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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Pre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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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이동훈

on 17 Septemb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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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Untitled Prezi

근대 철학

- 인간의 이성 증명
구조주의
모더니즘
후기 구조주의(탈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페미니즘
해체주의
탈 식민주의
개념에 대한 명확한 틀 제시
개념에 일정한 구조를 도입해도
그것은 독단일뿐, 또 다른 해석은 언제나 존재한다.
따라서 해석 이전의 구조적 틀도 해석 이전의 구조적 틀도 해석 이후의 구조적 틀도 절대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구조애 대한 해체
개념에 대한 구조화
(법칙화)
구조의 절대화에 대한 반발
BUT
구조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구조의 절대성에 대한 부정
-> 구조주의는 인간 '나' 자신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법, 사상 등이 '나'를 지배한다.
탈 구조주의는 사회구조, 제도, 법 뿐만 아니라
무의식 사상, 관습 등 인간을 지배하는 구조가 무한대로 많다는 것.
-> 결국, 인간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구조의 포로가 된다는 점에서 같음.
일정한 틀
다양성
탈, 해체
아방가르드
리얼리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공통점
1. 전통과의 단절
2. 불확정성(비 결정성, 비 종결성)
3. 파편화(편린화)
4. 반 리얼리즘 -> 아방가르드와의 공통점
5. 전위적 실험성 -> 아방가르드와의 공통점
6. 아이러니, 패러독스
7. 비 역사성, 비 정치성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차이점
1. 자아의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2. 패러디, 패스티쉬 -> 탈식민주의로 연결
3. 행위와 참여
4. 임의성(우연성)
5. 주변적인 것의 부상 -> 페미니즘으로 연결
6. 탈 장르화 및, 장르확산
7. 자기 반영성
개념이 해체되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주장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두 공통점, 차이점 다 가지고 있음
-> 즉, 완전한 반발도 계승도 아님.
아방가르드

대륙에서 시작

초 현실주의, 다다이즘등이 여기 속함

모더니즘과의 공통점은 반 리얼리즘,
차이점이자 아방가르드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정관념이나 기존 기법에 대한 해체.

즉,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을 거부하거나, 예술은 고상해야 한다는 것을 거부.
이상의 날개처럼 초 현실적인 작품.

아방가르드에 대한 두 가지 견해.

1. 모더니즘의 반발 혹은 발전의 과정에서 아방가르드가 나왔다.

2.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는 리얼리즘의 반발로 일어난 문예사조인데, 프랑스(대륙)에서는 이미 리얼리즘에 반발해서 일어난 상징주의가 존재했다.
모더니즘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
주지주의와 이미지즘을 일컫는 말
예술이나 문학적 견해가 아닌 일종의 패러다임

주지주의는 지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 그 지성에는 인간의 오감이 포함됨.

이전에 감성을 중시한 낭만주의나 직관을 중시한 상징주의 시풍에 반발해서 주지주의가 나왔고 그래서 인간의 오감, 특히 시각적 이미지를 중요시 한 것이 바로 이미지즘.
낭만주의, 상징주의
탈 구조주의
빌 애쉬크롭트(Bill Ashcroft), 개릿 그리피스(Gareth Griffiths), 헬렌 티핀(Helen Tiffin)
-> 탈식민주의, 탈구조조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적, 문화적 실천의 넓은 범주를 상호 중복적으로 포괄하는 불편한 명칭이며, 그 이론들은 점진적으로 상호 연관적인 관계로 발전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
1. 중심과 보편에 대한 저항에 따라
탈 중심화, 복수성, 주변성, 차이성을 부각 시킨다.
2. 텍스트성을 강조함에 따라 담론적 관계와 이데올로기적 구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3. 밧 무어-길벗(Bart Moore-Gilbert) : 탈식민주의 이론이 탈구조주의와 해체주의에 힘입어 서양/비서양, 중심/주변, 지배/피지배의 이분법적 틀을 해체하면서 이론적으로 보다 세련되어갔다고 파악함.
1. 탈식민주의는 비 서구의 위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위치에서이긴 하지만,
둘 다 서구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다.
->"제휴와 연대의 가능성"

2. 탈식민주의는 서구의 식민주의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것에 저항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양가적 저항을 보이고,
서구 내부의 비판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지배적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동시에 공모하는 양가성을 보인다.
-> 정치성의 면에서는 차이를 지니고 있지만, 전략의 면에서는 겹친다.

