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presentation...

Present Remotely

Send the link below via email or IM

Copy

Present to your audience

Start remote presentation

  • Invited audience members will follow you as you navigate and present
  • People invited to a presentation do not need a Prezi account
  • This link expires 10 minutes after you close the presentation
  • A maximum of 30 users can follow your presentation
  • Learn more about this feature in our knowledge base article

Do you really want to delete this prezi?

Neither you, nor the coeditors you shared it with will be able to recover it again.

DeleteCancel

종군위안부

No description
by

도연 김

on 27 October 2015

Comments (0)

Please log in to add your comment.

Report abuse

Transcript of 종군위안부

목 차
1. 종군위안부 (Comfort Women)
3. 입장의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가.
5. 각 국의 소수 의견
종군위안부
comfort women : 위안부
X
일본군 위안부
종군위안부
PPT/ 김도연
자료조사/ 김도연, 방신현
2. 일본군 위안부 (Military Sex Slavery by Japan)
일본군이 1930~1945년 종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군위안소’를 설립하고,
점령지와 식민지의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성노예로 만든 전쟁 범죄를 일컫는 법정용어

3. 성노예 (Sex Slavery)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지칭으로,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사용하는 용어
종군 : 군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가거나 전투 이외의 목적으로 군대를 따라다니는 일
ex) 종군 기자, 종군 사진작가, 종군 작가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는 피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여,
어떤 목적을 가지고 군대를 따라다닌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김.

그러므로, 여러 ‘비자발적인 이유로’ 일본군에 끌려간 소녀들을 매도하는, 부적절한 표현.
*
도츠카 에츠로저,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이다
*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마이크 혼다 (Michael Makoto Honda)





4. 일본정부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정, 사죄 및 역사적 책임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 주도.


일본의 보수우익언론과 많은 일본인으로부터 국익에 반하는 일본인으로 비난.
일본의 피해를 입은 국가들로 부터는 경의를 받음.


결의안의 목적이 일본을 무조건 성토하거나 굴욕감을 주려는 것이 아닌,
“진실을 밝히는

일”이며, 옳은 일이라 믿기 때문
이라고 말함.

Rep. Mike Honda (D-Calif) : 캘리포니아 출신 미국 하원의원

1. 영아기/ 태평양전쟁을 겪으면서 콜로라도 주의 일본계 강제 수용캠프에서 보냄.
2. 2000년/ 공화당의 톰 켐벨을 대신하여 민주당 소속으로 하원에 입성.

3. 모국인 일본에게 제2차 세계대전중의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촉구한 것으로도 유명.
“People say that’s history, that’s in the past, but it’s still alive because the victims are still here. They need their apology for the return of their dignity,” Honda said in an interview after Abe’s speech to Congress.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를 과거의 역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희생자들이 아직 살아 존재 하기 때문에 여전히 위안부 문제는 아직 살아숨쉬는 현재진행형에 있다.
그들의 정말로 존엄성회복을 위해 사과를 필요로 하고있다.


“If we as Asian Americans here require our own government to apologize to us,” Honda recalled Wednesday, “how much more should the Japanese government apologize to the victims of sexual slavery?”
만약 나 같은 아시안 계 미국인들이 여기서 미국정부에게 사과하라고 요구를 한다면, 대체 일본정부는 얼마만큼이나 성노예의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해야할까?


“These women are dying. And I don’t want to think that he’s thinking that he’ll outlive them and maybe they’ll go away. Governments are organic beings. Governments are responsible for their past, present and future,” he said.
이 여성들을 죽어 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베총리가 위안부피해자보다 본인이 더 오래 살 것이기 때문에 곧 사라질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정부라는 것은 유기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그들이 저지른 과거, 오늘,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


기사 제목/ Congressman uses Japanese leader’s visit to press for war-crimes apology
저작권자ⓒ The Washington Post/ Paul Kane covers Congress and politics for the Washington Post.
vs
1910
1931
1937
한일합방 이후
조선여성을 팔아넘겨 매춘 시작
상하이 사변 이후
1910년(융희 4) 8월 29일
경술국치조약에 의해 한국의 통치권을 일본이 빼앗은 일
일본에서는 <한국병합>이라고 한다.
*
일본군에 의한 강간이 빈번히 발생
제1차 상하이 사변 -
중국의 상하이 국제 공동조계 주변에서 일어났던 중일 양군이 충돌했던 사변.

