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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2018-1 한국사 개론

백제
by

현호 심

on 15 Marc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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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3주차 2018-1 한국사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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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개론
감사합니다
2018-1
세미나 주제
1. 백제는 누가, 언제 건국했는가?
2. 백제와 일본은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
STEP.1 백제는 전한 성제 홍가 3년,
온조가 건국 하였다.
온조와 비류는 주몽과 소서노의 자식이다.
STEP.2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믿지 않았다.

- 온조~계왕은 전설이다. 즉위연대 조작.
- 285년 부여 멸망 후 왕족 일부가 남하해
백제를 건국했다.
- 근초고왕 이전은 허구다.
1-1 백제 초기 왕위 계승의 미스터리
STEP.3 한국 학자들의 반격

- 이병도 <주서> 백제 시조 구태= 구이= 고이왕


- 근초고왕 -> 고이왕
- 이기백 8대 고이왕~12대 계왕 형제상속
13대 근초고왕~17대 아신왕 과도기
18대 전지왕 이후 부자상속제 확립
온조~ 구수왕은 조작
STEP.4 김원룡 헛갈리면 땅을 파보자!!

- 고구려, 백제, 신라가 기원전 1세기 무렵 건국됐다며?
- 풍납토성 출토 무문토기
천관우

- 주몽-> 온조-> 초고계
- 우태(구태)-> 비류-> 고이계
STEP. 5 마무으리

- 이종욱 -> 1세기 부여, 고구려계 세력(온조) 남하
-> 십제 건국, 미추홀 병합 후 백제 건국(중화주의와 한군현 영향)

- 노중국(인류학 성과 도입) -> 읍락단계 -> 소국단계
-> 소국연맹단계 -> 부체제단계 -> 고대국가단계

- 분해론으로 연결 <삼국사기> <백제본기> <삼국지> 동이전
초기 백제사 사회상, 대중국외교사

부여=백제
고구려=백제
- <백제본기> 온조는 고구려 주몽의 아들이다.
- 472년 개로왕 표문
->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다.
- <삼국유사> 백제의 왕성은 해씨이다.
- 백제 왕실의 성은 부여의 국명인 부여씨이다.
- 서울 송파구 석촌동, 가락동 일대에서
고구려 지배층의 묘제인 적석총이 분포한다.
- 위덕왕이 세자일 때 고구려 군에게
자신이 고구려와 동성이라고 말하였다.
근초고왕(??~375)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체격과 외모가 기묘하며 위대했고, 넓은 식견이 있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근초고왕조 첫 문장.
369년 영산강 유역 병합
STEP.1 근초고왕의 정복사업
STEP.2 근초고왕과 칠지도
태[화] 4년 11월 16일 병오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 만들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귀하게 성음聖音으로 태어났다. 그런까닭에 왜왕 지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STEP.3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 3~4세기 나주 반남고분군
고구려와 백제의 적석총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횡혈식석곽분
영산강유역 옹관고분
- 5세기 말~ 6세기 초 전방후원분
인덕천황묘
- 475년 한성 함락, 백제 웅진으로 천도
478년 문주왕 피살
480년 삼근왕 사망
다카노노 니가사- 무령왕 10세손
조메이 천황(593-641)

“조메이 천황이 '백제궁'을 짓고, '백제궁'에서 살다가 '백제궁'에서 붕어했다”
고쿄쿠(642-645), 사이메이 천황(655-661)
"살려야 한다"

3만의 병력
덴지 천황(668-672)
병력 4만 2천 명
1,000척의 전선

"살아야 한다..."
- 4세기~ 7세기 초 나주 복암리 고분군

3호분에서는 영산강유역에서 확인되는 옹광묘 횡혈식석실묘, 석곽옹관묘 등 7종류의 묘제는 물론 금동신발과 은제관식 큰칼 금귀고리 등 다양하면서도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 790점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것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복암리 3호분은 옹관(토기 항아리관) 중에서 이른 시기(3세기)에 해당하는 옹관묘를 비롯하여 횡혈식석실분(굴식 돌방무덤) 중에는 7세기 전반까지 내려오는 묘제가 한 분구 안에서 확인되고 있어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까지 400여년간 동일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집단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한분구 안에서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는 복합묘제고분은 한국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이다. 이를 통해서 영산강 유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다장과 대형분구의 성토방법 과정 각 묘제간의 관계, 옹관묘와 석식분의 변천과정, 매장방법 및 부장유물, 일본과의 관계, 영산강유역 토착세력과 백제와의 관계 등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영산강유역 고대사 연구와 규명에 결정적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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