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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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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ng Taeuk

on 5 Jun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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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design by Dóri Sirály for Prezi
사건의 발단은 은강그룹이 운영하는 공장의 한 노동자가 주인공의 숙부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재판 내용이 곧 소설의 주된 분량을 차지 한다.
아버지가 죽은 일에 대해서 범죄자의 당위성을 찾는 사촌을 선량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다가도 ‘나’의 두 형이 사촌을 몰아낼 음모를 꾸민다면 기꺼이 가담하겠다는 이중적인 시선
그리고 지섭을 이상에 현실을 대어보는 넌더리 나는 종류의 엄숙주의자라고 바라보는 평가
사형 선고를 내리는 데 일조한 검사에 대해 ‘나’가 갖는 평가상 등은 이 작품의 성격을 ‘나’의 이중성과 연결 지어주는 고리인 셈이다.

인물의 성격
국제경영학과 201300087 강태욱
독일어통번역학과 201302275 이다연
영어통번역학과 201400061 강신오
영어통번역학과 201401025 노형준
영어통번역학과 201400014 강동현
인도학과 201402252 이동준
‘나’는 난쟁이가 폭군에 가까웠을 것이고 그래서 큰아들이 비정상적인 성장 환경에서 자라 살인에까지 이르렀을 것이라고 재판 중간 합리화하는데 마치 ‘나’가 스스로에 대해 하는 말처럼 읽혔다. 난쟁이의 집이 경제적으로 불우한 환경이라면 ‘나’는 정신적으로 불구를 양성하는 집안에서 자란 것 아닐지
감사합니다
주인공은 사촌(살해된 숙부의 아들)과 같이 재판에 참여한다. 검사가 피고인 - 숙부를 죽인 살인자, 난장이의 아들로 은강그룹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 에게 질문을 하고 그의 변호인과 증인의 말에서 살인동기가 밝혀진다. 그는 불안정하고 인권마저 유린당하는 노동자를 대표하여 일종의 저항의 표현으로 살인을 한것이다.



결국 재판은 피고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며 마무리 된다. 주인공은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사촌과는 다르게 끝까지 그들을 공감하지 못하며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주인공의 꿈속에 그대로 투영된다.
'나' (경훈)
역겨움. 본능적이고 세속적.
숙부가 죽었을 때 우습다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보아 윤리 기능이 마비되어 있음.
비정상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노동자들을 이해하지 못함.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외국 여행지나 성적인 것만을 생각함으로서 외면함.
상당히 비인간적임.
일견 노동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볼 수도 있음
사촌
은강 그룹의 구조와 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함. ‘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음.
기득권 층의 생활과 생각에 넌더리를 냄.
윤리적이고 깨어있는 지식인.
한국을 떠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아 실천적인 지식인까지는 되지 못함.
아버지, 할아버지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은강그룹을 대기업으로 끌어올린 사람들.
잘못된 경영 철학과 생각을 가지고 아들들을 교육함.
자신의 친족들도 돈 앞에서는 가차없이 내침.
치밀하고 지능적인 악인상.
숙부
‘나’의 아버지와 너무 닮아 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람.
하지만 그 역시도 결코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은강 그룹을 앞에 두고 무시당하며 살았음.

난장이 가족
난쏘공의 주연 가족인듯 함. 큰 아들 영수가 주인공의 숙부를 살인한 죄로 기소되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됨.
숙모
은강그룹의 후광 아래서 비굴하게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 하지만 숙부가 죽자 마자 바로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아 타락해있음.

큰아들 영수
한지섭
평소에는 선망받고 유순한 청년이었으나, 노동자들에 대한 너무나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을 체험하고 은강 그룹의 총수인 ‘나’의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 살인이란 것은 나쁜 죄이지만, 호소해도 듣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과격한 행동을 보인듯.
영수 뿐만 아니라 다른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현실을 정확하게 말하고 그들의 권리를 올바르게 주장한 사람. 불편한 몸을 가진 노동자이며 동시에 지식인.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의문을 품고 재판에서 모든 것을 말하는 용기있는 사람.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글은 다분히 직설적이다. 독자는 ‘숙부’의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인물들이 취하는 태도를 비교하며 이 글을 읽게 되는데, ‘사촌’과 ‘나’, 그리고 지섭과 난장이의 큰아들로 대표되는 구성원들이 각기 어떤 태도를 하고 있는지, 그러한 차이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제 나름대로 끝맺을 수 있어야만 이 글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것이다.