3. 둘 다 패러디와 같은 수사학적 전략을 잘 취하고 있다.
-> 탈식민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적인 수사학적 전력인 패러디를 받아들여 이를 기존이 서구 담론이 지닌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탈 식민주의
패러디
1. 호미 바바(Homi Babba)
: 탈식민주의 이론이 탈구조주의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타자인 비서구의 위치에서 수행한 것이며, 이는 탈구조주의에 의존하면서도 타자의 위치를 가정함으로써 서구의 인식론을 해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2. 탈식민주의는 가해자 측에서 보면 반성이며 피해자 측에서 보면 저항인데, 탈식민주의가 탈구조주의를 활용하는 것은 비서구가 서구의 '반성의 논리'를 활용하여 서구에 대한 저항의 논리를 세우는 전략이 되는 사항
탈 식민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이 권위의 부정이나 억압된 것의 귀환 등을 위해 정전의 해체와 패러디 등을 전략적으로 차용하여,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달리 서구 식민주의의 문화적 헤게모니와 중심담론에 도전하고 이를 탈중심화시켜 비서구의 반담론을 적극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개념
1981년 10월 프랑스 신문 르몽드지에 실린 칼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유령이 지금 유럽에 출몰하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유럽전역을 휩쓸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후로 30년이 지나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명확히 개념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원성과 상대성 그리고 비결정성을 기본적인 철학적 입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징적으로 어느 한 개념으로 정의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post'에는 '벗어나다'라는 '탈'의 의미와 '뒤따라오다'오다라는 '후'의 의미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초부터 대두된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을 포함하여 흔히 모더니즘으로 범주화되고 있는 예술 전통의 기본적인 특징을 거의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에서 단절되거나 이탈, 반대하는 것이 아닌 계승쪽이 더 가깝다고 할 것이다.
발생 배경
포트모더니즘의 시작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학자마다 제각각이었다.
미카엘 쾰러와 이합 핫산에 따르면 이 용어는 늦어도 1934년 경에 이미 문학이나 예술 개념으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스페인의 문학 비평가 페데리코 데 오니스가 바로 이 해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시 선집(1882~1932)'을 편집하면서 이 책의 서문에서 '포스트모데르니스모'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사실 영국과 유럽대륙에 걸쳐 모더니즘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시대이었기에 그가 말하는 용어는 오늘날 우리가 의미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더들리 피츠 역시 1942년 그가 편집한 '현대 라틴아메리카 시 선집'의 결론 부분에서 스페인의 시인 그레고리오 마르티네스의 소네트 시와 관련하여 '포스트모던' 이란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 또한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이비는 1946년 '역사연구'라는 책에서 '포스트모던' 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은 예술과는 무관한 서구 역사에 관련된 개념이었다. 찰스 뉴먼은 토인비가 사용한 용어는 문화 예술에서의 '모던' 이라고 부르는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각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은 예술 분야에 적용하기에는 거리가 멀었고, 문학에서 시작된 그 용어는 오히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그 개념이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을 제외한 시각 예술 분야에서는 건축 분야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인 대변자 중 한 사람인 찰스 젱크스는 특유의 재치와 유희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된 시간을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32분으로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물로 간주되었던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아이고우 주택 건물이 다이너마이트에 의히여 붕괴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음악 분야에서는 이론적으로 특별히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클래식 음악에 기반을 둔 현대음악, 또는 전위음악 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생겨나면서, 과거의 음악에서 어느정도 변화하고 발전된 개념이 아닌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음악 장르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음악 장르는 아방가르드 등의 개념으로 불리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연속으로 본다면 한 울타리 안의 개념으로 이야기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시작은 쇤베르크의 인간의 내면적인, 특히 잠재의식적인 면을 표현한 '표현주의(Expressionism)'와 본래의 조성음악에서 벗어나 무조성의 체계화를 시도한 '12음 주의(Dodacaphonis)'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모더니즘 시대를 벗어난 완전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려면 용어가 시작된 구체적 시기보다는 공통된 역사적 배경이나 정황, 또는 그 탄생 이유가 더 중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는 20세기 이전부터 분명 존재하였지만,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이고, 더 자세하게 본다면 1970년대를 거치면서 부터이다. 서구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무후무한 정신적 충격을 겪고나서부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치주의에 의한 유태인 학살,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인류멸망의 공포, 무분별한 자연 환경의 파괴,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기아, 또한 인종 차별과 성 차별 등에 의한 인권운동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생성되고 발전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이나 사상가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러한 현상들이 모더니즘의 피치 못할 결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을, 일원론보다는 다원론을, 독단주의보다는 관용주의를 한결 더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1969년 8월 뉴욕주 우드스탁에서 개최된 락 페스티벌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만 살펴보아도 이 당시의 대중들의 취향이 어떠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기성 전통과 권위에 반발하는 청년들의 문화가 마치 성난 파도처럼 팽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저항문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 예술이 대학강단이나 도서관 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제도권 에 흡수됨으로써 이제 저항 문화로서의 기능을 거의 완전히 상실한 채 제도권 문화로 길들여졌는데, 그에 불만을 갖고 있던 예술가들은 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부단히 탐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급격히 변하는 정치 , 사회, 경제적인 분위기가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과거와의 심한 단절감과 좌절감을 주었고,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으며, 그러한 사회 문화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일부를 계승하면서도 부족한 것은 보완되고, 잘못된 것은 고쳐지는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 매체의 발달과 전자 기술의 발달 없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탄생과 발전을 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만큼 포스트모더니즘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그 어떤 예술 분야를 보더라도 연관이 없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과학, 기술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음악 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포스트모더니즘 형식의 새로운 창조와 미디어로의 구성 등에 대한 모든 방법은 과학, 기술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및 기법
모더니즘과의 공통점
1. 전통과의 단절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은 전통과 인습에서의 도전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지금까지 서구 세계를 지배해온 휴머니즘 전통을 비판함으로써 변혁과 혁신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이론들이 '대항 문화'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2. 불확정성

'비결정성', '비종결성' 이라고도 지칭하는 불확정성은 사실상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초이고, 현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통칭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이다. 이런 불확정성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다원성과 상대성의 문제인데,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일원론이나 절대성을 배제하고 다원적이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모든 현상을 파악하고 있다.

3. 파편화

'편린화' 라고도 부르는 이 현상은 파편화된 이미지를 한데 긁어모아 하나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을 뜻하는데, 모더니즘에서 시작되어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한결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징적으로 결합보다는 단절, 질서보다는 혼돈, 총체성이나 종합보다는 해체나 분해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4. 반 리얼리즘

비제시성, 비재현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특징은 모든 자연이나 주변환경, 삶 속에서 실재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던 것에 대한 반발을 뜻한다. 리오타르는 모더니즘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이 특징이 한결 더 첨예하게 강조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는 제시할 수 없는 것을 바로 제시하는 것, 훌륭한 형식의 위로와 성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향수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취향의 일치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 새로운 제시를 추구하는 것" 이라 했다. 리오타르는 바로 이런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철학자들과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5. 전위적 실험성

