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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9강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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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의 클래식 노트

on 25 Februar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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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러시아 제9강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Igor Stravinsky
(1882-1971)

Life in Switzerland
(1914-1919)
5. 프로코피예프와 쇤베르크
“라인하르트는 모두에게 모든 것을 제공했다”

6. 피카소와 마티스
“당신들은 그것을 ‘숭배’하나 나는 ‘사랑’한다”
Life in France
(1920-1939)
7. 드뷔시와 사티
“스트라빈스키가 위험스럽게 쇤베르크 쪽으로 기울고 있어”

8. 바흐, 베토벤, 베버
“소네트를 만드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말이네”

9. 장 콕토
“무척 소름끼치는 선물이군”

10. 표트르 차이콥스키 - 요정의 입맞춤
“자네가 없으면 러시아 발레단은 어찌 될까?”

11. 앙드레 지드와 폴 발레리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12. 조지 발란신
“원래대로 공연할 게 아니면 하지 마”
Life in the US
(1940-1971)
13. 리하르트 바그너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진보할 수 있다”

14. 위스턴 H. 오든
“선생님과 작업하는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입니다”

15. 로버트 크래프트와 안톤 베베른
“개인적으로 음계는 일곱 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Russian Period
(1907–1914)
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
Sergei Diaghilev
(1872-1929)
Le Sacre du Printemps (1913)
Modest Mussorgsky
(1839-1881)
바슬라프 니진스키(1889-1950)의 안무

니콜라스 뢰리치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

피에르 몽퇴 지휘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초연
1.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우리에겐 아직 글라주노프가 있잖아”

2.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젊은 양반, 크레셴도를 원치 않으면 아무 것도 적지 말았어야지!”

3. 바슬라프 니진스키
“나는 들었고 내가 들리는 것을 적었다”

4.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아직 오페라를 쓸 역량이 안 된다”
Histoire du Soldat (1918)
세 사람의 배우, 하나 또는 여러 명의 무용수와 칠중주가 반주하여 읽고 연기하고 춤추는 무대극
1918년 9월 28일 스위스 로잔느 초연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지휘
Les Noces (1914-1923)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 안무
1923년 6월 13일 파리 게트 극장 초연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지휘
Pulcinella (1920)
1920년 5월 15일 파리 오페라 초연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지휘
레오니드 마신이 대본과 안무를 맡음
파블로 피카소가 의상과 무대 디자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제작
Jewels (1967)
by George Balanchine
1) 에메랄드:
가브리엘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1898); 샤일록 (1889)
2) 루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프리치오 (1929)
3) 다이아몬드: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3번 (1875)
1925년: 잠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의 주제와 단편에 붙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파울 코찬스키와 협력)
1932/33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이탈리아 협주곡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와 협력)
1933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탈리아 협주곡 (새뮤얼 듀시킨과 협역)
Violin Concerto in D
(1931)
1931년 10월 23일 베를린에서 초연 방송
새뮤얼 듀시킨의 독주, 작곡가가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
Persephone (1933)
앙드레 지드의 대본

1934년 4월 30일 작곡가 자신이 파리 오페라에서 지휘해 초연

이다 루빈스타인 발레단이 상연
Symphony of Psalms (1930)
보스턴 심포니의 창단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위촉
세 악장의 합창 교향곡
Oedipus Rex (1927)
오케스트라, 변사, 독창과 남성합창을 위한 곡
소포클레스의 비극를 바탕으로 장 콕토가 불어로 대본을 쓰고 장 다니엘루가 라틴어로 번역
1927년 5월 30일 파리 사라 베르나르 극장 초연
Symphony in Three Movements (1945)
뉴욕 필하모닉 심포니 소사이어티의 위촉
1946년 1월 24일 스트라빈스키의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이 초연
Mass
글로리아는 1944년 12월 20일, 키리에도 비슷한 시기에 완성
교향곡과 에보니 협주곡, D조의 협주곡, 발레 오르페우스를 쓰는 동안 중단
1947년 가을에 재개해 1948년 3월 15일에 완성
The Rake's Progress
1947년 5월 2일 시카고 전시회에서 윌리엄 호가스(1733–1735)가 그린 <난봉꾼의 행각>을 보고 영감을 얻음
W. H. 오든과 체스터 컬먼이 대본을 씀
Agon (1957)
열두 명의 무용수를 위한 발레

