를 세운다는 목자득국의 노래와 말을 유포시켜 역성혁명의 뜻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자 정몽주는 그들과 결별하고 정적의 길로 접어든다. 한때 동료였지만 지금은 정적이 된 정도전을 탐욕스럽다고 비판하였을 뿐 아니라 정도전 집안의 혈통을 공격하면서 마음이 상한 정도전은 정몽주를 원수로 여기게 된다.
1392년, 이성계가 사냥터에서 낙마하였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때를 틈타 정몽주가 이성계 일파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고, 이를 눈치챈 이방원이 아버지인 이성계를 급히 모시고 와 정몽주의 계획은 틀리게 된다. 이성계의 병문안을 핑계로 이성계를 보러 온 정몽주는 이 날 이방원과의 만남에 유명한 시조를 남기게 되고, 이 날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 정몽주가 말을 거꾸로 타고가고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 된다. 조선 대부분의 기틀을 닦은 정도전은 세자를 옹립하는 과정에서 방석을 옹립하게 되고, 결국 한씨 소생들의 미움을 사서 결국 정도전도 이방원 일파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정도전&정몽주 의견차이
출신성분 부친:귀족 모친:종 양친 모두 귀족

공부 이색의 문하에서 유학&성리학 공부

과거&관직 합격,귀양, 모친이 종이라 장원 합격, 엘리트코스로
탄핵등 파란만장 승승장구

불교 배척, 승려는 먹고 노는 부분적 인정
제거대상

백성 관점 왕보다 중요 어떠한 경우도 왕실 보존 유지
백성 무시 왕은 교체

토지 개혁 권문세가 모든 토지 환수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음
농민 균등분배

고려 왕조 없애고 새 국가 창업 고려 왕조 유지 보존

개혁 성향 급진적, 총체적 온건적, 점진적

외교 친명파나 요동정벌 준비 친명파

죽음 이방원(3대 태종)에게 살해
정도전(급진개혁파)
정몽주(온건개혁파)
신진사대부
[사]는 독서인을 뜻하며, [대부]는 정치인을 뜻하는 말로, 사대부는 학자적 관료, 혹은 관료적 학자를 지칭한다. 첫 등장계기는 무신집권기로, 당시 문신들을 몰아낸 무신들이 그 나머지를 채우기 위해서 지방의 토착세력을 등용하는 과정에서 향리층이 과거를 통해 상당수가 중앙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무신들에게 의탁한 진출이였기에 독자적 정치기반은 마련하지 못하였다. 원간섭기로 넘어가면서, 그들은 원에서 주자학을 도입하고 국학을 중심으로 연구, 보급을 하게된다. 또한, 충선왕, 충목왕, 공민왕 등이 권문세족을 누르고 개혁을 시도했을 때, 그 측근세력으로 개혁에 참여했지만, 권문세족에의의해 많은 탄압을 당하지만, 그 당시 형성된 개혃[력이 조선 건국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권믄세족은 부세지주였고, 시진사대부들은 직접토지를 경영하였기에 생산력 행상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고려말 중국의 강남농법의 도입으로 농업기술 발전에 연관이 있는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권문세족을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하는데 성리학을 사용했다. 성리학은 원나라에서 한번 걸러지고 온 것으로 실천윤리를 강조해 의리론 명분론을 중시하게된다. 첫 공격은 불교의 비현실성, 그리고 승려들의 무위도식이였다. 또한, 이들은 고려 사회의 모순 해결방안으로 권문세족의 기반인 정치 토지 개혁을 주장한다.
위화도 회군 이후 정치 주도권을 획득한 이들은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한다. 첫 개혁은 사전의 개혁과 새 왕조 수립이였는데 이 때 온건개혁파와 급진개혁파로 나뉘어지게 된다. 급진개혁파들의 강력한 사전 주장과 과전법의 마련으로 조선건국의 기초 마련에 성공한다.
고려 말 시대 상황
대외적 배경
: 중국 역사상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기였기네 홍건적과 왜구의 반도 침탈이 극에 달하였다.

대내적 배경
: 표면적으로는 기득권 세력과 신진사대부들의 대립이지만, 위화도회군의 성공으로 조선이 탄생하였지만, 기득권 세력과 신진사대부들의 대립에서 이성계가 신진사대부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역성혁명을 이루었다.
권문과 세족을 합쳐 부르는 말로,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정치세력들 중 하나이다.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이 12세기에 이르러 무신난에 의해 몰락하면서 대몽항쟁 이후 새로 형성된 지배세력을 권문세족이라 칭했다. 권문세족은 문벌귀족 중 일부와 무신 정권기에 새롭게 정권을 잡은 일부 무신, 지방 출신으로 새로이 과거를 통해 등장하는 신진관인, 그리고 원과의 관계에서 출세한 부원세력 등으로 구성된다.
권문세족
목차
1. 고려 말 시대상황&권문세족 뜻풀이
2. 정몽주의 생애
3. 정도전의 생애
4. 정몽주와 정도전의 관계
5. 신진사대부란
6. 정도전(급진개혁파) 와 정몽주(온건개혁파)의 공통점&차이점
7. 온건개혁파
8. 급진개혁파
9. 느낀점
되게 재미있는 주제였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정도전 드라마하고 인물이 겹치는 바람에 자료는 많았지만 대부분이 드라마 관련 영상이나 자료들 이였다. 정도전 드라마를 보지 못한 나로써는 정도전과 정몽주가 5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사이였단 점에서 놀랬지만, 그때당시에는 시대가 달라서 그런것 이라고 이해가 간다.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한양 성문의 이름, 그리고 한성부의 이름까지 지은 것을 보고 정도전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아꼈는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에서는 아마 친한 친구이자 한때 동료였던 정몽주를 따라갔다고 생각하지만 정몽주와는 다르게 조선 말에 가서야 신원이 회복되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나는 생각된다. 재미있던 주제 였지만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했던 주제였다,
정몽주의 죽음 장면
정도전의 죽음장면
Full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