포스트모더니즘은 실험 정신을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으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흔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형식과 기교를 통해 정신적인 자기 만족감을 파괴하고자 한다. 특히 빅토르 쉬클로프스키나 보리스 아이헨바움과 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낯설게하기'나 '탈자동화'의 개념, 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의 개념은 이 특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또한 이러한 특징은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미래파와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과 모더니즘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극한점에 달하게 되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모더니즘의 실험성이 '일방통행로'에 해당된다고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성은 '막다른 골목'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음악분야에서는 이미 클래식 음악에서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여 현대 음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현재도 많은 장르에 걸쳐 이러한 특징을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음악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6.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불확정성의 특징에서 야기되는 결과인 아이러니는 외견과 실재, 기대와 결과, 그리고 사건과 문맥 사이의 간극이나 불일치를 통해 고정 불변한 의미나 의도를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어느 한 중심이나 권위에 도전하고자 하는 특징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흔히 사용되는 중요한 장치이나, 그 사용 방법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모더니즘의 경우 아이러니는 상징이나 메타포 혹은 알레고리와 마찬가지로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충되는 인간 경험을 결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그것은 오히려 인간경험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7. 비역사성과 비정치성

이 특징은 전위적 실험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 역사의 연속성보다는 역사의 불연속성을, 전통의 계승보다는 전통의 단절을 강조한다. 과거를 불인정하고 그것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현상 때문에 많은 보수이론가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고, 이러한 특징 때문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특징으로 비춰지고 있다.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

탈 중심화, 탈 정전화 -> 해체주의로 부터
탈 중심화, 탈 정전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는 달리 '탈 정전화' 혹은 '탈 중심화' 현상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데,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을 규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정전' 이란 용어는 사실 종교적 의미로 신앙의 행위의 기준이나 교회의 법규, 외전과 대조되는 정통 정전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후에는 본래 의미를 상실한채 점차 세속적인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탈정전화는 그러한 정전과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어떻게 보면 전통과 인습에 대한 도전과 유사하다. 하지만 모더니즘이 여전히 질서와 권위를 어느정도 강조하였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런 것에서 조차 탈피하였다.
모더니즘과의 차이점
1.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자아나 주관성의 문제는 서구 휴머니즘 전통의 근간을 이루어온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자아의 중요성이나 총체성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분산이나 자아의 상실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2. 패러디와 패스티쉬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징적으로 패러디나 패스티쉬를 매우 핵심적인 예술적 장치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탈 정전화나 탈 중심화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모더니즘과의 차이라고 한다면, 모더니즘에서는 어디까지나 암시적이고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패러디는 보다 긍정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패스티쉬(Pastich)'란 용어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 라는 논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형의 패러디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이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잡다하게 혼합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패스티쉬는 패러디보다 풍자적이며 해학적인 특성이 더 결여되어 있다.

3. 행위와 참여

모더니즘이 주로 고립과 무관심 그리고 형식에 의해 특징지어 진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바로 참여와 관심, 실천적 행동에 의해 특징지워 진다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이 창조적으로 참여하여 그 경험을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모더니스트들은 인간의 눈을 중시했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오히려 손을 중시하고 있다.

4. 임의성과 우연성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이 영원불변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이 특징은 모더니즘이 형식을 통해 추구해온 질서나 조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일반성이나 보편성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존 케이지는 이 특징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음악가 중 한 사람인데, 그의 작품 '4'33"'(1961) 를 살펴 보면 피아니스트는 무대 위에 닫혀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정확히 4분 33초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자리에 일어선다.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관객들의 소리와 주변 환경의 소리 모두가 음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는 '모든 것은 다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특징은 칼 하인츠 스톡하우젠의 '구체음악'에서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5. 주변적인 것의 부상

그 동안 주변적인 것으로 무시되거나 도외시되어 왔던 모든 것들이 이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면서 그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른바 '억압된 것의 복귀'가 매우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현상은 무엇보다도 소수민족의 부상에서 잘 나타나고 있고, 청년 문화의 대두, 대중 문화의 발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적인 고급문화는 보다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성격을 띄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은 성의 해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때부터 기존의 성의 관념에 반항하는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각 종 예술에도 많은 부분 반영되었다. 또한 그것은 여성들의 페미니즘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남성 중심적인 시대였던 모더니즘 시대를 지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그 동안 주변인이었던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6. 탈 장르화나 장르확산

모더니즘 시대까지만 해도 예술 장르들은 각각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 이런 장르들의 구분이 허물어지고, 서로 혼합되고 결합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명확한 장르구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심지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음악 분야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퓨전' 또는 '크로스오버'라는 표현으로 쓰기 시작하였고, 많은 분야 에서 장르와 장르의 결합으로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 나타나게 되었다.

7. 자기반영성

모더니즘 이전의 시대에는 자연과 주변 환경, 삶 속에 실재하는 것들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즉, 모더니즘 이전의 시대에는 외부 현실의 반영에 주로 관심이 있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서는 예술가 자기 자신의 반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쉽게 말하자면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고전주의시대 부터 중세시대
1. 플라톤 (Plato) (427~347 B.C)
2.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384~322 B.C)
3. 호라티우스 (Horatius) (65~8 B.C)
4. 롱기누스(Longinus) (1C~3C B.C)
5.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
6.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
르네상스부터 빅토리아시대
1. 아퀴나스 (Thomas Acquinas) (1225~1274)
2. 단테 (Dante Alighieri) (1265~1321)
3. 복카치오 (Boccaccio) (1313~1375)
4. 시드니 (Sir Philip Sidney) (1554~1586)
5. 밀튼 (Milton) (1608~1674)
6. 드라이든 (John Dryden) (1631~1700)
7. 알렉잰더 폽 (Alexander Pope) (1688~1744)
8. 새뮤엘 존슨 (Samuel Johnson) (1709~1784)
9.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1770~1850)
10. 코울리지 (S.T. Coleridge) (1772~1834)
11. 셸리 (Percy Bysshe Shelley) (1792~1822)
12. 칼 막스 (Karl Marx) (1818~1883)
13. 월트 휫먼 (Walt Whitman) (1819~1892)
14. 매슈 아놀드 (Matthew Arnold) (1822~1888)
15. 테느 (Hypolite Taine) (1828~1893)
16. 하월즈 (William Dean Howells) (1837~1920)
17. 퍼어스 (Pierce) (1839~1914)
18.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
19. 베르그송 (Henri Bergson) (1859~1941)
저작권