조지 발란신이 안무

1957년 6월 17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로버트 크래프트가 초연을 지휘

1957년 12월 1일 뉴욕 뮤직 앤드 드라마 시티 센터에서 뉴욕 시티 발레가 처음 공연
1951년 9월 11일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가 앤 트루러브를, 로버트 라운스빌이 톰 레이크웰을 부름
Stravinsky - Feu d'artifice (1908)
L'oiseau de feu (1910)
Petrushka (1911)
The Nightingale (1914)
The Fairy's Kiss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스센의 <눈의 아가씨>에 붙임

표트르 차이콥스키에게 헌정하며 그의 초기 곡들의 선율을 사용

이다 루빈스타인이 위촉해 브로니슬라바 니진스키가 안무

1928년 11월 27일 차이콥스키의 서거 35주년을 기리며 파리에서 초연
Jeu de cartes (1937)
1937년 4월 27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아메리칸 발레단이 초연. 작곡가 자신이 지휘
어릴 적 바덴바덴의 온천 휴양지에서 본 카지노의 풍경을 바탕으로 로시니의 선율을 인용
1947년 2월 26일 어빙 파인이 두 대의 피아노 반주로 키리에와 글로리아를 지휘
첫 전곡 연주는 1948년 10월 27일 밀라노에서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
1) 토카타
2) 아리아 I
3) 아리아 II
4) 카프리치오
한 개의 밀알
1) 시편 39편 12, 13절
2) 시편 40편 2, 3, 4절
3) 시편 150편

Patricia Kopatchinskaja
Europa Konzert 2008
Benjamin Britten (1913-1976)
Leonard Bernstein
(1917-1990)

West Side Story (1961)
Peter Grimes (1945)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Aaron Copland
(1900-1990)

Fanfare for the Common Man
Les Six
Georges Auric (1899–1983)
Louis Durey (1888–1979)
Arthur Honegger (1892–1955)
Darius Milhaud (1892–1974)
Francis Poulenc (1899–1963)
Germaine Tailleferre (1892–1983)

The Wedding Party on the Eiffel Tower
전 세계 대표적 생일 축하곡인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가 3년에 걸친 저작권 소송을 끝내고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될 전망이다. 누구든 저작권료 걱정 없이 이 노래를 부르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9일(현지 시각) LA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이 노래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워너뮤직의 자회사 워너·채펠이 저작권 무효 및 저작권료 반환을 주장하며 소송을 낸 원고 측에 합의금 1400만달러(약 167억6000만원)를 주고 소송을 끝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송은 노래와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미국 영화감독 제니퍼 넬슨이 '이 노래의 저작권이 왜 특정인에게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시작됐다. 넬슨이 자신의 영화에 이 노래를 삽입하려 하자 워너·채펠은 저작권료 1500달러를 요구했고, 넬슨은 어쩔 수 없이 지불했다. 그러나 노래 연원을 추적한 넬슨은 저작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선 이 곡은 1893년 교사였던 밀드레드 힐과 패티 스미스 힐 자매가 작곡한 '굿모닝 투 올(Good morning to all)'과 멜로디가 같았다. 1900년대 초 이 곡에 붙은 '해피 버스데이 투 유'로 시작하는 가사는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작자 미상'이었다.
그 후 이 노래는 1911년 어린이 노래책에 수록됐고 '클레이턴 서미'라는 회사가 힐 자매로부터 저작권을 넘겨받았다. 이후 클레이턴 서미는 1988년 워너뮤직 측에 인수됐고, 이후 워너·채펠이 노래의 저작권을 행사해 왔다.

