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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Title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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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Young Leem

on 18 Sept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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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Broadcast Title 05

- 영상 이미지의 정서적 관여 - 방송타이틀 그래픽 매스 미디어 시대에서 영상 이미지가 제시하는 신화 중의 하나는 대상을 끊임없이 ‘매혹’(glamour)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선망의 대상 영상이미지가 대상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초창기 사진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사진의 이데올로기적 의미 선망의 대상으로서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영상 이미지가 미래를 신화화해서 일상적인 대상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거를 신화화 하는 것이다. 선망의 대상으로서의 광고 선망의 대상으로서 이미지를 부추기는 것은 광고뿐 아니라, 영화, TV 드라마 등에서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선망의 대상으로서의 미디어 영상이미지는 과거도 선망의 대상화를 시킨다. 플라톤 떠올리기 영상 이미지는 미래를 선망의 대상화시키는 것과 더불어 과거를 선망의 대상화시킨다. 이것은 지금은 실재가 아닌 것을 영상 이미지를 통해 지금도 현실인 것처럼 증명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결혼식 때나 회갑연 때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는다. 들여다봄으로써 자기도취에
빠뜨리는 것은 거울만이 아니다.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 소외된 주체로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서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지곤 한다.
영상이미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선망의 대상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보아 어떤 사회 제도 아래서도 이렇게 많은 영상 이미지가 한꺼번에 밀집되어 우리 일상생활을 지배한 적이 없었다. 1830년대는 상공업의 발전으로 사회계층의 신분상승이 확대 된 시기였다. 특히 이 당시 하층 중산계급과 상층 중산계급이 확대되었다. 이들은 사진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자기표현의 수단을 발견했다. 과거 귀족계급이 자신의 부와 정치적 지위를 표상하기 위해서 화가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했던 것처럼 이들은 자신들의 부와 정치적 신분상승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진사에게 초상사진을 찍게 하였다. 미래를 신화화하는 여러 기제 중의 하나는 광고이다. 광고에서 사용하는 시제는 언제나 미래 시제이다. 광고는 순간적으로 지나가면서도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상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광고에서 제시하는 영상이미지는 우리에게 더 아름다운 것, 더 소중한 것, 더 가치 있는 것을 줄 수 있는 것 처럼 약속한다.


영상보기. 영화에서 정의에 불타 악을 물리치는 주인공이나 부와 권력을 얻어 신분상승이 이루어지는 주인공은 선망의 대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영상 미디어는 그 이미지를 확대한다. 스타를 만드는 것은 선망의 대상으로서 이미지를 꾸며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늘날 핵가족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모든 친척이 한데 모인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따라서 점차 멀어져 가는 친척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어둠으로써 가깝다거나 자연스럽게 친척들이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 기억으로 새삼스럽게 환기시킨다. 영상 이미지는 대상을 자기도취의 우물에 빠뜨린다.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 거울 속에 비춰진 ‘나’가 평소의 내가 아닌 좀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느낄 때가 많다. 나르시시즘 텔레비전, 비디오, 광고 등을 보는 것은 일종의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영상 미디어가 제시하는 영상 이미지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월리엄슨은 라캉의 이론을 받아들여, 광고에서 거울 이미지가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소비자로 하여금 이상적 자아를 꿈꾸게 하는지를 흥미롭게 논의한다. 광고 혹은 영상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현혹된 세계를 제시하여 관념적 자아를 형성시키고 소비주체로서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자신의 계급상승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고, 사회적 평판을 누리는 계층 속에 스스로를 귀속시키는 상징적 행위인 것이다. 초기 초상사진의 상징적 의미는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은 바로 대상이 사진으로 찍혔을 때 혹은 영상 이미지로 제시될 때 일상적인 대상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뀌어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모델이 화장품 광고에 등장한다. 그럼으로써 광고를 보는 여성 소비자들에게 “나도 저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을 부추긴다. 화장품 광고는 소비자에게 당신도 이 화장품을 쓰면 아름다워질 수 있고 그럼으로써 모델과 마찬가지로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결국 광고의 이미지는 바로 선망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소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광고 그 자체의 모델과 광고된 화장품을 사용할 경우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다. 가족사진은 하나의 흔적에 불과하지만 사방으로 흩어진 친척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가족사진을 찍거나 비디오를 찍어둠으로써 우리는 과거를 상상 속에서 소유한 듯 느끼게 된다. 거울이든 사진이든 실물로서가 아니라 무언가 하나의 차폐물을 통해서 들여다보면 확실히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것은 ‘현재의 나’를 보기보다는 객관적 거리를 두고 ‘이상화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늘 경험하는 나보다 신비롭다.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은 일정량의 리비도를 전제로 한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심리학적 차원에서 이론화하였다. 유아기는 ‘1차적인 나르시시즘’ 단계인데 여기서는 유아 자신이 리비도(libido)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개인이 성장해감에 따라 리비도는 자기 자신에게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대상과 관계를 맺는데, 좌절당할 경우 리비도가 그 대상으로부터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이것이 ‘2차적인 나르시시즘’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내가 사랑을 외부세계로 발산하면 발산할수록 자기에 대한 사랑은 감소되며, 역으로 내가 외부세계로 발산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자기에 대한 사랑은 증가된다.
그것은 교환가치와 상징가치 속에서 인간과 사물의 관계가 멀어지기 때문이며 시장논리가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외부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상이미지가 소외된 주체에게 나르시시즘을 제시한다고 할 때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2차적 나르시시즘'을 말하는 것이지만,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상적 자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뒤바뀜 속에서 개인은 심리적 차원에서 일상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 사이의 자아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일상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에 대한 추구가 높아질수록 개인은 더욱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소외가 심화될수록, 일상적인 꿈이 경제적, 문화적 억압에 의해 상실될수록 이상적 자아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다. 여기에서 영상이미지는 이상적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개인에게 이상적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키고, 이상적 세계를 일상적 세계와 동일시하도록 이끈다.
영상이미지의 허구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현재의 나’ 가 ‘이상적인 나’ 와 다르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상적인 나로 다가온 멋진 모델을 보면서 화장을 하고 몸치장을 한다고 해도 ‘현재의 나’ 는 ‘이상적인 나’ 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화장품광고에서는 모델의 얼굴전체가 한 쪽을 장식한다. 따라서 모델의 실제 얼굴 크기와 사진의 크기 사이에 별다른 차이도 없다. 이것은 수용자로 하여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수용자는 일종의 ‘이상화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화장품 광고 나르키소스(Narcissus)가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다면, 현대인은 영상이미지에 비추인 이상화 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매개되는 것은 이미지의 마술이다, 물론 우리는 모델이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의 이미지는 우리의 내면에 깔려 있는 나르시시즘을 호명하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상품을 구매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기제로 사용된다.
허버트 제틀은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상과 관련해서 우리가 다시 플라톤의 동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하이-테크 동굴’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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