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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Historiography 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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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 Hwi Lim

on 25 Ma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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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20c

History of Historiography 20c
막스 베버와 Ideal Type
20세기 후반
19c말~20c초
정신적 가치 재조명
19세기는 인간정신의 진보를 확신: 정신의 우위를 강조하는 전통이 지배. 정신의 자발적 형성과 그 작용에 우위를 부여하는 역사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역사서술
19세기 중엽 이후 유물사관의 등장: 정신보다 물질
자ㅇ연과학적 방법에 의존하는 실증주의 확산
정신에 우위를 부여하던 학문적 전통이 위협

인간정신의 위기: 니체의 초인에 대한 예언
지적 배경:
Wilhelm Dilthey 1833-1911, Croce, 콜링우드
크로체: 과학과 역사의 인식방법은 다름을 주장

역사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에 관여하고 법칙을 연구하지 않음. 오히려 예술에서처럼 개체를 직관하고 서술한다. 다만 역사는 예술과 달리, 사실적인 것에 대해 직관. 역사의 확실성은 분석과 논증의 확실성이 아니라 사료의 신빙성으로부터.
인식의 대상은 역사가의 현재적 관심에 의해 선택되고, 역사가의 정신에 의해 인식.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며, 역사는 항상 다시 쓰여짐.
=> 실증주의를 거부하면서 역사주의 인식론을 재조명. 그 결과 이들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역사주의와 실증주의의 대립만을 첨예화




순수한 주관주의나 실증주의를 배격하고 양자의 조화를 시도.
두 방법의 상보성을 주장하면서 양자의 응용방법을 모색.
=> 사회현상을 연구하면서 이른바 ‘문화가치’에 대한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 여기서 베버가 내세운 것이 이상형(Ideal Type). =>이상형: 사실을 근거로 특징을 계속 부각시켜 하나의 전체상으로 만들어 낸 것. 이상형은 특정 사실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사실들을 가장 완전하게 해명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 그러나 이상형은 자연과학에서의 일반화처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이상형과 상호비교하여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구명하는 길잡이

2차대전 이후 전통적 역사연구 및 서술방식에서 탈피.
1차대전 이후 제기된 전통사학에 대한 비판과 사회과학에의 접근 등으로 역사연구의 방향이 전환.
① 민족중심적 역사서술과 랑케적 사실주의란 결국 잡다한 사료의 나열일 뿐이라는 비판
② 고고학, 인류학, 경제학, 사회학 등 인접 사회과학의 발달과 그 방법론의 수용
③ 좌파 역사학자들의 도식주의 포기
④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컴퓨터를 통한 새로운 통계학적 연구가 가능해짐.

프랑스의 구조사
1950년대 아날학파가 주도.
주요 경향은 장기적 구조분석 연구.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종래 역사주의에 반발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시작.
1906년 Henri Berr: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종합을 통한 인간학으로의 고양을 주장.
E. Durkheim과 F. Simiand: 정치사 중심의 개별적 역사연구를 지양하고 통계학과 비교사방법의 도입을 주장.
Lucien Febvre(1878-1955)와 Marc Bloch에 의해 1929년 <사회경제사 연보>(Annales) 창간
페브르, <필립 2세와 프랑쉬-콩테> 1911.
블로크,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 성격>, <봉건사회>에서 농업사회사를 재구성하고 총체사를 제시.
아날학파
1946년 <경제, 사회, 문명 연보> 발간
2세대 아날학파 형성: 지리학, 경제학, 사회학, 구조인류학, 언어학 등과의 연계 속에서 본격적인 학문간의 결합을 시도.
Fernand Braudel: <필립 2세 시대의 지중해 및 지중해 세계>(1949)와 <역사와 사회과학, 장기지속> (1958) 아날의 역사이론을 창시. 브로델은 역사가 이루어지는 시간을 개별적 시간, 사회적 시간, 지리적 시간의 세 단계로 구분. 그리고 각기 사건사, 국면사, 장기지속사로 구분.