출판이 활발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1517년 저작권법이 만들어졌고, 영국에서는 소수에게 출판 독점권을 줬다. 1710년 영국 앤 왕 때 저작권법이 제정되어, 저작권 보호 기간이 정해지고, 기간이 지나면 사회가 공유하게 되었다.
현대
1. 흄 (T. E. Hume) (1883~1917)
2. 엘리엇 (T. S. Eliot) (1888~1965)
3.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
4. 리차즈 (I. A. Richards) (1893~1979)
5. 바흐친 (Mikhail Bakhtin) (1895~1975)
6. 자크 라캉 (Jacque Lacan) (1901~1981)
7. 노스럽 프라이 (Northrop Frye) (1912~1991)
8. 에이브럼즈 (M. H. Abrams) (1912~20??)
9.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
10.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1995)
11. 펠릭스 가타리 (Felix Guattari) (1930~1992)
12. 자크 데리다 (Jacque Derrida) (1930~20??)
13.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 (1935~2003)
구조조의 (1940년대 후반 프랑스)
사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보다는 어떻게 뜻하는지에 관심을 가짐 -> 구조주의 언어학에 근거.

즉, 기호의 과학으로 기호학(semiotics), 기호론(semiology), 문체론(stylistics)이나 설화이론(narratology)이라고도 불림.

소쉬르: 공시적(diachronic), 통시적(diachronic), 랑그와 파홀, 기표와 기의.

장 피아제(Jean Piaget) - 구조는 전체성, 변형, 자동조절성의 세가지 속성을 지닌다.

롤랑바르트 -
1. 러시아 형식주의(Russian Formalism)
2. 구조언어학
3. 구조인류학
자연과학적 인과율을 작품에서 찾아보려는 실증적 방법.
즉, 작품이 함의한 구조와 기호들의 체계, 그리고 작품의 재료에 대한 발견, 분석.

프라하 학파의 야콥슨.
얀 무카롭스키(Jan Mukarovsky)
유리 로트만(Yury Lotman)
그레마스(A.J Greimas) - 이항대립이라는 개념을 인간 개념화의 기본으로 봄.
이항대립이라는 관계가 분립과 병립, 분리와 결합, 투쟁과 화해라는 인간기본 행동을 생성시킴.

러시아의 형식주의가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의 모태가 되고 이것이 구조주의라는 하나의 사조로 발전
페르디낭 드 소쉬르

1. 랑그와 파홀
2. 기표와 기의
3. 통시적 구조와 공시적 구조
인류문화의 이면에는 인류문화를 생성하는 구조가 있다.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 소쉬르가 언어의 무의식적 구조를 밝혔다고 한다면, 레비스트로스는 인류문화의 무의식적 구조를 밝혔다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대하여 구조주의적 방법을 동원
언어활동, 친족체계, 토템체계, 신화의 논리, 요리 체계, 결혼 규칙 같은 모든 문화적 현상은 상징체계이며, 이는 개인수준의 의식이나 실존적 결단과는 무관한 집단적 표상이며, 이러한 집단 표상은 개인의 의식과 무관한 사회적 무의식 속에 체현된 이원적 대립 체계를 반영한 것이다.
해체주의
데리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 후기의 라캉 -> 포스트 구조주의
1. 자크 데리다의 사상을 지칭하는 말
2. 자크데리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예일학파가 주도한 1970년대 문학비평의 사조
3. 1988년 런던 테이트 갤러리(London Tate Gallery)에서 열린 심포지엄과, 같은 해 6월 뉴욕 현대미술관(New York 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서 공식적인 존재증명을 얻게 된 건축상의 한 사조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 건축 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 해체의 사유(deconstruction)와 해체 작업이 적용된다.

해체는 성전, 정전화된 어떤 텍스트들, 그것을 통해 로고스로군림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어떤 관념들에 대한 비판이며 파괴이자 전복이다. 즉, 정치로부터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근본적 정치를 포함.
-> 마르크스주의에서 영향을 받음. 데리다 역시 자신의 모든작업이 마르크스적인 것이었다고 말함.
데리다와 해체주의자들이 공격하는 것
-> 로고스중심주의와 현현의 형이상학

문자의 일차성 강조!!!
마르크스주의
데리다 : "나의 모든 작업은 마르크스적인 것이었다"
이 인물들이 포스트구조주의에 대해 언급할 때 대표적인 인물

그러나 같은 포스트구조주의에 묶어두기 애매함.
애초에 사유의 원천이나 경로가 다름.

푸코 : 구조주의자로 시작하지 않았다가 1966년경에 대표적인 구조주의자가 되었다가, 1968년을 거치면서 구조주의에서 벗어난다.

들뢰즈 : 구조주의와 관계없던 들뢰즈는 니체학자로 시작. 한때는 스피노자(Spinoza) 학자로서 구조주의에 호의적으로 다가갔지만, 1970년대 들어와 다시 구조주의에서 멀어짐.

데리다 : 하이데거를 사유의 원천으로 삼음.
구조주의자였던 적이 없음.
1968년 이후 구조주의의 가장 명시적인 비판가로 부상. 이후 해체주의라고 불리는 자신의 영향권을 형성. ->애초에 구조주의자였던적이 없는데 대부분의 책이나 논문들은 포스트구조주의를 설명하는데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먼저 거쳐서 설명을 한다.

