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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합사(HI)_0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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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Yoon

on 26 Sept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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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유럽통합사(HI)_03.B

유럽통합의 역사
담당교수 : 윤석준
3. 중세 '유럽'의 형성 (2)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
(Enea Silvio Piccolomini)
이슬람에 맞서는 유럽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
(Jiri z Podebrad)
교황 비오 2세(재위 1458~64)의 속명.

시에나의 몰락귀족의 집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음. 인문주의자로서의 학식을 발휘하여 역사, 지리, 시 등 많은 저작을 저술함. 이후 성직자의 길을 걸어서 트리에스테와 시에나의 주교, 추기경을 거쳐서 1458년 교황에 선출되어, 비오 2세로서 즉위함.

1459년 망토바에서 십자군을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그리스도교 군주들에게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할 것을 호소하였는데, 실패로 끝남. 비오 2세는 그 자신이 십자군의 선두에 서고자 안코나에 직접 부임했으나 그곳에서 사망함.

인문주의자로서 깊은 교양, 예리한 미적감각, 세속적 지식, 그 위에 교회의 사명에 대한 신념이 공존하는 <인문주의 교황>이었음. 시에나의 대성당에는 핀투리코(Pinturicchio)의 작품이라고 하는 비오 2세 일대기에 대한 프레스코 벽화가 있음.
십자군
이스탄불
비잔틴 제국
로마제국
" 고귀하고 고상한 사람에게 바른 신앙을 보호하고 ... 구세주 그리스도 이름을 온 힘을 다해 영화롭게 하고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콘스탄티노플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의 피가 흐르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한 지금, 기독교 신앙은 통탄할 정도로 훼손되고 있으며, ... 그리스도의 이름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고 모욕을 받았다. ... 사실 수 백 년 이래 기독교 세계가 지금보다 더한 치욕을 당한 적이 없다. ... 지금 우리는
유럽
, 다시 말해서 우리의 조국, 우리의 집,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장 참담하게 당했기 때문이다. "

1454년 프랑크푸르트 제국의회에서 십자군 소집을 위해 한 연설 중
1953년 오스만 제국의 군대에 의해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이슬람 세계의 위협이 기독교 세계의 안녕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

위의 연설에서 "기독교 세계"와 "유럽"은 사실상 동의어로 사용됨.

이후 다른 글들에서도 "우리의 유럽" 혹은 "기독교 유럽"을 동의어로 사용.


1458~1464
1420~1471
1420년 4월 23일 포제브라디 혹은 쿤슈타트에서 태어난 이르지는 왕족이 아니라 귀족 출신이었는데, 1458년 귀족들에 의해 보헤미아의 왕으로 선출된 이후 1471년 사망할 때까지 제위에 있었음.

이르지는 체코 역사에서 유일한 귀족 출신의 왕이었고, 이르지가 사망한 이후에는 체코(보헤미아)인이 보헤미아의 왕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모두 외국인이 보헤미아의 왕이 되었음.

얀 후스의 종교개혁 정신을 추구한 '후스주의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르지의 등장은 후스주의 2세대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인바. 2세대 후스주의는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공존의 시기로서 이르지는 평화와 질서를 표방하면서 두 종파간의 화합을 모색하였다.

이르지와 적대 관계에 있던 교황 비오 2세는 포데브라트 가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후스전쟁(1419~1434)의 종전을 선언한 1436년의 이흘라바 협약의 무효를 선언함.
이르지는 이미 오래전에 교황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을 배제하고 유럽의 가톨릭 군주들과 동맹을 체결해 보헤미아의 안보를 확보하고자 했음.

그는 1462년 특사를 파견해 포괄적 평화기구 결성을 목적으로 '기독교 세계'의 평화 구축을 위한 협정을 체결을 시도함. 이 계획안에 따르면
기독교 세계
의 군주들은 각국의 주권 원칙과 불가침 원칙, 그리고 국제기구를 통한 분쟁 해결 원칙을 기반으로 공고화된 장기간의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됨.

이르지에 따르면 "유럽은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해 연대해야" 하며, 이렇게 연대한 국가들은 거대한 단일체가 되며 단일체 내에서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는 체제라고 구상함.

당초 이 제안에 포함된 국가는 보헤미아를 포함한 독일, 갈리아(프랑스), 이탈리아였고 여기에 스페인을 포함시켰음. 그리고 단일체를 주도하는 국가로 프랑스를 제안했음.

이르지는 교황에게는 이러한 제안을 알리지 않았는데, 그의 계획에는 교황이 설 자리가 없었음. 사실상 이르지는 교황을 유럽 통합의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았던 것임.

이르지는 이후 2년 동안 계속해서 베네치아의 세레니시마, 프랑스, 부르군디, 폴란드, 헝가리, 브란덴부르크 후작령, 작센 선제후에게 특사를 파견해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지지를 얻어내려고 했음.

그러나 독일의 몇몇 군주와 폴란드, 프랑스만이 이르지의 계획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음.

베네치아는 이 계획에 교황이 배제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헝가리의 마티아스 코르비누스는 교황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부르군디는 프랑스와의 적대적인 관계 때문에 이 제안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프랑스의 루이 11세만이 보헤미아와의 양자 친선 관계에 동의함.

비록 국제기구 설립을 위한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르지는 보헤미아의 외교적, 경제적 고립을 피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해 나감.
보헤미아 국왕 이르지의 구상의 핵심은 연맹회의, 연맹재판소, 연맹군대, 연맹예산 등과 같은 국가연맹의 구조를 가진 유럽질서를 창출하려는데에 있었음.

14세기의 유럽 정치적 통합 구상들과 차별성을 가지는 그의 구상의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연맹 가입국 군주들의 주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주권을 일부 제한하는
초국가성(supranationality)
을 최초로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음.

총 21개 조로 구성된 조약문 중 연맹회의를 규정하고 있는 조약 15조의 “연맹회의가 또한 우리(군주들) 모두와 우리의 신하들 그리고 연맹에 가입을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임의적인 사법권을 행사 한다”는 규정은 국가 주권을 일부 제한하는 것임.

또한 연맹의 표결방식을 다루고 있는 조약 17조는 지배자의 주권이 다수결에 의해서 제한된다는 내용까지 명시하고있음.

이미 15세기 중반 유럽사에서 최초로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초국가성을 가진 국가연맹을 유럽의 국가세계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의 하나로서 사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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