사건사: 종래의 정치사적 서술을 의미. 짧은 시간의 경과 속에서 나타나는 사건을 조명
국면사: 역사에서 ‘주기적인 경과’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연구. 인구사회학적 동향, 생산력의 동향, 가격-임금의 동향, 제도와 문화의 동향에 대한 연구. 그러나 역사에는 장기 지속하고 작용하는 초개인적이고 초민족적인 힘에 대한 연구가 종합되어야 한다.
장기지속: 지리와 기후, 생산과 교역을 지배하는 경제적 관계, 정치적 사회적 법률, 이념과 가치체계, 문화 등이 연구대상. 이것들은 장기적인 구조로서 개인행위와 정치적 사건의 전제조건. 역사의 사건들은 이러한 다양한 힘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인과적으로 설명되어야 함. ==> 전체사를 지향.
아날의 연구방법은 유럽 모든 지역에 영향... 그러나 지나치게 정치사를 무시. 전체사란 도데체 가능한 것인가?
독일의 사회사
독일의 특징: 전통적 정치사의 부정이 아닌 긍정적 포괄. 즉 정치사와 문화사를 배제하는 사회사가 아닌 국가 정치를 포함한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역사연구.
Werner Conze와 Otto Brunner: 사회사와 정치사의 결합을 주장.
-콘쩨: 시민혁명 이후 분리된 국가와 사회는 산업사회에서는 더 이상 분리될 수 없음. 그 생성과 변화에서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사회적 형성체는 없으며, 그러한 사회적 형성체는 국가 헌법과 정치 행위에 영향을 주기 때문.
-부룬너: “인간 집단의 내면적 구성과 구조를 중심점에 세우는 관찰 양식”이라고 정의. 즉 집단들의 행위가 그 내적인 구조에 대한 인식없이 이해될 수 없듯이 지속적 구조 역시 정치적 사건들과 분리 불가능함.
-프랑스의 구조사와의 종합 시도. 1970년 이후에는 Hans-Ulrich Wehler와 Jurgen Kocka가 계승
벨러는 역사학을 사회과학으로 규정. 사회학적 연구방법의 수용을 강조.
영국의 사회경제사
역사연구 방법론에 두드러진 변화 없음
초기 역사가들 R. H. Tawney, T. S. Ashton등 사회학의 비교와 추론 방법, 사건의 구조적 접근, 사회경제현상들의 상호연관 관계 파악을 시도.
그러나 본격적인 변화는 1964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인구사와 사회구조사를 위한 케임브리지 그룹’이 형성되면서부터. 이들은 각 시대의 인구관계, 가족관계, 촌락관계, 계층관계, 결혼관계 등의 사회연구에 집중.
한편 비교적 늦게 도입된 마르크스주의적 연구방법이 많은 성과를 낳음. Christopher Hill, Rodeny Hilton, E. P. Thompson, Perry Anderson, Eric Hobsbaum 등이 대표적 연구자. 마르크스 이론의 기계적 유물론적 해석을 제거한 사회사적 연구.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
1960년대 등장. 합리성,거대서사의 거부
근대 서구문명에 대한 환멸과 근대 과학에 대한 비판과 동궤. 20세기의 비극은 이성과 과학에 대한 계몽주의적 확신을 사라지게 했고, 과학적 역사연구에 대해 회의하게 했다. 이러한 회의는 특히 1970년대 이후 근대 자본주의의 위기와 중산층의 불안감이 확산되는 사회와 문화환경을 반영

거시적이며 장기적인 구조변화 역사연구로는 살아 숨쉬는 인간의 실제 관심사와 이해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보고 역사연구의 관심을 ‘문화’로 이해되는 일상생활과 일상경험으로
=> Micro-History
지난 20년간 역사학의 주제는 사회구조라는 거시적인 것으로부터 일상생활이라는 미시적인 것으로 변화.
미시사란 구체적 개인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사회현상을 집중연구하여 그 현상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복잡한 사회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 이들 미시사는 특히 일상생활이라는 광의의 문화를 강조하면서 클리포드 기어츠의 인류학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문화란 텍스트처럼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새로운 문화사로서의 미시사는 과거의 사실을 설명하려하지 않고 텍스트의 역할을 하는 문화적 표현들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해명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미시사는 다시 일상사, 심성사, 신문화사 등으로 분류

미시사
Everyday Life History
1970년대 중반 서독에서 시작
전후 재건과 성장, 개혁을 추구하던 낙관적,미래지향적 분위기 퇴조.
환경운동, 반핵운동이 말해주듯 과학문명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었고, 산업화에 따른 인간 상실과 소외감이 전통에 대한 강한 향수

일상사 속에서 삶의 뿌리를 찾아 자아발견의 계기로 삼자는 취지의 새로운 역사운동: 연구 주제가 주는 친밀감

하층 대중의 의식주, 노동과 여가, 질병과 죽음, 가족생활과 이웃관계, 신앙과 공동체적 관습 등 평범한 개인이나 집단의 일상적 경험을 다루어 구체적 삶의 모습을 보여줌