개중 사뭇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나'
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서 있는 위치가
재조명되는 방식이다.
늙은 개: 또 다른 할아버지. 젊었을 적에는 뛰어난 사냥개였으나,
지금은 늙고 병들었다.
이는 언젠가 스러질 기득권 세력을 의미
‘나’가 늙은 개를 죽이려 하는 것도 그런 미래에서 도피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물: 주인공인 '나'의 욕망과 기업의 이윤구조를 의미.
강압적인 주인공의 방식이 결국엔 몰락을 가져올 것.

가시고기: 삐쩍 마른 노동자들을 상징.
노동자들은 은강 기업에 의해 착취당하고 정당한 권리
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가시고기가 그들의 가시
로 ‘나’를 공격하듯, 노동자들이 언젠가 기업을 변혁
시킬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이 소설은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한체 오로지 일방적인 기업경영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 아래에서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자기합리화하는 나약한 주인공을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소설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현대인을 풍자하지는 않는지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주인공이 그물을 던졌는데 살찐 고기가 아닌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 가시고기들이 걸려 올라오고 주인공은 그 가시에 살갗이 긁히게 되는 그 장면은 상징성이 나름 컸던 만큼 시사하는 바도 컸다.
그 큰 가시고기들은 아마 굶주리고 억압에 찌든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장치 이리라. 결국 노동자에 대한 억압은 곧 사용자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과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노동자든 사용자든 서로에 대한 요구가 과하면 거듭되는 협상의 결렬을 부르게 되고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서로의 몰락뿐이다.
이 소설이 단순히 산업화 시대의 모습만을 담고 있다고 보기에는 힘든 것 같다.
현대 사회 또한 노사간의 분쟁이 만연하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때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은 결코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용납 될 수 없는 것인데 그 극단적인 행위를 노동자들이 받는 억압에 대한 마지막 저항권 행사라고 포장을 하여 정당화 하려는 김영수의 변호사가 못마땅했다.
법리적인 해석과 도덕적인 정당성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고 구별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나’의 시선이다. ‘나’는 언뜻 천민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그 밖의 생각은 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악당인 양 보인다.
그러나 그 저변에 자리한 ‘나’의 이중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난장이의 큰아들의 살인이 강요 받은 것처럼 ‘나’의 이러한 태도 역시 강요 받은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강요 받아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강자가 약자에게 주는 불공정한 종류의 충격
ㅡ 미국이 소비하는 자원이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빈민의 생활상과 비교할 때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따위의 예를 들어 ‘나’는 사촌이 ‘나’에게 대해 묻는 요트 항해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현실을 도피하고 ‘나’가 누리는 상태를 합리화하지만, 기실 사촌의 질문은 그런 것과 관련이 없다.
‘나’는 명확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있고, ‘나’가 작품 시종에 걸쳐 보여주는 시선은 분명히 도피성으로 의도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이중성은, ‘나’가 증인으로 등장한 한지섭과 난장이의 큰 아들의 말을 외면하기 위해 눈을 감고 여러 즐거운 상상을 떠올리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었던 것처럼, 끝내 ‘나’의 한구석을 비집어 열고 나와 어머니에게 약을 쓰면 된다는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어머니는 ‘나’가 반쯤 자조하며 던졌을 그 질문을 말도 안 된다며 일상적으로 일축하고, ‘나’는 결국 그 자신이 남몰래 정신과를 찾아가 보기로 생각한다.
상징적 요소들
생각해 볼 것들
생각해 볼 것들
현대사회에의 적용
주인공의 자기합리화
주인공의 현실 도피
'나'의 시선
'나'의 성장환경
제목이 가지는 의미
작가와 다른 관점에서의 생각
Full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