라캉 :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가장 적극적인 구조주의자 가운데 하나였던 정신분석가 라캉은 구조주의가 퇴조할 때 같이 구조주의에서 빠져나온다.
문자
음성언어 = 내면의 목소리 = 작가가 말하려는 진정한 뜻 = 로고스(Logos) = 진리 = "나"
즉, 플라톤에서 루소(Rousseau)로 이어지는 문자에 대한 거부.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진리란 이러한 로고스를 찾아내는 것. 서양 형이상학은 바로 이 로고스중심주의(logocentrism)
이 로고스는 나타날수밖에 없다! -> 현현(presence)의 형이상학.

작품에 숨어있는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는 노력 = 로고스, 즉 음성을 찾아내려는 시도
현현의 형이상학 = 문자는 나타내지 못하지만, 작품은 그런 음성을 나타낼 수 있다.

구조주의 -> 그러나 어떤 음성도 문자로 표시되는 한에서만 존재하며 문자에 의존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해체주의 -> 구조주의와 다르게 문자의 일차성을 주장.
즉, 기의와 기표(문자)를 따로 보지 않음.
음성(진리)을 발하게 하는 어떤 기의는 화자의 머리에 먼저 기록되어야 기의가 생김.
음성조차도 이미 화자의 머리 안에 기록된 어떤 사태의 흔적들, 즉 관계의 흔적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것.

데리다는 이 모든 흔적(문자, 외상 등)을 텍스트라 부름

텍스트의 새겨진 문자들의 의미는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형성됨 -> 간 텍스트적(inter-textual)

따라서 텍스트의 의미를 하나로 결정하는 것이나, 그 텍스트에 어떤 단일의 본질에 상응하는 동질성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결정 불가능한 것들이 텍스트사이의 여백에 가득하며, 그것들이 읽는 경우마다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와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는 단일한 의미, 로고스에 상응하는 단일한 진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의미의 산포/산종(dissemination)이 있을 뿐이라고 말함.

문자란 텍스트 안에 있는 또 다른 텍스트로서 이미 새로운 의미의 씨
이 부분에서 포스트 구조주의와 겹침.

개념에 일정한 구조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독단일 뿐이며, 또 다른 해석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구조적 틀이 절대적 의미를 가질 수 없고, 또한 이후의 구조적 틀도 절대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니체가 여성에 대해 퍼부은 공격적인 문장들은 사실, 진리(남성적인 것)와 로고스에 대한 비판의 기록이라는 것을 해체로서 찾아냄. -> 반대로 여성성의 힘을 새로이 찾아냄.
해체란
로고스를 찾아냈다는, 혹은 진리에 관에 혹은 어떤 규범에 관해 말하는, 대개는 동질적이라고 간주되는 텍스트 안에 들어가, 동질성을 만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균열을 드러내고, 어떤 텍스트의 사이에 있는 다른 텍스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것은 어떤 텍스트를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을 찾아내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것이 말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

문자를 혐오했던 플라톤이 자신의 진리의 음성을 알리고 남겨두기 위해 대화로 스승 소크라테스의 음성을 문자로 기록하게 되었던 아이러니.
니체가 여성에 대해 퍼부은 공격적인 문장들이 사실은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진리와 로고스에 대한 비판의 기록이 되었다는 아이러니.

해체는 여기서 거꾸로 문자의 일차성이나 여성성의 힘을 새로이 찾아낸다.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 모두 관계주의적 사고를 공유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가 가진 근본적 오류

서양철학은 이때까지 초월적 기의(transcendental signified)를 추구해왔다.

초월적 기의에 해당하는 개념
기독교의 창조주, 이성, 본질, 진리, 시작, 끝, 자아
-> 이 용어의 기의는 다른 것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알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음.
즉, 이것들의 의미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힘으로 생겨난 것.
그런데, 이 초월적 기의가 의미의 중심을 제공함.

이 초월적 기의 주변에 실재하는 것들의 의미가 초월적 기의와의 관계에서 발생함.
자동적으로 초월적 기의 같은 것들이 중심이 되면 반대에 존재하는 개념은 탈중심화가 됨.


ex) 하느님은 중심 인간은 탈중심 -> 하느님은 우월 인간은 열등 -> 하느님은 상부구조 인간은 하부구조 -> 지배자는 우월 피지배자는 열등 -> 특권 발생 -> 식민주의로 연결

해체주의는 이러한 초월적 기의나 로고스 같은 구조를 해체.
관계적인 사고와 이분법적 사고를 한번더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느님보다 이동훈이 더 우월하다고 하면?

즉, 애초에 이러한 서양철학이 근본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러한 서양 형이상학을 전복시키기위해서 차연(difference)라는 개념을 사용.
즉, 절대적 기준(초월적 기의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음-> 탈 구조주의와 연결
-> 모든 텍스트나 정체성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나오며 존재가 아니라 부존재로부터 생겨남.
-> 여기서 구조주의와 포스트주의의 차이가 생긴다.

