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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정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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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혜림

on 1 April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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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발해는 정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가?

발해의 건국
1.
고구려를 멸망 시킨 당
은 고구려 유민들을 중국으로 강제 이주시켰으나
신라와의 전쟁에서 패
한후 요동으로 물러났다.

2.신라도 대동강 이북으로 진출하지 않자
한반도 북부와 만주는 비어
있는 상태가 되었다.

3.이즈음 거란족이 요서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 틈을 타서
대조영이 고구려인과 말갈인들
을 이끌고
만주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4.이에

은 군대를 보내어 이들을
공격
하였다.

5.
대조영은 이를 물리치고

만주 동북 지역
인 지린성의 동모산 근처에 도읍을 정하고
발해를 세웠다
. 이는 고구려 멸망후 30년만이었다.

고구려나 발해는 다민족 국가였으며,
특히
발해는 소수의 고구려인이 지배층
을 형성하고
다수의 말갈인들이 피지배층을 형성한
연합국가
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만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발해 지배층 자체가
고구려 계승 의지
를 지니고 있었고
당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은 독자성
또한 확고했다.




Thank you!
결론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가?
발해는 정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가?
10216 신혜림
내 생각은
2반 해적선
고구려를 계승한 독립 국가이다.
말갈국으로 써 당나라의 지방정권에 불과하다
: 중국의 역사이다.
한국사나 중국사의 범주가 아닌 독립 말갈국의 역사로 다루어야 한다.
발해를 구성하는 사람들중 대부분은 말갈족이다.
말갈족은 후에 여진으로 불리며
중국의 금나라를 세운다.
그후 후금으로 발전하다
청나라로 국호를 바꾸며 중국을 통치하게된다.
중국의 역사책에 보면 발해를
발해말갈
이라고 부르며 말갈족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발해의 건국 위치는
고구려의 중심지와 꽤 거리가 있는
곳이다.
: 고구려 입장에서 본다면 동북변방지역이다.
발해의 유물중 당시 당나라의 양식을 따른것이 출토되었다.
발해가 세워졌던 곳은 현재
중국의 영토
만주이다.

발해의 왕이자 건국자 '
대조영
'은
고구려 출신
이다.
발해의 건국은
고구려 부흥 운동
의 결과이다.
지배층이 고구려인
, 피지배층이 말갈인이었다.
: 이원적 민족구조
고구려인
말갈인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 [속일본기]에
발해를 고려
,
발해왕을 고려왕
이라 표기하였다.
" 우리는 고구려의 옛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발해는 줄곧
독자 연호
를 사용했고,
스스로를 황제 국가
로 표현했다.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신당서』
“발해는 연호 사용을 자기 마음대로 하였다.”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
한 다양한 유물
새의 날개 이미지를 세 가닥으로 갈라진 식물 이파리처럼 표현한 금제 관식은 고구려 조우관의 전통이 발해까지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줌

묘지에 황후라는 호칭을 썼다는 것은 발해가 지방정권이 아니라 황제국을 지향했다는 증거

발해 와편이 고구려 왕릉에서 나왔다는 것은 발해 시대에 이곳을 관리하기 위한 건물을 세웠거나 무덤 꼭대기에 세운 건물인 향당을 보수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 왕릉을 계속 중요하게 관리했다는 사실에서 발해의 고구려 계승의식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돌을 네 줄로 쌓아 그 위에 돌판을 얹고 그 위에 다시 진흙을 다져 덮는 형태의 고구려식 온돌로 이는 발해와 고구려와의 연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온돌
황후무덤
손끝무늬 기와
금제관식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동북공정?
중국의 전략지역인 동북지역, 특히
고구려·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

고구려를 낙랑이나 그쪽지역
토착세력의 일부로 규정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간도
고구려자체를 소국이라 주장
고구려의 긍지를 이은발해역시 중국에 예속된 소수정권이었다

발해
는 정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
중국의 역사이다! : 동북공정

"발해말갈의 대조영이
본래 고구려의 한 갈래
이다.
대조영은 그 무리를 이끌고 고구려의 옛땅으로 들어가
동모산을 거점으로 성곽을 쌓고 거주하였다.
대조영은 용감하고 병사를 잘 다루었으므로 말갈의
무리와 고구려의 남은 무리가 점차 그에게 귀부하였다."
[구당서]
따라서
발해사를 중국의 견해처럼 당의 지방 정권으로 보는 것은
억지 주장이며, 우리 민족사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
할 것이다.

1. 대조영은 고구려인이다.

2. 발해는 고구려 부흥 운동의 결과로 건국되었다.

3.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4. 고구려의 다양한 문화와 제도를 계승하였다.
1. 발해의 건국위치는 고구려의 중심지와 떨어져있다.

2. 발해는 현재 중국의 영토인 만주에 세워졌다.

3. 당나라의 양식을 따른 유물이 출토 되었다.

4. 발해를 이루는 대다수가 말갈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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