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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휘 화장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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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현 이

on 3 Jun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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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민휘 화장문화사

'중세시대'
동양의 화장문화사 이민휘 국현 김수진 김은솔 이지영 신은지 전혜린 한국 일본 중국 '화장' 의 화장문화사 '화장' 의 화장문화사 '화장' 당시 중국 당나라 여성의 화장법은 유명했다.우리나라(신라), 서역, 중앙아시아, 일본에까지당나라식의 메이크업은 유행을 끌었다. 1. 파우더 바르기
2. 볼터치 하기
3. 눈썹 그리기
4. 이마에 그림그리기
5. 입가에 점찍기
6. 눈옆 관자놀이에 그림그리기
7. 입술화장 당시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의 입술 화장법! 중국 여성들의 얼굴은 대체로 크고 살이 많은 편이며 코 주위와 양 볼은 모공이 넓고 기후적 요인과 잘못된 피부 관리로 인해 예민하고 트러블있는 문제성 피부가 많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지역마다 선호하는 미의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세계문물의 집합지라 일컬어지는 상하이에서는 이목구비가 크고 늘씬한 서구형 스타일 미인을 선호하며 수도인 베이징의 경우 옛 왕족의 도도함과 오만함이 동시에 풍기는 강한 여성을 미인으로 손꼽는다. 그런가 하면 화난이나 시베이·푸져우·시난 등의 지역에서는 아직도 얼굴보다는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는 실한 몸매의 여인이 아름답고 탐나는 스타일이라 여기고 있다. 또 피부색도 강한 추위나 여름의 햇살에 잘 이겨내는 피부를 으뜸으로 꼽고 있다.

또한, 중세시대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미용시장은 미개척분야가 많이 상존해 있으며 중국인들이 한국의 미용기술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반면 어떤 부분에서는 중국 태고의 미용비법과 선진문 미용기술을 복합시켜 우리보다 앞선 미용기술을 가지고 있는 곳도 상당히 많다. '헤어&미용' 당나라 때에는 외양의 화려함이 동양문명의 최고점에 달했던 시대라고 일컬어진다. 이 시대의 생활풍습과 문화의 영향이 우리나라에도 사대부가 중심으로 전래되어 머리를 높이 치켜올리는 것과 가닥가닥 땋아서 늘어뜨리는 형태가 있었다. 장신구로는 당나라 때부터 화관을 주로 머리를 남녀 모두가 사용하였다.