포스트구조주의에서 중요한 화두는 타자인데, 관련된 대상들을 하나의 동일한 질서 속으로 끌어들이며 동일화하는 동일자와는 반대되는 말이다. 타자는 동일자에서 배제되고 억압되는 것이다.
동일자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로 인해 배제되고 억압되는 타자가 있다고 보는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 구조주의와 달라지는 지점이 여기다. 그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혹은 신대륙의 모든 문화를 야만으로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문명이라고 정의한 것은 아닌가? 문명이란 이름으로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이성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문화 내부에서,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남성적 동일자 내부에서, 나아가 동일자가 작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타자에 대한 이러한 사유를 작동시킨다. 그것은 차이를 문명화하고 동일화해야 할 어떤 것으로 만드는, 혹은 동일화할 수 없는 차이, 허용할 수 없는 차이를 배제하고 억압해야 할 타자로 만드는 모든 종류의 사유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결국 타자의 문제는 차이의 문제와 동일한 선상에 있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 사이의 차이
푸코나 들뢰즈/가타리는 구조주의자와 달리 기호와 상징계에 대해 일차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푸코에게 일차적 관심사는 형법학이나 행형학이라는 텍스트가 아니라, 감옥과도 같은 물질적 장치인 팬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건축적 시설이다. 들뢰즈는 기호적인 것들의 독자성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것을 언제나 기계적 배치라고 부르는 물질적 현실에 귀속시킨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호나 기표가 아니라, 그러한 장치나 배치를 통해 작동하는 권력이다. 반면 데리다는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은 문자로 씌어진 것만이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그는 핵폭탄도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보이듯이 그가 핵폭탄이나 감옥도하나의 텍스트로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일차적인 것은 텍스트고 기호며 의미였다. 푸코나 들뢰즈는 기표의 독재를 깨부수자고 말한데 반해, 데리다는 독재도 기표요 텍스트라고 본 것이다.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탈식민주의는 식민사라는 역사적 단계는 사라졌지만 다국적 경제 세력에 의해 신식민화가 다시 자행되는 현대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배경으로 문화에 초점을 두고 식민지경험이 현재의 세계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는데 사용되는 이론적, 비평적 전략을 일컫는 용어다.
탈식민주의는 식민주의가 식민사에 미친 굴곡과 가치손상을 시정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데, 희생자의 기준에서 본 역사적 설명이다. 이러한 식민담론은 1947년 인도 독립으로 인한 지식인의 자각과 1950년대의 제 3세계투쟁에 좌파적 경향이 싹트면서 그 윤곽을 드러내게 되었다. 또 각각의 식민지에서 각 문화와 문학을 기반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식민담론은 제국의 지배를 주로 언어와 문화면에서 살피고 있다.
탈식민주의는 크게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주로 아프리카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식민지 이전의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다시 회복하여 그들 자신의 문화적 체계를 갖고 도전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앞의 방법이 불가능함을 인정하여 문화적 합병을 제안하는 것으로 커리비언(Caribbean) 지역, 캐나다(Canada), 호주, 뉴질랜드(New Zealand)와 같은 정착문화권의 경우에 해당한다.
탈식민지화는 영어를 권력의 매개체로 보고 중심문화의 지배담론을 식민담론으로 대체한다든지, 제국의 지배 담론에 의해 정전화된 텍스트를 다시 읽고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써 지배담론을 역이용하여 공격한다. 또한 우의적인 글쓰기와 역사읽기를 통해 제국의 정전화된 텍스트해석과 지배이데올로기를 해체한다.
최근의 문화혼합현상이 보여주는 복합성은 탈식민주의가 단일한 이론이 될 수 없다는 특성을 말해준다. 탈식민성은 비교문화적인 현상이며 교차의 산물로 경계를 넘어 존재한다. 탈식민주의이론을 일반연구로 고찰하려면 각 나라의 지역에 있어서 탈식민지적 비평전통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탈식민지문학에서는 비교문학적 접근이 필수적이며 다양성이 강조되고, 유럽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두루 차용하고 있다.
탈식민주의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제국주의와 관련된 주체의 위상이다. 탈식민주의는 이런 문제를 서구의 여러 담론을 차용하되, 자신을 포함해 민족사적 운명을 보다 넓게 관련시켜 개개의 인간주체를 위한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이드는 동양인이자 식민지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으며, 스피박은 식민지 담론에서 정체성문제를 탐구하는데 있어 인종과 계급 및 성의 모순된 요소를 밝힌다. 스피박을 위시한 탈식민주의 여성학자들은 여성성이라는 개념과 민족개념이 상충하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들에 의해 단일한 주체는 거부된다. 이러한 페미니스트적 시각은 탈식민주의의 중요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탈식민주의는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파급되고 있지만, 민족주의 이론과 문화융합론, 혹은 현대 지국적 이론의 보편화나 다국적 경향을 어떻게 절충할 것인가의 한계점을 가진다. 그러나 상대주의를 기초로 탈식민주의는 가치 지향적이라는 성격 때문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으로의 연결
탈식민주의 관련학자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바바
빌 애쉬크롭트 (Bill Ashcroft)
헬렌 티핀 (Helen Tiffin)
밧 무어-길벗 (Bart Moore-Gilbert)
프란츠 파농 (Frantz Fanon)

탈식민주의 문화전략과 패러디의 형식과 이데올로기
탈식민주의는 문화의 탈식민화를 목표로 삼는데, 이를 위한 대표적인 문화전략에대해서, 빌 애쉬크롭트, 개릿 그리피스(Gareth Griffiths), 헬렌 티핀의 공저 [포스트 콜로니얼 문학이론]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첫째, 탈식민화(decolonization). 이는 식민지 이전 자국의 문화와 언어를 다시 회복하려는 방법과 그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문화적 합병을 제안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둘째, 폐기(abrogation). 이는 경전적인 지배문화와 담론을 거부하는 방법을 말한다.

셋째, 전유(appropriation). 이는 지배문화와 담론이 사용한 언어를 바꾸어서 재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넷째, 되받아쓰기(write back). 이는 지배담론에 의해 성전화된 텍스트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쓰면서 지배담론의 음모와 허구성을 폭로하고 주변부의 경험과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하는 반담론을 제시하는 방법을 말한다.