넬슨은 '작곡자는 힐 자매로 볼 수 있지만 이 노래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된 데에는 가사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굿모닝 투 올' 작곡자가 '해피 버스데이 투 유'의 저작권을 갖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노래는 실질적으로 대중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모든 사람들의 것이 돼야 한다'며 2013년 6월 저작권 무효 소송을 냈다. 이와 함께 그때까지 워너·채플 측에 저작권료를 지불한 사람들을 규합해 저작권 수익 반환 집단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미국 지식재산권 전문가들은 워너뮤직 측이 2000년 이후 이 노래로 매년 200만달러 이상의 저작권 수익을 얻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넬슨 측은 지난해 9월 승기를 잡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 연방지방법원이 이 노래의 가사 저작권이 유효하지 않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은 워너뮤직 측이 자칫 재판을 더 끌다가 곡 전체의 저작권 싸움에서 완패할 경우, 이전 저작권 수익까지 모두 반환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1945년에 완성된 <3악장 교향곡>은 신고전주의와 영화 작업의 결합이 낳은 최초의 대작이었다. 뉴욕 필하모닉은 1942년에 ‘승리의 교향곡’을 위촉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처음에 협주곡을 구상했다. 1악장에서는 피아노가, 2악장에서는 하프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작품이었다. 그러던 중 1943년 프란츠 베르펠로부터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베르나데트의 노래>의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스트라빈스키도 흥미를 보여 ‘성모의 환영’ 장면을 위한 음악을 썼지만, 다른 영화 음악의 시도 때처럼 끝까지 완성하지는 않았다. 대신 작곡하던 음악을 <3악장 교향곡>의 2악장으로 사용한다. 앞서 1악장에는 뉴스 영화로 본 중국의 초토화 작전이 모티프가 되었다. 즉 적에게 이로운 것을 남기지 않기 위해 농작물과 집, 가축을 모조리 불태우는 이 가차 없는 병법이 그에게 인상을 남긴 것이다. 3악장에서는 뉴스 영상으로 본, 군홧발을 높이 차며 걷는 동맹국 군대의 행진 모습이 묘사된다.
사람들은 처음에 베르나데트가 미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샘물의 영험함을 경험한 뒤 그녀를 믿게 되고 이단으로 몰아붙이던 교회도 그녀를 수녀로 받아들인다. 베르나데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성모를 본 자리에 세워진 지하 성당과 샘물에는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 행렬이 끊이지를 않았다. 베르펠은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썼고, 할리우드에서 이것을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다.
베르펠은 1941년 나치를 피해 탈출하던 시기 프랑스 루르드 지방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성스러운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성녀 베르나데트는 그 지방 방앗간 주인의 딸로 가난하고 문맹이었지만, 독실한 신앙을 가진 소녀로 동정녀 마리아가 그녀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성모는 자신을 발견한 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계시를 내리고 성스러운 샘물을 알려준다.
상속인: 구두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톰 레이크웰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는다. 그가 장례에 참석할 옷을 맞추는 방안은 어느 곳이나 엄청난 재산을 보여준다. 젊은 새라 영과 그의 어머니가 찾아 왔다. 톰은 새라와 결혼하기로 했지만 지금은 돈을 줘 내쫒으려 한다.
접견: 탕아가 접견실에 나타난다. 그 주위에 춤, 펜싱, 음악, 격투기, 조경 등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몰려든다.
잔치: 술에 취한 탕아는 코번트가든 장미 여관의 매춘부들과 아침부터 놀아나고 있다.
체포: 재산을 탕진한 탕아는 빚에 쫓겨 성 제임스 거리에서 체포되기 직전이다. 새라 영은 뜻하지 않게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저금으로 그를 돕게 된다.
결혼: 탕아는 재산을 만회하고자 나이 많은 외눈의 부자 과부와 결혼한다. 팔에 톰의 아이를 안은 새라 영이 결혼식을 막으려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도박장(성 제임스 거리, 화이트 클럽): 톰은 도박으로 또 재산을 날린다.
감옥: 탕아는 빚을 갚지 못해 플리트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의 아내는 그를 조롱하지만, 아이를 데려온 새라 영은 기절한다.
정신병원: 탕아는 베들럼으로 이송된다. 아직도 그에게 충실한 새라 영이 찾아와 그를 위해 눈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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