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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의 기사, 파르지팔

2013년 10월 19일 청계 발도르프 학교 강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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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성배의 기사, 파르지팔

파르지팔, 성배의 기사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1843)
탄호이저 (1845)
로엔그린 (1848)
트리스탄과 이졸데 (1859)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1867)
니벨룽의 반지:
라인의 황금 (1869)
발퀴레 (1870)
지크프리트 (1871)
신들의 황혼 (1874)
파르지팔 (1882)
오늘날 성배의 전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인디애나 존스와 최후의 십자군 (1989)
피셔 킹 (1991)
다빈치 코드 (2006)
그(녀)는 누구인가?
"Durch Mitleid wissend, der reine Tor"
"A pure fool, enlightened by compassion"
"동정심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
스승과 제자
A pure fool?
문명화된 파르지팔
성찬(Communion)의 초대
"Zum Raum wird hier die Zeit"
"Here time becomes space"
"여기서는 시간이 곧 공간이 된다"
"Du weisst,wo du mich wiederfinden kannst!"
"You know where you can find me again!"
"어디로 가야 날 찾을 수 있을지 알겠지!"
"Wie du mich doch die Aue heut so schoen!"
"How fair seem the meadows today"
"오늘 이 초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Photo: Ken Howard/Met Opera
Photo: Ken Howard/Met Opera
Photo: Ken Howard/Met Opera
Lucas Film
Skywalker
Are you
the One?
Am I?
I am
Klingsor!
Am I Gurnemanz
or Parsifal?
군사부일체!
Really?
원탁을 기억해라
동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
어머니는 소년을 숲으로 데려갔다. 아무도 찾지 않는 숲에서 아들과 살기로 마음먹었다. 소년의 아버지와 형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기에, 그런 기사의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홀로 놀던 소년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기사들을 보았다. 그들은 소년에게 길을 물었고, 소년은 그들이 입은 옷이며 무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면 길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기사들은 눈부신 갑옷과 창칼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다. 집에 돌아온 소년은 보고 들은 이야기를 했다. 당황한 어머니는 그들을 ‘천사’라고 얼버무렸다. 소년이 말했다.
“나는 천사가 될래요.”
어머니는 놀라서 기절하고 말았다. 사실 소년은 애초부터 기사가 될 운명이었다. 그가 그리스도의 성혈을 받았다는 성배를 찾는 기사가 되기 위해 그의 아버지와 형이 죽었고, 어머니는 힘든 과부 생활을 해야 했다. 소년의 이름은 ‘파르지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Parsifal>은 이렇게 시작된다.

몬살바트의 숲에 성배를 지키는 기사들이 모여 있다. 사악한 마법사 클링조르의 흉계로 요부에 홀린 성배의 왕 암포르타스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피가 그치지 않았고, 결국 그가 다스리던 나라마저 황폐해진다. 왕의 성적인 타락이 대지의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기사장 구르네만츠는 신통한 능력을 가진 여인 쿤드리가 가져온 약초가 왕의 상처에 효험이 있기를 바라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다. 그는 쿤드리의 충심을 의심하는 젊은 기사들에게 예언이 정한 선택된 이가 나타나 어두운 기운을 몰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선택된 이란
‘동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 Durch Mitleid wissend, der reine Tor’
였는데, 여기서 동정은 아픔을 함께 나누는 ‘측은지심’과 더불어 뜻을 같이 한다는 ‘공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때 당황한 기사들의 외침이 들린다. 누군가 신성한 백조를 화살로 쏴 죽였기 때문이다. 범인을 찾는 사이, 손에 활을 든 청년이 나타난다. 구르네만츠는 청년에게 신성한 땅에서 살생한 죄를 꾸짖는다. 우쭐하던 청년은 곧 뉘우치고 활을 꺾는다. 그에게 신분과 이름, 이곳에 온 이유를 묻지만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구르네만츠는 그가 예언이 말한 바보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시간이 공간으로 바뀌는 땅’
으로 그를 데려간다. 성배의 방에 도착한 두 사람. 그곳에서는 기사들이 성찬의 전례를 행하고 있다. 구르네만츠는 청년에게 이 의식을 보여주고 그 의미를 알겠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청년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관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실망한 구르네만츠는 그가 선택된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쫓아버린다. 그때 높은 곳으로부터 ‘동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라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청년이 바로 파르지팔이다. 그가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파르지팔은 들풀처럼 자란 청년이다. 예를 갖춘 의식 따위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압도되고 만다. 예언이 말하는 ‘순수한 바보’란 지능이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비어 있기에 오히려 무한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바위나 나무 밑동에 박힌 채 주인을 기다리는 칼의 이야기(아서 왕의 전설이나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나 미국으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꿈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과 <타이타닉>),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인디언들의 초원을 발견하고 먹먹해하는 사람(영화 <늑대와 춤을>)의 경우와 같다. 즉 예언은 예식에 사심과 욕망을 섞지 않을 사람을 지목했던 것이다. 단 이제 선택된 바보는 그 의미를 ‘공감’해야 한다. 그는 이제 전례를 이해하기 위해 합당한 이력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선택받은 인간이라도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정당한 자리에 이를 수 있다.