탈식민주의 문화전략과 패러디(parody)의 상관성
탈식민화는 식민지 이전 자국의 문화와 언어를 다시 회복하려는 방법과 그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문화적 합병을 제안하는 방법을 말한다. 탈식민화가 패러디와 연관되는 것은 문화적 합병보다는 피식민지 자국의 문화와 언어를 다시 회복하려는 방법이다. 여기서, 자국의 문화와 언어를 다시 회복한다는 것이 바로 자국의 전통문화형식 자체에 대한 패러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캣랙(Katrack)은 "구전 전통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탈식민화 과정에서 전술적 전략"이며 "탈식민 여성작가들이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여 이런 형식들이 탈식민시대와 장소에서 새로운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탈식민화가 구전전통을 비롯한 전통문화형식을 활용하는 방법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 바로 패러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 문화 형식 자체의 틀을 패러디하는 장르 패러디가 부각하게 된다.
앞에서 정리한 패러디형식을 장르 패러디에 적용하면, 상동형식은 선행 텍스트(장르)인 패러디된 텍스트(장르)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패러디한 텍스트(패러디스트의 텍스트)가 그대로 수용하는 패러디 형식이다. 이는 탈식민화 가운데에서도 피식민지 자국의 문화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회복하는 경우이다.

탈식민주의, 탈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통성
탈식민주의와 탈구조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공통적인 요소를 서로 내재하고 있다. 빌 애쉬크롭트와 개릿 그리피스 및 헬렌 티핀은 탈식민주의와 탈구조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문학적, 문화적 실천의 넓은 범주를 상호 중복적으로 포괄하는 불편한 명칭"이며 그 이론들은 "점진적으로 상호 연관적인 관계로 발전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탈식민주의와 탈구조주의는, 중심과 보편에 대한 저항에 따라 탈중심화, 복수성, 주변성, 차이성을 부각시키며 텍스트성을 강조함에 따라 담론적 관계와 이데올러기적 구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점 등이 그 공통성이 된다. 탈식민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이론적 실천 그리고 정치적인 입장을 포괄하여 탈식민주의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는 밧 무어-길벗은 탈식민주의 이론이 탈구조주의와 해체주의에 힘입어 서양/비서양, 중심/주변, 지배/피지배의 이분법적 틀을 해체하면서 이론적으로 보다 세련되어갔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만큼 탈식민주의가 원래 지니고 있었던 저항성과 전복성이 퇴색되어간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일정 부분은 인정해야 하지만 다른 측면이 내제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밧 무어-길벗이 탈구조주의를 활용한 탈식민주의 이론가로 손꼽고 있는 호미 바바는 탈식민주의 이론이 탈구조주의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타자인 비서구의 위치에서 수행한 것이며, 이는 탈구조주의에 의존하면서도 타자의 위치를 가정함으로써 서구의 인식론을 해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탈식민주의는 가해자측에서 보면 반성이며 피해자측에서 보면 저항인데, 탈식민주의가 탈구조주의를 활용하는 것은 비서구가 서구의 반성의 논리를 활용하여 서구에 대한 저항의 논리를 세우는 전략이 되는 사항으로 볼 수 있다.
탈식민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전자는 비서구의 위치에서 후자는 서구의 위치에서이긴 하지만, 둘 다 서구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어 "제휴와 연대의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서구의 탈식민주의가 서구의 식민주의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것에 저항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양가적 저항을 보이는 반면 서구 내부의 비판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지배적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동시에 공모하는 양가성을 보인다. 이는 탈식민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의 규명에서, 이 두 항목이 정치성의 면에서는 차이를 지니고 있지만 전략의 면에서는 겹치는 점들이 많다는 의미다. 탈식민주의는 정치성의 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차이가 있지만, 둘 다 패러디와 같은 수사학적 전략을 잘 취하고 있다는 점이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공통성이 되는 것이다. 탈식민주의의 전략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적인 수사학적 전략인 패러디를 받아들여 이를 기존의 서구 담론이 지닌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탈식민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이 권위의 부정이나 억압된 것의 귀환 등을 위해 정전의 해체와 패러디 등을 전략적으로 차용하여,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달리 서구 식민주의의 문화적 헤게모니와 중심담론에 도전하고 이를 탈중심화시켜 비서구의 반담론을 적극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와 현상학
후기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라고 말해지는 사상 경향 중에서 현상학과의 관계가 특히 문제로 되는 것은 데리다이다.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déconstruction)이라고 불리는 데리다의 실천은 후설 현상학과의 대결을 돌파구로 하여 개시되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데리다의 후설 해석은 단순하지 않고 몇 가지 국면을 포함한다. 그 하나는 195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친 프랑스에서 거의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던 <현상학=인간주의>라는 등식의 부정이다.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등의 실존주의적 현상학과 그들의 '인간주의'를 비판하는 구조주의적 인간과학은 둘 다 의미의 기원에 대한 물음의 "초월론적 성격"을 간과하고 있는데, 우선은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의 "권리상의 우선성"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90, 『여백-철학에 대하여』 136ff.](헤겔의 '정신현상학'이나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도 동일한 오해가 보인다는 점을 데리다는 강조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후설 해석의 독창성은 오히려 그 이전에 놓여 있다. 즉 그에 의하면 초월론적 현상학은 그 물음의 엄밀함과 철저성에 불구하고, 또한 시간화의 운동 등 몇 가지 사태에 관련하여서는 전통의 틀을 돌파하는 사태를 기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로고스 중심주의와 초월론적 주관주의의 원리에서 의연히 형이상학적 전통에 종속되어 있으며, "현전의 형이상학의 가장 철저한 동시에 가장 비판적인 재건"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72]. 이러한 논점은 데리다의 후설 해석의 대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목소리와 현상』(1967)에서 상세히 논의되었다.