일상사연구는 우선 기존의 구조사나 사회사가 사건, 인물, 행위보다는 그 결과인 구조의 과정을 강조한 데 반해 구조사를 ‘인간이 상실된 역사’로 보고 구조변화가 아닌 구조변화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의 인식과 경험, 해석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ex.) F. Bruggemeier와 L. Niethammer의 광산노동자 연구
D. Peukert, 나치즘 연구 <Ruhrarbeiter gegen den Faschismus>
심성사(histoire des mentalites)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실체에 뿌리를 가진 정신 연구.
이성적 사고뿐만 아니라 감성까지도 포괄하며 엘리트가 아닌 민중의 집단심리를 탐구.

심성사의 출발은 아날학파. 직접적으로는 1980년 이후 등장한 아날 제 3세대 역사가들. 이미 1세대에 시작되었으나 2세대의 공백을 지나 3세대에서 만개. 다루는 대상은 가족, 공동생활, 전통사회의 유대관계, 신화, 축제, 민중문화, 종교의식, 상징성, 이데올로기, 결혼, 성, 범죄, 광기, 죽음, 일상생활 등 기존의 사회사나 구조사에서 등한시했던 소위 ‘잃어버린 세계’들이다. 또 엘리트문화와 구분되는 민중문화의 독자성, 양자의 상호교류성, 상호수용의 문제도 다룸
초기 사례는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1924)과 <봉건사회>.
중세 이래 프랑스의 왕은 초자연적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로, 왕이 손을 대면 연주창이 치료된다는 믿음이 유포. 이러한 믿음에 대한 블로크의 연구는 왕의 신성성, 권력 이데올로기, 미신적 현상이 함께 용해되어 있는 민중의 집단심리를 분석
3세대의 대표연구는 Jacques Le Goff의 <연옥의 탄생>(1981).
심성사가 전제하는 대로 각 시대마다 고유한 심성세계가 있다면, 역사가는 자신의 심성세계와 다른 심성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불에 관한 것은 이미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에 관한 이야기. 불세례의 개념은 인도 유럽어족의 불신화에서 시작.
16세기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중 하나: 연옥성서에 나오지 않는
제 3의 처소 개념
죽은 자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천국 or 지옥?

완전히 구원을 받기에는 부족함이 있고 그렇다고 지옥으로 떨어지기에는 무언가 아쉬운 영혼이 있어서 이런 영혼은 따로 연옥에서 "불"로 죄갚음을 한 다음에 천국으로 갈수있다는 혁신적인 사유에서 비롯. 즉, 이승과 저승의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 천국과 지옥이라는 두 공간만이 있던 세계에 연옥이라는 제 3의 처소가 생겨난 것.
죽음에 관한 인간의 태도를 연구하는 이유는 이승과 저승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지리적,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간을 어떤식으로 편성하느냐하는 것은 그 역사의 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기독교사회에 있어서 내세의 공간을 편성한다는 것은 중대한 의의를 갖는 작업.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다할 때, 저 세상이 어떻게 펼쳐져있느냐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한 사회가 이승의 공간을 편성하는 방식과 저승의 공간을 편성하는 방식사이에는 관련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두 공간은 죽은 자들의 사회와 산 자들의 사회를 잇는 관계들을 통해 연결되기 때문이다.”

재판관: 파미에르의 주교 자크 푸르니에
목적: 카타리파의 잔당 소탕
소송건수: 98건
혐의자: 114명. 대다수가 농민, 수공업자, 영세상인. 이중 여자 48명. 판결: 5명의 이단자 화형(4명은 발도파, 1명은 카타리파)

심문과정에서 촌락민들의 기독교 세계관이 들어남.
이들은 마녀를 믿었는데, 마녀사냥이 본격화된 16세기에 일반화된 마녀론의 내용과는 다름. 이 시대의 마녀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악마와 직접 접촉하는 것을 막아준다는 유용성을 지니고 있었음.
아르노 젤리스라는 마술사가 자백한 유령세계의 풍속도:
1)죽은 영혼은 인간의 몸을 가지며 수평이동한다; 2)현세의 직업과 사회적 차등은 사후세계에서도 유지된다; 3)유령들은 춥기 때문에 밤에 몸을 녹이며, 음식을 먹지는 않지만 좋은 술을 마신다; 4)유령들은 토욜마다 자기 집을 방문, 가족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거나 이불을 덮어준다; 5)가난한 유령들은 교회에 의탁한다; 6)유령은 아침 미사 시간 후에 가장 만나기 쉽다; 7)유령은 일종의 고행으로서 ‘휴식의 장소’에 가기 전까지 계속 뛰어다니는데, 유태인들은 죄가 많으므로 뒷걸음으로 다니며, 고리대금업자는 다리를 목까지 들어올리며 뛰어야 한다; 8)달리기를 마친 유령은 휴식의 장소에 들어감으로써 고행을 마친다. 그 시기는 바로 만성절인데,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도, 헌금, 채무변제 등이 중요한 때이다. 8)휴식의 장소는 지상에 있는 천국이다. 9)심판의 날에 영혼들은 하늘의 천국으로 수직 이동한다. 천국은 일종의 거대한 집과 같다...