<파르지팔> 2막은 사악한 마법사 클링조르의 성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마법에 걸린 기사들이 지키고 있다. 그들은 파르지팔을 저지하나 청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파르지팔은 게르만 민족의 영웅전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영웅 ‘지크프리트’나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제다이의 기사 ‘스카이워커’처럼
겁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제압할 수 없다
. 이에 클링조르는 쿤드리를 요부로 바꿔놓고, 그녀와 꽃의 처녀들로 하여금 청년을 유혹하게 한다.
황량한 성이 눈부신 꽃동산으로 변하고 파르지팔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며 쿤드리가 등장한다. 그녀는 파르지팔이 떠난 뒤 괴로워하다고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에 대해 얘기한다. 잊었던 어머니 생각으로 죄책감에 사로잡힌 청년. 그 순간
마법에 걸린 쿤드리의 타는 듯한 입맞춤을 통해 파르지팔은 왕 암포르타스의 상처를 떠올린다.
비로소 왕의 고통과 성찬의 전례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파르지팔을 유혹하는 데 실패한 쿤드리는 그를 저주하고 자신의 주인을 부른다. 클링조르가 나타나서 왕에게 빼앗은 성스러운 창(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던지지만, 창은 파르지팔의 머리 위에서 멈추고 그는 창을 들어 십자가를 긋는다. 마법의 성은 허물어진다.
3막은 1막과 같은 성배의 땅인 숲,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리는 ‘성 금요일’에 펼쳐진다. 기사장 구르네만츠가 덤불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쿤드리를 발견하고 이때 무장을 한 사내가 등장한다. 투구를 벗은 그는 파르지팔이고 손에는 잃었던 성창이 들려 있다. 파르지팔은 숱한 전투를 치렀지만 성배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구르네만츠는 그 사이 암포르타스가 성배를 섬기지 못했고, 선왕 티투렐은 세상을 떠나 오늘이 장례식이니 그로 하여금 신성한 장례식을 집전하도록 청한다.
쿤드리가 성수로 파르지팔의 발을 씻기고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이 예언에서 말한 바보이며 새로운 성배의 왕임을 알아본다.
그는 파르지팔에게 오늘이 성 금요일이며 바야흐로 세상을 바꿀 때라고 말한다. 기사들이 모여 있는 성으로 들어가는 세 사람. 암포르타스가 아버지의 관이 놓인 성배의 제단으로 실려 나온다. 그는 성배의 베일을 벗기라는 기사들의 청을 거부하고 자신을 죽여 고통을 멈추게 해달라고 명한다. 그때 파르지팔이 성창을 왕의 옆구리에 대자 상처가 아문다. 파르지팔은 성배를 벗기고 모두가 무릎을 꿇는다. 저주가 풀린 쿤드리가 세상을 떠나고 파르지팔이 머리 위로 흰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음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해온 사람이라면 모두 ‘동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비어 있었기에 음악을 채울 수 있었고, 그로써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모른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알 수 있는 것이 많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등굣길 버스에서 누군가 떨어트린 오만 원을 주은 적이 있다. 그 길로 학교가 아닌 시내 단골 음반점으로 가는 버스로 바꿔 탔다. 그렇게 듣고 싶던 <파르지팔> 음반들 앞에서 한참을 들었다 놓았다 한 끝에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한 바이로이트 실황 세트를 골랐다. 지금도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다. 1990년대에 806번 버스에서 오만 원을 분실하신 분에게는 지금이라도 후사할 용의가 있다.

정준호 공저, 『행복한 클라시쿠스』 가운데
볼프람 폰 에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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