송나라 때의 여자들은 주로 두갈래로 묶어서 끝을 말아 올려 리본이나 꽃으로 장식하여 묶었으며 화려한 화관을 사용하였다. 하류계층인 노동하는 부녀들은 일반적으로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었을 뿐 어떠한 머리장식도 하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대체로 직모가 많고 짙은 검정의 모발색이고, 숱이 많으며 웨이브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에서는 헤어를 미발(美髮)이라 부르며 피부관리를 미용(美容)이라 칭해 일반적으로 미용실은 미발과 미용을 병행하는 숍을 뜻한다. <당나라 양귀비> '복식' <중국의 전통머리장식>
중국 남서부 귀주성의 여성들민족의상을 입고 머리에 큰 머리모양을 부착하고 외출하는 먀오족의 소녀들로 수세대를 거쳐 친척여성들로 받은 대량의 머리털을 사용하여 짰다. 전통의 머리장식은 무게가 2~4킬로에 이른다 이 시대의 전형적인 귀부인 의복 양식인데 귀족 부녀들은 투명한 얇은 비단으로 몸만 가리는 대담한 형태의 복식을 하고 있어 당시 부녀자들의 사상이 매우 개방적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피백을 길게 드리우고 있다. 머리에는 보요관을 쓰고 있는데 관의 앞은 진주로 장식하고 있다. 흰색의 넓은 소매의 삼과 홍색군을 착용하고 있는데, 목이 많이 파여져 있다. 치마에는 패옥을 늘어뜨리고 소매단과 허리 부분에는 비단에 꿩 또는 봉황문의 수를 놓았다. 이 옷은 예복에 속한다. 한푸(漢服)의 복식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풍부하고 다채로워 중화(中華)민족의 우아하고 화려하며 넓고 큰 기질을 대표한다. 중국 고대의 선인들은 한푸(漢服)가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이미 하늘을 공경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신앙과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문화적 태도와 각종 생활풍속
그리고 미적 취향과 좋아하는 색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일상생활의 복식 속에 축적되어
중국 한푸(漢服)문화의 풍부한 내포를 구성했다. 의 화장문화사 '헤어&미용' '복식' 화장문화사
-피부보건관리과- 얌전한 듯하면서도 독특하게 포인트를 줘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일본 에도시대의 여인상.
일본은 완벽한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색조가 진한 것이 아닌 화장술의 완벽함을 추구하였다. 눈썹은 동글하고, 입술은 파랑색, 입빨은 흑색으로 염색하고, 얼굴색은 백분으로 하얗게 화장한다. 니혼가미은 넓은 의미에서는 고분 시대 에서 쇼와 시대까지 일본 고유의 헤어스타일이다, 협의에서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후기부터 에도 막부 말기까지의 여자 머리 모양을 가리킨다.
- 일본 전통머리 니혼가미 : 깨끗하게 정돈된 머릿결을 얼마나 정갈하게 올리느냐가 포인트. <니혼가미> 앞머리를 깍고 상투를 뒤로 매어 넘긴 그런 모양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이런 상투 트는 습속은 남자가 성인이 되었다는 증명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따은 머리를 하기도 하고 그냥 넘긴 머리를 하기도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대부분 이렇게 상투를 틀었고 그렇지 않은 남자는 어른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한다. <촘마게> 보통 우리가 기모노라고 하는데 일본식 발음은 키모노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입을것'을 의미한다. 일본 에서는 키모노를 무척 자랑스러워 하며, 아름다운 전통의상으로 여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한복처럼 키모노의 색상과 무늬에는 각기 다른 뜻과 동양의 정신, 철학이 들어 있다고 한다. <기모노> 남자옷은 나가기·하오리·하카마·유카타·단제 등으로 구성되고,
여자옷은 나가기·하오리·유카타·히후 등으로 구성된다. 태조 왕건이 있었던 고려시대 초기에도 화장을 했었다.중국에 있는 기녀 제도를 모방해서 그 기녀를 제도화시켜 여러가지 화장법을 한 분대화장이 있었다. 하지만 부인들은 그런 화장법들을 기피했었고 짙은 화장은 하지 않았다. 대신 눈썹은 버들잎처럼 가늘게 그리고 기생과 구분을 하기위해 비분대화장을 해왔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분대화장이란 얼굴에 분을 도포한듯 하얗게 바르고 눈썹은 가늘면서도 또렷하고 선명하고 그리며 입술연지도 바르고 머리는 기름이 반질거릴 정도로 많이 바르는 것을 분대화장이라한다. 화장을 하는 기본적인 도구들 그 밖에도 빗과 거울의 소비량이 늘어남에 따라 고려시대 사회제도 속에서도 화장문화를 가늠해볼 수가 있다. 한국의 중세시대는 고려시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화장을 장려하고 화장법을 가르친 것은 고려 태조 왕건 때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왕건은 궁궐 안에 교방을 설치해 기생이 갖춰야할 여러 가지 교양과 몸매를 익히게 했으며 화장법도 가르쳤다.
고려시대의 화장술과 화장품의 제조는 신라의 화장 문화가 전승, 발전된 것이었다. 고려 태조가 신라의 정치제도와 문화를 계승하는 정책을 시행한데다가 종교 역시 불교를 계속 신봉하였고 영육일치사상이 계승되었다. 그 결과 고려의 화장 문화는 외형상으로는 사치스러워졌고 내면으로는 탐미주의적인 색채가 강해지게 되었다. '헤어&미용' 고려시대에는 영육일치 사상의 전승으로 화장문화가 사치스러웠고 탐미주의적 경향이 있었다. 또 면약과 염색기술이 행해졌으며 화장에 있어서도 귀천의 차이가 있었다. 전신목욕을 하루에 서너 차례 할 정도로 청결을 강조하였으나 향유 바르기를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를 즐겨 바르지 않았다. '복식' 고려시대의 머리 형태는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오대, 송(요, 금)영향기에는 신라의 머리형으로 보이나 《송사》에는 “고려 여인들은 계를 오른쪽 어깨 위에 드리우고 나머지 머리는 아래로 내리는데 홍색 비단으로 묶고 비녀를 꽂는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새로운 머리 형태인 타마계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2단계는 원나라 영향기로 머리 형태가 몽고풍을 따랐다. 광번측요추마세, 넓고 나부끼는 듯하며 비스듬하게 두르고 말에서 떨어졌을 때와 같은 모습이라 표현되었다.
3단계는 명나라 영향기로 수월관음도에서 볼 수 있다 <수월관음도 부분도> 1. <추마계> 추마계의 머리 모양은 《고려도경》에 보면 양기의 손수가 창작한 것으로 되어 있고 말에서 떨어졌을 때의 모습과 같은 형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 계를 만드는 것이고 그 상태로 약간 흔들거리는 형상을 말한다. 머리카락 전체를 머리 위로 빗어 올려 묶은 다음 그것을 두 갈래로 나누어 만드는 것을 말한다. 아는 가닥 아자인데 가닥이란 나뭇가지 아귀를 뜻하는 것으로 머리 모양이 나뭇가지 아귀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2. <아환계> 노국공주에서 공양왕 왕비 사대부의 머리 모양을 살펴보면 노국공주의 머리 모양은 가체를 크게 올리고 장식 띠로 머리 아래를 받쳤고 상류층의 유행 머리와 비슷하다. 공양왕 왕비의 머리 모양의 형태는 고계이며 장식을 화려하게 했으며 고려말 상류층의 여인들이 대표할 수 있는 것이었다. 3. <왕비머리> 머리 모양은 송나라 이전 오대말부터 내려온 것으로써 궁중에서부터 시작하여 부녀자들에게 널리 퍼졌던 머리 모양이며, 하늘을 향해 올려져 있는 형상을 한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4. <조천계> 머리를 수발 상태로 늘어뜨리거나 땋아서 늘어뜨리는 형식이지만 쌍수계처럼 계를 올리지 않고 늘어뜨리는 형식은 당나라와 송나라를 거치면서 유행했던 머리 모양이다. 5. <쌍수계>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치마저고리 이분구조의 복식에, A자형 실루엣으로, 그 모습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 벽화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과거의 여성들은 치마 안에 여러겹의 바지와 치마, 그리고 '살'을 받쳐서 치마를 부풀렸다.고려 도경에도 여자들이 여러겹의 치마를 입고, 속바지에 살을 대어 부풀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귀족의 옷이나 예복의 경우엔 수없이 많은 속옷을 받쳐입어 치마를 부풀렸다.또한 치마, 저고리 구조는 만주쪽의 민족에게도 나타나는 복식이지만 한국처럼 A자형의 잔뜩 부풀린 치마를 입지는 않는다. 고려시대 복식의 특징은 저고리와 치마가 기본이 되며, 치마는 조선시대의 한복과 같이 신분이나 예를 차리는 정도에 따라 비교적 덜 풍성한 것부터 피라미드모양의 주름이 잔뜩 잡힌 부풀린 치마까지 다양했다.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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