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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차 2018-1 한국사 개론

발해 후삼국시대
by

현호 심

on 18 Apri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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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7주차 2018-1 한국사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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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개론
감사합니다
2018-1
세미나 주제
'후삼국' 시대 재인식
'후삼국 시대'의 정의 -> 901 ~ 936

후고구려 건국
후백제 멸망
김헌창의 난(822, 장안국)~ 광종 시기
왕 건
반 란
전기 후삼국 시대
후기 후삼국 시대
궁예X견훤X신라
왕건X견훤X신라
918년
후고구려, 후백제(지역성)
마진, 태봉(추상적 상징성)
거의 완성된 제왕적 통일국가
신라 계승, 고(구)려(재현된 지역성)
지방 호족 연합 고려 VS 제왕적 국가 후백제
궁예의 출신은?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단서1 - 헌안왕 혹은 경문왕
단서2 - 중사를 시켜~ 죽이게 하였다.
중사성 - 경문왕 시기 설치.
아들이 아부지를 위태롭게 한다?
-> 궁예는 경문왕의 아들X
문성왕은 헌안왕의 조카 심지어 아들도 있었음.

시중 김계명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름 -> 다음 왕권 약속

김계명의 아들 김응렴을 사위로 삼음
아들이 필요해...
김인문, 김주원 가문의 여인에게서
궁예를 낳았을 가능성이 있다.

-> 세달사는 김주원계의 봉지였던 영월(강릉 김씨)에 있다!!
정리!!!

헌안왕은 중앙권력자인 김계명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름
이 과정에서 다음 왕위 계승을 약속함
헌안왕은 아들이 없었기에 김계명의 아들 김응렴(경문왕)을 사위로 맞아서 왕위를 물려 줌

하지만 아들을 낳아 왕위를 계승할 욕구를 계속해서 가짐

궁예는 지방실력자였던 김인문계의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아니었을까?

이상의 합리적 추론의 결과 궁예는 헌안왕의 아들임!!



고려와 고구려의 역사적 계승관계
궁예 901
WHO'S
918 왕건
계승과 단절
궁예의 (후)고려 -> 마진 -> 태봉
고구려 계승의식 이탈
왕건의 고려 -> 궁예로 부터 이탈
-> 송악출신=고(구)려로 귀환
<삼국사기> 효공왕 5년 기사 - '궁예칭왕'
국호의 의도적 생략?
전주(궁예) 후고려 -> 후주(왕건) 고려

송악 -> 철원 -> 송악
과연 왕건은 궁예를 철저히 부정했는가?
최승로의 상서
평양 복구
궁예
왕건
고구려 -> 통일신라(고구려 영토 제외) -> 궁예의 (후)고려 908
왕건(후고려)
(전)고려
왕조의 연속성
왕건의 고려 건국 918
동명신사 건립
발해 멸망
야율아보기와 거란의 성장

거란 8부를 대표하는 가한에 오름
916년 황제 등극
924년 발해 요주 공격
925년 야율아보기 서방원정 후 귀환
당, 일본, 고려, 신라 사신 파견
925년 12월 21일 발해 공격 개시

8일 만에 부여성 함락
14일 만에 상경용천부 도착(400km)
926년 1월 14일 대인선 항복

발해 멸망 원인
'해동성국' 13대 대현석 이후
30년 만에 멸망
대인선 치세 말미에 발해인
고려로 망명
당의 책봉체제가 무너지면서
조공을 통한 무역체제가 붕괴
백두산 화산 폭발?
초강대국 거란의 급습?
부여성-> 상경용천부 6일만에 주파
확인된 산성만 약 22개
발해의 노상이 이끈 중앙군 3만 괴멸
발해는 예부터 남조를 두려워하여 험한 지형에 의지해
스스로 지키며 졸한성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상경에서 거리가 멀어 쓸모가 없지만 또한 지키지 않을 수도 없으니 과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제께서는 저들의 마음이 흩어지자 틈을 타 움직였으므로 싸우지 않고 이겼습니다.

동단국 우차상 야율우지가 올린 표문 중
발해 멸망 정리!!

혼란한 국내 정세 ->
국제정세 파악 실패->
발해 고위관료 고려 망명->
방어체계 와해->
노상이 이끈 3만 중앙군 괴멸->
동단국 우대상에 노상 임명-?
ex- 헌강왕의 아들 김요(52대 효공왕)
836년 왕위 쟁탈전
김균정(김주원계) VS 김제륭(43대 희강왕)
김균정 사망
(아들 김우징)
(아들 김의정)
김명(44대 민애왕)
김우징(45대 신무왕)
김의정(47대 헌강왕)
김경응(김우징 아들 46대 문성왕)
김계명(희강왕 아들)
깅응렴 (48대 경문왕
김계명의 아들 김의정의 사위)
궁예(김선종?)
김안(아들, 태자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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