'후설 철학에서의 기호의 문제에 대한 서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저작은 『논리연구』의 '표현과 의미'에 관한 논의로부터 출발한다. 후설은 거기서 표현(Ausdruck)과 지표(Anzeichen)라는 두 종류의 기호를 "본질적"으로 구별하고, 전자가 "고독한 심적 생활" 내에서도 의미작용을 수행하는 순수한 기호라는 것을 논증하고자 하지만, 데리다는 이러한 논의에서 내적, 비물질적, 의지적 성격을 지니는 파롤을 특권시하고 외적, 물질적, 공간적 성격을 지니는 에크리튀르를 불순한 기호로서 잘라내 버리는 서양 형이상학의 전형적인 움직임을 인지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순수 의식의 <자기에의 현전>과 그것을 기술하는 현상학적 로고스의 명증성으로부터 경험세계에 얽혀 있는 모든 불순한 요소를 제거하는 조작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데리다는 표현의 순수성은 겉보기의 것에 불과하며, "의미와 현전의 근원"에는 근원-에크리튀르로서의 "차연"(différance)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후설 자신의 현상학적 기술 내용을 역으로 파악하는 형태로 제시해 간다. 말하자면 후설을 소쉬르적인 관점에서 독해해 가는 이 저서의 자세에서 <후기구조주의>의 현상학 이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그러나 소쉬르 이상으로 하이데거의 비판적 계승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전의 형이상학의 탈구축(déconstruction)이라는 모티브는 『존재와 시간』에서의 "존재론의 역사의 해체(Destruktion)"의 이념으로부터 이른바 존재사적 사유(seinsgeschichtliches Denken)에 이르는 하이데거의 발걸음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이어받고 있다. 모든 기호작용을 벗어난 초월론적 기의(signifié transcendental)의 부재를 엄밀하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에 의해, 또한 그에 의해서만 존재신학(ontothéologie)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세워져 있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36f.].

그러나 데리다는 이러한 존재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도 탈구축을 시작한다. 현전의 형이상학과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한 하이데거의 입장은 '애매'한바, 존재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탐구, 존재의 "진리"에 대한 탐구, 존재의 "목소리"에 대한 청종, 현존재 내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존재의 근접성과 같은 다양한 주제가 그의 사유를 여전히 존재신학의 시기에 "가둬 넣고 있는" 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같은 책 23ff., 『여백-철학에 대하여』 147ff.]. "차연"은 "존재론적 차이"보다 "근원적"이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다만 이러한 "근원"은 "차이의 말소"로서 기능하는 형이상학적 "근원"이 이미 아니라 "근원의 말소"로서 작용하는 "근원"인바, 오히려 "비근원"인 것이다[『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38].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구조조의와 후기구조주의의 차이
후기구조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사상체계가 아니라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여러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된 한 영역에 나타나기 보다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매우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후기구조주의라는 말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라는 용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그만큼 이들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서양 지성사에서 전개되고 있는 후기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은 근ㆍ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온 모더니즘의 이념들이 급변하는 오늘날의 사회현실을 해명하는 데에 역부족이라는 뼈아픈 자기반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구조주의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인간의 본질과 성격을 규명하고 인간행위와 그 산물들을 설명함으로써 20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여러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후기구조주의는 극도의 회의주의와 상대주의로 특징지울 수 있다. 서구 지성사에서 볼 때 그 어떤 '주의', '이념'보다 후기구조주의는 매우 강한 회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것은 첫번째로 구조주의와는 달리 언어의 지시적 기능에 강한 불신을 보여 주었다. 소쉬르는 기호체계로서의 언어는 어떤 본질적 특성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 의해 정의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기호와 기호가 표상하는 대상 사이에는 어떤 본질적 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쉬르는 기호를 시니피앙(signifiant)과 시니피에(signifié)의 결합으로 보면서, 이것을 차이의 놀이에 의해 설명한다.

한 시니피앙의 의미는 그 자체의 본질적 속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시니피앙과 다른 시니피앙과의 차이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언어는 이러한 차이의 놀이에 의해 구조화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언어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으로 설명하면서 지시 대상과의 관계를 배제한다. 언어는 더 이상 외적 대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의 체계 안에서 구조화된다. 이러한 소쉬르의 언어분석은 기호학에서의 텍스트의 자율성, 데리다의 해체주의, 푸코의 담론에 기초한 사회이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소쉬르의 언어학은 기표와 기의의 임의적인 결합을 통해 긍정적인 고정된 의미를 창출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안정된 부호의 통일로 나갔다. 이러한 언어의 지시성과 고정된 의미는 후기구조주의에 이르러 일종의 파산을 맞게 된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끊임없이 분리되기도 하며 혹은 새롭게 다시 결합하기도 한다. 언어체계는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임의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철학, 자연, 문학 등 특정한 기호체계가 더 이상 특권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대상의 투명한 현전은 불가능하며 인식도 근본적으로 임의적인 기호체계인 언어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인식에 있어서 고정된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헛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두 번째로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는 달리 인간 주체나 개별적인 자아에 대해 회의감을 가진다. 서구에서 인간은 르네상스 이후 비교적 자유롭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자로 이해되어 왔다. 합리적 이성에 입각한 인간의 개념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후기구조주의에서는 합리적 이성을 소유한 인간의 주체성이 거의 소멸되었다는 극도의 회의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즉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보다 더욱 더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강한 불신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후기구조주의는 추상적 체계성이나 총체성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데리다의 해체주의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데리다는 소쉬르의 음성중심주의를 로고스 중심주의(logocentrism)와 연관시킨다. 로고스 중심주의는 '로고스'를 중심으로 삼는 태도, 즉 존재의 형이상학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서 로고스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어떤 권위나 중심적인 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로고스 중심주의는 이념화 과정에서 부단히 기원으로 돌아가거나 보다 선행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그것들을 순수하고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전략을 말한다.

데리다는 절대적인 기초, 근본 원리에 의존하는 모든 철학체계를 형이상학적이라고 비판한다. 절대적인 근원이 되는 중심적 체계와 통일성의 원리를 해체하고자 시도하는 데리다는 절대적인 근원을 증명하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는 헛된 일이라고 보았다. 이를 통해 데리다는 아포리아의 세계, 즉 무한한 회귀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것은 절대적 권위나 체계성이 모두 해체될 때 남는 극도의 상대성에 도달한 세계를 말한다. 결국 데리다는 순수한 음성적 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로고스 중심주의, 음성중심주의, 현전의 형이상학의 세 관계를 해체시키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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