여기서 주목! "휴식의 공간"은 어디에?
연구의 시작: 1318~1325 남프랑스 이단심문재판
불: 불에 관한 것은 이미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에 관한 이야기. 불세례의 개념은 인도 유럽어족의 불신화에서 시작.
연옥이 무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많은 요소가 그 기원에 작용. 이집트의 지옥, 로마의 엘리시움과 하데스, 유대교의 스올, 바울계시록과 같은 이경 내지 외경, 수많은 민속 전승과 종교적인 이상(vision), 신학자와 교부철학자들의 저작의 종합.
인간을 네부류로 구분: 전적으로 선한 자, 전적으로 악한 자, 전적으로 선하지는 않은 자, 전적으로 악하지는 않은 자.
이 중간자적 존재들의 처분이 문제임: 결론은 대도를 통해 좀더 견딜만한 지옥으로 이사할수도 있고, 또는 불을 통한 정죄의 과정을 겪은 후 구원을 얻을수도있다는 것.

생전에 지은 경미한 죄를 불로 깨끗이 씻어내는 이 과정은 이승의 그 어떤 고통보다도 크다 (인간의 영혼도 육체와 같이 감각이 있는가?) 하지만 연옥에서의 기간은 공덕이나 대도에 의해 단축될수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정화의 시간을 최후심판으로부터 죽음과 부활사이의 중간으로 옮겨놓은 것이며 더 나아가 이승에서의 삶과 연결시켜놓음.
아우구스티누스의 공헌
죽은 자를 위한 대도: 죽음을 사이에 두고 산자와 죽은 자사이에 지속적인 유대 가능성을 전제.
가령 유증으로서 대도의 비용을 대고 또는 신심회로서 대도의 수행을 의무화하는 연계제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 죽음에 대해 산자들의 권한 강화

불로 정화받거나 마누라나 동료들이 열심히 대도해줌으로서 고통의 기간이 줄수있다는 데에 까지 생각이 발전했다면 종국적으로 사람들은 그곳이 어디인가를 묻게될것이고, 그러므로 연옥purgatorium이란 공간적 의미의 단어가 1170-1180년 사이에 등장.
불구덩이를 연상, 중세인들이 시칠리아의 화산근처라고 상상.
연옥의 사회경제적 의미
심성의 변화이지만, 정치사회적 연관성을 지님.
* 저승에 간 군주 이야기: 교회의 군주 길들이기 방법
정치권력이 교회를 함부로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효과. 일단 연옥의 교리가 확립된 후 위로는 교황부터 이 교리를 적극 이용. 신과 인간의 중개자이자 이승에서의 신앙의 안내자인 교황은 이제 저승의 영혼에 대해서도 관여.
*교황권 강화: 1300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성지순례 도중에 사망한 이들에게 대 사면령을 반포, 결국 연옥에 있는 죽은 영혼을 사면해주는 조치를 취한 셈이고 이로서 연옥과 면죄사이의 관계가 형성, 후에 면죄부정확하게는 면벌부구두상품권 팔 듯이 판매.
*사회경제적으로는 제 3처소의 등장은 중세사회의 3원 체계와 관련. 12세기 도시 발전과 부르주아계층 성장은 귀족(성직자 포함)과 평민사이의 중간범주를 구성. 주로 돈을 만지는 사람으로 기독교에서 돈은 곧 지옥, 만일 모든 고리대금업자가 지옥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그러한 사회에 자본주의적 심성이 생겨날 것인가? 기독교도 고리대금업자에게도 구원을!
연옥을 가장 잘 표현한 이는 단테.
13세기이후 연옥은 하나의 희망.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고 연옥을 통해 다시 한번 태어날 수 있는 재수의 기회를 제공. 중세의 최대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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