제2차 상하이 사변 -
중일 전쟁기간동안 있었던 일본제국과 중화민국간의 전투.
*
*
오카무라 야스지 군대위안부 요청
오카무라 야스지
1884년 5월 15일 ~ 1966년 9월 2일
오카무라 야스지 중장은 나가사키의 지사에게 군대 위안부 유치를 요청함.
이것이 공식적으로는 전쟁터에 위안부를 끌어들인 첫 시기로 보여짐.
*
일반시민 강간사건이 빈발
1937년 난징 대학살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한 뒤 이듬해 2월까지 대량학살과 강간, 방화 등을 저지른 사건.
정확한 피해자 숫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약 6주 동안 일본군에게 2~30만 명의 중국인이
잔인하게 학살되었으며, 강간 피해를 입은 여성의 수도 2~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병을 위해 위안부 요청
1937년 12월∼1938년 2월
난징대학살
*
*
저작권자ⓒ 아주신문, <금주의 중국역사> 난징대학살로 중국인 30만명 희생, 한오종 기자(kl21c11@ajunews.com
- 역 사 적 배 경 -
3. 입장의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가.
3. 일본의 입장표명의 변화
-과거사의 사죄와 보상
한일기본조약
일본은 개인 배상을 제안했지만 한국이 거부
반대로 한국은 국가에 대한 배상을 일본에 요구.
=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일 본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
에서 이미 매듭지어졌다”
대한민국과 일본이 서로간에 일반적 국교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1965년 6월 22일에 조인한 조약.
*
*
일본 자체의
과거 반성론

1980년대 이후
‘정치 대국화’
&
‘국제적 역할 신장’
=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
(일본의 대한 외교의 일부로 관례화 됨.)
정치권에 대두
1993년 정계개편 이후
by 사회민주당+자민당의 연립내각
일본 총리들의 사죄의 강도
1993.8.9.-1994.4.28 / 제 79대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가져온 것에 대해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
처음으로 침략과 식민지 지배란 표현을 명시.
그 해 11월 경주를 방문하여 한국민의 모국어 교육기회 박탈, 창씨개명 강제 사용, 군대 위안부 등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당했다고 인정
무라야마 도모이치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으며, 역사의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
1994.6.30 - 1996.1.11 / 제 81대 총리
외교적) 일본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죄.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와 군 위안부 문제 등은 언급 X
무라야마 담화/1995년 당시 일본 무라야마 총리가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
과거반성론의
확산
과거사와 관련하여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
충분히 반성,사과함
사죄와 반성이 지나침
or
잘못되었다는 반동적인 입장

(망언이 90년대 중반에 더욱 잦아지는 현상 때문)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조사는 피해자인 위안부로 부터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아 불충분한 조사에 그치고 말았다"
아베 신조
2006.9.26 - 2007.9.26 / 제96·97대 총리
일본의 전후처리문제에 관한 심호지엄 by 일본변호사연합회
1992.7.13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깊은 고통을 느낀다"
"아베 내각은 고노 담화를 지지하며
이를 개정할 의도가 없다"
"이런 입장(고노담회 지지) 하에서 일본은 위안부에 대한 현실적 지원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 왔다"
"전쟁 중에 여성의 인권이
종종
침해당해 왔다"
"2014년에 1천200만 달러를 지원했고, 올해 2천만 달러를 더 지원할 계획"
"어떤 경우에도 21세기는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는 시대가 돼서는 안 된다"
"일본의 행동이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고통을 줬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되며, 그에 대한 생각이 역대 총리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2015.4.29 /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
저작권자(c) 연합뉴스
5. 각 국의 소수 의견
니카이 도시히로 (Nikai Toshihiro)
1939.2.17일-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제대로 하라’고 말했다”
“모든 기관과 협력해 하루빨리 정상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2015.3.11 도쿄 시내에서 열린 강연 중
"빨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본을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1. 집권 자민당의 3역(간사장, 정무조사회장, 총무회장) 중 한 명.
2. 자민당 안에서 한국, 중국 등 이웃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인사.
3. 외교 소식통은 "그의 의견이 아베 정부 내에서는 '소수 의견'"이라며 "지금 일본에선 과거사를 부정하는 주장들이 판을 치고 있어 기류 변화를 점치기는 이르다"고 함.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용수 기자
방한 기간에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들었다.
평균 연령 88세인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문제를 해결하자는 대통령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맞는 말씀’이라고 답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고 하고,
한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대립 때문에 지금까지 정상회담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Q.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기사제목/ 일, 자민당 3역 니카이 총무회장 “위안부 해결, 일본 국익에도 중요”
박 대통령 말씀처럼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우리 세대가 문제를 해결해야지 다음 세대에 짐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동아일보 / 도쿄=박형준 특파원
5. 각 국의 소수 의견
4.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면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다"
1. 2002년,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세상에 나옴.
김귀옥/ 한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전쟁과 평화연구소 소장
2.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당화시키는 빌미를 마련해준다는 지적이 문제가 됨.
당시 '한국전쟁과 여성 : 군위안부와 군위안소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림.
*
3. 그러나 현재까지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않음. 한국 사회 내에서 친일 세력이 그만큼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인가? 라는 질문이 수면위에 떠오름.
저작권자ⓒ프레시안(손문상)
우에무라 다카시
1991년 8월 1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최초 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
*
"위안소에서 '강제 노역이 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고 명백한 인권침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 진실"
"오는 8월 담화에서 아베 총리가 반드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기를 촉구한다"
2015.5.4, 뉴욕대학교 동아시아학과 초청강연
저작권자ⓒ 연합뉴스
5. 각 국의 소수 의견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지금까지 위안부들은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제각각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어왔다.
그것은 위안부문제를 부정해온 사람에게도, 위안부들을 지원해온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양한 상황을 말한 증언 가운데에서 각각 갖고 있던 대일본제국의 이미지에 맞춰 위안부들의 ‘기억’을 취사선택해온 것이다.



일본어번역판
지난해 한국에서 출판돼 “전 위안부 분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제소ㆍ고소당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이 드디어 출간됐다.

감명 받았다고 쓰기도 망설여질 정도로 준엄함으로 가득한 이 책은 이후로 쓰여질 모든 ‘위안부’에 관한 말에서, 공감하든 반발하든 부동의 항성처럼 흔들리지 않는 기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 정도까지 고독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느꼈다.
아니 이 정도까지 고독한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저자의 마음을 생각하며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성노예’라는 단어는
성적 혹사 이외의 경험과 기억을 은폐해버리는 말이다.

위안부들이 총체적인 피해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측면만 주목해서 ‘피해자’로서 기억 이외를 은폐하는 것은
위안부의 전인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된다.

그것은 위안부들에게서
스스로 기억의 ‘주인’이 될 권리를 빼앗는 것이기도 하다.

타자가 바라는 기억만을 가지게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종속을 강제하는 것이 된다.


20년간 못 푼 위안부문제… 제3의 길은 없는가
1948년 광복을 맞은 뒤,
교착상태였던 한·일 관계

‘한·일 기본조약’
+
‘한·일 청구권협정’
(조약의 하위 협정)
을 토대로 정상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론화
+
일본의 일부 인정
한일기본조약, 이보다 늦은1990년대부터 시작됨.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 필요하다”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이미 일단락됐다”
VS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1. ‘일본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못함.
조약 2조 :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
임을 확인한다”
*
무효
한/ “한·일 병합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
일/ “1948년 광복을 기점으로 식민지배가 무효가 됐다”
→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에 양국 해석이 달랐음에도, 조약 체결로 봉합해 버림.
2. 청구권협정의 책임 대상이 모호
*
협정 2조 :
“이 협정에서 일본은
조선에 투자한 자본과 일본인의 개별 재산 모두를 포기하고,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하고,
한국은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에 합의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마치 ‘모든 문제에 대한 청구권 문제가 완료됐다’는 식으로 규정했지
만, 청구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협정문 어디에도 밝히지 않았다”
→ “내가 ‘이완용’ 소리를 들어도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날림’이 있었어도 그 돈으로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주장이다.
김종필(전 자민련 총재)
1
2
3
4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1인당 500만엔
(약 4300만원) 상당을 지원했다며 ‘과거사 청산’을 주장.
당시 우리나라는 금액 수령을 거부했다.
아시아여성기금 설립
(민간 주도에 의해)/ 1995
한·일 청구권협정 논란
한국의 공식 입장
김종필 총리는 일제시대 조선여성들이 성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하고있다

북한에 218명의중 43명의 위안부할머니 공개 증언

네덜란드 정보부대 문서 5309

일본의 일본 후생성이 해방 전후 위안부 신상기록을 작성한 ‘유수명부’

이날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본의 전쟁범죄 기록을 조사하던 미국 연방정부의 합동조사단(IWG)이 지난 2007년 4월 이미 군 위안부가 일본의 조직적 성 노예 프로그램이라는 내용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만들어 미국 의회에 전달한 사실이 확인됐다

중국에서는 위안부 관련 사료가 언론에 전격 공개되기도 했다. 옛 만주국 당시 관동군사령부 등이 남긴 일제사료 10만 권을 정리·연구하고 있는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소(기록보관소)는 최근 조사정리가 끝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료 25건을 한국언론에 공개했다. 25건의 사료 가운데 6건은 한국인 군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1941년 일본군 베이안 지방검열부가 만든 '우정검열월보'에서는 한 군위안소 상황을 묘사한 편지도 포함돼 있었다.
5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51.9.8
발표/ 김도연, 방신현, 최성일
일본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외교적 보호권포기설'에 의해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과 미국사이의 평화 조약
4. 한국, 일본 포함 각국의 반응
‘위안부 해결 결의안’ 전세계 115건, 일본에서도 40건 채택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문서
증인
'스마랑' 사건 관련 자료
by 국립공문서관
누가
어디서
무엇을
일본 해군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네덜란드군
하사관 부인 5명,
현지인 270여명
강제로 발리섬에
끌고가 위안부로.
한국 내에 있던
일본인 '사업가'들
미얀마 이외의
일본주군지
미국 국립 문서 기록관리청
일본군
2차 대전 당시
병사들의 월급-24엔,
위안부의 화대-3.5-5엔
위안부를
군대 부대시설로
지정해 운영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기록한 기밀문서
by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1945.11월.15
-연합군 총사령부-
이 보고서는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온전히 사적인 사업을 보여줌.
일본인 '사업가'들이
일본군 사령부의 제의를 받아
한국 여성들을 끌어들여
미얀마 등지로 데려갔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허락을
받았다고 기술.
“위안부 속여서 끌고가는 것
직접 봤는데 꾸며낸 일이라고?”
김종필(1926~), 전 국무총리, 국회의원
정 상 회 담
Full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